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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108화 (108/236)

108화

나를 만난 웨이타오는 대뜸 물어왔다.

“이상하지 않나?”

“뭐가 말입니까?”

“이번 운석 말일세.”

“지구를 코인 채굴기로 개조해버린 놈입니다.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자네 말처럼 그놈이 운석을 떨어트린 건 이상한 일은 아니네. 아무 이유 없이 운석을 떨어트린 게 이상하단 말일세.”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왔던 시련들은 나름의 이유가 존재했네. 코인 채굴량을 높이기 위해서라거나 코인 채굴량이 낮은 플레이어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등과 같은 ‘그럴듯한’ 이유가 말이야. 그리고 항상 그 사실을 시스템(System)을 통해 미리 통지해왔네.”

“하지만···”

“이번엔 아무 메시지도 없었지. 지금까지와는 그 경우가 다르다, 이 말일세.”

“그 이유가 뭘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 내가 위대한 신의 생각을 어찌 알겠나? 들어오는 기프트가 시원찮으니, 우리보고 힘내라고 깽판 한번 쳐본 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제 기프트 채굴이 거의 다 끝나서 우리를 삭제해버리려고 하는 거일 수도 있겠지.”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은 그럴듯하다. 시스템을 향해 물었지만, 시스템에게는 어떠한 대답도 도착하지 않았다. 무언은 긍정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아무튼 전직 주석이었던 내 감이 미칠 듯이 경고하고 있네. 이런 일이 고작 한 번으로 끝나진 않을 거라고 말이야.”

내 얼굴이 찌푸려졌다. 다른 이가 감 운운했다면 헛소리 치부했겠지만, 그의 감은 평범한 감이 아니다. 그는 전설 등급 스킬 ‘제 6의 감각’을 보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그의 불안감은 높은 확률로 실체화될 것이라는 거다. 대비해야 한다. 아니, 아예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대비한다고 해도 그 운석들을 쉽게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운석이 전부라는 보장도 없고.’

하지만 어떻게 막는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쉘터 이전에 대해서 궁금한 점은 없으십니까?”

사실 이게 그를 찾아온 본론이었다.

“없네. 이전하는 것 다 좋은데 나를 버리지만 말아주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석님께서 저희를 배신하지 않는 한, 저도 주석님을 버릴 일은 없을 겁니다. 정말 없으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른 그룹원들에게도 가봐야 해서.”

내 말을 들은 웨이타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는 지하오란과 미란을 만나기로 했다. 이번 일에 대해 상담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이 존재하긴 하지만 사실 그냥 친교 다지기다.

***

이진서에 의해 얼굴 전체가 함몰돼버린 이후, 윤민수는 이틀을 내리 기절해있었다. 미국 정부가 이진서의 눈치를 보느라 그에게 제대로 된 치료를 해주지 않은 탓이었지만···

그럼에도 목숨을 건지는 데 성공했다. 이진서에게 받은 10만 기프트로 회복제를 구매했기에 상처도 금세 아물었다. 하지만 그는 갈 곳이 사라졌다. 미국 정부는 그를 받길 꺼려 했다.

플레이어로서 그의 실력은 ‘증명’됐지만, 괜히 그를 받아들였다가 이진서와의 관계가 틀어질 걸 염려해서다. 붕 뜬 신세가 된 그는 차라리 브라질로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곧 포기했다.

“미안하지만 민수, 나는 이곳이 좋아.”

“미국을 떠나 브라질로 돌아가자고? 민수, 미쳤어?”

믿었던 그의 애인과 친구들이 미국에 남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미국 정부의 눈칫밥을 먹으며 미국에 머물렀다. 그 와중에 애인과 친구들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라소미에게도 도움을 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뭐, 이건 그렇게 기대는 안 하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도움을 청해본 것이었지만.

‘시발, 세상 참.’

그는 방에 틀어박힌 채 날마다 술을 마셨다. 대체 왜 다들 내게 이 지랄들이란 말인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아니, 이진서야 그럴 수 있다 쳐도 지들은 나한테 왜 그러는데?

‘개새끼들이···’

날마다 주정뱅이 생활을 하던 그에게 찾아온 것은···

“시발, 도지?”

바로 예런 일리아티였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지만, 그 예런 일리아티가 틀림없었다. 그의 옆에 걸터앉은 그는 앞에 놓인 술병 중 하나를 들어 한 모금 축인 후 물었다.

“친구, 나를 아는 모양이군?”

“모를 리가 없지. 네놈 때문에 꼴아박은 돈이 얼만데.”

“자네도 사기꾼 아니었나? 너무 배척하지 말게.”

“웃기지도 않는군. 너에 비하면 나는···”

더 낫다, 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예런 일리아티가 그를 하찮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자네라면 그런 하찮은 일로 나와 설전을 벌이지는 않을 거야. 어쩌면 나는 자네를 구원해줄 구원자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나를 구원해주겠다고? 어떻게? 그래 봐야 너도 미국 정부의 수족 아닌가? 아니, 일루미나티인가?”

“일루미나티가 진짜 있다고 믿는 걸 보니 자네 지능도 알 만하군.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들어. 자네처럼 어중간한 사람들은 조금만 잘해주면 ‘진심으로’ 충성할 테니 말이야.”

“어이가 없군. 지금 그런 식으로 말해 놓고 내가 진심으로 충성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역시 한국이나 미국이나, 있는 것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 현실은 하나도 모르는 샌님들이지!”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은 예런 일리아티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고작 보름 만에, 그는 ‘예런 일리아티’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예런 일리아티가 그를 고용함으로써 그의 신분은 ‘꺼림칙한 이방인’에서 ‘예런 일리아티의 보디가드’로 신분이 수직 상승했기 때문이다. 소원해졌던 애인과 친구들과의 관계가 회복됐다.

아니, 이제는 그들이 매달리는 입장이었다.

을이었다가 갑이 된 기분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달콤한 쾌락이었다. 그를 그렇게 만들어준 예런 일리아티에 대한 감사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가 제공한 지하 방공호와 연결된 안전 가옥 덕에 운석 비 속에서도 그의 애인과 멀쩡할 수 있었다. 이제 그는 그가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할 수 있었다.

‘내 진정한 주군이다.’

그런 예런 일리아티가 그에게 부탁을 해왔다.

“민수, 한 가지 부탁을 들어줘야겠다.”

“무엇이든 말만 해라. 네 부탁은 무엇이든 들어주지.”

“플레이어 하나를 죽여줘야겠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를 영입했을 때부터, 그가 이런 부탁을 할지 모른다고 예상해왔던 것이다.

“누구를 죽이면 되지?”

그러나 살인 청부의 대상을 들은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예런 일리아티가 담담하게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읊었기 때문이다.

“대리어스 대통령을 죽여줘야겠다. 곧, 그가 이곳에 도착할 거다.”

“미친놈, 대통령을 죽이자고? 괜히 그놈을 죽였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대리어스 대통령은 내 친한 친구지.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똑똑해. 그라면 이미··· 알아챘을 테지. 나의, 우리의 위대한 과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예런 일리아티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두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가 진심으로 대리어스 대통령을 죽이자고 한다는 것을.

윤민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예런 일리아티가 그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그리고··· 대리어스가 그를 찾았다. 그리고 모든 일은 그의 계획대로 이루어졌다.

대리어스를 보좌하던 비서실장은 독물을 먹고 목숨을 잃었고, 대리어스는 독물을 먹은 상태에서도 저항했지만 결국 윤민수에게 제압당해 예런 일리아티에게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쯧, 자네는 참 검소하군.”

대리어스를 죽인 예런 일리아티의 한마디. 그걸로 끝이었다. 비서실장의 시체는 어딘가에 파묻혔고, 대리어스의 시체는 시위대의 소행으로 위장됐다. 미국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시위대와 친 대리어스 파가 무력 충돌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의원들은 대통령의 자리를 공석으로 두면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로 정한다.

그리고 예런 일리아티는 그 자리에 당당히 올랐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리어스가 사라진 지금 그는 재력으로 보나, 인물로 보나, 적합한 인물이었으니까.

물론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윤민수는 예런 일리아티에게 경외심을, 한편으로는 불안감 역시 느꼈다. 그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 그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예런 일리아티가 먼저 말을 했다.

“민수, 자네가 나를 배신하지 않는 한, 나 역시 자네를 배신하지 않을 거네.”

“고맙네.”

“이제 혼란은 거의 다 진정됐어. 이진서 쪽만 눈치 못 채면 되네. 그가 눈치채면 보통 복잡해지는 게 아니니까.”

윤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서만 막으면 된다는 의견에는 그도 동의했다. 그것은, 반대로 말하면 이진서 이외에 그들이 두려워할 대상은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변수가 하나 더 존재한다는 것을. 그것도 무려 ‘오천 만 기프트’를 보유한 변수가 말이다.

***

지하오란과 합의한 끝에 인종 차별, 국적 차별을 한 이들은 진심으로 반성할 때까지 교화소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가서, 김선우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으면 반성이 많이 되겠지.

“쉘터를 이전한다고 들었네. 후보지로 정해둔 곳은 있는가?”

“아직 없습니다. 아마 곧 회의가 열릴 거 같습니다. 지하오란 님께서는 어디 추천하고 싶으신 데가 있습니까?”

“솔직히 대륙은 너무 위험하고, 이왕이면 호주가 어떨까 생각하네.”

나는 쓰게 웃었다.

“그렇게 멀리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후보지로 뽑아놓겠습니다.”

여기서 호주까지 거리가 얼마더라. 물론 반중력 수송기에 탑승한다면 금방 갈 수 있겠지만 쉘터 전체를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미란 씨는 없습니까?”

“일본은 어때요?”

“일본이라··· 일본은 이미 죄다 잠겼을 텐데요?”

“안 잠긴 지역은 있을 거 아니에요? 후지산이라든가.”

“아, 누가 화산은 열렬히 반대해서 말입니다.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고, 아 이미 폭발했으려나?”

“그러면···”

나는 슬쩍 지하오란을 쳐다본다. 그는 멋쩍게 웃고 있었다. 나 역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따 생각나시면 톡으로 연락해주세요.”

“읽긴 할 건가요?”

“당연하죠. 저는 의도적으로 씹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내가 사업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자네처럼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처음 보는군.”

이 정도면 거의 공개 처형이다. 물론 나를 처형하는 게 아니라, 미란을 처형하는···

“아버지?”

미란이 차가운 눈으로 지하오란을 쳐다본다. 지하오란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차를 들이켰다. 그들을 만나고 난 이후에는 하남으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남에 있는 공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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