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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105화 (105/236)

105화

운석을 막아낸 직후, 몰려온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얀색 천장ㅡ 슬쩍 곁눈질하니 병실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운석이 더 떨어지지는 않았나 보네.’

병원이 멀쩡한 상태에 있는 걸 보면, 빌어먹을 운석이 더 떨어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숨을 내쉬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금세 후회하고 말았다. 고통이 찾아왔다.

비유해서 표현하자면 바늘 100개로 온몸을 쿡쿡 찌르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변이체를 상대하며 고통에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천외천(天外天)이었다.

나는 다시 드러누웠다. 머리까지 어지러울 정도다.

‘어떻게 된 거야?’

천장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자,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됐다.

[플레이어, 이진서가 기절한 지 약 48시간이 흘렀습니다.]

시간 가속으로 인해 내 시간이 두 배 빠르게 흘러가는 걸 생각하면, 실질적으로는 96시간인 셈이다.

‘나흘인가.’

체력이나 마력을 과도하게 소모하고 난 이후에 쓰러진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몇 시간도 아니고, 무려 나흘씩이나 기절해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내 체력은 150을 뛰어넘은 상태였으니까. 어지간해선 피로 자체를 느끼지 못하며, 설령 체력을 소모한다 하더라도 금세 회복해버리는 괴물 같은 회복력의 소유자가 바로 나였으니까.

[플레이어, 이진서의 체력은 147.5입니다.]

‘왜 줄었어? 버프가 빠져서 그런가?’

[운석을 막아내는 동안 줄어들었고, 기절해있는 동안 더 줄어들었습니다.]

‘내가 능력치 올리겠다고 기프트 얼마를 투자했는데.’

줄어든 능력치를 복구하기 위해서 못해도 수천만 기프트는 필요할 것이다. 확인해보니 체력만 줄어든 게 아니라 근력, 민첩 역시 골고루 줄어들었다.

정말 나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틀림없이 부작용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을 겁니다.]

라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자, 흥분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그 정도로 내 육체는 위기 상태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미미르의 샘물을 먹으면 멀쩡히 회복되려나?’

[미미르의 샘물은 체력, 마력을 100%로 올려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육체가 원상태로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완전한 회복은 불가합니다.]

‘안 마시는 것보다는 낫다, 이 말이구만.’

파르르 떨리는 입술 사이로 간신히 목소리를 내뱉는다. 곧 허공에서 술잔이 내려온다. 영롱한 황금색으로 빛나는 술잔. 무심코 술잔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곧 깨달았다.

지금 내 몸은 눈앞에 놓인 술잔 하나 들이켜지 못할 정도로 악화돼있다는 걸 말이다.

“으윽.”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지만, 나는 기어코 술잔을 잡았다. 정신력으로 고통을 이겨내는 아름다운 순간···은 염병. 술잔을 놓치고 말았다. 술잔이 데구르르 흘러간다.

다행히 안에 든 내용물은 흐르지 않았다. 저게 얼마짜린데. 하지만 내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버린 것 역시 사실이었다. 몸을 일으켜 술잔 하나 잡는데도 요 지경인데···

만약 침대에서 일어나 저 술잔을 주우러 간다면, 어떤 고통이 수반될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또다시 새어 나오는 욕설. 솟구치는 짜증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될 대로 되라지.

진혜연이 병실 안으로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대략 한 시간 뒤. 그녀는 눈을 뜬 나를 보자,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오빠 일어났어요? 일어났으면 말이라도 하지!”

미안하지만, 이 오빠가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다. 나는 대신 곁눈질로 술잔을 가리켰다. 그녀는 어렵지 않게 내 의미를 알아들었다. 그녀는 잔을 들었고 내 입에 흘려 넣었다.

[미미르의 샘물을 복용해 체력과 마력이 100% 회복됩니다.]

비어있던 곳간이 한순간에 차오른 기분. 나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좀 살 만하네.”

물론 상태가 상태인지라, 여전히 고통이 느껴지긴 했지만 방금 전과 비교하면 훨씬 나아졌다.

“오빠, 다음부턴 좀··· 이번에 진짜 죽을 뻔한 거 알아요?”

“알아. 이미 들었거든.”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이자, 진혜연이 이쪽을 날카롭게 쳐다본다.

“나, 눈빛으로 죽이려는 거 아니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오빠가 죽으면 우리 모두는 끝이잖아요.”

“꼭 그런 건 아닐걸? 게다가··· 내가 있다 하더라도, 뭐 달라지는 게 있을까 싶기도 하고.”

채굴자가 떨어트렸을 것이라 짐작되는 무수한 운석 비는 내가 사용했던 미티어 스웜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만약 내가 막지 않았다면 쉘터는 그대로 소멸했겠지.

그 운석 비를 막아낸 나는 죽다 살아났다. 다시 말하면 채굴자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못해도’ 그 정도 이상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훨씬 더 입맛이 썼다.

채굴자가 만약 나를 죽이고자 마음을 먹었다면, 나 역시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그에게 있어서 벌레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계기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안 그래도 오빠 쓰러지고 난 다음에 다들 혼란 상태예요.”

“어떻길래?”

“인종 차별이나, 국적 차별 같은 사소한 문제는 그냥 넘길게요. 간부들이 힘을 합쳐서 잘 수습한 것도 있으니까.”

“어떤 미친놈이? 그런데 이게 사소한 문제라고?”

무려 인종과 국적 차별이 사소한 문제라면, 얼마나 대단한 문제가 있단 말인가.

“간부들이 둘로 나뉘었어요.”

“왜 둘로 나뉘어?”

“말하자면 조금 긴데, 오빠 쓰러진 뒤에 얼마 안 돼서 수천 마리의 변이체 무리가 쉘터를 급습했거든요. 어떻게 대처할지 간부들 사이에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있었어요.”

강순철은 ‘변이체와 전면전’을 벌이자고 주장했고, 박승기는 무모한 전면전을 벌이지 말고 ‘쉘터 내부에서 수성전’을 치르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정민혁은 ‘쉘터 이전’을 주장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쉘터 이전?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왜 하필이면 지금이야?”

“제가 개인적으로 물어봤는데, 사실 예전부터 이 지역이 쉘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대요. 그런데 자기도 벌여놓은 일이 많아서, 섣불리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웠다고 하더라고요.”

“하기야···”

덜컥 말을 꺼내기엔 쉘터가 많이 커졌다. 이런 쉘터를 버리고 이주하자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면 오히려 그룹원들의 혼란만 더 가중됐을 것이다.

“그리고 댐이 무너지기도 했고···”

“밖에 물 벌창했겠네?”

“네. 2층까지 그냥 물에 잠겼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피해는 없었지만, 하마터면 물에 쓸려갈 뻔했대요.”

“그런데 왜 셋이 아니라 둘이야?”

“네?”

“강순철, 박승기, 정민혁, 의견을 내놓은 사람은 셋인데 왜 간부들이 둘로 갈라진 거냐고.”

“아, 그건··· 박승기 의원님이 민혁 오빠한테 힘을 실어줬어요. 민혁 오빠가 좀 입김이 세잖아요. 오빠 없을 때는 모두가 그 오빠를 리더 취급하는 분위기기도 하고.”

“그렇게 된 거였구나. 무력 충돌 같은 건 안 일어났지?”

내 머릿속에서 ‘어벤저스 : 시빌 워’라는 영화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외계의 적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애쓰던 영웅들이 의견 충돌로 절반씩 나뉘어 서로 혈투를 벌이던 영화.

볼 때는 재밌게 봤는데, 그런 상황이 현실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골치 아프기 짝이 없다.

“아직은 그 정도로 막장은 아닐 거예요. 그런데 서로 자존심도 걸려있는 문제라서··· 어떻게 합의가 된다 해도 한동안 서로 삐걱거릴 거 같은데.”

그녀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일어나야겠네. 시빌워는 막아야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커튼을 걷자, 외부의 풍경이 드러난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거친 빗줄기, 운석에 의해 파괴된 건물들. 그리고 물에 잠긴 지상.

‘진짜 옮겨야 하나?’

갑자기 담배가 마려워졌다.

***

강순철을 설득했다.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정에 호소해 설득해보기도 했지만, 그는 쉽게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민혁아. 그런데··· 그 계획이 실패하면?

- ······

어떤 계획이든 리스크가 없을 수는 없다, 라고 말하려 했던 정민혁은 말을 삼켰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가 주장하는 전면전 역시 당위성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 그래, 백번 양보해서 연병수 말대로 우리 쉘터가 저 1km 상공에 두둥실 떠올랐다고 생각해보자. 거기서 뚝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 ···그룹원들은 반중력 수송기에 탑승해서 이동할 예정입니다.

- 그래, 사람이 먼저지. 하지만 우리가 기껏 일군 쉘터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거다. 김하나가 세운 요리점도, 이주열이 세운 제과점도, 서문주가 세운 병원도··· 죄다 가루가 돼서 저 바닷속에 잠길 거란 말이다.

-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겠죠.

- 민혁아···!

- 형님, 제가 전면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우리가 전면전에서 패배할 것을 염려해서, 혹은 누군가가 희생될 것을 염려해서 같은 그런 감정적인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 그러면 대체 왜 반대하는 거냐?

- 이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여기서는 승산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리케이드? 아무리 단단하게 짓는다 한들 초월체의 공격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바닷물에 잠기기라도 하면 피해가 커질 거고, 결국 함락당하고 말 겁니다.

- 여기에 대해선 나도 생각해둔 게 있다. 초인을 만들면 된다.

- 초인이요?

- 그래, 초인. 리더를 봐라. 만약 리더가 있었다면 우리 둘이 이렇게 충돌하는 일도 없었겠지. 이유가 뭘까? 바로 리더가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가 어떻게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게 됐을까?

- ······

- 기프트, 모두의 기프트를 회수해 한 명만 강화하면 된다. 리더만큼 강해질지는 의문이지만, 리더의 무력의 절반만 된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쯤은 쉽게 넘길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말이야.

- 그 기프트 회수라는 게 말이 쉽습니다, 형님 같으면 자신의 손에 들어온 기프트를 쉽게 넘기겠습니까? 아니, 형님은 그럴지 몰라도 적어도 다른 사람들은 아닙니다. 애초에 진서 형님이 멀쩡하던 시절에도, 왜 자신들은 기프트를 더 조금 주냐면서 투덜거리던 사람들이 존재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순순히 받아들이겠습니까? 틀림없이 반발이 일어날 겁니다.

- 반발? 어차피 이대로면 모두가 죽게 생겼는데, 우리가 그런 하찮은 이들의 말을 들어줄 필요가 있을까?

- 그리고 그 초인이란 것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말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설령 초인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한들 그 사람이 진서 형님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 나도 리더를 대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문주가 말하더구나. 리더가 지금 삼도천을 건널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설령 몸을 회복한다 하더라도, 원래대로 힘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우리에겐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다.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르니, 주장하는 바가 다르고, 어느 한쪽에 굽힐 생각이 없기에 둘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강순철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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