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거인화(L)의 부작용으로 인해, 체력 소모가 300% 빨라집니다.]
[지나친 체력 소모로 인해 육체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확률이 증가합니다.]
[영구적으로 체력 능력치가 0.1 감소합니다.]
[영구적으로 민첩 능력치가 0.1 감소합니다.]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능력치에 기겁한 나는 미미르의 샘물을 소환해 단숨에 들이켰다. 직전까지만 해도 지쳐있던 몸에 활력이 차오른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방패를 향해 떨어진 운석은 한두 개가 아니다. 빠른 속도로 쌓인 간츠의 가호 중첩은 50, 60을 뛰어넘어 70을 돌파한 상태다. 이제 운석은 더 이상 내 방패에 닿지도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방어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죄다 튕겨 나갈 뿐이다.
나는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간츠의 가호 1중첩당 절대 반사 확률이 1%가 올라가니 70%, 내가 걸치고 있는 루의 방어구와 그 세트 효과로 인해 35%를 추가하니, 단순 계산만 따지고 보면 105%다.
즉, 다시 말해 지금의 나는 어떤 공격을 맞든 모조리 반사해버릴 수 있다는 의미다. 그야말로 ‘사기’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스킬이지만 사실 내 상황도 그리 녹록지는 못했다.
[간츠의 가호 100중첩에 도달했습니다.]
[체력 소모가 1,000% 빨라집니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1,000%라니.
체력 소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심지어 저건 처음 뜬 메시지도 아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몸에 충만했던 힘이 마치 바람 난 풍선처럼 빠지기 시작한다.
고작 1분 만에 이 거대한 육체를 지탱할 힘조차 사라져,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서 있던 자동차가 그대로 찌그러진다. 하지만 나는 계속 방패를 들고 있었다.
여기서 피할 수는 없다. 그룹원들에게 뒤를 맡기기엔, 저 운석은 지나치게 강력했으니까. 미처 대피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이 휘말려 죽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들 중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반드시 막는다.’
굳은 의지.
[영구적으로 체력 능력치가 0.1 감소합니다.]
[영구적으로 근력 능력치가 0.1 감소합니다.]
[영구적으로 민첩 능력치가 0.1 감소합니다.]
실시간으로 능력치가 감소했지만, 입술을 꽉 깨물고 견뎠다. 그리고 마침내 운석의 비가 멎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미 한계에 달한 상태. 내 몸이 점점 작게 변한다.
[거인화(L)가 해제됩니다.]
뒤이어 아이아스의 방패 역시 사라졌다.
[아이아스의 방패(L)가 해제됩니다.]
간츠의 가호 중첩 역시 초기화됐다.
[간츠의 가호 중첩이 초기화됩니다.]
몸이 원 상태로 돌아갔다. 물론 극도의 피로감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거칠게 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본다. 내 노력이 헛수고는 아니었는지 대부분의 운석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 한 개의 운석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지금까지 떨어진 운석들보다 훨씬 더 거대한 운석. 저런 거에 직격당한다면 단순히 압사(壓死)당하는 것뿐 아니라 소멸해 버릴 것이다.
운석이 향하는 방향은 하필이면 이쪽이었다. 나는 더 이상, 저 운석을 막아낼 힘이 없었다.
‘35%의 확률로 목숨은 건질 수 있겠네.’
그나마 고무적인 사실.
간츠식 방어술이 사라지긴 했지만, 루의 방어구 세트를 입은 지금 절대 반사 확률은 35%. 다시 말하면 저 운석에 맞는다 하더라도, 살아남을 확률이 35%는 된다는 것이다.
물론 나머지 65%의 확률로 나는 으깨지고 말 테지만. 아무리 내 행운이 높다 하더라도, 내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긴 싫다.
‘피해야 하는데···’
그러나 움직이고 싶어도, 도저히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시간 가속으로 시간이 두 배 빨리 흘러가면 뭐 하는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건 매한가지인데 말이다.
그때였다. 화염이 넘실거리는 거대한 주먹이 운석을 강타했다. 쾅! 강렬한 폭음을 일으키며 운석이 두 조각으로 갈라진다. 고개를 들어, 주먹의 주인을 쳐다본다.
붉은색 머리의 라틴계 여자가 마치 연주자처럼 손을 움직이고 있다. 그녀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는 화염의 거인이 운석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내 얼굴이 환해졌다.
‘라우라.’
그리고 화염 거인의 정체는 그녀가 소환한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 지금까지 접했던 그 어떤 이프리트보다 거대한 사이즈의 이프리트였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ㅡ꼴사납게 쓰러져서 뭐 해?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녀의 입모양이 틀림없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쓴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운석을 계속 바라봤다. 산산조각 난 운석 파편이 지상을 향해 떨어진다.
곧, 지상은 불바다가···
‘??’
되지 않았다.
느닷없이 하늘에서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운석 파편들을 향해 달라붙었고, 운석 파편들은 열기를 잃고 평범한 돌멩이로 변하고 말았다.
뭐, 돌멩이치고는··· 많이 거대하지만.
“형!”
허공에 로브를 걸친 연병수가 있었다. 그의 손이 움직이자, 파괴된 쉘터가 원상태를 되찾는다. 시간 회귀? 아니면 복구? 나조차 어떤 마법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따라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금의 내 재능으로도 ‘엄두’를 내지 못할 마법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괴물이 됐구나.’
옐레나가 말하길, 그의 재능은 그녀 이상이라 말했다. 그러나 그걸 알고 있는 나조차도, 그의 성장세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나와 옐레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곤 하지만···
‘가슴이 웅장해지네. 저게 그 시흥에서 봤던 연병수가 맞나?’
처음 봤을 때 그의 모습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인지 부조화가 오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습을 드러낸 그룹원들도 입을 벌리고 있다.
연병수가 바닥에 착지하자, 차가운 눈발 역시 멈춘다. 다행히, 운석 비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룹원들이 운석 파편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그제야 마음을 놓은 나는 드러누웠다.
체력은 물론 정신력도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피로감이 든다. 당장 쉬라고, 잠을 자라고 꼬드기는 것 같은 극한의 피로감이었다. 조금 눈을 감아도 되겠지.
어차피 지금 몸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ㅡ형!
ㅡ형님!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 수마에 빠지고 말았다.
***
브리튼(Britain).
난데없이 출현한 운석의 비는 영국을 말 그대로 평탄화시켰다.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전멸하고 방공호로 대피한 소수의 플레이어들만이 살아남았을 뿐이다. 물론 아론은 예외에 속했다.
운석이 추락할 당시, 그는 시내를 걷고 있었고 운석은 그가 있는 시내에 떨어졌다. 거대한 돌덩이는 충돌하며 엄청난 충격파를 일으켰고, 충격파에 휩쓸린 그는 꼴사납게 쓰러졌다.
그 뒤로 셀 수 없는 운석들이 떨어져 내렸다. 일반 플레이어들은 물론 설령 이진서라 하더라도 휩쓸렸다면 몸이 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걸 증명하듯, 그는 플레이어들 중에서 상위권에 속했지만 그렇다고 이진서와 비견될 정도는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행운.’
엄청난 행운이 그의 뒤를 따랐기 때문이다.
떨어진 운석이 오히려 다른 운석들의 충격파를 막아주는 방파제가 돼줄 확률, 충돌로 인해 생긴 수많은 운석 파편들이 정확히 그의 몸만 피해갈 확률···
한없이 0에 수렴할 확률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물론 그의 전적을 떠올리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무려 번개를 일곱 번이나 맞고 멀쩡하게 살아남았던 ‘럭키가이’였으니까.
‘이게 럭키한 게 맞나?’
자기비판을 한 그는 폐허가 된 도시를 뚜벅뚜벅 걷는다. 그가 머물던 안전 가옥은 물론, 함께 지내던 그룹원들이ㅡ 아니, 그룹 전체가 한순간에 증발해버렸다.
그러나 그는 빠르게 적응했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저 행운뿐만이 아닌 빠른 결단력 때문이기도 했다. 한참을 걷던 그는 발을 멈춰 섰다. 그리고 손을 뻗어 무언가를 줍는 시늉을 했다.
[3,853,026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1,542,648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틀림없이 죽은 이들이 흘린 기프트가 틀림없었다. 그는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기프트들을 회수했고, 그의 기프트 보유량은 1억 기프트를 가볍게 돌파했다.
엄청난 기프트의 양.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웃지 못했다.
분명 상황은 그에게 웃고 있었지만, 모두가 죽었는데 기프트가 생겼다고 좋아할 정도로, 그는 냉혈한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캔커피를 한 잔 들이켠 그는 정처 없이 다시 걷기 시작한다.
***
이진서는 성공적으로 운석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것은 기절하듯 잠을 청하고 있는 그에게는 ‘애석하게도’ 반쪽짜리 성공일 뿐이었다. 댐. 지금껏 쉘터를 지켜주던 댐이 무너져 내렸다.
정민혁이 한발 늦게 그룹원들과 함께 댐으로 향했지만 결국 예정된 결말을 바꾸지는 못했다. 쏟아진 거대한 파도가 단숨에 쉘터를 휩쓸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며 대비해왔지만···
그것이 그저 그의 바람이었을 뿐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끝없는 물이 쉘터를 덮쳐왔다. 하나둘씩 빈틈을 타고 도시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더 이상 댐을 유지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지금 이진서가 있다면 모를까, 댐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댐을 더 이상 유지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 정민혁은 순순히 댐을 포기하고, 쉘터로 다시 돌아왔다.
졸지에 해상 도시처럼 도시 전체가 잠기게 생겼지만, 어차피 이미 운명하신 댐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병문안에 앞서, 아나스타샤를 만났다.
“부탁합니다, 아나스타샤.”
“안 그래도 계획 중이었어요.”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운석으로 인해 쉘터가 엉망이 돼버렸다. 그나마 주요 시설은 살렸지만, 나머지 시설은 거의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그녀의 손을 빌려, 시설들을 보수해볼 생각이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숙인 정민혁은 바깥으로 나온다. 임시로 보수한 시설들은 죄다 물에 잠긴 상태였다.
2층 높이까지 잠긴 물을 보자니, 괜스레 우울해진다.
‘사실 댐이 무너진 이상, 여기는 더 이상 안전하지가 않다.’
댐이 해오던 기능은 단순히 물이 범람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몰려드는 변이체들을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게 해줬다. 당연히 댐이 무너졌으니, 더 이상 기대하긴 힘들었다.
그동안 쏟아왔던 노력이 상당했던 터라, 그의 기분도 썩 좋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