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둡던 방안이 마치 대낮처럼 환하게 변한다. 침대에 누운 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백, 수천 개의 운석들.
꿈이라도 꾸는 걸까 싶어, 눈을 몇 번 깜빡였지만 운석은 사라지기는커녕 그 숫자가 더 불어났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시간 가속을 사용한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대체 이게 무슨···’
미티어 스웜을 주력기로 삼았던 나지만 설마 우리 쉘터에 운석이 떨어질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주먹을 휘둘러 창문을 깨고, 망설임 없이 몸을 날린다.
아우리엘의 날개를 펼친 채,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운석이 떨어지고 있다. 얼핏 보기에 속도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내 시간이 빨라져서 그런 것일 뿐 사실은 그대로다.
이 상황에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생각하던 나는 곧 결론을 내렸다.
“한승주 씨.”
- 예, 예?
그녀의 목소리가 느리게 들려온다.
“플라즈마 보호막 가동하세요.”
- 예? 왜 이렇게 말이 빨라요? 이미 가동했어요.
그러나 플라즈마 보호막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쉘터를 향해 떨어지는 운석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행여나 플라즈마 보호막이 뚫리는 순간 지옥도가 펼쳐질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영령 빙의.’
지금까지 내가 빙의했던 영령 중 무언가를 지키는 데 특화돼있던 영령은 메카닉, 레일리밖에 없다. 그러나 이 상황에 그의 센트리건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
아니, 딱 잘라 말하면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즉, 그가 아닌 다른 영령에 빙의해야 한다.
‘아쉬운 건, 미리 대비하지 못했다는 거지만.’
갈락시아의 도서관을 통해, 옐레나와의 대화를 통해, ‘고대의 영령’들에 관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괜히 영령이 된 것이 아닌 만큼, 그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중에는 고작 나뭇가지 한 자루로 용족의 영웅을 베어 넘겼다는 기사나, 아니면 인간이 부릴 수 없다는 마수를, 그것도 무려 72마리나 자유자재로 부렸다는 소환사도 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정보를 찾아, 그 영웅과 관련된 장비 아이템을 구매해 지금 상황에 적합한 영웅에 확정적으로 빙의하거나 소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없다. 내게 주어진 건, 시간이 느려진 세상 속에서도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저 운석이 지상에 닿을 그 찰나의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도박이다.’
그동안은 언제나 행운이 내 편을 들어주었다. 왠지 모르지만, 이번에도 같을 것이라는, ‘강력한 확신’이 들었다.
“영령 빙의.”
[영령 빙의(L)를 사용합니다.]
[높은 행운(140)으로 인해 사용자의 염원이 일부 반영됩니다.]
[상급의 영령 ‘방패 용사, 간츠’를 불러옵니다.]
이내, 영령이 공간을 가르고 터덜터덜 걸어 나온다.
온통 하얀 빛으로 이루어져 있어 정확한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지만 상당한 거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들고 있는 방패는 그의 몸의 두 배는 족히 넘어 보였다.
내 앞에 멈춰 선 그는 짤막하게 말했다.
- 도와주지.
상황이 그토록 촉박하다는 걸 알아서일까. 그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고,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방패 용사, 간츠가 몸에 빙의됩니다.]
[마력에 따라 동화율이 설정됩니다.]
[마력 192.5를 확인했습니다.]
[현재 동화율 96%] [지속 시간 : 1시간] [재사용 대기시간 : 36시간]
[영령의 능력치와 스킬의 일부를 불러옵니다.]
[근력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5.000 상승했습니다.]
[간츠식 방패술(L)를 일시적으로 습득했습니다.]
[거인화(L)를 일시적으로 습득했습니다.]
[아이아스의 방패(L)를 일시적으로 습득했습니다.]
<간츠식 방패술>
종류 : 패시브(Passive)
등급 : 전설(Legendary)
설명 : 간츠가 직접 창안한 방패술. 방패로 공격을 막아낼 시, 간츠의 가호(방어력 +50%, 절대 반사 +1%) 중첩을 얻는다. 간츠의 가호는 무한으로 중첩이 가능하지만, 중첩이 쌓이면 쌓일수록 유지에 필요한 체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거인화>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전설(Legendary)
설명 : 육체에 잠재된 거인의 피를 일깨우는 능력. 몸의 크기가 늘어나고(마력에 비례), 지력의 일부를 근력과 체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 또한, 체력 회복 속도가 250% 빨라진다.
<아이아스의 방패>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전설(Legendary)
설명 : 거인족의 신, 아이아스의 방패를 일부 구현한다. 방패의 크기는 사용자의 몸 크기와 마력에 비례한다. 방패는 사용자의 정신이 무너질 때까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무려 세 개의 전설 등급 스킬을 습득했다. 얼핏 보기엔 좋아 보인다. 하지만 난 금방 ‘단점’을 깨달았다. 이거···
‘딱 보니까 마력, 체력 소모가 장난 아닐 거 같은데···’
영령 빙의를 사용한 것만으로 상당한 마력을 소모했는데, 세 개의 스킬들이 하나같이 마력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먹을 것 같은 하마 느낌이 든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엔, 딱히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몸으로 때워야지.’
“거인화.”
[거인화(L)를 사용합니다.]
내 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십, 수백 배로 늘어난 나는 장난감같이 자그마해진 쉘터를 쳐다본다. 개미와 같이 자그마해진 그룹원들이 당황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다.
‘라우라가 이프리트를 소환했군.’
이프리트가 뭘 봐?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내심, 조금 안심이 됐다. 설령 내가 막아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녀가 있다면 방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낙하하는 운석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이아스의 방패.”
곧 거대한 방패가 생겨난다.
어지간한 빌딩을 내려다볼 정도로 커진 내 몸을 압도할 정도로 엄청난 사이즈의 방패. 혹시 방패에 닿은 빌딩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화이팅!”
단순 그림자만으로 쉘터의 사분지 일 이상을 암흑으로 물들인 방패를 든 나는 운석들을 향해 방패를 겨눈다. 마치 내 의지에 응답하듯 방패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점점 더 몸이 무거워졌지만,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버티기로 했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아스팔트 도로가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반드시 막는다.’
그리고 마침내, 운석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무자비한 운석은 플레이어들이 있는 모든 곳을 휩쓸고 지나갔다. 아무 피해 없이 막아내기엔 운석의 출현은 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미국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 각하, 우리 미합중국 시설의 77% 이상이 운석에 휩쓸려 사라졌습니다.
물론 이 77%라는 수치는 현재 사용하지 않는 시설들도 포함된, 다소 과장된 수치였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피해라 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 현재 파악 중이지만, 상당수가 사망 내지 중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보고를 받은 대리어스 대통령은 침음을 흘렸다. 그는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이 세계가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려 애썼지만, 이 세계는 지성인인 그에게는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었다.
“플레이어들을 구출하시오. 그리고 예런 일리아티는 어떻소?”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라 부를 만한 화성 이주 계획. 그 총책임자인 예런 일리아티는 임시 대통령인 그의 목숨보다 중요한 이라 할 수 있었다.
- 다행히 무사하십니다.
“시설은?”
- 안전 가옥이 효율적인 방어를 해냈습니다. 다만 시설의 극히 일부가 파괴된 모양입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방금 전의 운석 낙하로 인해, 선택지가 하나 사라졌다. 화성 이주 계획을 취소한다는 ‘선택지’가 말이다.
***
웨이타오는 안전 가옥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며 벌벌 떨고 있었다. 낙하하는 운석들을 바라보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몸을 벌벌 떨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제발, 제발 이진서가 이겨야 할 텐데.’
운석을 막기 위해 거인이 된 이진서는 거대한 방패를 들었다. 그동안 봤던 그의 무력을 떠올리면 그가 패배하리라고 생각하기 힘들었지만, 만약 그가 패배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끝이다.’
쾅! 방패와 운석이 맞닿으며 들려오는 엄청난 폭음에 그는 또다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주석님,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때,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나레쉬가 입을 열었다.
“나레쉬, 자, 자네는 나를 지켜야지? 아니, 나만 지키는 게 아니라 여기는 자네 가족들도 있지 않은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운석을 막는 일에 거들어보려 합니다. 행여나 제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주석님께서 가족들을 맡아주십시오.”
처음에는 바보 같은 소리 말라고 할 생각이었지만··· 그의 눈에 어린 의지를 보고도, 자신을 지켜달라고 말할 정도로 웨이타오는 바보는 아니었다.
“그래, 자네 가족은 내가 잘 맡아주지. 꼭 우리를 구해주게.”
나레쉬가 단숨에 창가로 몸을 날렸다. 수십 미터 상공에서 떨어지는 그의 몸이 점점 느려진다. 이진서의 방패는 운석을 막아냈지만 그 파편들이 문제였다.
플라즈마 보호막에 가로막혔지만, 플라즈마 보호막이 뚫린 곳에서 파편들은 고스란히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무기인 단검을 꺼내 파편들을 받아쳤다.
파편들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더 빠르게.’
민첩에 집중 투자한 그는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파편들을 쳐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위력을 낮추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떨어진 파편들은 쉘터를 말 그대로 헤집어 놨다.
그 와중에 휘말린 플레이어들도 몇 보인다. 그러나 행위를 멈추기엔 현 상황이 별로 좋지 못했다. 그때였다. 플라즈마 보호막이 일부 무너져내리며 거대한 파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록 ‘파편’이라지만 그 크기는 어지간한 가정집만큼 거대했다. 저런 파편이 떨어졌다간 못해도 반경 수백 미터는 쓸려나가고 말 것이다.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겠군.’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단검을 들었다.
‘일점을 찌른다.’
일점을 찌르면 아무리 거대한 파편이라 한들, 산산조각 낼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이 지나치게 위험할 뿐.
“암살자의 의지.”
[일시적으로 민첩이 25% 상승합니다.]
이진서의 ‘기프트 투자’를 받아 얻은 전설 등급 스킬을 사용하고, 파편을 향해 도약했다.
‘생과 사가 갈리는 순간이다.’
일말의 흥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의 단검은 닿지 않았다. 그 전에, 거대한 불의 주먹이 파편을 그대로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바닥에 착지한 그는 불의 거인을 볼 수 있었다.
“방해되니까 그냥 꺼져줄래?”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정령사, 라우라를. 다소 싸가지 없는 말투지만 그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는 그녀의 무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