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코인 채굴-100화 (100/236)

100화

비록 저 사악한 동양인과의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했다. 위대한 뉴클리어는 전 세계를 멸망시켰을 테니까. 때문에 쇠사슬에 묶인 상태에서도 니콜라이는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상함을 눈치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중력 수송기의 이동 속도는 무척 빨랐고, 러시아를 벗어나 중국 영토에 들어서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멀쩡했다. 분명 강물이 범람해, 대부분의 지역들이 물바다가 됐지만, 핵폭발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니콜라이의 얼굴이 붉게 변한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보리스 네놈이 감히 나를 배신해···!?”

옆에서 함께 바깥을 내려다보던 보리스는 정신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각하! 중국에 떨어진 핵미사일이 불발된 모양입니다!”

“내가 핵미사일에 들인 기프트가 얼만데 불발이 됐다고?”

“변수가 많잖습니까. 변이체들 때문에 불발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지역들은 ‘확실하게’ 파괴됐을 겁니다.”

물론 그럴 확률은 아예 없었다. 니콜라이가 발사했다고 믿는 러시아의 수많은 핵미사일들은 방치된 채, 이미 수장돼 버린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는 의심 어린 눈초리로 보리스를 바라봤다.

그러나 니콜라이가 진실을 알 방법은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바깥을 지켜볼 뿐이었다. 물론 그가 원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곧, 그들은 한국, 서울에 도착했다. 물에 잠긴 다른 도시와 달리 서울은 물에 잠기지도 않았다. 니콜라이는 한 번 더 보리스의 멱살을 잡았다. 이번에는 보리스도 입을 열지 못했다.

‘어라? 서울이 이렇게 멀쩡할 리 없는데···’

얼마 남지 않은 핵미사일들의 대표적인 타겟 중 하나가 바로 서울이었다. 만약 그의 지시대로, 뉴클리어 사일로에서 핵미사일이 발사됐다면 서울이 이렇게 멀쩡할 리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이 멀쩡하다는 건, 다른 타겟들 역시 멀쩡할 거라는 의미나 다름없다. 횡령은 했을지언정, 그는 명령 자체를 무시한 건 아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내가 묻잖아!?”

답답한 듯 가슴을 쾅쾅 치는 그에게 보리스가 조심스레 일말의 ‘가능성’에 대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배신한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내 딸이 나를 배신했다고 말하고 있는 건가?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는군.”

“하지만···”

“그보다는 자네가 더러운 나치 사상에 물들어 나를 배신했다는 쪽이 더 그럴듯하겠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던 보리스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각하, 저는 각하를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자네 같으면 믿겠나? 보리스, 이 멍청한 작자. 자네는 타락했어! 나와 함께 위대한 러시아를 꿈꾸던 동지에서, 나치 사상에 물든 악마가 돼버린 거지. 내가 자네를 정화해주지.”

니콜라이는 허리춤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권총을 꺼내 망설임 없이 방아쇠에 손을 댔다. 보리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러나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았다.

이 러시아의 독재자가 한때 가장 신임하던 부하에게 자비를 베푼 것은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보리스는 이미 저 사악한 나치 사상에 물든 배신자가 돼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진실은 방아쇠를 당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당기지 못한 것이었다. 정체불명의 불가항력(不可抗力)에 의해서.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재차 손가락을 당겼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노예 계약 3’에 의해 타 플레이어에 대한 공격 행위가 불가합니다.]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본 그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뒤에서 동양인- 이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 얌전히 좀 있어라.”

한국말이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니콜라이는 버럭버럭 소리 질렀다.

“내 몸에 무슨 수작을 부려 놓은 거냐, 이 더러운 동양인···!”

그러나 이진서가 가볍게 주문을 중얼거리자, 그는 꼴사납게 수송기 바닥에 두더지처럼 몸을 처박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수치심을 느낀 그는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불가능했다.

보리스는 새삼스럽게, 자신들이 포로가 됐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사람이 저 이진서라는 것 역시 말이다. 데굴데굴 눈알을 굴리던 그는 무릎을 꿇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

수송기는 서울에 착륙했고, 나는 니콜라이와 보리스를 끌고 내렸다. 미리 내게 연락을 받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그룹원들이 다가왔다. 물론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아마 핵 공격에 대비해, 대부분 방공호에 대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내 시선은 곧 러시아인들에게 향했다. 나를 기습했던 러시아인- 빅토르와 그의 동료들.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지 그는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기 제 비수는···”

“무슨 비수?”

번역기로 그의 말을 해석한 나는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사람 죽일 뻔했는데, 고작 비수가 중요하겠어?

“아니, 아닙니다.”

내 의지를 읽은 듯 그의 고개가 아래로 떨궈졌다. 처음 봤을 때의 그 반항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의 눈이 니콜라이와 보리스에게 향했다.

“저 개새끼들···”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충돌로 인해 죽어 나간 플레이어들의 숫자만 물경 일만에 달한다고 한다. 그중에는 당연히 그와 친했던 이들도 있을 터. 그런 분란을 만들어낸 장본인을 보니···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미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는 나를 바라본다. 굳이 그의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바리케이드의 벽이 세워진다.

그래, 남 보는 데서 사람 패는 것도 그렇지.

‘어차피 기프트도, 필요한 정보도 모두 빼냈으니까.’

자신을 살려줄 것이라 믿었는지 보리스는 성실하게 심문에 응했다.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해 확인한 결과, 나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모두 얻어낼 수 있었다.

“형님, 고생하셨습니다.”

그사이 올라온 정민혁이 내게 입을 열었다.

“어차피 또 가야 한다.”

“예?”

“러시아 또 가야 한다고. 질주, 돌아왔지?”

“예, 근데 러시아는 또 왜··· 뿌리 뽑으신 거 아니었습니까?”

“아직 러시아에 인재가 남아있거든.”

보통 인재가 아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신화 등급 건설 스킬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인물, 아나스타샤. 니콜라이의 핵 벙커와 안전 가옥을 만든 그녀를 ‘수집’해야 한다.

신화 등급 스킬 보유자는 이쪽에도 단 셋밖에 없으니, 반드시 필요하다.

***

북극.

온통 빙하로 가득한 이곳에 핵미사일 하나가 떨어졌다. 그 위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엄청난 크기의 버섯구름과 함께 한반도 크기의 빙하는 수십 조각, 수백 조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직후, 차가운 냉기 폭풍이 북극 전체를 덮친다. 누군가 이 모습을 봤다면 아름답다고, 한편으로는 섬뜩하다고 평가할 장면이었다. 그런 폭풍 사이로 인영(人影)이 모습을 드러낸다.

놀랍게도 나타난 이의 정체는 동양인 여자였다. 물론 그녀를 ‘인간’이라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선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일반적인 인간은 등에 날개를 달고 있진 않으니까.

곧, 그녀의 입이 열렸다.

-Aaaaa.

마치 천사의 목소리라 생각될 만큼 아름다운 목소리. 그러나 그런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이질적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언어가 아닌, 변이체의 언어이기 때문에.

빙하가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빙하를 깨고 모습을 드러낸 건 변이체들이었다. 눈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상급 변이체들. 심지어 그건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북극 전역에서 동일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변이체들이 일제히 울음소리를 흘리며, 거대한 하울링이 북극 전역에 울려 퍼진다. 곧, 변이체들이 빙하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런 변이체들의 선두에 선 건 동양인 여자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초월체 ‘퀸(Queen)’의 출현이었다.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바다가 얼어붙고 빙판길이 생겨난다. 그녀가 이끄는 대군이 남하(南下)하기 시작했다.

***

러시아 북극해에 인접한 작은 도시, 브라만스크. 인구가 채 1만 명도 안 되는 이 작은 도시의 중심부에는 건축물이 있다. 현지인들조차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오래된 건축물이다.

과거 러시아 제국 시절에 헛간으로 이용되던 건물이라는 둥, 산업 혁명 이후에 버려진 풍차라는 둥, 사람들의 추측이 난무했지만 그 정확한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건축물의 정체는 헛간이나 풍차 따위가 아닌 죽음의 손- 인류 전체를 멸망시킬 수 있는 파멸의 날 기계를 가동시킬 수 있는 ‘핵전쟁 관제 센터’였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건축물의 지하에 있는 군사 기지 시설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세상이 코인 채굴기로 변한 후, 니콜라이의 지시하에 러시아군은 이 관제 센터를 회수했다. 그리고 관제 센터 내부에 있는 변이체들을 죽인 후 새로운 책임자가 그 자리에 앉았다.

책임자는 고작 20대 중반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젊은 여성이었다. 물론 그런 젊은 나이에 책임자의 자리에 앉은 만큼, 그녀 역시 평범한 신분은 아니었다.

무려 러시아 대통령, 니콜라이의 딸, ‘니콜라예브나’가 그녀의 진정한 신분이었으니까. 그런 그녀는 분노에 파르르 얼굴을 떨면서 스마트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스마트폰 화면엔 금발 여자가 화사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아나스타샤, 어째서 우리의 뉴클리어들이 발사되지 않은 거지?”

26발의 핵미사일이 발사됐다. 반대로 말하면, 그들이 보유한 수천 기의 핵미사일들은 발사 명령에 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군 장성들의 ‘횡령’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발사된 핵미사일 역시, 기존에 설정했던 좌표와 전혀 다른 곳에 떨어졌다. 누군가 사전에 수작을 부렸다는 의미였다.

- 오우, 우리 꼬마 니꼴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책임자는 너인걸?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젠장, 네가 무언가 수작을 부린 거 아니야?”

- 이제야 그걸 알다니, 너도 어지간히 멍청하다. 그래서 딱 친구 하기 좋았는데 말이야.

“뭐라고?”

- 애초에 네 치매 걸린 아버지의 멍청한 뉴클리어 사상 따위에 내가 동조할 거라 생각했어?

“내 아버지를 모독하지 마. 내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네년을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 히이익, 그거 너무 무서운걸?

그녀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지 못할 정도로 니콜라예브나는 바보는 아니었다.

그녀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머리끝까지 잔뜩 분노가 치밀어 오른 그녀에게 아나스타샤의 목소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 네 아버지가 멀쩡하길 바랄게. 뭐, 알지? 누군가에게 잡히기라도 한다면 그 확률은 몹시 희박해지리란 걸.

니콜라예브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므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