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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97화 (97/236)

97화

지도자인 니콜라이가 우랄산맥 어딘가에 위치한 벙커에 숨어 나오지 않는데 러시아 정부군의 사기가 높을 리 없다. 그럼에도 반정부군은 정부군에 쉽사리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재래식 전력 차이도 크지만, 그것보다도 변이체의 존재 때문이었다. 전투 끝에 큰 피해를 본 반정부군은 결국 소수의 정예 요원들을 투입해, 니콜라이를 암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반정부군의 리더인 바실리와, 반정부군 측 최대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마법사, 스텔라까지 투입돼 수색했지만 그들은 니콜라이를 찾을 수 없었다.

“니콜라이 녀석, 대체 어디로 숨어버린 거지?”

정부 홈페이지를 해킹해서, 핵 벙커 위치가 실린 문서를 입수했다. 핵 벙커가 있긴 있었다. 문제는 이미 버려진, 2차 세계대전 때 지어진 핵 벙커라는 거였다.

멋모르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온갖 먼지를 뒤집어쓴 스텔라가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물었다.

“지금이라도 차라리 계획을 변경하는 게 낫지 않겠어?”

“어떻게?”

“니콜라이 암살이 아니라, 가동할 만한 핵 시설을 모조리 찾아내서, 파괴하는 거지.”

바실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말이 쉽지. 미국도 다 찾지 못한 걸 우리가 어떻게 다 찾아? 만약 잠수함에서 쏘기라도 하면 우리는 못 막는다.”

그는 유일하게 핵전쟁을 막을 방법은 그 주체인 니콜라이를 암살하는 길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머지 부하들이야, 그의 꼭두각시에 가까운 존재들이니 말이다.

“그러면 이대로 이 망할 놈의 술래잡기를 계속하자고?”

바실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양인?”

바실리는 도끼를 꺼내며, 스텔라를 바라봤다.

“애초에 이런 데 동양인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역시, 도플갱어인가.”

그들은 이미 도플갱어를 만난 적도, 상대한 적도 있었기에 빠르게 저 동양인이 도플갱어일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다음 순간, 바실리가 동양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특수 변이체, 최대한 빨리 처치해야 한다.’

저런 특수 변이체가 도망쳐서, 자신들의 주위를 맴돌기라도 한다면 여간 골치 아픈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동양인이 아니라 슬라브인으로 변장했다면 그들 역시 속았을 테니 말이다.

곧, 그의 도끼가 동양인의 몸을 때린다. 퍽! 동양인의 몸이 날아가 나무에 부딪힌다. 우지끈 나무가 대자로 쓰러진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스텔라가 지팡이를 들었다.

“라이트닝 스톰.”

하늘에서 번개 다발이 떨어진다. 고전압의 전기가 인정사정없이 동양인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쓰러진 나무가 검게 타들어 간다. 화르르. 곧 불이 붙어,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나까지 감전될 뻔했잖아.”

“시끄러워.”

투덜거리는 그에게 가볍게 일축한 그녀는 다시 주문을 외운다. 파이어 월. 그녀가 낮게 중얼거리자, 곧 거대한 화염의 벽이 동양인이 있을 자리에 세워진다.

그 화력이 얼마나 강하면, 물을 모조리 증발시켜버릴 정도였다.

“죽었나?”

“메시지가 뜨지 않은 걸 보면 죽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마무리 지어.”

“알았어.”

바실리가 빠른 속도로 수면 위를 달려, 순식간에 화염의 벽까지 도달했다.

그는 몸을 던져 화염의 벽을 뚫었다. 화염 저항력을 높여주는 코트를 입고 있는 그는 화염 마법에 거의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곧 동양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눈에 파문이 일었다.

“??”

동양인이 지나치게 멀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곧 도끼를 움직인다. 동양인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도끼. 그러나 도끼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동양인에게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무기에 가로막힌 것도 아니고, 고작 손가락 하나에.

“······?”

그는 그만,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그가 들고 있는 도끼가, 어디 평범한 도끼인가. 신화 등급 무기인 ‘헤라클레스의 도끼’. 다른 옵션은 없지만 대신 근력을 22나 올려준다.

그리고 그런 도끼를 다루는 그 역시 러시아에서 1, 2위를 다툴 정도의 플레이어였다. 설령 초월체라 한들 그의 도끼를 막아내지는 못하리란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지금, 철저하게 부서져 내렸다.

“미친.”

동양인이 손을 천천히 움직인다. 분명 느릿한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다음 순간 그의 손이 그의 가슴에 닿아있었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손에 푸른색 기운이 깃들었다.

바실리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는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날아가, 그대로 산에 처박혔다.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우르르, 돌들이 무너져 내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텔라는 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변이체가 아니잖아?”

변이체치고 지나치게 강하다. 게다가··· 지금 사용한 힘은 틀림없이 마력이었다. 그녀는 곧 결론을 수정했다. 저 동양인이 변이체가 아닌, 플레이어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우리는 그럴 의도는 아니었···”

그러나 스텔라는 동시에 생각했다. 이미 대화로 해결할 시점은, 지난 거 아닌가 하고 말이다.

다음 순간, 동양인이 그녀를 향해 달려든다. 그녀는 기겁하며 하늘에 블링크를 사용했다. 수십여 미터 상공으로 이동한 그녀는 지상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곧···

또다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동양인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똑같은 블링크를 사용해서. 그녀는 체념하듯 손을 내려놨다. 동양인의 손가락이 그녀를 가볍게 건드린다.

마치 유성이 낙하하듯, 그녀의 몸이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쾅!

손쉽게 둘을 기절시킨 동양인- 이진서는 지상을 내려다본다. 곧, 그는 지상을 향해 내려갔다.

***

미국이 전해준 정보를 통해, 나는 우랄산맥 내부에 있을 니콜라이의 핵 벙커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허탕만 쳤다. 나름 샅샅이 훑어봤음에도 벙커는커녕, 그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어쩌면 진짜 다른 곳에 있을지도···’

슬슬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던 중, 나를 기습했던 러시아인- 빅토르 이상의 무력을 가진 플레이어 두 명과 마주쳤다. 처음엔 도플갱어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들은 플레이어였다.

정부군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진리의 눈, 게비샤로 그들의 마음을 읽어 확인해보니 반정부군이었다. 심지어 남자 쪽은 반정부군의 리더인 ‘바실리’라 했다.

여자 쪽의 이름은 스텔라,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 이외에는 아직 정체불명이다.

어쨌거나 나와 마주친 그들은 내게 몇 마디를 꺼내고는, 러시아인들처럼 나를 공격했다. 물론 그 이유는 제법 타당했다. 그들 역시 내가 도플갱어라고 생각해서,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적당히 응수해주고, 그들을 기절시키는 선에서 끝낸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였다. 나는 기절한 그들에게 회복제를 건네고, 그들을 치료해줬다. 기절한 상태로 방치했다간···

변이체의 밥이 돼버릴 테니 말이다.

“처음부터 플레이어라는 걸 밝히면 됐을 거 아니에요?”

스텔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유창한 한국어. 그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확인하자, 바로 언어 스킬을 배워버렸고 그 덕에 나는 한국어로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밝혔으면 믿었을 겁니까?”

“아니, 당연히 안 믿죠. 그래도 지금처럼 억울하진 않잖아요?”

“그만해, 스텔라.”

바실리의 말에 스텔라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더 말을 꺼내진 않았다.

“그러면 저, 당신이 이곳까지 온 이유는···”

그들은 내 정체를 알고 있었다. 너튜브를 통해서 접했다고 했다. 다만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동양인의 얼굴을 분간하는 것이 그들에게 쉽지 않아서였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빅토르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니콜라이가 핵전쟁을 계획 중이라고, 그래서 막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는 빅토르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아, 빅토르! 마지막으로 연락할 때 정부군에게 포위됐다고 했는데, 다행히도 무사한가 봅니다”

“예, 뭐···”

사실 김선우 목사에게 제법 많이 시달렸는지, 정신이 조금 불안정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육체는 멀쩡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내 말을 들은 바실리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러면 저희 다 목적이 같은 거 아닌가요?”

스텔라의 말에 바실리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니콜라이를 찾아, 핵전쟁을 막는다는 목적은 같다.

“저희는 아직 못 찾았습니다. 어디에 숨었는지, 보일 생각을 안 하네요. 섣불리 자극했다가, 괜히 미사일을 날릴까 봐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데···”

“그것 역시도 똑같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측에서 정보를 받긴 했지만, 전부 다 허탕이네요.”

확률이 99%라더니, 1%의 확률로 당첨된 기분이었다. 우리는 서로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우랄산맥 ‘어딘가’에 있는 핵벙커를 단시간에 찾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고 우랄산맥을 통째로 도려내 버릴 수도 없고. 그때, 내가 들고 있던 S31에서 기계 정령, 에코가 튀어나왔다. 바실리는 기겁하며 도끼를 다잡았지만, 그는 이내 도끼를 내려놨다.

“뭐야, 이 꼬맹이는?”

- 형님, 태윤이가 방금 미국 측과 이야기를 나눴답니다.

“무슨 이야기?”

- 곧 니콜라이의 핵 벙커를 찾아내기 위한 ‘계획’을 세울 거라고 합니다.

나는 손을 들었다.

바실리와 스텔라가 멍청하게 내 손을 쳐다본다. 이내 내 손에 푸른색 기운이 맺힌다. 가볍게 손을 뻗었다. 물속을 향해. 변이체가 튀어나왔고, 내 손은 그대로 녀석을 때렸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꼬르륵 가라앉는다.

- ···괴물.

“뭐라고?”

- 아닙니다, 형님의 대단하신 무력에 이 아우는 감탄했습니다.

“됐고, 그 계획이라는 게 뭔데?”

- 그 계획이란···

***

핵 벙커 안에서의 삶은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때문에 일반 사병이나 친위대들은 물론, 군 장성들조차 스마트폰 삼매경이었다. 물론 러시아 이외의, 외국 사이트를 이용하는 건 니콜라이의 명에 의해 엄격히 금지돼있었다.

감히 어길 만큼 담이 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독재자이자 절대자인 그의 명을 어겼다간 목이 달아나버릴 테니 말이다. 그러나 어딜 가나 금기를 저지르는 사람은 있는 법이다.

일반 사병인 디미트리는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더러운 변기 안에 걸터앉은 그는 스마트폰을 열어 빠르게 주소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평소 그가 애용해왔던 외국의 성인 동영상 사이트였다. 이내 재생되는 동영상. 혹시라도 화장실 안에 사람이 있나 없나 검사한 그는 헤벌쭉 웃으며 동영상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가 동영상 사이트에 접속한 것을 외국에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하나로 인해 핵 벙커의 위치가 발각됐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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