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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93화 (93/236)

93화

플레이어로 각성한 이후, 종종 다른 이들과 술을 마셨었지만 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신체 능력이 향상되며, 알코올 분해 능력 역시 함께 향상됐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역시 값비싼 명주라서 그런 걸까? 다른 술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별생각 없이 물처럼 벌컥 들이켰더니 제법 알딸딸한 기운이 올라온다. 물론 다른 이들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내가 몇 선 의원인 줄 알기나 해?”

박승기는 허공에 손가락질을 하며 술주정을 부리고 있었고,

“술이다, 술.”

안주와 함께 뒤늦게 합류한 김하나는 홍당무처럼 붉게 변한 얼굴로 꽉 찬 잔에 술을 따르고 있었다. 그 비싼 술이 흘러넘침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어느 누구도 막지 않는다.

애초에 아직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고, 위의 둘은 그중에서 정상인 축에 속했다.

“구와아악!”

“한승주 씨, 토할 거면 여기서 말고 화장실 가서 하세요.”

까마귀 소리를 내며 한쪽 구석에서 내용물을 모조리 토해내고 있던 한승주는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봤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다시 행위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음, 아무리 봐도 말이 통할만 한 상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잔을 가볍게 들이켠 후 이번에는 장영하를 바라봤다. 그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얼굴로 술잔을 들이켜고 있었다.

“영감님은 괜찮으십니까?”

“이런 몸이 돼버려서 그런가? 안 취하는군. 뭐, 원래부터도 술을 잘 마시긴 했지만 말이야.”

하기야 변이체인 그가 술에 취하지 않는 건 당연한 건가?

“안 취하는데 왜 자꾸 마시십니까?”

그의 옆에 굴러다니는 술병들. 다섯 병이니 무려 50만 기프트. 50만 기프트면 신화 등급 장비를 구매할 수 있는 거금. 물론 저것들을 그 혼자 마신 건 아니겠지만, 속이 약간 쓰려온다.

장영하는 어깨를 으쓱인다.

“먹으면 먹을수록 몸이 좋아지는 느낌이라서? 군부대 있을 때 내가 뱀술을 딱 한 번 먹어봤는데, 딱 이런 느낌이었네.”

어디 10만 기프트짜리 명주와 뱀술을 동일선상에 놓는단 말인가. 그래도 뭐, 장영하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노인네가 감 하나는 겁나 좋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10만 기프트짜리 그냥 술일 리는 없으니까요.”

가격만 놓고 보면, 시간 회귀의 물약과 똑같다. 그런 술이 단순한 술일 리 없다.

<아스톨레오의 명주>

종류 : 소모품

등급 : 전설(Legendary)

설명 : 아스톨레오가 천계의 장인들을 시켜 빚은 전설의 명주. 한 모금 마시는 것만으로 기분을 최상으로 만들어주고, 반병을 마시면 육체의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어준다. 한 병을 모두 마시면 희박한 확률로 무작위 능력치를 상승시켜준다고 한다.

한 모금 마시면 기분을 최상으로 만들어주고, 반병을 마시면 육체의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어준다. 게다가 한 병을 마시면 희박한 확률로 무작위 능력치를 상승시켜주는 효과까지.

물론 이 희박한 확률이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또 능력치를 얼마나 올려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행운이 높으니까, 마시다 보면 한 번쯤은 오르지 않으려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능력치 상승 메시지가 떠올랐다.

[축적된 행운이 다시 없을 기적을 불러옵니다.]

[영구적으로 마력 능력치가 0.5 상승합니다.]

‘좋구먼.’

마력 능력치 0.5. 이제 마력 능력치 200을 향해 달리는 나로서는, 결코 낮은 수치라 말할 수 없었다. 술맛이 한결 더 좋아지는 걸 느끼며, 술병을 마저 비웠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나오는데, 정민혁과 마주쳤다.

“형님, 다 마시셨습니까?”

“그래.”

“다른 분들은…?”

“이미 취해서 다 뻗었는데, 뭐. 뒷정리 좀 부탁할게.”

“예, 형님.”

정민혁의 뒤에 있던 진혜연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오빠, 어디 가요? 담배 피우러 가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화장실 가는데?”

“꼬맹아, 형님 바쁘시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얼른 가자.”

정민혁의 보챔에 그녀는 짐짓 볼멘소리를 낸다.

“내가 왜 꼬맹이야? 이제 3년만 있으면 성인인데.”

“아직 3년이 안 지났으니까 꼬맹이 맞지.”

“뭐라고?”

찌릿. 노려보는 진혜연의 시선을 외면하던 정민혁은,

“오늘 날씨가 좋으려나… 형님, 그럼 이따 봐요.”

엉뚱하게 말하고는, 내가 나온 연회장 안으로 빠른 속도로 걸어 들어갔다.

“정민혁, 제가 확실하게 처치하고 올게요.”

“그래, 기다릴게.”

목을 긋는 시늉을 한 진혜연은 이내 정민혁의 뒤를 따라 나선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옥상으로 올라왔다. 음주 후 흡연은 국룰이었으니까. 담배를 꺼내 천천히 입에 물었다.

바로 그때였다. 하늘에서 수송기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쟈비스다. 점차 가까워지던 쟈비스는 곧 내 위에, 건물 위에 멈춰 섰다.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스르르 입구가 열린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물고 있던 담배를 떼어내고, 아우리엘의 날개를 사용해 올라갔다. 입구로 들어가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나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서양인들이었다.

“Кто ты?”

들려오는 생소한 언어에, 한숨을 쉬었다.

“이건 또 어느 나라 사람들이야?”

그러자, AI가 친절하게 대답했다.

[러시아인들입니다.]

“러시아인들?”

그때, 앞에 서 있던 깡마른 남자가 내게 달려들었다. 빠른 속도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고, 주관적으로 봤을 때는 느릿느릿하기 짝이 없는 속도다.

나를 향해 뻗어지는 주먹. 굳이 주먹을 막지 않았다. 그의 주먹이 나를 때린다. 앱솔루트 배리어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타격은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간부 수준은 되려나?’

우리 그룹에서도 상위권에 들어갈 정도다.

그는 품속에서 두 개의 비수를 꺼냈다. 비수가 나를 향해 날아온다. 나는 손으로 가볍게 비수를 쳐냈다. 하지만 비수는 다시 그의 손으로 회수된다. 미세하게 푸른색 실이 연결돼있다.

아마 마력을 통해 연결돼있는 모양이다. 나는 가볍게 마력을 방출했다. 그러자, 단숨에 실이 끊어진다. 당황한 표정의 그는 나를 보며 뭐라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입이 열리기 전, 나는 그의 앞에 도달해있었다. 살짝 그의 이마를 향해 딱밤을 날린다. 말 그대로 살짝이었다. 힘 조절을 했다.

퍽!

호쾌한 소리와 함께 꼴사납게 날아간 그가 벽에 부힌친다. 아다만티움 재질이라 부서지진 않았지만, 쿵, 수송기 전체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손실률 1%. 쟈비스 안에서의 불필요한 무력 충돌은 그만두기 바랍니다.]

나는 쓰러진 그를 향해 회복제를 던지듯, 건넸다. 서양인들- 쓰러진 남자의 동료로 추정되는 이들이 회복제를 받아 들어 그의 입에 흘려 넣기 시작했다.

그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비록 아직 깨어나지 못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되자, 그들이 또다시 나를 향해 묻는다. 아까와 달리 상당히 정중해진 태도다.

자신들이 적대적이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하는 것처럼, 총을 내려놓는 건 물론, 양팔을 들어 올린 이들도 있었다.

“Кто ты?”

물론 그럼에도, 나는 러시아어를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번역기 기능을 사용할까 고민하던 나는 차라리 통역가를 찾기로 했다. 곧, 내가 향한 곳은 외국인 전용 거주 건물이었다.

인도의 정부 요원인 나레쉬라면, 러시아어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다.

***

러시아 내 니콜라이의 지지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러시아인들이 그를 지지했던 건 아니다. 강제로 기프트를 환수하려는 그의 정책에 대항해 반정부군을 만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무력 충돌이 잦았던 건 아니다. 결국 정부군이든, 반정부군든 모두 같은 ‘러시아인’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했기 때문에 양 세력 다 자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정부군의 리더였던 바실리가 그의 계획을 알게 된 후에는 조금 이야기가 달라졌다.

- 전 세계에 핵미사일을 뿌릴 거다. 핵미사일만이 이 멸망한 세계의 유일한 구원이니까.

처음 정보를 접했을 때, 그는 눈과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결국 반정부군은 니콜라이를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총공격을 감행했고, 내전으로 번지고 말았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죽었다. 니콜라이는 우랄 산맥의 핵 벙커로 숨어버렸고, 바실리가 이끄는 반정부군이 그를 찾아 나섰다. 빅토르는 그런 반정부군의 간부 중 하나였다.

그는 바실리가 공인할 정도의 실력자였고, 내전 중 대단한 활약을 여러 번 거뒀다. 그를 따르는 이들은 그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함정에 빠진 그들은 작은 마을에서 정부군에 의해 포위당했다. 목숨 바칠 각오까지 하면서 결사항전을 각오하던 그때.

거대한 검은색 수송기가 나타났다. 수송기의 문이 열렸고, 그들에게 들어오라는 듯 사다리가 내려왔다. 어차피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탑승했다.

정부군은 수송기를 공격했지만 수송기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문이 닫혔고, 수송기는 어딘가를 향해 출발했다. 그들은 수송기 내부를 둘러봤지만, 조종실조차 비어있었다.

“대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대략 수십여 분을 이동하던 수송기가 멈춰 섰다. 입구가 열렸고, 곧 동양인이 올라왔다. 그들은 경계 어린 눈으로 그를 향해 총기를 겨눴다. 서로 의사소통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들은 한국어를 알지 못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알아볼 방법은 하나뿐이겠지.”

“리더, 어쩌게?”

“실력을 시험해보겠다.”

빅토르의 말에 우려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그들은 그를 말리지는 않았다. 그를 믿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곧 그가 동양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가 저 동양인을 가볍게 제압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동양인은 빅토르의 주먹을 굳이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맞았지만, 뒤로 밀리지도, 상처가 생기지도 않았다.

“저 새끼가…!”

빅토르가 이를 빠득 갈며 무기를 꺼냈다. 사신의 비수. 무려 신화 등급 무기로 공격한 대상을 일정 확률로 사신의 저주에 걸리게 만드는 그의 전용 무기였다.

마력 실에 연결한 그는 비수를 던졌다. 그리고 이후에 일어진 일은… 그들로서는 도저히 믿지 못할 일들이었다. 동양인은 비수를 가볍게 튕겨내고, 그에게 딱밤을 날렸다.

그래, 말 그대로 가벼운 딱밤 한 대를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딱밤 한 방에 그들이 그토록 믿고 따랐던 빅토르가 리타이어됐으니 말이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이마가 찢어진 그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대체, 저 동양인의 정체가 뭐지?’

스케일이 다른 무력에, 그들은 두려운 표정으로 동양인- 이진서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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