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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92화 (92/236)

92화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의 실험은 성공했다. 로켓- 우주선은 무사히 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나가 달 표면에 착륙했다니 말이다. 다만 완전한 성공이 아닌, 반쪽 짜리 성공이었다.

우주에서는 플레이어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됐으니까. 재밌는 사실은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음에도, 시스템으로 얻은 것들이 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신체 능력이나 스킬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더군. 물론 아직 영구적인지, 일시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군요.”

“그래도 다행이야. 계획이 조금 복잡해지긴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인 일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예런 일리아티는 이 모든 상황이 그의 계획 안에 있다는 듯한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역시 성공한 기업가답게 그 자신감이 상당한 모습이다.

“앞으로 두 달 안에 화성 이주를 시작할 예정이니까. 그때까지 관심 생기면 이쪽으로 연락 달라고.”

예런 일리아티는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고, 그 의미를 어렵지 않게 깨달은 나는 그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곧, 그의 번호가 찍힌다. 그는 내게 슬쩍 윙크를 하며 말했다.

“대리어스 대통령도 내 개인 번호를 알지는 못한다고.”

그 능글맞은 태도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영광입니다.”

화성 이주 계획. 지금의 나는 그의 계획에 큰 관심이 없지만, 두 달 뒤의 나라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당장 두 달 뒤에 세상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는 나조차 알지 못하니까.

언젠가는 그에게 받은 번호가 요긴하게 쓰이는 날도 올 것이다.

그와의 만남 이후, 백악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시간이 늦었으니 이곳에서 하루 자고, 내일 아침에 출발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쉘터에 초월체가 나타났고, 장영하의 힘을 빌려 무사히 처치했다는 정민혁의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초월체가 나타난 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런 상황을 대비해 쉘터의 방비를 해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초월체가 데스 스토커라는 게 문제였다.

데스 스토커(Death Stalker). 중국에서 상대한 적 있는, 투명 능력을 가진 변이체.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했음에도 보이지 않아 상대하는 것이 제법 까다로웠던 변이체였다.

물론 다시 말하면 그것 이외에는 별 볼 일 없긴 하지만.

‘지금의 나는 손쉽게 사냥할 수 있겠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그것보다 까다로운 적은 없겠지.’

보이지 않는 적 앞에서는, 무리의 이점이 사라지는 노릇이니 말이다.

생각을 마친 나는 푹,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영감님을 찾아갈 게 아니라, 나한테 바로 전화를 했어야 할 거 아니야.”

- 형님께 민폐 끼치기 싫었습니다.

“민폐? 그런 건 민폐가 아니야. 만약 이번 일로 인해, 누군가 죽었다면? 그게 너나 혜연이나,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면? 나는 분명 자책했을 거다.”

- 죄송합니다, 형님.

“저번에도 내가 이거에 대해 말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리고 왜 하필이면 영감님이야.”

- 영감님은 형님 다음으로, 그리고 의원님 다음으로, 제가 믿고 의지하는 대상입니다.

“···솔직히 민혁아, 나도 영감님 안 믿는 거 아니다. 그래도··· 영감님이 가진 능력은 위험하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갑자기 미쳐버리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장영하는 북한에서 ‘드래고니안’이라는 특수한 변이체를 통째로 집어삼키며 초월체로 진화했다. 진화한 그는 내가 봤던 초월체들 중에서도 단연 수위에 들 정도의 무력을 보유했다.

아마 킹 타일런트 정도를 제외한다면, 그를 이길 만한 초월체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번만 해도 그렇다. 그들이 무사하다는 건 결국 그가 데스 스토커를 이겼다는 의미다.

그런 장영하가 작정한다면 우리 그룹도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없는 상태라면 더더욱.

‘물론 영감님이 그렇게 돼버린다 하더라도, 그룹에 단신으로 초월체를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자발적으로 협조할 리는 없지만,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면 나와 맺은 기프트 계약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는 충분히 강력하다.

설령 상대가 장영하라 하더라도, 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전투라는 건 실제로 붙어봐야 알 일이겠지만··· 나를 불렀다면 이 모든 가정은 안 해도 되는 것이다.

“내일 아침, 일찍 갈 거니까 반성하고 있어. 영감님한테 고맙다고 안부는 전해드리고.”

- 예, 형님. 주시는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뭐, 결과적으로 말하면 다 잘 됐으니까··· 잘했다. 이건 다음에도 똑같이 하라는 의미의 칭찬은 아니야.”

결과는 최상이었다. 즉각적으로 처치하지 않았다면, 데스 스토커가 어떤 일을 벌였을지 모른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적어도 수십 분의 시간은 필요할 테니 말이다.

- 알고 있습니다, 형님.

그와의 전화를 끊은 나는 작게 한숨 쉬었다.

“오빠, 뭐가 잘 안 풀리는 모양이네?”

뒤에 숨죽여 대화를 듣고 있던, 라소미가 슬그머니 물어왔다.

“사실상 그룹의 리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녀석인데··· 가끔 나를 너무 못 부려 먹어서 말이야.”

“오빠를 부려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해?”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음··· 생각보다 많이?”

해맑게 웃으며 신화 등급 요리에 투자하겠다고, 기프트를 더 달라는 김하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밀히 말하면 부려 먹는다는 표현보다는, 물주로 본다는 표현이 옳은 거 같긴 하다.

뭐, 그게 그거긴 하지만···

“오빠도 많이 달라졌구나.”

문득 윤민수의 말이 떠올랐다. 그 역시 내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나는 쓰게 웃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거든?”

“4년이 짧지는 않은 세월인가 봐.”

“그러게.”

라소미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나만 달라진 게 아니다. 그녀 역시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 달라졌다.

무심코 창밖을 바라본다. 무섭게 비가 퍼붓고 있다. 빗물이 훨씬 더 늘어난 느낌이다. 모터보트를 탄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소미야, 넌 어쩔 거야?”

“뭘?”

“나 내일 아침에 떠날 거거든. 미국에 남을 거야? 아니면, 한국으로 올 거야?”

“나야 당연히···”

“······”

조용히 그녀의 대답을 기다린다.

“이곳에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서 말이야. 친하게 지내는 언니도 있고.”

“친하게 지내는 언니?”

“뭐, 별로 오빠한테 소개해주고 싶진 않지만···”

그녀는 어깨를 으쓱인다. 또다시 침묵이 이어진다.

“나중에 혹시라도, 미국이 쫄딱 망하면 그때 받아줘.”

“그거야 당연하지. 그리고···”

[플레이어, 라소미에게 50,000,000기프트를 양도했습니다.]

“더 주고 싶은데, 가진 게 이거밖에 없네.”

여기저기 펑펑 쓰고 다녔더니, 그 많던 기프트가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뭐, 상관없다. 어차피 기프트야 또 벌면 되니까. 정 필요하면 인도를 다녀와도 되는 노릇이다.

“오빠.”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받아. 정말 미안했고, 고마웠다.”

25살의 비범한 능력 하나 없는 청년이 주택을 보유할 정도로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4년 전, 집을 보유하고 있었던 이유는 전부 다 라소미 때문이었다.

그녀의 가정은 꽤나 유복했고, 오피스텔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믿는다며, 명의를 내 명의로 이전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주택으로 담보 대출을 받은 거고.

라소미는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냥 갈라서는 것으로 끝을 냈다. 그녀가 소송이라도 걸지 않을까, 내심 안절부절못했었던 나는 인생에서 최저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때의 미안함은 ‘고작’ 기프트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 다시 안 볼 사이처럼 말해?”

“한국에 돌아가면 보기 힘든 건 사실이잖아? 연락해. 번호는 알지?”

“그 번호 그대로야? 응응, 연락할게 오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나는 질주에 탑승해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인계받을 항공모함의 전 함장이었다는 소프 대령을 만날 수 있었다.

- ‘나도 한국으로 데려가 주시오’라네요. 그런데 정말 수송기가 오는 거 맞죠?

“예,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마 도착하는데 몇 분 안 걸릴 겁니다.”

어차피 이서란 및 외국인들도 합류하기로 했는데, 소프 대령을 데려간다 하더라도 이상할 건 없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소프 대령은 내게 고맙다는 의미로 푹 고개를 숙였다.

아공간 창고에 항공모함들을 차곡차곡 넣었다. 그 부피부터 장난이 아니지만 어차피 기프트를 들여 확장해 놨기 때문에 넣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

원 목적이었던 항공모함들을 확보한 나는 다시 질주에 탑승했다. 소프 대령은 뒤이어 날아올 쟈비스에 탑승하기로 했다. 되돌아오는 길은 순식간이었다.

변이체와 맞닥뜨리는 사소한 해프닝조차 없었다. 마침내 미국에서의 일을 모두 마치고, 쉘터로 돌아온 것이다.

***

“영감님, 술 좋아하십니까?”

“불안하게 왜 갑자기 그러나?”

“아니, 이번에 도와주신 것도 그렇고.”

고맙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의 협조로 인해 큰 참사 없이 초월체를 막아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거 섭섭하게 말하는군. 나도 이 그룹의 구성원일세. 자네가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말이야.”

“마음 같아선 뽀뽀라도 해드리고 싶네요.”

“사절하겠네. 술? 좋아하지? 비싼 것좀 얻어먹어 보실···”

그는 내 손에 생긴 술병을 보고는 말을 멈췄다. 무슨 술인진 모르겠지만, 평범한 술병이 아니라는 것은 느낀 듯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하다. 이 술, 한 병에 10만 기프트 짜리다.

“노인네도 좋아하겠구먼. 노인네도 부르지?”

여기서 말하는 노인네는 박승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이대가 맞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금세 친해졌다.

“이 시간이면··· 의원님은 아마 학생들 가르치고 계실 거 같긴 한데, 불러보겠습니다.”

이 시간대면 박승기가 학교에 있을 시간이었다. 그룹 자체에 어린아이의 비율이 낮아, 학생의 숫자는 몇 되지 않지만 그는 자신의 업무에 열정적이었다.

그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도 꽤나 좋은 편에 속했다. 내 연락을 받은 박승기가 곧 도착했다. 절묘하게 수업이 끝난 직후 내가 연락했다는 모양이었다.

“크, 술이 달구만 달아. 역시 10만 기프트짜리 술은 다르군.”

“많이 드십시오. 두 분께서 항상 고생하시지 않습니까.”

“내가 뭐 고생하는 거 있나? 그냥 늘그막에 하고 싶었던 일, 이제야 하는 거뿐인데, 뭐.”

말은 그렇게 해도, 그는 어려운 일을 도맡아 했다. 정민혁이 직접 맡기 힘든, 껄끄러운 일들도. 그동안 직접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그에게 항상 감사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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