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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88화 (88/236)

88화

세상이 코인 채굴기가 돼버린 후에도, 미국은 무려 일곱 척의 항공모함을 운용해왔다. 멸망 전에 열한 척을 운용했던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미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그러나 그런 항공모함들은 대부분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폭우, 그리고 물속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 변이체. 바다는 더 이상 인류의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씁쓸하군.”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소프 대령님.”

제이드는 그를 향해 경례를 하고 있다. 소프 대령은 그만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다. 그러나 별로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듯 모자를 깊이 눌러쓴 그는 입을 열었다.

“자네야말로 그동안 내 밑에서 고생 많았네.”

“아닙니다, 영광이었습니다!”

“자네는 워싱턴으로 돌아가나?”

“예, 아마 그곳에서 프로젝트 X에 참여하게 될 것 같습니다.”

풀네임은 Project Xpace.

반중력 수송기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은, 그의 아버지이자 현 미국의 대통령인 대리어스가 설립한 프로젝트. 앞으로 찾아올 재앙을 피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자는 내용이었다.

제이드는 그런 프로젝트 X에 스스로의 의지로 자원했다.

“나라를 위해 애쓰는군.”

“함장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할 일이 없으시다면 우주로 함께 떠나시는 것도···”

“이 나이에 우주는 무슨, 보는 걸로 만족하겠네. 나는··· 아마 한국으로 가게 될 것 같네.”

“한국이요?”

소프 대령의 대답을 들은 제이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쓸모없어진 아이를 한국 측에서 구매해주기로 했거든.”

‘쓸모없어진 아이’란 바로 항공모함- 제너럴 부시호였다. 한국에서 구매하겠다고 의사를 밝히자, 당연하게도 처치 곤란이었던 미국은 얼른 팔아넘기기로 했다.

이것은 상부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닌, 함장인 소프 대령 역시 동의한 일이었다.

제너럴 부시호와 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그에게는 단순 항공모함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전함이었다. 폐기되는 것보다는, 어디서든 쓰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끌고 간답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소프 대령은 어깨를 으쓱였다. 제이드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보통 배를 운송할 때는 해로를 통해 운송한다. 하지만 이런 폭우 속에서 해로를 이용하다간 한국에 가기도 전에 바닷물에 잠길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항로뿐인데···

‘그게 가능한가?’

제너럴 부시호의 무게는 9만 톤이다. 9만 톤짜리 물건을 비행기를 통해 옮긴다는 건 그도 생전 들어본 없는 말이었다. 그걸 옮길 만한 비행기가 있을 리도 없고.

‘해체시킨 뒤에, 부품 형태로 옮기려나?’

그 편이 가능성은 제일 높았다.

“뭐, 그 대단한 친구가 직접 온다고 했으니 그 친구가 알아서 하겠지.”

“이진서, 말입니까?”

“그래.”

제이드는 이진서를 떠올린다. 강릉에서 그와 마주친 적 있었다.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그와 함께했던 동료들은 그를 배신하고, 이진서의 그룹으로 가버렸으니까.

물론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모두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아니, 일말의 고마움마저 가지고 있었다. 이진서의 도움으로, 미국은 카르텔의 침공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

삼 일 전쯤, 이서란을 통해, 미국이 항공모함을 처치 곤란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하기야, 해수면이 점점 상승하는 이런 세계 속에서 유지, 보수하는 것도 일일 터.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김민수와 상의를 한 후 미국 측에 항공모함을 폐기할 거라면, 이쪽에서 구매하고 싶다는 제안을 건넸다. 그리고 미국은 흔쾌히 내 제안을 수락했다.

한 척당 10만 기프트에 몽땅 넘기기로. 사실 항공모함 개조에 들인 기프트만 10만 기프트를 훌쩍 넘긴다 했으니, 이쪽에서 명백하게 이득 보는 장사였다.

물론 운송은 이쪽이 하기로 했지만···

‘아공간 창고로 옮겨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냥 아공간 창고로 옮겨버리면 그만이다. 핵미사일들을 회수하느라 기프트를 소모해 아공간 창고의 부피를 크게 늘렸고, 항공모함이라 하더라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커졌으니 말이다.

“흐흐, 기대됩니다.”

김민수는 사악해 보이기까지 하는 웃음을 흘렸다.

“설마 살아생전에 항공모함을 만져볼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작업 인원이 부족하진 않으시겠습니까?”

“뭐, 그거야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란페이 그룹원들을 고용하면 되니, 괜찮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 진짜 가져오는 일만 남았네요. 혹시 ‘질주’는 완성됐습니까?”

내 물음에 김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격납고에 넣어 놨습니다.”

그의 말에, 기대감 어린 얼굴로 격납고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검붉은 전투기를 마주할 수 있었다. 지난번 수송기와 함께 받았던 미국의 최신 전투기 F-18을 마개조한 것이다.

물론 쟈비스에 투자한 것의 배 이상을, 이 자그마한 F-18에 투자하긴 했지만, 그 충동적인 결과물은 굉장하고 엄청났다.

[질주]

종류 : 탈것(Vehicle)

등급 : 전설(Legendary)

내구 : 800/800

기능 : 아다만티움 합금 Lv.35, AI 무인 조종 Lv.35, 속도 Lv.35, 부스터 Lv.35, 마력 회로 Lv.25, 은신 Lv.25, 오토 쉴드 Lv.25, 오토 리페어 Lv.25

기능만 무려 일곱 개가 달린 괴물이 탄생했다.

물론 나는 전투기 조종에 대해 알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지금’은 말이다. 장비 아이템들 중에는 ‘기계’ 자체의 숙련도를 빠르게 올려주는 장비 아이템도 존재했다.

<기계 공학자, 레일리의 기계 팔>

종류 : 액세서리(Accessory)

등급 : 전설(Legendary)

내구 : 100/100

옵션 : 지력 +2.0, 기계 숙련도 +50%

기계 팔을 대자,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팔에 장착된다. 나는 살짝 팔을 흔들어봤다. 거슬림 없는 일체감이 느껴진다. 곧 콕핏이 열리고 안에 들어가 조종석에 앉았다.

손으로 조종간을 쥔다. 방금 전까지 전투기 조종에 대한 지식이라곤,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게 고작이었던 나는 빠른 속도로 지식을 습득해나가고 있었다.

높은 지력이 도움이 됐다.

[지력(124.0) 보정을 받습니다.]

[습득 속도가 빨라집니다.]

‘출발해볼까.’

나는 천천히 출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질주는, 이름처럼 말 그대로 격납고를 떠나 활주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제로백. 음속을 아득히 벗어난 최대 속도. 활주로를 순식간에 벗어난 뒤 날아오른다.

도시를 내려다본다. 순식간에 사람들은 물론, 빌딩들은 개미처럼 자그마해진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다.

“제대로 가보자, 부스터.”

전투기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날렵해진 모양으로. 전투기의 마력 회로가 내 마력을 빨아들여 푸른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곧··· 속도를 더 높이기 시작한다.

미칠듯한 가속에 가속이 더해진다. 시간 가속을 습득한 나조차 몸을 덜덜 떨 만큼 엄청난 속도. 그때, 내 눈에 변이체가 한 마리 들어왔다. 날개를 달고 있는 최상급 변이체.

중국에서 나를 몇 번 애먹인 적 있었던, 자폭하는 개체가 틀림없다.

‘하필이면 왜 여기 있는 거야?’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이 경로대로라면 녀석과 ‘틀림없이’ 부딪친다.

변이체와 부딪쳐도 질주가 괜찮을까? 찰나의 순간, 생각에 잠긴다. 설령 부딪쳐서 잘못된다 하더라도 내 한 몸 정도는 충분히 건사할 자신이 있다. 그렇다면···

‘고작 이 정도에 부서진다면, 내 애마에서 탈락이지.’

최상급 변이체도 이쪽을 발견한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내 질주는 변이체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퍽! 농담이 아니라, 그대로 변이체는 폭죽처럼 터져나가고 말았다.

질주는 조금의 흠집도 없이, 그대로 질주한다.

“그래, 가자.”

***

“배달부가 미국으로 온다고요?”

에밀리의 물음에, 제니퍼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야, 에밀리··· 몰랐어? 지금 다 난리 났어.”

“왜요?”

“이 세계에서는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잖아. 어떻게 한번 눈에 들어서 그를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거지. 틀림없이 침대에서도 죽여줄 거야.”

혀로 입술을 핥는 그녀를 향해, 에밀리가 인상을 찡그린다.

“제니퍼.”

“아, 맞다. 네 전 남친이었지? 아니, 오해하지 마. 나는 그냥 들은 말만 읊어주는 거야.”

“설마 제니퍼도 그럴 생각은 아니죠?”

“···아니.”

“그럴 생각인 거 같은데?”

제니퍼를 노려보던 에밀리는 한숨을 쉰다. 헤어진 마당에, 이러는 것도 꼴이 웃기다. 그녀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이진서가 언젠가 미국에 올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다.

그는 미국과 꽤 긴밀한 사이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설마 오늘일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와의 지난 추억들이 떠오른다. 행복했던 기억도, 불행했던 기억도.

그를 만나면 뭐라고 하지? 만약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내가 그래서 미안했어, 이런 식으로 사과해야 할까. 아니면 앞으로 잘 지내라고 행복이라도 빌어줘야 하나.

‘다시 잘해보자고···’

사실 그게 진심일지도 몰랐다. 결국 자신이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건, 그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서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추해도 너무 추하지 않은가.

“미친년.”

“응? 그거 욕이지?”

“제니퍼한테 한 말 아니에요.”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에밀리는 격리소로 향했다. 제니퍼는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인생 역전의 기회를 이대로 놓칠 수는 없지.”

한편, 이진서가 탑승한 ‘질주’는 북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정체불명의 비행체의 출현을 목격한 미군 전투기 한 대가 뒤쫓았으나, 정체를 확인하기 전에 질주는 그들을 지나쳐버렸다.

- 스티븐 중위님, 방금 뭡니까?

스티븐 중위라 불린 전투기 조종사는 혼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미쳤네, 뭐가 이렇게 빨라? 방금 그거 전투기 맞지? UFO인 줄 알았네.”

- 레이더에도 안 잡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F-18이 맞는 거 같습니다.

물론 평범한 F-18이 아니다. F-18의 성능을 아득히 초월한 ‘괴물’이었다.

“아무리 봐도 아군 전투기는 아닌 거 같은데, 어느 나라 전투기야?”

- 역시 남한 아닐까요? 저만한 전투기를 만들 만한 나라는 남한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 전투기에 탑승해 있는 건 설마···?”

- 설마 배달부?

“그러고 보니 미국에 온다고 말을 들었던 것 같네.”

물론 그가 이 미국까지 전투기를 타고 올 거라고는 그는 물론, 미국에 있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지만 말이다.

“높으신 어른들이 난리가 나겠군.”

- 미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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