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정민혁은 댐 위를 돌아다니며 그룹원들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란페이 그룹의 중국인들을 포함해 그룹원들 500명가량이 전설 등급의 ‘바리케이드 소환’ 스킬을 습득했다.
스킬 하나당 10만 기프트씩, 무려 5,000만 기프트. 이진서의 지원이 없었다면 꿈도 못 꿀 막대한 비용을 들인 셈이었다. 그래도 그의 투자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서울은 한강과 가깝고, 무엇보다 서해와 가깝다. 만약 바리케이드로 이루어진 댐이 없었다면,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강물에 의해서든, 바닷물에 의해서든 수장되고 말았을 것이다.
3급~5급 바리케이드로 이루어진 댐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그 덕에 서울, 정확히 말하면 강남 일대는 물의 위협으로부터 멀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협이 물밖에 없는 건 아니었다.
물의 흐름과 함께 마치 물고기처럼 댐으로 흘러드는 변이체들이 문제였다. 물론 한반도의 변이체들은 대부분 소탕됐지만 중국의 변이체들이 흘러 들어온 것이 문제였다.
이진서가 소탕한다고 소탕했지만 그 넓은 중국의 변이체들을 모두 소탕한다는 건 어불성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므로.
“다들 일제히 발사!”
원거리 공격 스킬을 익힌 그룹원들이 물을 향해 닥치는 대로 스킬을 쏟아붓는다. 변이체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압도적인 화력에 죄다 시체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 그룹원들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진서와의 기프트 계약을 통해 막대한 양의 기프트를 투자받은 그들은 대부분 주요 능력치 50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게다가 기본으로 유일 등급이나 전설 등급 장비를 착용했고, 거기에 버프조의 버프 스킬을 받음과 동시에 요리조의 요리까지 먹어 능력치를 강화했다.
비교 대상을 이진서로 한다면 몰라도, 그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룹원들에 의해 죽어나가는 변이체들 중에는 최상급 변이체나, 심지어 특수 변이체까지 있었지만··· 제아무리 특수 변이체라 한들 막대한 화력 앞에서는 무력했다.
그러나 변이체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특유의 장기인 물량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변이체들의 시체가 탑을 이루고, 탑을 딛고 변이체들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댐에 찰싹 붙어 댐을 기어오르는 변이체들도 적지 않을 정도였다. 정민혁은 손을 들었다.
“다들 멈춰요.”
그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그룹원들이 공격을 멈춘다. 변이체들은 방해받지 않고 댐에 달라붙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감고 숫자를 센다. 1, 2, 3··· 10을 셌을 때쯤 눈을 떴다.
그는 소리친다.
“강태윤, 지금!”
그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댐에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흐르는 전류에 의해 변이체들이 검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단순히 댐에만 흐르는 게 아니라 물에도 흘러서 물에 있던 변이체들 역시 마찬가지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감전됐던 변이체들은 다시 몸을 일으킨다. 고압 전류에 당했지만, 고작 그 정도 고압 전류에 죽을 만큼 그들은 약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 사실은 정민혁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이 모든 것은, ‘소환수’를 소환하기 위한 조건이었을 뿐이다. 그의 몸이 푸른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눈까지 푸른색으로 물든 그는 중얼거렸다.
“나와라, 뇌신(雷神).”
마침내 강물에서 반투명한 푸른색의 표범이 소환된다. 그 사이즈는 댐 위에서 봐도 한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변이체들이 자연스레 표범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변이체들의 공격은 죄다 표범의 몸을 통과한다. 표범이 정민혁을 바라본다. 마치 명령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한 태도였다. 쏴아아.
묵묵히 쏟아지는 비를 맞던 그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모두 죽여라.”
표범, 뇌신이 움직여 닥치는 대로 변이체들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변이체들은 표범의 앞에서 무력했다. 상황 판단이 빠른 녀석들은, 승산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뇌신이라는 이름답게 그 몸놀림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고, 변이체들은 도망치지 못했다. 마지막 변이체까지 모두 다 처치한 표범이 하늘을 향해 포효한다.
우르릉. 천둥이 치기 시작한다.
지켜보던 그룹원들은 그 엄청난 위력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왜 저렇게까지 하나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네. 저건 뭡니까, 형님?”
“얼핏 듣기로는 스킬인 거 같은데.”
고경표의 대답은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도 저 표범, 뇌신을 처음 보기는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그가 정민혁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애초에 정민혁이 ‘뇌신 소환’ 스킬을 사용한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었다. 포효하던 뇌신이 자리를 감췄고 그는 새파래진 얼굴로 쓰러지듯 앉아서 회복제만 들이켜고 있었다.
<뇌신 소환>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전설(Legendary)
설명 : ①사용자가 뇌신의 인정을 받은 존재일 것. ②주위에 막대한 양의 전기 에너지가 존재할 것. ③상대할 적이 충분히 많을 것. 위,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할 경우, 사용자의 모든 마력을 소모해 뇌신, 인드라의 분신을 소환할 수 있다. 분신의 형태는 무작위로, 임의로 지정할 수 없다. 분신의 체력과 공격력은 각각 사용자의 체력 능력치와 마력 능력치에 비례한다.
재차 스킬 설명을 읽어 내리던 그는 중얼거렸다.
‘괜히 신이 아니네.’
소환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 만큼 뇌신의 위력은 대단했다. 정말 영화나 소설 속에서 봤던 ‘신’이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물며 저게 분신이니 본체는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생각하던 정민혁은 발라당 드러누웠다.
“힘들어 죽겠다!”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엄살 부리지 말게.”
“아니, 엄살 아니라니까요. 그런데 의원님이 여기까진 무슨 일이십니까? 이 시간이면 사과 수확하실 시간 아니십니까?”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오는 그에게, 박승기가 입을 열었다.
“뭐긴 뭐야, 자네를 만나기 위해서지. 곧 그 친구가 돌아올 것 같다고 그러더군.”
“그 친구? 형님 말씀이십니까?”
박승기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대답을 들은 그는 낑낑 손을 뻗었다. 기계 정령, 에코가 소환된다. 곧 에코가 녹음 내용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녹음의 내용은 짧았다. 그저, 간결한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간결하지 않았다.
- 곧 돌아갈 것 같다.
“왕의 귀환···인가.”
“뭐, 왕보다는 물주 포지션에 가깝지만 말일세.”
정민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괜찮은 거 맞나?”
“괜찮습니다. 환영식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는 발걸음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그룹원들이 빠르게 뒤따랐다.
***
쟈비스에 탑승하니, 서울에 도착하는 데는 채 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쟈비스에서 내린 나를 제일 먼저 반긴 이는 정민혁이었다. 나는 그와 가볍게 포옹을 했다.
“형님!”
“그동안 잘 지냈냐?”
“예, 형님. 형님 말씀대로 그동안 쉘터의 방어에 최대한 치중했습니다.”
“잘했다. 댐은 괜찮고?”
“예, 아직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저 여자는 누구입니까?”
라우라를 발견한 듯 그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어온다. 음··· 라우라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카르텔 수장의 딸?”
“아, 그녀가 불의 거인을 소환했다는 그 사람입니까?”
미국 측과 연락을 통해 전해 들었는지, 그는 라우라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미국을 통째로 집어삼킬 뻔한 걔 맞다.”
미국은 그녀가 이끄는 카르텔- 엄밀히 말하면 그녀가 소환한 ‘이프리트’에 패배할 뻔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핵미사일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라우라는 기분 나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한마디 중얼거렸다.
“O que você está olhando?”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뭘 꼬라봐? 뭐, 이런 목적의 말이 아니었을까.
“누가 카르텔 수장 딸 아니랄까 봐 포스가 장난이 아니네요.”
“데려가서 감옥에 가두기만 해. 물론 기프트 계약 때문에 해를 끼치진 못하겠지만 괜히 문제 일으키면 곤란해지니까.”
“예.”
곧 라우라는 쇠사슬에 묶인다. 그녀는 거칠게 저항하면서도, 나를 보며 날카롭게 소리쳤지만, 나는 그녀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녀를 회유하는 것은, 나중 일로 미뤄두기로 했다.
“오빠!”
한발 늦게 진혜연이 나타난다. 진혜연은 내게 와락 안겼다.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엷게 웃으며 그녀를 안아주었다. 뽀송뽀송한 피부, 진한 샴푸 향이 느껴진다.
그녀의 등을 토닥이던 나는 천천히 그녀를 밀어냈다.
“잘 지냈어, 혜연아?”
“네! 오빠는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진혜연은 신난 어조였다.
“응.”
나는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트리고는 곧 함께 걷기 시작했다.
“오빠 온다고 쉘터 분위기 난리도 아니에요. 축제를 벌인다나, 뭐라나?”
“축제까지?”
“리더의 귀환인데 당연하죠.”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안 그래도 선물 주려고 했는데 다행이네.”
“선물이요?”
“남들 안보는 데서 주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내 선물이 궁금한 듯 진혜연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해맑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민혁이 뚱한 얼굴로 물어온다.
“형님, 제 선물은 없습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전설 등급 카드들을 넘겨주었다. 중국에 있을 때 카드깡하면서 얻었던 것들로 그 숫자는 이젠 무려 오백 장을 넘어설 정도다.
물론 지금의 내게는 별 필요 없는 것들이지만 말이다. 카드들을 받아든 그는 이내 정체를 확인했는지 헉하는 소리를 냈다.
“에이, 농담이었는데. 그런데 이거 설마 다 전설 등급 카드들입니까? 형님 뭐, 유전이라도 발견하신 겁니까?”
“유전? 뭐 비슷했지.”
이번 중국 토벌을 통해 막대한 양의 기프트를 벌어들였으니, 유전이라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민혁은 고민 어린 표정을 짓는다. 아마 전설 등급 카드들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는 표정이다.
“적당히 해. 중간에서 꿀꺽해도 되고.”
내 말에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형님 덕에 이미 전설 등급 스킬로 다 도배했는걸요. 아마 간부들에게 우선적으로 배분할 것 같고, 나머지는 성과 순에 따라 배분할 것 같습니다.”
그의 운영에 대해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냥 사서 주거나, 기프트 계약을 통해 주면 되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장을 떠난 우리는 곧 쉘터에 도착할 수 있다. 쉘터 주위엔 거대한 플라즈마 보호막이 작동되고 있었다. 아마 한승주가 작동시킨 것 같았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룹원들이 나를 바라본다. 건물 위에서, 혹은 보트 위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웰컴 투 홈!”
그제야 비로소, 집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