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코인 채굴-82화 (82/236)

82화

웨이타오는 정민혁과 함께 병원의 최상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는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최상층은 온통 암흑에 잠긴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왜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건가? 설마 나를···”

암살하기 위해서?라는 물음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던 그지만 간신히 삼켰다. 괜히 입을 열었다간 정말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저희 그룹의 밝은 면만 보여드렸습니다. 이제는 어두운 면도 보실 차례입니다.”

정민혁의 말을 번역한 웨이타오는 펄쩍 뛰며 기겁했다. 어두운 면? 대체 내게 뭘 보여주려고? 나는 그런 거 보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그가 뭐라고 대꾸를 하기 전에.

쾅! 쾅!

옆에서 마치 드럼통을 두드리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그는 화들짝 놀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두 개의, 붉은 눈.

‘짐승? 아니, 이건···’

“헉.”

다음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새어 나온 빛을 통해 붉은 눈의 정체를 확인한 웨이타오는 뒷걸음질 쳤다. 머리가 산발이 된 광인이 그에게 달려들었고, 그를 향해 손톱을 뻗어왔다.

참으로 꼴사납게도, 그는 뒤로 자빠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광인이 그를 덮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그와 그 사이엔 유리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손톱이 뭉개지고, 손가락에서 핏물이 흘러나올 정도로 유리벽을 긁어대던 광인은 이내 지친 듯 어둠 속으로 돌아가 몸을 웅크렸다. 거칠게 심호흡을 하던 웨이타오가 물었다.

“저, 저 괴물은 대체 뭔가?”

“북한군 소속 하사, 이덕만. 이번 백신 개발 협력에 자원한 자원자입니다.”

웨이타오는 어렵지 않게 그 ‘자원’이라는 게 강제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었다면, 그가 어두운 면 운운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애초에 북한군 소속이라는 걸 굳이 밝힌 것도 그렇고···

그는 침을 삼키며 물었다.

“백신 개발을 위해 인체 실험을 했단 말인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웨이타오는 생각에 잠긴다. 무엇을 위한 백신인지는 명확했다. 그가 변이체들에게 생화학 무기 사용을 승인함으로써 창궐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를 제거하기 위한 백신일 것이다.

바이러스의 모태는 현존하는 18종의 바이러스를 혼합한 H(ope)바이러스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기프트로 강화하고, (의도치는 않았지만) 변이체의 몸에서 변이가 일어나기까지 했다.

그런 바이러스의 백신을 만드는 과정이 결코 순탄할 리 없다. 당연히 인체 실험은 필수적이다. 동물 실험? 실험할 동물을 어떻게 구하느냐는 것부터 문제고,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것 역시 문제니까.

보통 신약 실험이 끝나기까지는 적게는 수년에서, 많게는 수십 년까지 걸린다. 애석하게도 이 세계에서 그 정도 여유가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생각을 마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니, 이해하네.”

중국 내에서 인체 실험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웨이타오 역시 직접 인체 실험을 지시한 적이 있을 정도다. 당장 H바이러스만 해도 인체 실험을 통해 탄생하지 않았든가.

그때, 조명이 켜졌다. 그는 그제야 실험실 내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십 개의 유리 수조들. 그 안에 갇혀 있는 인간인지 변이체인지 모를 광인(狂人)들.

그들이 흥분한 듯한 얼굴로 일제히 유리벽을 두드린다. 실험체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에 기겁한 웨이타오는 정민혁의 뒤에 숨었다.

당장이라도 유리벽이 부서지고, 그에게 달려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정민혁의 어조는 평탄하기 그지없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리벽은 단단하니까요.”

“······”

웨이타오는 그의 말에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들은 곧 유리 수조 사이를 지나, 최심부에 있는 연구실로 들어갔다. 연구실 안에는 방호복을 입은 채 현미경으로 실험 표본을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서문주였다.

“선생님, 실험은 잘돼가십니까?”

서문주는 힐끔 정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바이러스가 전신에 퍼질수록 실험체들은 변이체들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향해 극도의 공격성을 표출하고, 신체가 변형되고, 손톱을 사용하고. 물론 인류를 멸망시킨 그 ‘바이러스’와 동일한 바이러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민혁은 짐짓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렇군요. 백신 개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아, 그건··· 혹시 이분은 누구십니까?”

“오기 전에 말씀 드렸던 VVIP십니다.”

“아, VVIP요. 웨이타오 주석님이십니까?”

뒷말은 중국어였다. 웨이타오는 들려오는 모국어에 사뭇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치 사막 위의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중국말을 할 줄 아는가?”

“중국 유학을 다녀온 적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웨이타오 주석님.”

“나도 위대한 의학자를 만나게 되어 반갑네. 혹시···”

그때 정민혁이 웨이타오의 말을 끊으며, 서문주에게 물었다.

“선생님, 실험체 0호를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안 그래도 보여드리려 그랬습니다. 백신에 유일하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거든요.”

유쾌하게 말한 그는 버튼을 눌렀다.

곧 드드드거리는 진동음과 함께 연구실 한쪽 벽이 뒤집히기 시작한다.

먼저 웨이타오는 연구실 내부에 비밀 공간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 안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에 두 번째로 놀랐다. 그리고···

“저건···”

그가 아는 얼굴이 있다는 사실에 세 번째로 놀랐고 말이다.

아니, 놀람의 순서를 따지는 건 의미 없었다. 온통 쇠사슬에 묶여있는 실험체 ‘0호’는 얼굴과 몇몇 신체 부위를 제외하고는 인간이라 말하기 힘든 변이체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실험체 0호와 꽤 밀접한 사이였다. 공식선상에서 보기도 했고, 사적으로 보기도 했었다. 중국과 북한은 꽤 밀접한 관계의 나라였고, 실험체 0호는 그런 북한의 지도자였으니까.

하지만 그 지도자의 최후는 참으로 잔인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연구의 실험체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저 얼굴 착해 보이고,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의사가 매드 사이언티스트였구나!

그런 그의 어깨를 손으로 붙잡은 이는 정민혁이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시는 얼굴이신가 봅니다.”

“아는 얼굴이지. 꽤 친했던 사이이기도 하고.”

“딱하십니까?”

“아니, 하지만···”

굳이 그룹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겠다고 자신을 이리로 데리고 온 것, 들어오면서 봤던 북한 출신의 실험체들, 그리고··· 독재자의 최후까지. 말하는 바를 깨닫지 못한다면 바보 천치다.

이건··· 자신에 대한 경고다. 만약 자신이 VVIP라는 신분을 등에 업고, 안하무인(眼下無人)처럼 행동한다면 저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 말이다. 이곳이 중국이었다면 극대노했을 것이다.

웨이타오는 주석 다음의 권력자였으니까. 그러나 이곳은 한국이고, 그는 권력자가 아닌 이방인일 뿐이었다. 따라서 화도 나지 않았다. 그는 충분히 자신의 처지에 순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권력이 아닌, 자신의 생명이라는 사실을 자각(自覺)한 이후였으니 말이다. 그는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한국어로 말을 이었다.

“자네 말은 내가 충분히 알아들었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시치미를 뚝 떼며 말하는 정민혁의 말에, 웨이타오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눈앞의 젊은 청년이 이진서보다 더 까다로운 상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

거대한 해일이 빌딩을 덮친다.

우르르. 빌딩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유리창은 깨지고 빌딩 내부에 있던 것들은 그대로 물에 쓸려나가고 말았다. 그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보던 나는 이내, 빌딩의 옥상에 착지했다.

‘답이 없네.’

차라리 변이체를 처치하는 게 훨씬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인류가 설 땅이 사라지고 있었다. 단 하루도, 한 시간도 빠짐없이 ‘전 세계에’ 내리는 빗줄기.

게다가 비만 내리는 게 아니다.

이렇게 해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돌풍이 일거나, 때때로 번개가 치는 등의 자연 현상 역시 벌어지고 있었다. 변이체와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 현상과도 싸워야 한다.

‘오래는 못 버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미티어 스웜을 사용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수십 개의 운석들은 폭격하듯 지면을 때린다. 물속에서 숨어있던 몇몇 변이체들이 휘말려 죽는다.

그러나, 목표했던 숫자의 변이체들을 죽이는 데는 실패했다.

아니, 방금 전의 공격으로, 녀석들은 더 깊은 물 속으로 숨어버렸다. 이곳을 ‘통째로’ 드러내지 않는 이상 녀석들을 처치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우리 쉘터는 무사하려나.’

이런 상황을 대비해 정민혁이 댐을 세우긴 했다. 그러나 고작 댐 정도로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치밀었다. 이건··· 절대로 막을 수 있을 만한 사이즈가 아니었다.

‘더 늦기 전에 쉘터를 옮겨야 할 수도.’

슬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중국의 변이체들을 소탕한다는 목적은 달성했다. 나는 ‘쟈비스’를 부른 후, 담배를 물었다. 우르릉, 우르릉. 하늘이 번쩍거린다.

후두둑, 우산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한층 더 거세진다. 드워프 수제 담배 끝이 파츠츠 타들어 간다. 한 모금 빨아들였다가, 가볍게 내뱉었다. 뽀얀 연기가 사방에 퍼진다.

그때, 다시 해일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까 것보다 거대한 해일이었다. 이번에는 피할 생각 없이 바리케이드를 구매해 해일의 경로를 막아버렸다.

한 번에 ‘무려’ 일만 기프트가 빠져나갔지만, 그보다는 지금 피우고 있는 담배를 버리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더 강했다. 무려 7급 바리케이드로 이루어진 벽. 해일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우산은 그대로 뒤집혀버렸고 벽과 해일의 부딪침으로 생성된 물줄기에 의해 담배는 그대로 꺼져버렸다. 졸지에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돼버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 개지랄 맞네.”

참아왔던 욕설이 한 번에 튀어나왔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여왔던 스트레스가 솟구친 모양이었다.

하기야, 근 이십 일 동안 내가 한 짓이라곤 포르투갈어로 욕설을 찍찍 내뱉는 브라질 카르텔 리더 딸- 라우라와 동행하며 변이체를 사냥한 것밖에 없다.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유일한’ 방법이라곤 휴식인데, 지금의 나는 시간에 쫓기고 있는 심정이라 휴식을 맘 놓고 취할 수 없었다.

중급 변이체가 상급 변이체로 변이된 지 20일. 꽤 많은 변이체를 사냥했다. 신화 등급 스킬도 두 개나 얻었다. 물론 하나는 카드 상태로 습득하지 않고 내버려 뒀지만.

게다가 쌓인 기프트는 다시 2억 개. 중국 서부의 변이체들을 사냥하며 많은 양의 기프트를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정확히 61일이면, 상급 변이체는 최상급 변이체로 변한다.

분명 나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압도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최상급 변이체 따위 얼마든지 몰려와도 상관없어’라고 말할 정도 성장하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그게 전부가 아니니까.

초월체까지 우르르 튀어나오게 될 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