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생물학 무기는 변이체를 막기는커녕, 변이 바이러스의 탄생과, 수억 마리에 달하는 숙주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중국은 최후의 저항으로 재래식 미사일을 퍼부었다.
보유한 미사일들을 모두 사용해 꽤 성과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강이 범람하면서 침수 지역이 많아지자 그 효과는 급감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중국은 패배했다.
변이체들에 의해 대부분의 군사 시설들은 파괴됐고, 그 와중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목숨을 잃었다. 리창 서기와 몇몇 군 장성들은 병사들과 함께 핵 방공호로 도피했다.
그러나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방공호 내부에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피를 토하는 사람, 설사를 멈추지 못한 사람,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다른 사람들을 물려고 하는 사람··· 이에, 리창 서기는 격리 조치 없이 전원 사살이라는 강수를 뒀다.
그러나 큰 의미는 없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바이러스의 잠복기는 최장 일주일이었기에, 누가 걸렸는지, 걸리지 않았는지 판단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여기가 끝인가···’
리창 서기는 자신이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미 잠복기는 끝났고, 본격적인 증세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아직 심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곧 심해지리라.
치료할 백신은 없었다. 플레이어 상점에서 그 비싼 회복제를 구매해 먹었지만, 일시적인 효과만 있을 뿐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권총을 집었다.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총구를 자신의 머리를 향해 겨눈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중국의 이인자치고는 참으로 허무한 최후였다. 다른 방공호 역시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웨이타오 주석은 바이러스에 걸릴 일이 없었다. 남을 믿지 못한 그는 홀로 방공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창 서기와의 연락이 끊기자, 그도 초조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죽었나?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리창 서기는 그에게 있어 외부와의 유일한 통신망이었다. 그가 죽은 지금, 그는 방공호 안에 완전히 고립돼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깥에 나가 다른 군 장성과 통화를 할 생각이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방호복까지 단단히 착용한 그는 문에 엄지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지문 인식을 마치자 문이 열린다. 통로를 한 발짝, 한 발짝 걷기 시작했다.
물이 새는지,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기겁하면서 통로를 바로 수리했다. 곧 그는 출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설치된 카메라로 출구를 살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속으로 세뇌하듯 다짐한 그는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해치를 연다.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해치가 열렸다. 열리자마자 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는 균형을 잃고 낙하했다.
쿵.
고통도 잠시, 이내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물과 함께 떨어진 것이 무려 ‘변이체’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통 변이체가 아닌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변이체.
킹 타일런트(King Tyrant). 또 다른 이름은 방공호 킬러. 방공호 수십 곳을 오로지 육체의 힘만으로 파괴한 괴물이었다. 그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달아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웨이타오 주석은 문을 닫았다. 쿵, 쿵. 외부에 있지만 그의 귓가에 또렷하게 들리는 발걸음 소리. 그는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1, 2, 3···
그가 세던 초가 60을 돌파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갔나?’
그때였다.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문이 움푹 팼다. 저 문이 2급 바리케이드로 만들어진 걸 잘 아는 그로서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폭발음은 한 번으로 멈추지 않았다.
‘아니, 이건 폭발이 아니다. 괴물 새끼.’
단순한 주먹질이 틀림없었다. 곧 문은 완전히 파괴돼버렸다. 킹 타일런트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이 상황이 즐겁다는 듯 녀석은 웃고 있었다. 그는 품에서 총을 꺼냈다.
그리고 녀석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단단한 피부를 뚫지 못하고, 전부 튕겨 나갈 뿐이다. 기프트로 강화된 총이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뒷걸음질하던 그는 벽에 부딪힌다.
더 이상 그가 도망칠 곳이 없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그가 자포자기하려던 바로 그 순간, 그에게 다가오던 킹 타일런트의 몸이 멈췄다. 녀석의 가슴을 뚫고 ‘검’이 그 모습을 내밀었다. 웨이타오 주석은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검?’
‘누군가’가 자신을 구하러 왔음이 틀림없다. 눈물 콧물 질질 흘리던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킹 타일런트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뒤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펑! 강렬한 폭발음. 방공호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린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미 높이 도약해 있었다. 그는 그제야 누군가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20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젊은 남자. 그도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중국에 침입하고,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하지만 동시에 홀로 수천만의 변이체를 제거했던 배달부.
그가 이 지하 수천 미터 밑에 있는 방공호까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대체 어떻게 모습을 드러낸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괴물을 상대하는데 그 이상의 인물은 없다는 것 말이다. 그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환해졌다.
“이겨라!”
***
S31의 스마트 워치를 통해 나는 붉은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태껏 봐왔던 그 어떤 점보다도 거대한 사이즈였다. 그런 점을 뒤쫓아 도착한 곳은 지하 수천 미터에 있는 방공호.
그리고 나는 방공호 안에서 초월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킹 타일런트(Tyrant)]
- 다수의 플레이어와 동족을 살해하고, 진화의 정점에 도달한 초월체.
- 특수 변이체일 때보다 모든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플레이어를 살해하거나 동족을 살해해 체내에 기프트를 축적할 수 있고, 축적한 기프트로 신체와 특수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 최대 500,000마리의 변이체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
- 보유 기프트 : 750,000
여태껏 내가 봐온 초월체들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막대한 기프트를 보유하고 있는 초월체를 말이다.
지금이 일식 기간이라는 것과, 내 채굴량을 감안하면 저 초월체 하나 잡으면 천만 기프트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만큼··· 녀석은 강할 것이다.
일전에 상대했던 특수 변이체, 타일런트의 진화형. 그때 봤던 녀석과는 사이즈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거대하다. 이 방의 높이가 거의 3층 높이에 달하는데도 불구하고, 꽉 채울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영령 빙의를 사용했다. 아낄 생각은 없었다. 괜히 아꼈다가 당하기라도 한다면 그것보다 낭패는 없으니까. 내가 빙의할 대상은 검성, 아자르.
일전에 토네이도를 베어낼 때 빙의한 적 있는 ‘상급 영령’이었다.
[검성, 아자르가 몸에 빙의됩니다.]
[마력에 따라 동화율이 설정됩니다.]
[마력 182를 확인했습니다.]
[영령의 능력치와 스킬의 일부를 불러옵니다.]
[현재 동화율 76%] [지속 시간 : 1시간] [재사용 대기시간 : 36시간]
[절삭검(U)을 일시적으로 습득했습니다.]
[폭풍식(U)을 일시적으로 습득했습니다.]
[극한의 발도술(L)을 일시적으로 습득했습니다.]
[검의 정령, 세리아(L)를 일시적으로 습득했습니다.]
폭풍식과 극한의 발도술은 이미 본 적 있고, 사용하기도 했었지만, 절삭검과 검의 정령, 세리아는 처음 보는 스킬이었다.
<절삭검>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유일(Unique)
설명 : 벨 수 없는 것을 벨 수 있게 해주는 검. 검술 공격의 25%(근력 능력치에 비례함)를 고정 피해로 전환한다.(재사용 대기시간 : 9시간)
<검의 정령, 세리아>
종류 : 패시브(Passive)
등급 : 전설(Legendary)
설명 : 유일무이한 존재, 검의 정령, 세리아를 소환한다. 검의 정령, 세리아는 소환자의 마력이 떨어질 때까지 소환자의 검술 공격을 보조한다. ①물어뜯기 : 매 공격마다 소환자의 마력에 비례한 추가 데미지를 입힌다. 데미지를 입은 적은 일정 확률로 출혈을 일으킨다. ②상대방이 흘린 피를 자신의 마력으로 전환해, 마력이 100%가 되면 현계(顯界)한다.
‘검의 정령, 세리아.’
중얼거리자 내가 들고 있는 검이 마치 피를 머금은 양 붉게 변한다. 나는 킹 타일런트의 주먹을 피해내고 녀석을 향해 검을 뻗었다. 이번엔 검이 가로막혔다.
그러나 검에서 붉은 짐승- 아마 검의 정령, 세리아라 추정되는 존재가 튀어나와 단숨에 녀석을 물어 뜯어버렸다. 킹 타일런트가 피를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이런 건가···’
킹 타일런트가 포효한다. 그사이 도망치기 위해 방공호 입구로 살금살금 움직이던 노인이 풍압에 의해 앞으로 몸을 처박고 말았다. 나는 바리케이드로 문을 막아버렸다.
“안에서 끝내지?”
다음 순간, 녀석의 몸이 붉게 변한다. 일순간, 나는 녀석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펑! 내 몸을 둘러싼 앱솔루트 배리어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내 마력은 182. 그런 마력으로 사용한 앱솔루트 배리어를 박살 낼 정도면, 방금 전의 주먹질이 핵미사일의 위력이나 다름이 없다는 의미였다. 보유 기프트 75만답게 ‘괴물’이다.
그러나 나는 절삭검을 사용한 후, 녀석의 주먹을 재차 피해내고 녀석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괴물이든, 뭐든, 이 자리에서 녀석을 죽일 생각이었다.
분명 킹 타일런트에게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녀석은 별 피해를 받지 않은 듯 내 검을 가볍게 손으로 쳐냈다. 튕겨나간 검이 뱅그르르 날아가 바닥에 꽂힌다.
녀석을 향해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뒤늦게 녀석도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과 주먹이 맞닿는다. 콰지직. 다시 사용한 앱솔루트 배리어가 부서지고, 주먹에 실린, 쉴드 역할을 해주던 마력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대로라면···’
미래가 그려진다. 주먹이 으스러지고, 한 손을 못 쓰게 되는 미래가. 다행히, 먼저 날아간 쪽은 킹 타일런트였다. 공중에서 수 바퀴를 돌던 녀석은 그대로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벽이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가볍게 잔해를 치우고,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금 전 입었던 상처가 급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괴물 같은 신체였다. 다행히 나는 검을 회수했다.
검을 든 채 녀석을 노려본다. 녀석 역시 바로 달려들지 않고,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 나는 입을 열었다.
“라우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타난 거대한 화염의 거인이 녀석의 몸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