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내가 베이징에서 란페이 그룹을 돕기 위해 변이체들을 막아냈던 것이 불과 일주일 전의 일이다. 그러나 그 일주일 만에, 베이징은 내가 기억하는 풍경과 완전히 달라졌다.
강이 범람해,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긴 것 때문은 아니다. 내가 달라졌다 느낀 것은 바로 빌딩. 내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한 빌딩들이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철골만 남았다.
란페이 그룹의 빌딩 역시 마찬가지다. 안전 가옥으로 개조한 건물이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그 정도로 ‘무언가’의 위력이 대단했다는 방증이었다. 변이체의 소행 같지는 않았다.
저렇게 공격하는 변이체는 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것은 역시 중국 정부. 중국 정부에서 닥치는 대로 재래식 미사일을 날렸다면 지금의 흔적을 설명 가능할 것이다.
지상을 내려다보던 나는···
아공간 창고에서, 북한에서 획득한 재래식 미사일을 꺼내고는, 지상을 향해 힘껏 날렸다. 빠르게 날아간 미사일은 어느 빌딩의 철골과 부딪쳐 강렬한 폭발을 일으킨다.
우수수, 지상을 향해 떨어지는 잔해들.
그와 동시에 도시 내에 있던 붉은색 점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재차 재래식 미사일 하나를 더 꺼냈다. 그 사이, 변이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속에 숨어있던 변이체들 수천 마리가 이쪽을 향해 일제히 도약한다. 마치 뭇 해양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날치들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 그러나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랑곳하지 않고 재래식 미사일 하나를 더 날렸다. 미사일에 휩쓸린 그들 일부가 소멸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멀쩡히 살아남았다. 상급 변이체답게 역시 끈질긴 모습이다.
그들은 악착같이 빌딩을 기어올라, 내게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도약한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닿지 못했다. 내 몸을 둘러싼, 이글거리는 화염 때문이다. ‘이그니스의 갑옷’.
불의 상급 정령, 이그니스가 사용한 버프 스킬로, 접근하는 대상을 불태우고 밀쳐내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변이체들은 불나방처럼 우수수 지상에 떨어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꽤 쓸 만한데?”
그런 이그니스를 소환한 이는 당연하게도, 라우라다. 원래대로라면 그녀가 순순히 협조할 리 없었지만 협조하라는 명령을 내리니 그녀는 명령을 충실히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내 말을 이해한 듯, 그녀는 인상을 찡그리며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한마디를 내뱉는다. 지금껏 몇 번이고 들은 말인 걸 떠올리면, 욕설이 틀림없었다. 뭐, 아무렴 어때.
이번엔 미티어 스웜을 사용했다. 이미 폐허가 돼버린 도시에 운석의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세 자릿수에 달하는 운석은 폭격하듯 도시를 부수기 시작한다.
그걸로 끝이었다.
도시 안에 있는 변이체들은 대부분 소멸되거나,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폐허가 된 베이징의 빌딩 안에 착지한 나는 회복제를 꺼내 들이켰다. 우르릉. 천둥소리가 들린다.
‘남은 마력은··· 10% 정도인가.’
베이징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내 마력이 5%였던 걸 생각하면 오히려 마력이 차오른 셈이다. 재래식 미사일을 적절히 사용하며 효율적인 전투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기프트를 확인한다.
[보유 기프트 : 7,356,547]
무려 700만 개가 넘는 기프트가 쌓여있다. 라우라와 기프트 계약을 맺을 때 가지고 있었던 모든 기프트를 소모했으니, 사실상 전투 한 번으로 700만 기프트를 모은 것이나 다름없다.
무한 사냥을 이어나갈 수만 있다면 1억 기프트를 모으는 것도 금방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1억 기프트를 모으려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아홉 번째 스킬 슬롯을 해금하기 위해서.
그리고··· 추가로 신화 등급 스킬을 습득하기 위해서였다.
여태껏 내가 본 신화 등급 스킬은 영령 소환, 기프트 계약, 그리고 라우라가 가진 이프리트 소환까지 총 세 개. 그야말로 하나하나가 사기적인 위력을 지닌 스킬들뿐이었다.
그런 신화 등급 스킬을 하나 더 습득할 수 있다면, 전력 상승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고작 세 달 만에 격세지감이네.’
스테이킹에 묶여있는 6억 4천만 개에 달하는 기프트. 그 당시엔 많아 보였지만, 지금 보니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지구 내에서 얻을 수 있는 기프트의 양에는 한계가 있고, 스테이킹에 묶여있는 기프트는 40% 이상의 이자를 얻게 되니 실질적인 양은 그것보다 더 많다고 생각해야겠지만 말이다.
생각하던 그때,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이서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미국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대통령님이 전해달래요.
그녀의 목소리는 활기찼다.
“아, 예. 잘 해결됐습니까?”
- 예, 카르텔 중 마지막까지 반항하다가 사살당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전원 다 포로로 생포했다네요.
나는 라우라를 힐끔 바라봤다. 사실상 최대 전력이었던 그녀가 이곳에 있으니, 당연한 결말일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한시름 놓은 셈인가··· 그녀는 내 눈길을 느낀 듯 나를 바라본다.
슬며시 고개를 돌린 후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었다.
- 그런데 녀석들이 포로로 붙잡고 있던 사람들 중에 한국인도 있더라고요.
“한국인?”
- 예. 이름이··· 윤민수라고 했었나?
“······”
윤민수, 내게 기프트 코인을 알려주고, 적극 추천해줬었던 대학 후배의 이름이다. 그때 이메일로 브라질에 있다고 말은 들었지만 설마 카르텔에 붙잡혀있을 거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 아는 이름이에요? 본인은 이진서 씨를 안다고 주장하던데.
이서란의 물음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아뇨, 그런 사람 모릅니다.”
더 이상 윤민수에 대한 원한은 없다. 예전에도 떠올렸던 것처럼 그가 코인을 추천한 덕에 나는 불행해졌지만,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플레이어로 각성하게 됐으니까.
하지만 굳이 그를 만날 생각은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을 테고 말이다.
- 알겠어요.
그녀도 더 묻지는 않고, 대신 화제를 돌렸다.
- 대통령님께서 미국을 한번 들르라고 말해주셨어요. 그리고 선물도 보낼 거라고 하시네요.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대신 안부 부탁드리겠습니다.”
- 그리고 이건 좀 개인적인··· 얘기라서 나중에 말씀드려도 될까요?
옆에서 누가 듣고 있는지, 말하기 곤란한 모양이었다.
“인터넷 통해서 민혁이한테 대신 연락해주십쇼.”
- 민혁이요? 아, 예. 알겠어요. 참, 지금 중국에 있다던데, 건투를 빌어요.
“감사합니다.”
그녀와의 연락이 끊어진다. 라우라가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왜?”
그녀가 입을 열었지만, 당연히 포르투갈어를 알지 못하는 내가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한다면 그녀가 무슨 의도로 말했는지 알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기도 귀찮다. 나는 신경을 끄고 담배를 마저 한 모금 빨아들인 후 내뱉었다.
우르릉.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천둥소리가 재차 울려 퍼졌다. 한층 더 빗줄기가 거세졌다. 우박이 내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굵은 빗방울이었다.
‘거 지랄맞은 하늘이네.’
***
카르텔에 붙잡혀있던 포로들은 임시 보호소 안에서 일주일을 생활하게 됐다. 혹여나 그들이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았을까 하는 미국 대통령, 대리어스 때문이었다.
임시 보호소 안에서 윤민수는 초조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일을 해결한 것이 ‘배달부’라는 사실을 미군에게 전해 들은 후부터 그는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배달부- 이진서가 그를 적대한다면, 미국 전체가 그를 적대할 거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한마디로 자신의 목숨은 그에게 달려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때 창 너머로 동양인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윤민수는 눈을 크게 뜬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그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윤민수?”
“누나?”
“역시 너 맞구나.”
“누나가 어떻게 미국에···”
그것도 입고 있는 복장이 장교복이다. 코스프레일 리는 없을 테니 그녀가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유학 왔어. 누구 하나 때문에 말이야. 아니, 둘이라고 해야 하나?”
그 ‘둘’ 중 하나가 자신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윤민수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 그래?”
“너는 어떻게 브라질 카르텔에 붙잡혀있는 거야?”
“나는 브라질에 이민 왔거든. 내 애인이 브라질이라서···”
“아, 그랬구나?”
“응.”
“나는 누구 때문에 애인하고 쫑났는데 말이야.”
어색한 침묵이 이어진다. 에밀리는 쓴웃음을 흘렸다. 그를 압박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거의 생각, 과거의 감정이 떠오르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가 추천한 ‘기프트’ 코인에 이진서는 주택 담보 대출지지 받아 일명 ‘영끌 투자’를 했고, 거하게 말아먹었으니까.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 하나 때문에 ‘파혼’이라는 끔찍한 결과에 도달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참 고통스러웠지. 진서··· 오빠한테 다시 연락은 했니?”
일말의 망설임을 느끼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진서라는 이름을 꺼냈다.
“했지?”
“뭐라고?”
“브라질까지 나 좀 잡으러 오라고 말이야. 당시 카르텔하고 전쟁 중이라 그 형의 도움이 아주 절실한 상황이었거든.”
그녀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미친놈.”
최대한 그의 앞에서 욕설을 자제하려 했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욕설을 어떻게 안 하겠는가. 그가 한 짓은 물에 빠트린 원수에게 도와달라고 말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에밀리는 재차 그에게 물었다.
“답장은?”
“오랜만에 만난 사이에 욕설은 좀··· 멋지게 씹혔어.”
“···꼴좋네.”
“누나야말로 진서 형한테 연락해봤어?”
에밀리는 침묵한다. 부정의 침묵이었다. 그녀는 이진서에게 연락할 수단이 있었지만 차마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언젠가 연락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안 해본 모양이네. 그러면 누나나 나나 쌤쌤 아닌가.”
“웃기지 마.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뭐, 결과적으로 말하면 나 때문에 누나도 플레이어로 각성한 거 아닌가.”
“이런 세상에서 살 거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지. 아니다. 너랑 이야기하려 했던 내가 병신년이지.”
말을 끝마친 그녀는 몸을 돌렸다. 윤민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렇게 말해도, 나도 누나랑 형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내가 괜히 그 형을 꼬드겨서 둘 사이를 갈라놓은 꼴이니 말이야.”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그 안에 평생 있든가.”
“······”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춘다. 그는 잠시 생각하듯 눈을 감고 있다가, 이내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라소미, 이진서, 라소미, 이진서···”
중얼거리듯 이름을 외운다. 과거의 인연들. 그녀를 만나니 왠지 모르게 ‘과거’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