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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73화 (73/236)

73화

강원도에서 구출했던 농사꾼들은 쉘터에서 2km 정도 떨어진 초등학교 건물에 실내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다. 그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재난 상황을 대비한 보험이었다.

그 덕에 이런 폭우 속에서도 작물을 재배할 수 있었다. 나는 추가로 기프트를 투자해 학교 건물을 안전 가옥으로 개조함과 동시에, 내부의 토지를 비옥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대학교에서 찾아낸 품종 개량된 현대 작물 씨앗, 그리고 농사꾼들이 습득한 농사 스킬이 더해지자 그 결과물은 대단했다.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쑥쑥 자랐다.

고작 일주일 만에 작은 묘목이 커다란 나무로 자라났다는 걸 누가 믿겠는가.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이내, <사과나무>라는 팻말이 걸려 있는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농부 모자를 쓴 노인이 나무에서 사과를 따고 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이내 그에게 다가갔다. 이쪽을 돌아본 그가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노인의 정체는 바로 국회의원인 박승기였다. 처음 만났을 땐 나와 악연(물론 일방적이긴 했지만) 사이였던 인물이지만 이제는 만나면 함께 술잔을 기울일 정도로 친근한 사이가 됐다.

“자네가 이곳까진 무슨 일인가?”

“의원님을 뵙기 위해 들렀습니다.”

“쯧, 아직도 의원 소리는··· 일단 앉지.”

“예.”

그와 함께 원목 테이블에 걸터앉았다. 그는 내게 사과를 건넸고, 나는 사과를 받아 들어 가볍게 베어 물었다. 생김새부터 탐스럽게 생겼는데, 맛은 그 이상이다.

“내가 그 비싸다는 상주 사과를 자주 받아봐서 아는데, 그것과도 맛이 비교가 안 돼.”

“어, 의원님이 받는 사과 상자에는 사과 대신 돈다발이 들어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어허,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 친구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군. 돈다발 상자는 살아생전 한 번밖에 못 받아봤네. 물론 그것도 돌려보냈지만 말일세.”

“정말입니까?”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그는 이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소식은 들었네.”

“무슨 소식 말씀이십니까?”

“바른 빛 선교회에서의 일 말일세.”

내가 인체 실험을 주도한 것을 말하는 것일 거다. 대외적으로 그룹원들에게 알린 적은 없지만, 그룹의 간부인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자네에게는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말이야. 그런 일은 나나 민혁이에게 맡기지 그랬나?”

박승기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언제까지 깨끗한 척만 할 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정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신 의원님이야 그렇다 쳐도 민혁이는 이제 고작 스물다섯입니다.”

그리고 그 스물다섯 살이 지금껏 쉘터의 운영을 맡아왔다. 때로는 그 자신의 손을 더럽히는 걸 서슴지 않으며. 그걸 떠올리면, 내가 깨끗한 일만 하고 싶다는 것은 한낱 위선일 뿐이다.

“뭐, 그 친구는 ‘천직’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워낙 잘 적응해서 말일세··· 평범한 스물다섯 살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하지만 자네 뜻은 잘 알겠네.”

“그리고 제가 맡는 편이 ‘그 사람들’에게도 더 나았을 겁니다.”

나는 백신 실험체가 된 북한 병사들에게 기프트 계약을 통해 권리를 보장했다.

실험하다가 잘못될 경우 치료를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실험이 끝난 뒤에는 선택권- 우리 그룹에 들어올지, 아니면 원래 거주하던 북한 땅으로 돌아갈지-을 주겠다고 말이다.

물론 나름 인도적인 조건(내가 생각하기에는)임에도, 반발하고 나서는 이는 있었지만.

- 감히 하늘 같은 이 몸에게···! 이 간나 새끼가!

웃으면서 대했더니 돌아오는 것은 욕설이었다. 내게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치던, 한때 북한 최고지도자였던 이는 지켜보던 김선우 목사에게 복날 개처럼 몽둥이로 얻어맞았다.

나중에는 돼지처럼 꾸엑 소리까지 낼 정도였으니, 폭력의 강도가 어땠는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이 모습을 지켜보던 북한 병사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실험체를 자처했다.

사실 그들로서는 딱히 선택지가 없다. 여기서 맞아 죽느니, 차라리 실험체가 되는 편이 그들에게도 나았을 테니 말이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일은 잘 마무리된 셈이었다.

남은 것은 얼마나 실험이 인도적으로 이루어지냐인데, 이건 내 소관이 아닌, 서문주의 소관이니까 이미 내 손을 떠났다. 생각에 잠겨있는 내게 박승기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혹시 핵무기는 어떻게 됐나?”

“핵무기요?”

그의 말에, 나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중국이 핵무기를 사용했다가 별로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네만··· 그래도 어차피 버려질 거라면 우리가 관리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의원님 말이 옳습니다.”

“물론 이런 폭우 속에서 그 무거운 걸 가지고 오는 게 쉽진 않겠지만 말일세.”

“그건 아공간 창고를 이용하면 되니 상관없습니다.”

핵미사일의 부피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공간 창고의 공간이 부족하다면 공간을 더 늘리면 된다.

“그러면 더 비가 퍼붓기 전에 들르는 게 좋을 걸세. 저 빌어먹을 비 때문에 물에 잠기는 날엔 못 쓰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일세.”

“핵무기가 물에 잠긴다고 못 쓰게 될까요?”

박승기는 피식 웃었다.

“그건 나도 모르네. 그건 장영하, 그 영감이나 알만한 지식 아닌가.”

“예, 중국에 들르기 전에, 반드시 수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이번에 중국에 가면 언제 오나?”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쉘터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그래, 그거면 됐네.”

원하던 대답이었는지 박승기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인도의 공식 인구는 13.8억 명. 중국의 인구와 비교해도 별 차이 나지 않는 수준이다. 세상이 코인 채굴기로 변하고 그 인구의 대부분은 변이체로 변해버렸다.

그만큼 플레이어의 수도 많았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 현재 플레이어의 숫자는 초기의 10%도 되지 않을 정도로 줄어든 상태였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인도의 심장이라 불리는 겐지스강. 폭우로 인해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만간 강이 범람할 것임은 예정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검은 정장을 걸치고, 수염을 치렁치렁하게 늘어트린 남자의 말에, 히잡을 쓴 여자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밖엔 상급 변이체들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이렇게 있다가 물에 휩쓸려서 죽을 바엔, 차라리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보는 편이라도 나을 테지.”

“그러지 말고 정부를 기다려보는 건···”

그러나 남자의 얼굴은 어두웠다.

“정부는 이미 한 달 전에 무너졌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초월체’의 지배를 받은 중급 변이체 수십만 마리가 뉴델리 중심부에 있는 정부 종합 청사를 공격했다. 바리케이드를 높게 쌓았지만 결국 무너졌고···

지키던 정부군은 궤멸, 대통령과 총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관료들 역시 그때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사실을 대부분의 인도 플레이어들은 알지 못했다. 알릴 사람이 없었으니까.

오로지, 당시 현장에서 전투를 치렀던, 소수의 생존자만 아니라면 말이다. 남자는 바로 그 생존자들 중 하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겁니까?”

“이곳 뉴델리를 떠나,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넘어간다.”

“중국, 말입니까?”

“중국에 내가 잘 알고 있는 높은 관리가 있다. 그에게 몸을 의탁할 생각이다.”

이번엔 히잡을 쓴 여자 옆에 있던, 앳돼 보이는 여자가 그에게 물었다.

“중국의 상황은 여기보단 낫답니까?”

“마지막으로 통신을 나눈 건 한 달 전이다.”

그리고 지난 한 달간 세상은 격변(激變)했다.

중국이 망했다 한들, 이상할 것 없다. 그 사실을 남자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어딜 가도 지금 그들이 있는 뉴델리의 상황보단 나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따라서 어떠한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이곳에 남고 싶은 이들은, 남아도 좋다.”

코트를 걸친 남자는 자신의 곁에 있는 남자들과, 앞에 있는 여자들을 한 번씩 응시한다. 곧 결정을 내린 듯, 그들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곳에 혼자 남느니, 함께 떠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그들은 곧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바깥으로 나가, 중국으로 이동할 채비를.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이 지금 목적지로 한 중국의 현 상황은, 그들이 있는 인도보다도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말이다.

변이체들을 숙주로 한 ‘변종 바이러스’는 이미 중국 전체에 퍼졌다. 바이러스가 퍼진다는 걸 알지 못한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그대로 걸렸고, 새로운 숙주가 돼버리고 말았다.

변종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은 약 삼 일간 잠복기를 거친다. 그리고 본격적인 증세가 발현되면, 감기, 구토, 설사 같은 간단한 증상은 기본이요, 온갖 중병의 증상까지 다 겪는다.

바이러스를 일정 시간(골든타임) 내에 치료하지 않아, 만약 숙주의 생명이 끊어진다면, 그 시체는 변이체가 돼서 공격한다. 마치, 좀비 영화에 나오는 좀비처럼.

물론 물질적으로 여유 있는 중국 내의 고위 간부들은 병에 걸려도, 버틸 여력이 있었다. 상점에서 구매하는 회복제는 완벽히 치료해주진 못해도 증세의 발현을 완화해주니까.

아니, 굳이 회복제가 아니라도 현대의 약 역시 회복제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효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휘하의 병사들이나, 시민들은 그대로 변이체로 변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아무도 믿지 못하는 상황. 중국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백신은, 백신 개발은 되고 있는가?”

수척해진 웨이타오 주석이 수화기에 대고 묻는다. 곧 수화기에서 리창 서기의 대답이 들려온다.

- 하고 있긴 합니다만··· 솔직히 빠른 시일 내에 완성하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다른 나라에 도움이라도 청해야 할 것 아닌가?”

- 도움을 청할 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러시아와도 통신이 끊어져서···

“미국은?”

- 저희 위대한 중국이 미국에게 도움을 청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웨이타오 주석 각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런 말을 자랑스럽게 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웨이타오 주석은 더욱더 짜증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아니, 상황이 상황이니까··· 일단 도움을 청해보게. 리창 서기, 이러다간 진짜 다 죽게 생긴 거 아닌가?”

- 아직 걸린 사람보다 안 걸린 사람이 더 많습니다. 철저하게 격리를 진행한다면···

“아니, 지금 고작 격리를 한다고 될 만한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킹 타일런트란 초월체 놈은 그래서 처리했나?”

- ···송구하오나 아직 킹 타일런트를 처치하지 못한 것으로···

여전히 건재한 킹 타일런트는 어제도 방공호 하나를 통째로 드러냈다. 직후 방공호는 변이체들에게 습격당했고 그대로 수십 명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은 목숨을 잃고 말았다.

리창 서기가 더 말을 잇지 못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웨이타오 주석도, 리창 서기를 더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푹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발 내가 자네한테 다른 거 안 바라겠네. 하나라도 잘하게.”

-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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