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접시에 놓인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썰고, 포크로 한 조각을 찍어 입 안에 넣었다.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소스 향이 느껴진다. 우물우물. 씹자마자 달콤한 육즙이 입 전체에 퍼진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환상적인 맛이다.
맛있다. 정말 맛있다. 하기야,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스테이크는 평범한 스테이크가 아니다. 김하나가 직접 고안해낸 레시피, 오로지 최고급 재료만을 사용해 만들었다는 전설 등급 요리.
그녀에게 듣기로는 스테이크를 만드는데 든 재료값만 일만 기프트가 넘는다고 했다. 물론 레시피를 만들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든 비용은 그 열 배도 가볍게 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럴 만한 값어치는 충분했다. 이 스테이크의 효과는 단순히 ‘맛있다’가 전부가 아니었으니까. 맛을 음미하며 나이프와 포크를 움직이자 한 접시를 해치우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러자 떠오르는 메시지들.
[영구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0.5 상승합니다.]
[영구적으로 체력, 마력 회복 속도가 15%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3.0 상승합니다.]
섭취하는 것만으로 영구적으로 모든 능력치를 0.5를 올려주고, 체력, 마력 회복 속도를 15%나 올려준다. 뿐만 아니라, 일시적이지만 모든 능력치를 3이나 올려주는 옵션마저 붙어있다.
이 스테이크의 진가(眞價)다.
“잘 먹었습니다.”
“어때요? 맛있었어요?”
고개를 끄덕이자, 김하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조만간 다른 레시피들도 개발 예정이에요.”
“이런 레시피라면 기프트가 얼마가 들어가든 환영입니다.”
일단 레시피를 만들어놓으면 요리를 찍어낼 수 있다. 물론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상당히 고가이긴 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부족하면 외상 쓰지, 뭐.’
상점의 누적 구매액이 5천만 기프트를 넘어서면서, 외상 상한이 기존(백만 기프트)의 열 배인 천만 기프트로 늘어났다. 이제 상점에서 천만 기프트어치 물품을 외상으로 구매할 수 있다.
고작 음식 재료비 정도를 지불하지 못할 일은 없는 것이다.
“알았어요, 그럼 예산 아끼지 않고 펑펑 쓸게요. 신화 등급 요리 레시피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그건 무리인 것 같고···”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늘어놓는 김하나에게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최선만 다해주시면 됩니다. 진짜 잘 먹었습니다.”
냅킨으로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2층으로 내려온 나는 임시로 설치된 문을 열어젖혔다. 강이 흐르고 있다. 삼 일간 쉬지 않고 쏟아진 폭우에 의해 배수로는 제 기능을 상실했고 지상 1층이 그대로 물에 잠기고 만 것이다.
그룹원들은 이제 쉘터 내에서 이동할 때, 보트를 이용하고 있었다. 불편하다는 의견이 나오긴 하지만, 사실 그건 ‘진짜’ 문제는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한강, 더 멀리는 바다에 있었다.
지금의 비는 어느 한 지역에 국한돼 내리는 게 아니다. ‘전 세계’에 일정한 강수량으로 쏟아붓고 있다. 90일간 지속된다면 해수면의 높이는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될 것이다.
얼마나 올라갈지는 인터넷에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해수면이 30m만 올라가더라도, 이곳 서울을 비롯한 한국 대부분의 도시가 그대로 물에 잠길 거라는 것.
아무 대비도 하지 않고,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나름 대비는 하고 있다. 내가 아닌 그룹원들이.
정민혁의 주도하에 바리케이드 소환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은 지금 범람을 막기 위해 거대한 댐을 세우고 있었다. 아낌없이 기프트를 부은 끝에 그 규모는 벌써부터 웅장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범람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최악의 경우에는 쉘터를 이전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었지.’
만약 해수면이 더 높아진다면, 고도가 높은 곳으로 쉘터를 이전해야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정말 성경 속 노아가 했던 것처럼 배를 타고 우기(雨期)가 끝나길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아직은 미래의 일.
내 걱정은 한낱 기우에 불과할 수도 있다. 생각하던 나는 지상으로 몸을 날렸다. 아래에서 이동하던 보트에 정확히 착지했다. 서로 투닥거리던 강순철과 최유미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리더?”
“잠시 신세 좀 지겠습니다.”
“갑자기 위에서 뭐가 떨어져서 놀랐습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병원으로 부탁드립니다.”
“혹시 무슨 병이라도 걸리셔서?”
우려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는 강순철에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아니고··· 서문주 씨께 부탁할 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의사 선생님께 알려야 할 일?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간부인 그에게 굳이 숨길 이유는 없기에, 나는 그에게 사실대로 털어놨다.
“미국에서 들어온 소식통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이틀 전 중국에서 변이체들에게 생화학 무기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중국 정부는 변이체들을 소탕하기 위해 생화학 무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효과를 보는 듯했다고. 실제로 상당수의 변이체들을 죽이는 데 성공했으니까.
그러나 효과를 보는 것도 잠시, 살아남은 변이체들은 금세 생화학 무기에 면역이 돼버렸다고 했다. 아니,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더 심각한 점은···
“생화학 무기가 통하지 않는 건 물론, 몇몇 변이체의 체내에서 전염성이 높고, 생존력 역시 뛰어난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변이됐다더군요.”
“세상에··· 그러면 그 말은···”
“변이체가 무기 하나를 더 장착한 거죠. 우리 플레이어에게도 충분히 위협을 끼칠 수 있는 바이러스를 닥치는 대로 뿌리고 다니는 변이체···”
언젠가 서문주가 경고했던 일이 현실이 돼버렸다. 생명력이 끈질긴, 활동량이 뛰어난 변이체들이 바이러스를 품었다면, 세상에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아니, 대체 그놈들은 왜 생각도 없이 그런 짓을 저질렀대요?”
듣고 있던 최유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나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 초월체를 처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데 중국과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우리만 피를 보게 생긴 거죠.”
“그러면 의사 선생님께 부탁하실 내용이라는 기··· 그 바이러스 백신 제조를 맡기려고 하시는 겁니까?”
“백신 제조같이 거창한 건 아니고, 그저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려고 그럽니다.”
한때 오성 병원의 전문의였고, 지금은 쉘터의 유일한 병원장인 서문주는 그동안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물론 아무리 그라 하더라도 뚝딱하고 백신을 만들어내진 못할 것이다. 백신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탄생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대처 방안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병원에 도착한 나는 보트에서 내려, 사다리를 타고 병원 건물로 올라왔다. 간호사가 내 얼굴을 보더니 기겁했다.
“리, 리더?”
“의사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
“예! 일단 이쪽에서 기다··· 아니, 이쪽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허둥지둥거리던 그녀는 무전기로 연락을 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해서 위로 올라가자, 서문주가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안쪽으로 이동했다.
“긴히 하실 말씀이라는 게···”
“이미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중국 정부에서 변이체에게 생화학 무기를 사용했답니다.”
“이런··· 몰랐습니다. 어떻게 됐답니까?”
“바이러스가 변이됐고, 변이체를 숙주 삼았다더군요. 이미 중국의 대부분의 변이체들은 바이러스의 숙주가 됐답니다. 미국에서는 D바이러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아직도 변이체들이 많이 남아있는 거 아닙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많이 죽였고, 중국 정부도 재래식 미사일을 사용해 많이 죽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변이체들을 모두 소탕하기는 무리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변이체들이 그때처럼 중급 변이체도 아니고, 상급 변이체다. 쉽게 죽지 않는 것은 물론 활동 반경도 더욱더 넓어졌다. 서문주는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그동안 변이체와 바이러스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어느 정도 진행해왔습니다. 어느 정도 수확을 거두기도 했고요.”
그제야 나는, 그의 뒤에 있는 유리관을 바라볼 수 있었다. 초록색 배양액에 잠긴 변이체들. 여유가 된다면 변이체들을 생포해달라는 부탁을 하더니, 실험을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조금 기대를 가진 채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백신을 제조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변이체와 플레이어의 신체 구조는 비슷하지만, 동시에 다릅니다. 바이러스 백신은···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한 인체 실험이라도 저지르지 않는 이상, 무리입니다.”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한 인체 실험이라···’
곰곰이 생각하던 내가 그에게 물었다.
“혹시 저한테 실험하시는 건 안 됩니까?”
신체적으로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를 꼽으라면, 역시 나밖에 없다.
“그럴 수는 없죠. 물론 리더는 강력한 신체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실험이 실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설령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리더를 실험체로 삼고 싶진 않고요.”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인체 실험.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저질러서는 안 되는 금기 중의 금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선 그 금기를 깨야 할까?
그렇다면 인체 실험 대상은 누가 돼야 할까? 생각하던 나는 푹 한숨을 쉰다. 어쩌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러나 심호흡을 한 나는 그에게 말했다.
“서문주 씨는 인체 실험을 준비해주세요. 민혁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때 ‘자원자’를 보내겠습니다.”
“예.”
서문주는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병원을 나온 내가 이동한 곳은 정민혁이 있을 복합 쇼핑몰이 아닌, 쉘터 외곽에 있는 바른 빛 선교회의 교회였다.
홍수에 대비해 교회 건물 역시 3층으로 옮긴 모습이었다. 창문을 통해 나를 본, 신도들이 무릎을 꿇는다. 손을 모아 간절히 빌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들고 있던 짐 정도는 가볍게 내팽개친 채. 나는 곧, 창문 중 하나에 손을 뻗었다. 기프트를 지불해 문을 만든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자 그들의 생생한 반응을 느낄 수 있었다.
“신이시여!”
“신이 강림하셨다!”
“김선우 목사님은 어디 계십니까?”
“대주교님 말씀이십니까?”
“예.”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나는 김선우 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정갈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정장에 묻은 핏물을 본 나는 그가 방금 전까지 어디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모르는 척, 태연하게 그에게 물었다.
“목사님, 포로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