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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71화 (71/236)

71화

스스로를 이진서의 쉘터에서 왔다고 밝힌 김민수라는 남자는 공장 건물을 이용하길 바랐고, 지하오란은 흔쾌히 그의 요구를 수락했다. 그렇게 쉘터의 외곽에 ‘공방’이 세워지게 됐다.

“한 잔 받게.”

“예, 어르신.”

공손히 잔을 받은 김민수는 단숨에 잔을 들이켠다. 그러나 목구멍이 타는 듯한 느낌에 그만 기침을 하고 말았다. 지하오란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보기보다 술을 잘 못 먹는군.”

“소주는 많이 먹어봤습니다만, 고량주는 처음입니다.”

물론 평범한 고량주가 아니다. 무려 기프트를 사용해 개조된 고량주다. 우연히 술을 개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가 무려 500기프트를 들여 만들어낸 호사품이었다.

도수는 높지만 숙취 등과 같은 부작용이 일절 없는 명주라 할 수 있었다.

“술 실력 좀 길러야겠군. 내 술친구가 되기엔 부족한 것 같아.”

“노력해보겠습니다.”

“그거면 충분하네.”

그렇게 말한 지하오란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김민수는 노구(老軀)에 대단하다고 속으로 감탄하면서, 술병을 들어 그의 빈 술잔을 채웠다.

“그나저나 무슨 일인가?”

“예?”

“자네가 아무 목적 없이 술을 마시자고 한 건 아닐 테니 말이야.”

지하오란의 말에 김민수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네 같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만나봤는데 모르는 게 이상하지.”

중국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란페이 그룹의 회장 자리. 그런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그에게 청탁하려는 사람은 줄을 섰다. 김민수는 흠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게 말입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슨 부탁 말인가?”

“이번에 세워지는 공방에서는 전차와 전투기와 같은 군사 무기뿐만 아니라 공산품 역시 제조될 예정입니다.”

“노동력을 빌려달라는 말이군.”

“예? 예. 어떻게 아셨습니까?”

“척하면 척이지. 자네가 내게 부탁할 만한 게 노동력 빼고 뭐가 있겠는가? 기프트를 빌려달라는 건 아닐 테니 말이야.”

짐짓 농담조로 말을 건넨 그는 이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다소 과장된 그의 제스처에 김민수는 픽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러면 허심탄회하게 어르신께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알았네. 그룹 내에서 자원자를 뽑아보지.”

“감사합니다, 어르신.”

수십 명의 일손만 빌릴 수 있으면 이득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김민수는 진심으로 지하오란에게 고개를 숙였다. 지하오란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혹시 이진서··· 흠, 그 친구는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아는가?”

“리더는 아직 쉘터에 있을 겁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렇게 말한 그는 긴장 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지하오란에게 도움을 빌리러 왔다곤 해도, 그 도움의 대가가 그의 리더인 이진서에 대한 배신이라면 그는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다른 건 아니고··· 내 딸이 그 친구를 좋아하거든.”

예상외의 이유에 김민수는 눈을 동그랗게 만들며 말했다. 그의 딸이 그를 좋아한다고?

“그···렇습니까? 하지만 회장님의 딸이라면 리더하고는 조금 나이 차이가···”

“내 딸이 올해로 스물다섯이라네.”

“쿨럭.”

무례하게 보일 수 있는 김민수의 반응이지만, 지하오란은 느긋하게 대답했다.

“늦둥이이긴 하지.”

“죄송합니다.”

“아니네. 물론 본인은 아직 호감 단계라고 부정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그 친구한테 도통 연락이 없다더군.”

“아, 아마 리더가 바쁘셔서 그럴 겁니다.”

지하오란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의 스마트폰에는 사진이 있었다. 미란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이진서에게 메시지를 여러 개 보냈다. 그러나 번번이 보낼 때마다 ‘읽씹’ 당한다.

어쩌다가 대화가 이어질 때도 있지만, 대부분 그런 식으로 대화가 끝났다.

“이건···”

“자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예.”

그는 지하오란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바쁘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안읽씹’을 한다. 그게 예의니까.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몇 번이나 읽씹한다는 건···

너에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회로를 돌리려고 해도···’

회로가 박살 나버리는 수준이다.

“그래도 뭐, 내 딸은 포기하지 않을 거네.”

“아···”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법을 가르친 적 없거든.”

열의를 불태우는 미란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하오란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김민수는 앞으로 얼굴도 모르는 ‘그녀’에게 시달릴 이진서를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 어서 잔을 비우게.”

“어르신, 저는 그만 먹어도···”

“어허. 목적을 다 이루었으니, 술은 그만 먹겠다는 건가?”

“아니, 그게 아니라···”

김민수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마시겠습니다.”

***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이제원은 가면을 쓴 남자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걷고 있다. 곧 그들은 눈을 얼굴에 묻히거나, 뭉쳐 던지는 등 서로 장난을 친다. 잠시 그러고 있던 그들은 곧 눈밭 위에 드러누웠다.

바람에 날린 눈이 눈안개를 만든다. 그들은 함께 하늘을 바라봤다. 물론 말이 하늘이지 온통 녹색 천장에 인공 눈을 뿌려대는 기계뿐이지만,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진서야, 하늘 좀 봐봐. 아름답지?”

진서라고 불린, 가면을 쓴 남자는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게.”

“진서야, 진서야.”

“응?”

“저기 저 별똥별, 아니 혜성의 이름이 뭔지 알아?”

“뭔데?”

“핼리 혜성이래. 75.3년 주기로 찾아오는 혜성.”

지켜보던 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소리친다.

“컷!”

그의 정체는 강태윤이었다.

인디 영화 촬영 경험이 있는 그가 영화감독을 맡기로 했다. 이제원이 그에게 이것저것 시켜보더니 군말이 없어진 걸 보면 단순히 취미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다.

이제원이 짜증 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왜?”

“75.3년보다는 70년 정도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아. 애초에 책과는 거리가 먼 여주가 정확한 주기를 알고 있는 게 이상하잖아. 그 당시엔 인터넷도 없었다고.”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알았어.”

마치 꽁트 같은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슬그머니 껴들었다.

“컷.”

“진서 씨는 왜요?”

“왜 남주 이름이 진서입니까? 그리고 왜 남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거죠?”

“남주 이름이 왜 진서냐고요?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물어봐요? 그리고 남주가 왜 가면을 쓰고 있냐고요? 진서 씨 얼굴 합성할 거니까 그렇지!”

왜 이렇게 뻔뻔하냐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져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 왜 제 이름하고 제 얼굴을 쓰냐고 물어본 건데···”

“어차피 합성할 건데 가면이 왜 필요하냐고 물어본다면··· 아니, 연기하는 제 입장도 생각해야죠. 가면을 안 쓰면 진서 씨가 아닌 다른 사람 얼굴과 마주해야 하는데···!”

순식간에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대화의 맥락. 나는 이 비상식을 바로잡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한숨을 쉬자 이제원은 혼자서 씩씩거리고는 인공 눈을 집어 하늘로 날렸다.

모래처럼 쏴아아, 눈이 쏟아진다.

“누나 감정 조절 잘해요. 휴식 시간 필요해요?”

“아니, 이제 다 된 것 같아.”

“다시 갈게요!”

강태윤의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세트장 바깥으로 나왔다. 보다시피, 방금 그곳은 영화 세트장이고, 이제원은 그녀가 직접 뽑은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다.

“형, 촬영 끝났어요?”

밖으로 나온 내게 누군가가 물어온다. 누군가의 정체는 연병수였다. 시흥시에서 처음 만났을 때 변이체였던 그를 ‘시간 회귀의 물약’을 통해 인간으로 되돌려놨었다.

쉘터 생활은 결코 그에게 순탄하지 못했다. 플레이어와 비(非) 플레이어 사이에 생긴 차별은 냉혹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가 갈락시아의 도서관을 통해 마법을 배우며 해결됐다.

놀랍게도 그는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마법을 배우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가 익힌 마법은 ‘고급’ 등급 스킬에 불과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시스템에게 물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그리고 시스템은 대답했었다.

[재능의 차이입니다.]

‘재능?’

[만약 마법이 발달된 세상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천재 교육을 받았다면 그는 대마법사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연병수는 시스템이 인정할 정도의, 엄청난 마법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다른 세계에 태어났다면 그는 대마법사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내 재능은 연병수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인데?’

[비교하기가 민망한 수준입니다.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물론 하늘은 연병수고, 땅은 나일 터였다. 정말 어마어마한 마법 재능··· 아니, 내가 어마어마하게 마법 재능이 없는 거라고 말하는 편이 옳으려나.

“형?”

그를 앞에 두고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그가 부르고 나서야,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아직. 한참 촬영 중이야. 아마 며칠은 더 걸릴걸?”

“아, 그게··· 미라가 많이 궁금해 하더라고요.”

“대본 하나는 정말 훌륭했다고 전해줘.”

사실 이곳에 오기 전, 영화 대본을 먼저 읽었다. 대본은 다름 아닌 그의 여자친구인 최미라가 직접 작성한 대본이라고 했다.

확실히, 재밌었다. 정민혁이나 진혜연, 심지어 박승기조차 재밌다고 말한 걸 생각하면 절대로 내 개인적인 취향이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물론 이제원이 손대더니, 조금 변질되어 버렸지만···

“다행이네요. 틀림없이 미라가 기뻐할 거예요.”

나는 기뻐하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과자 한 상자를 구매해 그에게 건넸다.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과자였다. 그는 과자를 받아들고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형.”

“쉘터 생활은 어때?”

“그냥 뭐, 이제야 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서 기쁘다 정도? 아직 부족함은 있지만요. 뭐, 다 형 덕분이죠.”

“다른 사람들은?”

“나름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뭐, 여전히 비관적으로 떠들어대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비관적으로 떠들어대는 사람이라··· 왠지 감 내놔라, 배추 내놔라 식으로 내게 말했던 아줌마- 국회의원, 박승기의 사촌 동생이 떠오른다. 그에게 물어볼까 생각했지만, 관뒀다.

어차피 알아서 달라질 것도 없고. 만약 그 ‘누군가’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미리 이야기를 나눴던 대로 박승기나 정민혁이 해결할 것이다. 즉, 내가 더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힘내라, 형이 응원하니까.”

“예, 형!”

힘차게 대답하는 그가 기특해져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물었다.

“데려다줄까?”

“모터보트 가지고 왔어요.”

그의 말에 건물 앞에 주차된 보트를 바라본다. 공방에서 이동용, 운송용으로 만들어진 모터보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모터보트에 탑승한 그는 물을 헤치며 이동한다.

지켜보던 나도 날개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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