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그동안 봐온 변이체들은 ‘대부분’ 인간과 유사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인간이라 부르기 힘든 생김새의 변이체도 존재했지만, 눈앞의 변이체만큼 이질적인 놈은 없었다.
변이체- 드래고니안이 입을 벌린다. 마치 태양처럼 붉은 구체가 녀석의 입에 맺히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크기를 키운 구체가 내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블링크를 사용해, 구체를 피했다.
방금 전 구체는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정면으로 맞았다면, 나조차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대로 나를 지나간 구체는 앞마당에 떨어진다. 이어지는 강렬한 폭발.
아스팔트 도로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다.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미티어 스웜.’
또다시 폭격하듯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십 개의 운석들. 운석이 충돌할 때마다 비늘이 갈라지며, 고통스러운 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이내, 녀석의 몸이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그러자 용의 상처가 빠른 속도로 치유되기 시작한다. 아마 회복 스킬의 일종인 듯 보였다. 물론 저렇게 가만히 치유하도록 놔둘 생각은 없었다. 허공에 손을 내밀었다.
손에 잡히는 황금 잔을 단숨에 들이켠다.
[미미르의 샘물을 복용했습니다.]
때마침 미미르의 샘물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다 돌았던 것이다.
[체력과 마력이 100% 회복됐습니다.]
방금 전까지 바닥을 치던 마력이 단숨에 100%까지 차올랐다. 아낌없이 마력을 퍼부을 수 있다는 것. 그것으로 녀석의 승산은 0에 수렴한다고 해도 무방했다.
화려하던 날개는 찢어지고, 육중함을 자랑하던 온몸은 피투성이가 돼버렸다. 초록색 불이 몸 곳곳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녀석은 금세 빈사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그때였다. 녀석이 최후의 발악을 하듯 울음소리를 흘렸다. 아주 순간적으로, 0.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내 몸이 움츠러들었다. 물론 금세 떨쳐버렸다.
[강대한 마력이 공포에 저항했습니다.]
마무리를 짓기 위해 녀석을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운석이 떨어진다. 그러나 녀석은 죽지 않았다. 연기가 드러난 후, 드러난 녀석의 몸은 푸른색 수정체 안에 갇혀있었다.
푸른색 수정체를 향해 재차 미티어 스웜을 사용한다. 그러나 수정체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저 수정체가 대단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나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이번엔 아공간 창고에서 검을 꺼냈다. 수정체를 향해 달려들어 검을 찔러 넣는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내 검날만 나가버렸다.
난감한 표정으로 흠집 하나 없는 수정체를 바라봤다. 저 수정체를 깨지 않는 이상, 안에 있는 드래고니안을 죽인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깰 방법이 없다.
당장 떠오르는 방법이라 한다면 성운의 가호를 사용한 후 영령 빙의와 영령 소환을 사용해보는 것 정도지만, 그것 역시 확실한 방법이라곤 말할 수 없었다.
괜히 아까운 스킬을 날리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그때였다. 장영하가 몸을 일으켰다.
그를 향해 검을 겨눴다. 그가 아직 정신지배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을 본 나는 검을 내려놨다. 이내, 그가 수정체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방금 전처럼 검은 짐승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 크기는 방금 전과는 달랐다.
여태껏 봤던 것과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의 거대한 짐승으로 변한 그가 수정체 앞에서 입을 벌렸다. 마치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수정체가 그의 입 안으로 빨려들어 간다.
‘설마···’
이내, 강렬한 푸른색 빛이 일더니 수정체가 와장창 깨져나간다. 으그적, 으그적. 드래고니안은 반항하려는 듯 몸을 흔들었지만 이미 검은 짐승의 이빨은 녀석의 목을 물어버렸다.
나는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봤다. 검은 짐승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내, 짐승의 몸이 점점 변화하기 시작한다. 등에는 거대한 날개가 생기고, 머리에는 뿔이 생긴다.
온통 검은색이지만, 나는 방금 전 봤던 드래고니안의 생김새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플갱어 군주(Doppelganger Lord)]
- 다수의 플레이어와 동족을 살해하고, 진화의 정점에 도달한 초월체.
- 특수 변이체일 때보다 모든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플레이어를 살해하거나 동족을 살해해 체내에 기프트를 축적할 수 있고, 축적한 기프트로 신체와 특수 능력을 더 강화할 수 있다.
- 최대 500,000마리의 변이체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
- 보유 기프트 : 100,000
장영하가, 도플갱어가 드래고니안을 흡수해 초월체로 진화한 것이었다. 진화의 신비라도 엿본 듯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재차 검을 그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영감님, 살아있습니까?”
내 말을 들은 듯 검은 용이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본다. 만약 조금이라도 이성을 잃거나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바로 전력을 다해 그를 상대할 생각이었다.
특수 변이체와 초월체를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그러나 이내, 그의 몸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내, 인간 형태로 변한 그는 나를 바라본다. 그는 어째서인지··· 울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나는 의문을 느끼며, 그를 향해 물었다.
“멀쩡한 거 맞습니까?”
“보다시피, 멀쩡하네.”
“···다행입니다.”
나는 타나토스의 쇠사슬을 꺼내 그에게 툭 던졌다. 여전히 그에 대한 경계를 거두지 않았다.
장영하는 의미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스로를 칭칭 묶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그의 온몸에 쇠사슬이 감긴 걸 확인한 나는 한숨 쉬고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파츠츠거리는 소리와 함께 타들어 가는 담배 끝. 나는 담뱃갑에서 담배를 하나 더 꺼내 그의 입에 물려주었다. 그는 순순히 입으로 담배를 물었다.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내뱉었다.
그런 그를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이었습니까?”
“녀석을 흡수하는 순간, 머릿속으로 녀석의 기억이 흘러들어오더군.”
“어떤 기억 말씀이십니까?”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지금도 복잡하긴 하지만··· 결론은 하나네. 세상이 멸망할 거라는 것.”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네요. 세상은 이미 멸망한 거 아니었습니까?”
“지구에서 기프트 채굴을 모두 마치면, 플레이어도 변이체도, 모두 청소 당할 거라더군. 녀석이 평양에 얌전히 웅크려있던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였네.”
“그건 좀 최악이네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다짜고짜 멀쩡한 행성을 테라포밍해서, 채굴기로 만든 채굴자가 플레이어에 대한 인권 같은 걸 신경 쓸 리 없다.
골수까지 빼먹고, 끝내는 폐기하려 들겠지. 마치 프로그램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삭제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플레이어도, 변이체도 같은 운명이었던 거야.”
“···예정된 운명이 도래하지 않도록, 막을 겁니다.”
“그게 가능할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겁니다.”
시스템은 말했다. ‘충분히’ 많은 기프트가 있다면 코인 채굴기- 지구를 구매할 수도 있을 거라고. 현재 2년 락업이 걸려있는 스테이킹(Staking) 만기까지 어떻게든 버틴다면···
연이율 45%. 현재 스테이킹돼 있는 6억 5천만 개인 기프트는 13억 6천만 개의 기프트로 불어난다. 13억 개의 기프트라면 충분히 지구를 구매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이 내 예상이었다.
‘반드시 버틴다.’
생각에 잠긴 사이, 정신을 잃은 북한군들이 하나둘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특히 아까 쓰러졌던 김정은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권총을 꺼내 우리에게 겨누며 말했다.
“저 에미나이, 죽이라.”
북한군들이 총을 들어 우리에게 겨눴다.
그러나 그들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전차들이 줄지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북한군 전차가 아닌, 국군의 전차. 김민수가 개조한 전차들이었다.
나는 담배를 마저 한 모금 빨아들이고는, 바닥에 던졌다. 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 마력을 방출하며 짤막하게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항복해라.”
김정은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권총을 떨어트렸다. 다른 북한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들은 그룹원들에 의해 산 채로 생포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곧 쇠사슬들에 온몸이 칭칭 묶인 채 끌려가는 그들. 특히 김정은의 표정은 참으로 볼 만했다.
‘기프트 계약을 시험해볼 실험체가 필요했는데··· 잘된 건가?’
그라면 ‘노예 계약’을 맺는다 하더라도 하나도 미안할 것이 없었다.
***
반중력 수송기가 미국, 워싱턴에 도착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작 세 시간도 되지 않아 도착한 수송기를 본 대리어스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반중력 기술이 적용된 수송기라니··· 그야말로 오버 테크놀러지군.”
과학자였던 만큼 그는 반중력 기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반중력 기술이 현대의 기술력으로는 꿈도 못 꿀 오버 테크놀러지라는 것을 말이다.
“제이드, 반중력 기술에 대해 알고 있느냐?”
그의 옆에 서 있던 제이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뇨, 잘 모릅니다.”
“반중력 기술은 UFO 기술이라 불린다. 이론상으로 반중력 기술이 적용된 비행선은 우주여행도 가능하기 때문이지. 물론 비행선의 소재가 우주여행에 적합해야겠지만 말이다.”
뿐만 아니라 우주여행에 준비해야 할 것들은 많았다. 굳이 다 늘어놓기, 입이 아팠지만.
“그 말은···”
“저 수송기를 개조해서, 우주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것도 한 기가 아니다. 이진서가 보낸 ‘선물’은 총 두 기. 약 인원 8,000명을 실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물건이었다. 제이드는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수송기들을 바라봤다.
대리어스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언젠가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도 중국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지.”
그는 어렵지 않게 아버지의 의도를 이해했다.
“우주가 출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찾아, 이동할 수 있다면···”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이내 그들에게 다가온 양복 입은 남자를 바라본다. 비서실장이다.
“각하, 남미의 카르텔이 저희 미합중국을 침공할 예정이랍니다.”
“카르텔?”
제이드처럼 직접 대답하진 않은 대리어스는 귀를 의심하고 말았다.
“카르텔이면 그 멕시코 카르텔?”
“브라질입니다.”
“그래서 그 위대한 브라질 카르텔이 우리 미합중국의 영토를 침공하겠다고?”
대리어스가 어이없어하는 것도 당연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브라질, 그것도 정규군도 아니고 카르텔이 미국의 영토를 침공하겠다니. 그야말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격이다.
“군대를 준비시키게. 그래도 만약을 생각해, 대비는 해놔야 할 것 아니겠는가.”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