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코인 채굴-68화 (68/236)

68화

마치 폭죽처럼 하늘을 향해 발사되는 수십 개의 포탄들. 곡선의 궤적을 그린 포탄들이 이쪽을 향해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굳이 피하지 않았다. 앱솔루트 배리어는 미사일도 막아냈다.

하물며 핵미사일도 아니고, 고작 포탄에 뚫릴 리 만무했다. 보호막에 튕겨 지상에 떨어진 포탄들이 거칠게 폭발을 일으켰다. 폭연(爆煙)을 헤치고, 앞으로 천천히 걷는다.

도시에서 변이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 숫자는 수천을 가볍게 헤아린다. 그러나 중국에서 수백만, 수천만의 변이체를 상대해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저 여유만만일 뿐이었다.

굳이 주문을 외울 것도 없이,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십 개의 운석들. 변이체들은 하늘을 바라봤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운석에 뭉개지고, 쓸려나간다.

다음 순간, 나는 허공을 향해 지팡이를 휘두른다. 그러자, 허공에서 변이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에 중국에서 봤던 초월체- 데스 스토커처럼 은신 스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녀석의 은신 스킬과 비교하면 더없이 조악하고, 등급도 최상급 변이체에 지나지 않지만. 지팡이에 머리를 얻어맞은 녀석은 몇 걸음 뒷걸음질을 치더니 사족 보행을 하며 재차 달려들었다.

거대한 검은 짐승이 나타나 녀석을 물어뜯은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이미 ‘그’의 접근을 알고 있었던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검은 짐승을 바라본다.

최상급 변이체는 순식간에 수십 토막으로 찢어져 바닥에 흩뿌려진다. 압도적인 공격력. 나는 그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쇠사슬이 풀려있네.”

“형님, 그게 다 사정이 있습니다.”

뒤에서 슬그머니 정민혁이 모습을 드러낸다.

“저 영감님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알기는 하는 거냐?”

“거, 섭섭하구먼. 나는 내가 인간이라고 믿고 있는데 말이야.”

검은 짐승은 어느새 노인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인상 좋은 노인의 얼굴이지만 나는 그의 실체가 ‘변이체’라는 걸 알고 있다. 그의 이름은 장영하. 특수 변이체, 도플갱어.

그의 위험성은 두말해봐야 입이 아프다. 물론 내게는 별 위협이 되지 않지만, 쉘터 내의 다른 이들에게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항상 ‘타나토스의 쇠사슬’로 묶어놨었다.

하지만 그의 몸에선 쇠사슬은커녕,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 대한 통제권을 정민혁에게 맡겼었다. 한마디로, 정민혁이 그를 풀어줬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감님 덕분에 지난 야습을 성공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변명하듯 말하는 그에게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민혁아, 만약 저 영감님이 나쁜 생각을 품었다면, 너는 지금 여기 살아있지도 못할 거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그룹원들 전체가 위험해졌을 것이다. 그의 기프트 보유량은 무려 25,000이다. 지금껏 봐온 특수 변이체 중에서도 수위권에 드는 수치다.

그가 평범한 특수 변이체보다 강하다는 방증이었다.

“아니, 왜 자꾸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가?”

“영감님이 그런 존재지 않습니까.”

“나는 누누이 말했지만 적대할 생각이···”

나는 정민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는 그는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쇠사슬을 꺼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쇠사슬을 다시 품 안에 집어넣었다.

“그게 네 선택이냐?”

이내 마음을 다잡은 듯, 그는 또렷하게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영감님이 소원이 있답니다.”

“소원?”

장영하는 품속에서 신문을 꺼내 건넸다. 신문의 헤드라인에는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성은 동지께서 괴물을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얻으셨다.]

종말 이후에 발간된 신문인가.

“나는 김성은이 나와 같은 변이체, 아니 인간이라고 추정 중이네. 아니, 거의 확신하고 있네.”

“······”

사실 북한군이 변이체와 힘을 합치고 있다고 들었을 때, 북한군에서도 장영하 같은 이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긴 했다. 그는 그 생각이 사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눠보고 싶네. 내가 변이체인지, 인간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네만.”

그는 열망이 타오르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를 쳐다보던 나는 정민혁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그는 내게 미안한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미안해할 필요 없다. 처음에 화나기야 했지만··· 내가 없는 동안은, 네가 리더니까. 그에 걸맞은 결정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형님···”

그는 감동 받은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아니, 부담스러우니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는 말고. 아무튼 영감님··· 무슨 말인지는 잘 알아들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어느 정도 영감님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한국에 있는 변이체를 소탕할 때 장영하를 많이도 부려 먹었다. 시도 때도 없이 그는 내게 끌려다니곤 했으니까. 그에 대한 미안함이 없다면 거짓이었다.

“정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마치 처음 듣는다는 듯한 생소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얄미워져, 나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만우절 아닙니까?”

“······”

“영감님과 저, 단둘이 평양에 들어간다는 가정하에 오케이입니다. 혹시나 영감님이 도망가거나, 제 통수를 친다면 그때는···”

“끝까지 쫓아가서 나를 죽일 거라는 이야기군. 알았네.”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설마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저를 뭐로 보시고··· 안 그러실 거라 믿습니다. 가시죠.”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늘을 바라본다. 또다시 이쪽을 향해 날아드는 포탄들. 검은 짐승으로 변한 장영하가 포탄을 먹어 치웠다. 그가 앞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나도 블링크를 사용한다.

순식간에 도시의 입구에 도달했다. 변이체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달려들던 변이체들은 곧 몸을 돌려 우리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아마···

‘장영하의 소행인가.’

그는 최대 50,000마리의 변이체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도시를 순식간에 질주하던 우리는 곧 북한군을 마주했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는 기겁하더니 총을 쐈다.

탕, 탕.

그러나 앱솔루트 배리어에 의해 탄환은 튕겨 나간다.

어느새 그들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한 장영하는 그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가 통솔하는 변이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수십 명의 북한군은 순식간에 전멸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녹회색의 전차들이 앞으로 나온다. 특이한 건 마차처럼 줄에 묶인 변이체들이 전차들을 끌고 있다는 점이었다. 장영하가 감탄하며 말했다.

“확실히 저러면 석유 연료를 아낄 수 있겠군.”

“···저렇게까지 아낄 필요가 있겠습니까?”

내 물음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변이체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고, 전차 역시 뒤에서 포탄을 발사했다. 펑! 나는 가볍게 손을 휘둘러 포탄을 쳐냈다. 비껴 맞은 포탄이 그대로 전차를 향해 날아갔다.

펑!

전차를 몰던 변이체는 피하지도 못하고 포탄에 직격돼 그대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전차의 해치를 열고 북한군이 빠져나온다. 나는 블링크를 사용해 순식간에 그의 앞에 도달했다.

그의 멱살을 쥐고, 물었다.

“너희 수장 어딨어?”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한 나는 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걸로 대답은 충분했다. 나는 바닥에 그를 내팽개쳤다. 주섬주섬 권총을 꺼내는 그.

그러나 뒤에서 달려든 장영하가 그를 먹어 치웠다. 일말의 동정심을 느끼며, 그에게 말했다.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김성은은 지금 주석궁에 있답니다.”

“가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북한군과 변이체들과 전투를 벌이기를 여러 차례, 우리는 마침내 주석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대하고 화려하다. 그러나 주석궁 앞을 지키고 있는 건 최상급 변이체들이었다.

변이체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금세 장영하에 의해 조종당한 그들은 오히려 주석궁을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그들은 또다시 행동을 멈추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곧 주석궁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걸어 나온다. 김성은. 물론 TV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샤프해져서 못 알아볼 뻔했지만···

그가 지시를 내린다. 곧 그의 뒤에서 몰려온 북한 군인들이 이쪽을 향해 포화한다. 전부 기프트로 강화된 총기들. 물론 어느 것 하나 내 방어막을 꿰뚫지 못했지만.

“남조선 아 새끼들이 여기까진 무슨 일이네?”

장영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거, 김성은이, 이야기 좀 나누고 싶네만.”

“난 할 말 없는데? 그냥 뒤지라우.”

“······”

장영하는 김성은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세 좋게 달려간 그는 김성은을 향해 동물처럼 변한 앞발을 휘둘렀다. 그때, 문을 비집고 거대한 파충류의 손이 튀어나와 그의 몸을 쳐냈다.

수십여 미터를 날아간 그가 거칠게 바닥을 구른다. 정신을 잃거나 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부상은 입은 듯 그의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초월체인가.’

놀랍게도 주석궁 내부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손의 정체는 초월체였다. 이전까지 갈팡질팡하던 최상급 변이체들이 확실하게 마음을 굳힌 듯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지팡이를 들고 중얼거렸다.

“미티어 스웜.”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십 개의 운석들은 닥치는 대로 주석궁을 부수기 시작했다. 김성은의 얼굴이 악귀처럼 변했다. 그는 나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내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주석궁은 철저히 파괴됐고, 나는 마침내 주석궁 안에 웅크린 거대한 ‘용’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드래고니안(Dragonian)]

- 다수의 플레이어와 동족을 살해하고, 진화의 정점에 도달한 초월체.

- 특수 변이체일 때보다 모든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플레이어를 살해하거나 동족을 살해해 체내에 기프트를 축적할 수 있고, 축적한 기프트로 신체와 특수 능력을 더 강화할 수 있다.

- 최대 500,000마리의 변이체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

- 보유 기프트 : 100,000

용이 그 육중한 몸을 일으킨다. 그 순간, 팟! 강렬한 빛과 함께, 내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강대한 마력이 정신 지배에 저항합니다.]

[강대한 마력이 정신 지배에 완전히 저항했습니다.]

‘정신 지배라···’

다행히 내게 통하진 않았지만 녀석의 스킬인 모양이다.

북한군과 변이체들이 이성을 잃은 얼굴로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다. 그들 중엔 김성은과, 방금 전까지 쓰러져 있던 장영하도 섞여 있었다.

‘쯧.’

나는 달려오는 그를 향해 주먹을 들었다. 검은 짐승으로 변한 그가 내게 입을 벌렸다. 물론 내 주먹을 한 대 맞고, 깨갱거리는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지만 말이다.

발로 그를 밀어내고 타나토스의 쇠사슬을 던져 그를 칭칭 묶었다.

‘이거면 됐고, 저 녀석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