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하울링(Howling).
변이체들의 울음소리. 지금까지 들어왔던 하울링은 단순히 기분 나쁜 것 이외에는 별다른 효과를 가지고 있진 않았다. 그러나 그 단위가 수십만에 이르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Grrrr.
하울링만으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면이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일반인이라면 진즉 고막이 터졌을 것이다. 애초에 일반인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니, 의미 없는 가정이었지만 말이다.
곧, 하늘에 떠오른 나를 발견한 변이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지상을 향해 중얼거렸다. 미티어 스웜.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 운석의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미티어 스웜. 하늘에 여러 개의 운석을 소환하는, 미티어 스트라이크의 상위 스킬. 이번 카드 도박을 통해 얻은 스킬 카드 중 하나다.
운석 하나하나의 위력은 미티어 스트라이크와 차이 없고, 마력 소모량 역시 그 개수와 비례하니 실질적으로는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여러 번 사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초록색 화염으로 타오르는 운석은 순식간에 지면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휩쓸린 변이체들은 잿더미로 변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이체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다.
블링크를 사용해, 그 자리를 벗어나면서 중얼거렸다.
“영령 소환.”
[영령 소환(G)을 사용합니다.]
[계약된 영령 ‘마도사, 벨루가’를 불러옵니다.]
막대한 양의 마력이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눈앞에 마도사 로브를 뒤집어쓴 노인이 소환된다. 전에는 흐릿한 형체로 접했던, 마도사 벨루가였다. 소환되자마자 그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미티어 클라우드.”
나조차 처음 보는 스킬이었다. 하늘에 거대한 구름이 생성된다. 이내 구름에서 운석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범위에 접근한 변이체들이 말 그대로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간만에 마법을 쓰니 기분이 좋군.”
곧, 구름이 모습을 감췄고, 운석의 비 역시 멈췄다. 바닥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건 운석이 떨어진 자국과, 그 자리에 변이체가 있었음을 증명할 잿더미들뿐.
그러나 이내 그 자리를 다른 변이체들이 덮기 시작한다.
그는 이번에는 품에서 붉은색 곡옥(曲玉)을 꺼내 변이체들을 향해 던졌다. 곡옥이 빛을 발하더니, 이내 거대한 피닉스가 소환돼 곡옥을 삼켰다.
분명 내가 부산에서 소환했던 피닉스보다 그 사이즈는 작다. 하지만 피닉스가 품고 있는 불꽃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조차 뜨거움을 느낄 정도로 강렬한 것이었다.
“이프리트의 화염구를 집어삼킨 피닉스다. 모든 것을 태울 때까지 멈추지 않지. 물론··· 이 상태로는 얼마 유지하지 못하겠지만.”
아마 방금 전의 붉은색 곡옥의 이름이 이프리트의 화염구인 모양이다. 스킬의 위력을 증폭시켜주는 종류의 아이템인가.
최상급 변이체 여러 마리가 피닉스에 올라탔다. 자폭하는 변이체도 섞여있던 모양인지 강렬한 폭발과 함께 피닉스의 불꽃이 흐트러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피닉스가 날갯짓을 하자, 피닉스에 올라타 있던 최상급 변이체들은 모조리 잿더미로 변해버렸고, 흐트러졌던 불꽃도 다시 제 형태를 되찾았다. 피닉스가 비행한다.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지상이 화염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벨루가···’
그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소환된 벨루가는 지금의 나 이상으로 강했다. 그렇다면 벨루가가 아닌 다른 영령들은 어떨까? 만약 옐레나 같은 상급의 영령이라면?
그때 그가 입을 열었다.
“네 눈을 통해 이미 봐왔지만, 참으로 나약한 세계구나.”
“그렇습니까?”
“고작 ‘저 정도’ 존재들에 의해 멸망할 정도라니.”
그의 세계에 그와 같은 ‘괴물’들이 잔뜩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의 말이 과장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가 지금 보여주는 무용(武勇)은 압도적인 것이었으니까.
“···물론 네 재능은 내 세계에서도 통용될 만한 것이지만 말이다.”
내가 침묵을 지키자, 그는 멋쩍게 칭찬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 사이 피닉스는 학살극을 자행하고 있었다. 중급 변이체는 물론 상급 변이체, 최상급 변이체조차 피닉스가 흩뿌리는 화염 속에서 잿더미가 될 뿐이었다.
특수 변이체라 하더라도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무위를 자랑하던 피닉스의 지속 시간도 끝이 났다. 피닉스의 몸이 지상으로 떨어지며 강렬한 폭발을 일으키는 것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벨루가의 몸 역시 흐릿해졌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사라지는 그를 향해 짤막하게 고개를 숙이자, 곧 그의 몸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영령 소환···’
첫 사용이지만 과연 신화 등급 스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다는 점이 단점이긴 하지만 말이다. 흡족한 얼굴을 하던 나는 회복제를 들이켰다.
지상이 검은색으로 뒤덮인다. 내가 방금 소환한 마도사, 벨루가는 못해도 수만 마리의 변이체들을 해치웠다. 그러나 아직 변이체들은 그 수십 배도 넘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숫자는 더욱더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지금 좀 무리를 해볼까.’
천천히 심호흡을 한 나는 지상을 향해 재차 미티어 스웜을 사용했다.
***
이진서가 부재인 지금, 쉘터의 실질적인 통솔권은 정민혁에게 있었다. 물론 그에게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를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기에 큰 의미는 없었다.
“형님은 지금 중국에서 목숨을 걸고 계시는데··· 우리도 제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정민혁이 화두를 띄우자,
“찬성이다.”
듣고 있던 강순철과 몇몇 간부들 역시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리더는 우리보고 방공호 안에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요? 우리끼리 독단적으로 행동했다가 괜히 핵이라도 맞으면···”
한승주의 걱정스런 말에, 정민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한반도가 핵을 맞을 일은 없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중국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형님을 적대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형님을 회유해야 하는 쪽으로 상황이 바뀌었으니까요.”
사실이었다. 중국 정부에게 있어서 이진서는 이제 구명줄이나 다름없이 변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경표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끼어들며 대꾸했다.
“그걸 어떻게 100% 확신합니까? 우리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인데.”
정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세상에 100%인 일은 없죠.”
“그런데 어째서···”
“하지만 리스크 없이 이룰 수 있는 일도 없습니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로 한 이상, 어느 정도의 리스크는 다들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다들 편하지 않았나요?”
“너무 편해서 엉덩이에 살찌기 일보직전인데? 내 엉덩이를 봐. 저번의 두 배는 된 것 같네만.”
박승기의 농담에 다른 간부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고경표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그리고 만약 전조가 보인다면, 미국 측에서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아니, 그걸 알고 있으면 뭐 결론이 달라지나?”
“무서우면 이번 계획에 빠지셔도 됩니다. 저번에도 말했던 것처럼 필참은 아니니까요.”
“아니,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무서워서 그러는 거 맞는 거 같은데?”
잠자코 둘 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제원이 끼어들자 그녀에게 약한 고경표는 침묵하고 말았다. 그를 향해 코웃음 친 그녀는 이번에는 정민혁을 향해 물었다.
“그러면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는 걸로?”
“예, 일단은 변동 없이 내일, 미리 정해둔 루트로 북한까지 향할 예정입니다.”
이미 준비는 마쳤기에, 움직이기만 하면 될 노릇이었다.
“진서 씨에게는 보고하고 진행하는 거죠?”
김하나의 물음에 정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께는 이미 연락해놨으니,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진서와 연락까지 미리 해놨다는데, 더 반발할 이유가 없었다. 간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급 변이체가 상급 변이체로 변하기까지 이틀 남짓한 시점의 일이었다.
***
이진서가 변이체들을 처치하는 사이, 중국 군부도 놀고 있었던 건 아니다. 비록 핵무기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재래식 미사일을 변이체들을 향해 ‘아낌없이’ 퍼부었다.
미사일을 날릴 때마다, 몰려온 변이체들에 의해 발사대가 파괴되긴 했지만, 그 결과 수십만 마리의 변이체들을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웃지 못했다.
그동안 ‘동족 포식’을 하느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초월체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초월체는 지금까지 그 어떤 변이체보다도 거대했고, 강력한 육신을 가지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킹 타일런트(Tyrant)]
- 다수의 플레이어와 동족을 살해하고, 진화의 정점에 도달한 초월체.
- 특수 변이체일 때보다 모든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플레이어를 살해하거나 동족을 살해해 체내에 기프트를 축적할 수 있고, 축적한 기프트로 신체와 특수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 최대 500,000마리의 변이체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
- 보유 기프트 : 500,000
이진서가 일전에 시흥에서 상대한 적 있는 불멸(不滅)의 변이체, 타일런트의 진화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핵미사일을 쏟아붓는다 해도 처치할 수 있을지 의문인 ‘괴물’의 출현이었다.
출동한 기갑 전단을 가볍게 전멸시킨 킹 타일런트는 군 장성이 숨어있던 방공호를 기습했다. 녀석은 방공호 내부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고 결국 내부에 있던 이들은 모두 다 죽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비상이 걸린 건 군 장성들과 주석인 웨이타오였다.
- 녀석은 후각으로 벙커를 찾아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작 후각으로 수천 미터 지하에 있는 방공호를 찾아냈다고?
- 녀석이 신체 능력이 극도로 발달한 변이체라 가능한 일이라고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핵미사일도 안 통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게다가 핵미사일을 쏟아붓는다 하더라도 문제다. 핵미사일 한 발을 날렸다고 이 사달이 났다. 만약 수십 발을 쏟아부었다가 인도의 변이체들이 몰려오기라도 한다면···
‘인도의 인구는 우리 중국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고···!’
인도의 변이체들이 중국의 영토로 몰려드는 상상을 한 웨이타오는 몸을 떨었다. 말 그대로 재앙이 펼쳐질 것이 틀림없었으므로.
- 생화학 병기를 사용해, 녀석의 신체 능력의 일부를 마비시킬 예정입니다.
처치한다면 좋겠지만, 설령 처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애초에 목적은 ‘후각’을 마비시키는 것이었다. 후각이 마비된다면, 벙커를 찾아내지 못할 거라는 판단이었다.
웨이타오는 방법이 있다는 리창 서기의 말에 내심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함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생화학 병기? 괜히 썼다가 탈 나는 거 아니지?”
- 이미 변이체에게 실험을 마친 생화학 병기입니다.
“그래, 자네가 알아서 잘 좀 해주게.”
- 예, 주석 각하.
수화기를 내려놓은 후 웨이타오는 호흡을 길게 들이쉬며 중얼거렸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