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운석에 직격당한 트럭은 맹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에 휩쓸린,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나는 가볍게 도약했다.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 변심이라도 한 듯, 그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나를 향해 총을 겨눴다. 탕탕. 아까도 느꼈지만 평범한 탄환이 아니다. 기프트로 개조한 탄환이다.
고작 그 정도로 지금의 내 보호막들을 뚫고, 나를 꿰뚫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나는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해 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봤다. 지도부의 정체,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서다.
- 죽기 싫어···
- 왜 내가 죽어야 하지?
그러나 쓸 만한 정보를 얻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하기야, 게비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사람의 생각’이다. 즉, 지도부에 대해서 생각하는 이가 없다면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중국어를 모르는 나는 S31의 실시간 번역 기능을 사용하기로 했다.
“너희들의 지도자가 누구지?”
S31에서 음성이 흘러나온다. 이 시끄러운 포화 속에서 묻힐 만큼 자그마한 음성이었지만, 기계 정령, 에코에 의해 음성은 수십, 수백 배로 증폭돼서 그들을 향해 울려 퍼졌다.
- 우리들의 지도자? 누구긴 누구야, 웨이타오지.
- 정체가 뭐지? 중국인이 아닌가?
웨이타오. 나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차기 주석으로 언급되는 이인자. TV에서 지나가듯 언급되는 걸 들은 적 있었다.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웨이타오는 지금 어디 있지?”
-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어디 지하 벙커에 숨어서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을 텐데.
- 중국 어딘가에 있겠지. 아니, 중국에 있는 게 맞긴 하나?
그들의 말은 전부 진실이었다. 이 이상의 정보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아마 웨이타오는 자신의 몸을 끔찍이 아껴서, 외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모양이다.
‘이미 내 존재를 알아챘을 확률이 높겠지.’
그렇다면 병사들을 살려두는 건 위험하다. 판단을 내린 나는 최대한 깔끔하게 고통 없이 보내주기로 했다. 미티어 스트라이크. 내 중얼거림과 함께 또다시 운석이 그들을 향해 떨어진다.
- 씨발.
- 저런 개새끼가! 우리를 방심하게 해놓고!
그들은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달렸지만, 그 정도 속도로 운석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그들은 모조리 침묵하고 말았다. 나는 지팡이를 탈탈 털어냈다.
‘들쑤시다 보면 웨이타오도 안 나오곤 못 배기겠지만···’
이쪽의 정체를 눈치챘다는 것. 그것은 다시 말해 다짜고짜 미사일이나 핵미사일을 날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닌, 내 본진- 쉘터를 향해서. 물론 이에 대한 대비를 해놨다.
핵전쟁에 대비한 방공호. 김민수가 설계한 방공호들은 방공호끼리 서로 연결돼있을 뿐만 아니라, 유사시에 서울시를 벗어나 강원도까지 이동할 수 있는 지하 통로까지 연결돼있다.
그러나 다짜고짜 핵미사일을 맞고 멀쩡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만약 핵미사일을 기프트로 강화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니, 내 발걸음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일단··· 변이체들을 마저 처치해볼까.’
아직 어둠에 잠긴 세상, 변이체들이 해일처럼 움직인다. 분명 도시와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마력 분신.’
중얼거리자 허공에 분신이 생긴다. 또다시 운석의 비가 변이체들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한다.
***
기분 좋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차를 음미하던 웨이타오는 요란하게 울리는 수화기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수화기를 들어 받았다.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 웨이타오 주석님,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그래, 무슨 일이야?”
- 저희 중화민국의 영토에 무단으로 침입해서, 병사들을 공격한 침입자가 있습니다.
웨이타오는 담담하게 물었다.
“침입자?”
- 예, 침입자의 정체는 ‘배달부’로 추정됩니다.
“배달부? 그건 또 뭐야?”
- 한국의 유명한 플레이어입니다.
설명을 듣고 나니, 별로 낯설지 않았다.
“아, 들어본 것 같은데··· 그 배달부가 우리 영토 안에 들어와서 뭘 했다고?”
- 중화민국의 소중한 재산을 약탈하고, 군 시설을 파괴하는 끔찍한 범죄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웨이타오는 잠시 대답하지 않고, 차를 홀짝이면서 생각에 잠겼다.
‘굳이 뭘 해야 하나?’
그 소중한 재산이라는 것은 결국 변이체들을 말하는 거 아닌가. 가뜩이나 너무 많아서 처치 곤란인데 그런 변이체들을 처치해주면 오히려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자신의 생각대로 말한다면, 군 장성들은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것이 분명했다.
“반드시 잡아 오라고 해.”
그의 명령이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그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 예, 알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웨이타오는 수화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뉘었다. 세상이 이 지경이 돼버리고 난 후에야 그는 마침내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라는 것을.
그의 목숨을 위협할 만한 존재는 둘이었다. 플레이어나, 변이체. 그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깊은 지하 벙커에 몸을 숨긴 것은 바로 그 둘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바둑이나 둬볼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뚱뒤뚱 바둑판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순간적으로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내가 잘못 느끼기라도 한 걸까?
다음 순간, 무언가가 지면을 뚫고 내 발밑을 노렸다. 물론 앱솔루트 배리어에 가로막혔지만 배리어에 흠집이 생겼다. 지금의 배리어에 흠집을 낼 정도면,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이라는 것.
나는 뒤로 물러서면서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사용했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운석. 그러나 불쑥 공기를 가르며 올라간 무언가는 운석을 그대로 두 토막으로 갈라버리고 말았다.
투명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 변이체?
이번에는 마력을 방출해, 공간 전체를 덮어버렸다. 지금의 내 마력이라면 이 정도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자 희미한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데스 스토커(Death Stalker)]
- 다수의 플레이어와 동족을 살해하고, 진화의 정점에 도달한 초월체.
- 특수 변이체일 때보다 모든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플레이어를 살해하거나 동족을 살해해 체내에 기프트를 축적할 수 있고, 축적한 기프트로 신체와 특수 능력을 더 강화할 수 있다.
- 최대 500,000마리의 변이체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
- 보유 기프트 : 100,000
녀석의 정체는 ‘데스 스토커’라는 이름의 초월체였다. 데미안과 설명은 다르지만, 분명 그와는 현저하게 다른 능력을 가진 초월체임이 틀림없다.
녀석이 또다시 몸을 숨긴다. 그러더니 빠르게 내 마력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녀석을 이렇게 놓치기라도 한다면 내 입장에선 여간 귀찮아지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진리의 눈, 게비샤로도 보이지 않는 녀석을 내가 잡을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일대를 초토화시키는 방법밖에. 운석의 비가 지상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상을 파괴하는 운석들. 곧 녀석의 위치가 드러났다. 희미한 형체가 거대하게 몸을 부풀렸다. 쾅! 쾅! 녀석의 가슴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가시가 운석을 꿰뚫었다.
아까 운석이 꿰뚫려 두 토막 났던 것은 저런 식으로 토막 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소모전으로 가면 절대적으로 이쪽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애초에 승부는 정해져 있었다.
결국 마지막에는 투명 상태를 해제하고 본 모습을 드러내 최후의 저항을 펼친 녀석이었지만··· 운석의 파도 앞에 결국 잿더미가 돼서 사라지고 말았다.
[1,535,564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무려 150만이 넘는 엄청난 양의 기프트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건가 했지만, 생각해보면 계산이 맞았다. 일식 기간이라는 점도 여기에 한몫했다.
‘빚은 이미 갚은 지 오래고···’
대출받았던 100만 기프트는 다 갚은 지 오래고, 250만 기프트가 추가로 모여 있었다. 총 350만 기프트. 고작 도시 하나를 털었을 뿐인데 엄청난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생각하던 나는 9만 기프트짜리 5급 안전가옥을 구매했다. 단기간에 치른 전투. 그 피로감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푹신한 최고급 침대에 드러누운 후에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물론 편안하게 눈을 붙이진 못했다. 내가 자고 있을 때, 핵미사일이라도 날아올 걸 경계해서다. 대신 드러누워서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켰다. 메일이 한 통 도착해있었다.
광고 메일 같은 것일 리가 없다.
[제목 없음]
흥미로운 표정으로 발신인을 확인했다. 발신인을 확인한 내 표정이 굳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발신인의 정체가 ‘그’였기 때문이다.
***
중국이 비상이 걸렸듯, 미국 역시 비상이 걸렸다.
중국 내의 변이체를 처치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동의했지만, 이진서가 이런 식으로 갑자기 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건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내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웨이타오 주석이 미쳤다고 핵이라도 쏘면 어떻게 되는 건가?”
“설마 핵을 쏠까?”
“웨이타오 주석은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지.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부모마저도 숙청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말이야.”
오히려 이전의 주석보다도 전형적인 독재자에 가까운 인물이 웨이타오 주석이었다. 지금 그 독재자는 자신의 영토를 침입한 침입자를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하고 있는 중일 테고 말이다.
문제는 그 침입자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어중간한 미사일로는 어림도 없고, 핵무기를 사용해야만 사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인물이 이진서였다.
한마디로 중국에서 그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강한 플레이어가 나타나거나, 핵미사일을 발사해야 하는데, 그들의 생각으로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문제는 그 핵미사일이 우리 미합중국을 겨누지 말란 법도 없다.’
자국의 영토를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한 중국에게 더 거리낄 것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이 정치학자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자신들은 혹시 모를 비극을 대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단 중국 쪽에 우리는 관련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쪽이 옳지 않을까?”
“아니, 그게 더 이상한 것 같은데. 생각해봐. 우리가 하지도 않았는데 관련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건 마치 우리가 했는데 안 했다고 발뺌하는 것 같지 않겠어?”
“차라리 이진서와 그의 쉘터에 대한 정보를 파는 게 어떻겠습니까? 핵전쟁은 막아야 할 거 아닙니까.”
이 소식은 비단 미국에만 퍼진 것이 아니었다.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에 퍼져, 말 그대로 전 세계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