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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57화 (57/236)

57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자연재해도 모두 소멸했다. 언제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공포감과 불안감 속에서 사람들은 재건 작업에 들어갔다.

강도 8.5 이상의 지진은 워싱턴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임시 대통령인 대리어스가 머무는 백악관(White House)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측 피해 상황은?”

“총 745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745명이라는 숫자는 워싱턴뿐만이 아닌, 미국 전역에서 목숨을 잃은 플레이어들의 숫자였다.

뼈아픈 손실이었다. 미국의 플레이어 숫자는 물경 2만이니, 비율로 따지면 4% 정도의 플레이어가 목숨을 잃은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경미한 피해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경미한’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의 기준이지만.

“다른 나라의 상황은 그야말로 끔찍합니다. 교신이 연결된 72곳 중 69곳의 교신이 끊어졌고, 그나마 아직 교신이 연결된 독일, 호주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한국, 한국은?”

“한국의 피해는···”

비서실장은 그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광주, 부산, 제주, 남부 지방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저희가 주시하고 있는 서울의 피해는···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떻게?”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피해가 전무하다? 직접 자연재해를 보고, 겪은 그의 입장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희 측에 전송해온 영상입니다. 도네는 양심껏 받겠다고···”

“도네라는 게···”

“도네이션(Donation)의 줄임말입니다.”

“아, 그래.”

“······”

“나도 사실 알고 있었네.”

“예···”

곧 영상이 재생된다.

영상의 내용은 짧았지만,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거대한 토네이도가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빌딩이든, 가로등이든, 닿는 모든 것을 분해해버리면서.

하지만 다음 순간, 나타난 남자가 토네이도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토네이도는 강렬한 빛과 함께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남자의 정체는 당연하게도 이진서였다.

“······”

대리어스는 그대로 침묵하고 말았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었다. 토네이도. 자신들이 겪은 지진이나 해일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은 건 맞지만··· 자신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니, 못한다.’

물론 가진 기프트를 쏟아붓는다면 가능할 것이다. 전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고작 자연재해 하나일 뿐. 자연재해 하나를 없애겠다고, 기프트를 쏟아부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했다.’

그 불가능할지 모르는 일에 ‘해본다’라는 판단을 내렸고, 실제로 해냈다.

‘물론 그로 인해 상당한 손해를 봤겠지만.’

영령 빙의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빨리 미국으로 데려와야겠군.”

“그들이 순순히 오려 할까요?”

“결국 그도 알고 있을 거야. 지구의 플레이어들은 결국 한곳에 모일 수밖에 없다는 걸.”

그리고 자신의 미국은 그들을 위한 강력한 방패(Shield)가 될 것이다.

“교신이 다시 회복되는 대로, 다른 나라들과의 합병을 서두르게. 우리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없어.”

비서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

자연재해가 소멸한 후 3일간,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의 변이체들을 소탕했다. 이제 대한민국 내의 변이체들은 거의 다 소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아직도 적잖은 수의 변이체들이 남아있긴 하겠지만··· 그 ‘효율’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떨어질 거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정민혁 및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자원은 한정돼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있는 변이체들을 우리가, 리더가 선점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서로 주고받는 정민혁과 강순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생각했던 상황이 현실로 다가왔다. 변이체들은 이 세계의 가장 큰 위협임과 동시에··· 자원이다.

그리고 지금, 그 자원이 고갈되려고 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 중국이나 일본으로 향한다든지, 아니면 북한으로 향한다든지 하는 등의 계획을 미리 생각해두긴 했지만···

“저희가 먼저 선점해야 합니다, 형님.”

정민혁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그 나라의 플레이어 그룹과 전쟁을 불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때, 고경표가 슬며시 손을 들었다.

“그··· 제 생각은 반대입니다. 전쟁이 애들 놀이도 아니고··· 다짜고짜 미사일이라도 날리면 어쩝니까?”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흡수 합병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만약 불가능하다면 그들이 고경표 씨의 말씀처럼 미사일을 날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미사일을 날려야겠죠.”

나는 아공간 창고에 있는 현무 ‘미사일’들을 떠올렸다. 한 발도 아니고, 무려 서른 발. 기프트로 강화한다면 전술핵에 가까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김민수는 말했었다.

아니 굳이 미사일을 날릴 필요도 없이, 내가 날아가서 미티어 스트라이크만 날려도 어지간한 도시는 쑥대밭이 돼버릴 것이다. 물론··· 결정하기까지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진심입니까?”

고경표는 전쟁광이라도 보는 듯한 질린 얼굴로 정민혁에게 물었다.

“고경표 씨, 우리 쉘터의 인원수는 어제부로 3,500명을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점점 늘어나게 될 겁니다. 그 많은 인원이 인간 같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프트가 필요합니다.”

“아니면 기다렸다가 일주일 뒤에 상급 변이체들을 사냥하는 건··· 중급 변이체가 3 기프트를 주고, 상급 변이체가 50 기프트를 주니까··· 이게 그니까 몇 배더라···”

중급 변이체가 상급 변이체들로 변하기까지 정확히 일주일 남았다.

“약 16.6배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서문주가 대답했다.

“아, 고맙소. 의사 양반. 그니까 16.6배의 효율로 사냥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정민혁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고경표 씨는··· 수십 마리의 중급 변이체를 사냥하실 수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러면 상급 변이체는 몇 마리까지 가능합니까?”

“그건··· 해봐야 알겠지만. 한 세 마리까지는 감당 가능하지 않을까···”

“저도 다섯 마리 남짓 상대하는 게 고작일 겁니다. 우리 쉘터에서 강한 다른 플레이어들이라 해도 비슷할 거고요. 게다가 변이체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났던 상급 변이체, 루나는 별로 강하지 않았다.

개체 간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당시의 내게 도망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변이체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강해져 왔다. 그에 따라 주는 기프트 양도 덩달아 늘긴 했지만.

‘이제는 육체 스텟이 40은 돼야, 어느 정도 상대 가능한 수준이라 했지.’

그리고 앞으로 그렇게 강해지지 말라는 보장은 없었다.

“한마디로 피해 없이 그나마 여유롭게 파밍할 수 있는 순간은, 지금뿐이라는 겁니다.”

“저기··· 이진서 씨는 다르지 않습니까?”

내 눈빛과 마주치자 그는 화들짝 눈을 깔았다.

“물론 이 모든 가정은 형님이 ‘없을 때’를 상정한 이야기입니다. 형님이 항상 우리 쉘터에 계신다면 이 모든 가정은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하지만?”

“형님이 언제까지 우리 쉘터에만, 이 한반도에만 머무는 건 명백한 손해입니다. 형님 개인에게도, 저희에게도. 형님이 없더라도, 우리 쉘터는 정상적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게 제 뜻이고, 형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도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고경표는 그들을 두리번거리다가, 조금 인상을 찌푸리고는 정민혁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디랑 ‘전쟁’을 하자는 말입니까?”

“이곳과,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나라. 많은 수의 그룹원들이 육로를 통해 이동할 수 있는 나라.”

“일본?”

정민혁은 순간적으로 그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이제원이 입을 열었다.

“아니, 노쓰 코리아. 북한이죠.”

“예, 북한입니다.”

“아, 북한···”

순간적으로 침묵이 감돌았다.

“위험하지 않을까? 특히 그 김성은인가 뭔가 그 돼지가 살아있을지도 모르고···”

“리스크 없이는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리스크를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감수해야 할 상황이고요.”

“그래서 언제 가자는 거요?”

“앞으로 삼일 안에.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우리가 여기 온 지 고작 삼 일도 안 됐는데요?”

“앞으로 함께 보낼 세월도 생각하셔야죠.”

거절은 받지 않겠다는 듯한 단호한 정민혁의 말에 고경표는 ‘끙’하는 소리를 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번에는 기존에 변이체를 사냥하지 않으셨던 분들도 데려가려고 합니다. 또 자연재해가 일어날지도 모르니까요.”

특히 이들 중 직접 자연재해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분들은 불만 없으십니까?”

다른 이들은 침묵을 지킨다. 정민혁은 내게 눈짓했다. 나는 미리 그에게 언질 받은 대로,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했다. 그를 싫어하는 이들이 ‘몇’ 보이긴 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계획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고경표 하나뿐인가···

나는 정민혁에게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만 없으시면 전쟁 계획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계획을 세우는데, 장영하님이 도움을 주시기로 했습니다.”

“장영하?”

처음 듣는다는 듯한 생소한 반응. 하기야, 그는 아직 ‘그’를 보지 못했지. 나는 안전 가옥 내에서 여유롭게 꽃을 재배하고 있을 도플갱어 노인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전직 육군 사단장이십니다.”

정민혁도 그가 변이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변이체라는 사실은 굳이 밝히지 않았다. 다른 간부들이 모두 나간 후, 정민혁과 나, 둘만이 남았다.

“형님이 상대하셨다는 초월체가 어디서 왔는지 밝혀졌습니다.”

“어디서 왔는데?”

“미국의 무인 드론에 촬영된 사진입니다. 상해 쪽에서 왔다고 추정됩니다.”

“상해? 상하이?”

“예.”

나는 쓰게 웃었다.

“예전에는 미세 먼지가 날아오더니, 이제는 변이체가 날아오네.”

“학자들은 상하이 근방에 있는 플레이어 그룹이 전부 전멸해서, 그다음으로 가까운 저희 쪽으로 날아온 것이 아닐까 하고 추정한답니다.”

“중국에 있는 변이체들을 빨리 정리하는 게 급선무겠네.”

분명 데미안이라는 초월체는 지금의 나라 하더라도 섣불리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그런 초월체가 하나밖에 없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앞으로 9일 후면, 90일 후면, 모든 변이체가 최상급 변이체로 변한 이후에는 초월체가 우후죽순으로 생성될 것이다. 그때 막아낼 수 있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해도···

아직까진 부정적인 생각이 더 컸다.

“예, 부탁드립니다, 형님. 자꾸 위험한 부탁 드리게 돼서 죄송하지만···”

“아냐.”

나는 정민혁에게 뭐라고 충고라도 해줄까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녀석의 어깨를 툭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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