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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51화 (51/236)

51화

윌셔 그랜드 센터(Wilshire Grand Center). 미국, LA에 위치한, 서부에서 가장 높은 빌딩. 세상이 코인 채굴기로 변해버린 지금도 굳건히 선 채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건물의 최상층이자 73층에서는 20명~3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작은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바(Bar) 테이블 위에 차려진 만찬과 늘어진 술병들. 그들은 하늘을 보며 잔을 들었다.

“빌어먹을 눈이 그친 것에, 건배.”

혹한기가 시작됐다는 메시지가 떠오른 지 정확히 한 달. 시스템 메시지가 예고했던 대로, 혹한기가 끝났다. 불과 어젯밤만 하더라도 맹렬히 쏟아붓던 눈이 그쳤고, 태양이 떠올랐다.

지금 그들이 가지는 파티는, 혹한기 동안 고생한 자신들을 치하하기 위한 파티였다.

비싼 꼬냑 병을 입에 문 채 벌컥벌컥 들이켜던 카우보이모자를 쓴 남자는 문득 무언가가 생각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내, 그는 옆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서란, 어디 있어?”

“서란? 아마 옥상에 있을걸?”

그는 마시던 꼬냑을 든 채, 테이블 위에 있는 꼬냑 병을 하나 더 집고는 비상구 계단을 찾았다. 옥상. LA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는 잠시 목적도 잊은 채 바람을 맞으며 경치를 감상했다.

그때,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밥, 왜 올라왔어요?”

등에 대물 저격총을 메고 있는, 젊은 동양인 여자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꼬냑을 건네며 말했다.

“서란, 이 좋은 날 한잔해야지! 뭐 하고 있는 거야?”

서란이라 불린 여자는 절반쯤 비워져 있는 꼬냑 병을 바라보고는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밥이 마시던 거 아니에요?”

“아, 그러네.”

그는 헤벌쭉 웃으며 이번에는 왼손에 든 꼬냑 병을 건넸다. 그의 뻔뻔함에 피식 웃은 그녀는 꼬냑 병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씁쓸하면서도 달짝지근한 포도 맛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꼬냑은 최고의 술이라니까.”

“뭐, 제가 최고의 술은 소주지만··· 소주는 없으니, 인정할게요.”

“내려와서 마시는 게 어때? 다들 네가 없다고 섭섭해하는데?”

“저도 그러고 싶지만··· 혹한기가 끝났잖아요.”

“끝났으니까 마셔야 하는 거지.”

“저는 재앙이 이걸로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동안의 패턴을 보면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이 지구의 플레이어들이 모두 죽기 전까지는 ‘결코’ 재앙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서란, 어차피 우리가 기다린다고 해서 예정된 미래를 바꾸지는 못하잖아? 아직 오지 않은 재앙을 걱정할 바엔, 지금 이 상황을 즐기자고.”

밥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녀- 이서란은 이 그룹에서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세계에 예정된 미래까지 뒤바꿀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서란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의 생각에 어느 정도는 동조했다.

‘그래, 오늘 하루만···’

그때였다. 강풍이 불어왔다. 높은 빌딩의 옥상인 만큼, 강풍이 불어오는 것은 이상한 건 아니었지만 방금 전과는 그 결이 달랐다. 이상함을 느낀 그녀는 옥상을 두리번거린다.

“저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파도가 이쪽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소수의 플레이어들의 코인 채굴량이 현저히 낮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세계 곳곳에 무작위로 자연재해가 생겨납니다.]

[LA - 쓰나미]

가로막는 것을 닥치는 대로 휩쓸면서, 파도는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쓰, 쓰나미?”

“우린 안전할 거야.”

파도가 아무리 거대한들, 그들이 있는 빌딩은 LA에서 가장 높은 빌딩. 당연하게도 피해가 미칠 리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여기 갇히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바로 그들이 빌딩에 갇힐 수도 있다는 것.

“정부에 알려야···”

“정부에서 우리를 구하러 올 리가···”

“일단 정신이나 차려···!”

혼이 나간 얼굴로 쓰나미가 LA 시내를 휩쓰는 것을 바라보던 이서란은 그제야 정신 차린 듯,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밥과 함께 허겁지겁 아래로 내려갔다.

LA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자연재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국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

세계가 빌어먹을 코인 채굴기로 변한 지 61일. 드디어 혹한기가 끝났다. 눈이 지긋지긋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룹원들은 환호성을 외쳐댔고, 나 역시 한마음으로 기뻐했다.

그러나 재앙의 끝은, 새로운 재앙의 시작이었다. 그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빌어먹을 시스템 메시지가 또다시 떠올랐다.

[소수의 플레이어들의 코인 채굴량이 현저히 낮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세계 곳곳에 무작위로 자연재해가 생겨납니다.]

[서울 - 토네이도]

[토네이도의 크기와 위력이 점차 커집니다.]

메시지를 받자마자 나는 황급히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행히 우리 쉘터는 아니었다. 그러나 서울 어딘가에 토네이도가 생성됐고, 점차 커져서 우리 쉘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겠지.

막아야 한다.

‘토네이도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한 만큼, 평범한 토네이도가 아닐 거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때, 기계 정령 에코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 형님, 일단 방공호로 피신하라는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잘했다.”

지난 2주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위험’들에 대비해왔다.

가장 큰 위험이라 생각한 변이체에 대비해 바리케이드를 강화하고, 더 높게 세웠고. 강태윤이 말한 인공 바이러스에 대비해, 쉘터 전체를 정화할 수 있는 멸균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혹시 날아올지도 모르는 핵미사일에 대비해 쉘터 지하에 방공호를 만들었다. 쉘터 지하 전체를 아예 5급 안전 가옥으로 개조해버린 것이다. 이론상 핵마저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물론 지금 몰려올 건 핵이 아닌, 토네이도긴 하지만. 아무리 거대한 토네이도라 한들, 핵보다 위력은 덜할 것이다.

- 형님도 얼른 대피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형 혼자서는 언제든 발 뺄 수 있으니까, 괜찮아.”

짤막하게 말한 나는 가볍게 도약했다. 내 등에서 여섯 장의 날개가 펼쳐진다. 스킬이나 소모품으로 만든 날개가 아닌 ‘장비 아이템’이다.

<아우리엘의 날개>

종류 : 날개(Wing)

등급 : 신화(God)

옵션 : 고속 비행, 비가시(非可視) 모드, 모든 능력치 +5.0, 피해량 증가 +25%, 피해량 감소 +25%

신화 등급 날개.

기본으로 비행 능력이 달려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량 증가와 피해량 감소도 각각 25%에, 모든 능력치는 무려 5나 올려준다. 말이 5지 총 능력치만 놓고 보면 30이나 올려주는 셈.

‘행운마저도 말이지.’

이런 대단한 성능을 가진 만큼, 아우리엘의 날개는 비쌌다. 350만 기프트. 10% 할인을 받아 315만 기프트에 구매했지만, 신화 등급 무기, 대멸겁의 지팡이의 무려 일곱 배에 달하는 양.

‘아무리 액세서리가 더 비싸다곤 하지만···’

지나치게 비싼 감이 없잖아 있긴 하다. 그러나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날개의 성능은 몹시 만족스러웠으니까. 역시 제일 만족스러운 건 비행 능력.

무려 최신형 디아블로보다 빠른 속력으로 하늘에서 이동할 수 있다.

- 형님, 토네이도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강서구입니다.

“오케이.”

강태윤의 보고를 들은 나는 서쪽을 향해, 비행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구름을 뚫을 정도로 거대한 회오리가 닥치는 대로 시내를 휩쓸고 있다.

우체통, 도로, 빌딩··· 가릴 것 없이 박살 나면서, 그 잔해들은 회오리에 휩쓸려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 만약 저 회오리가 우리 쉘터에까지 도착한다면.

사람들은 무사할지 몰라도, 건축물은 모두 다 날아가겠지. 복구하는 데만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 틀림없었다. 나로서는 원하지 않는 일.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서 막는다.

어떻게?

나는 토네이도를 향해,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날렸다. 거대한 운석. 그러나 운석마저도 토네이도에 닿는 순간 산산조각 나서 그대로 휩쓸리고 말았다. 오히려 토네이도만 커지고 말았다.

은은한 초록색 빛까지 띠는 걸 보면, 속성마저도 흡수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토네이도가 마력을 흡수하는 마력 흡수의 성질을 지니게 됩니다.]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난사하면 되지 않을까, 내심 생각하고 있었는데 관둬야겠다. 생각한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가진 최강의 스킬을 사용한다.

[영령 빙의(L)를 사용합니다.]

벨루가, 카론, 옐레나···

이미 계약을 맺은 영령은 이렇게 셋이지만, 그들과 빙의하는 것은 별로 현명한 생각처럼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무능력하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지금 이 상황에는 말이다.

그렇다면, 떠돌이 영령을 불러낸다. 아우리엘의 날개를 착용한 데다, 풀 버프 상태에, 음식 버프까지 받은 지금의 내 마력 능력치는 118. 평범한 떠돌이 영령이 아닌.

옐레나처럼 상급의 영령을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축적된 행운이 다시 없을 기적을 불러옵니다.]

거기에 행운까지 발동했다.

[상급의 영령 ‘검성, 아자르’를 불러옵니다.]

대검을 등에 메고 있는, 회색빛의 기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옐레나를 처음 봤을 때처럼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그는 말없이 나와, 토네이도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미네르바인가···

‘미네르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는 곧 내 몸속으로 사라졌다.

[검성, 아자르가 몸에 빙의됩니다.]

[마력에 따라 동화율이 설정됩니다.]

[마력 118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동화율 46%] [지속 시간 : 50분] [재사용 대기시간 : 36시간]

‘118인데 고작 동화율이 46%···’

[영령의 능력치와 스킬의 일부를 불러옵니다.]

[일시적으로 근력이 3.5, 마력이 1.5 상승합니다.]

[폭풍식(U)을 일시적으로 습득했습니다.]

[극한의 발도술(L)을 일시적으로 습득했습니다.]

<폭풍식>

종류 : 패시브(Passive)

등급 : 유일(Unique)

설명 : 검성, 아자르가 종말의 마왕이 소환한 ‘폭주한 바람의 정령왕, 미네르바’를 베기 위해 사용한 검술. 그 대상이 바람이라면 모든 공격력이 최대 150%만큼 상승한다.

<극한의 발도술>

종류 : 액티브(Active), 패시브(Passive)

등급 : 전설(Legendary)

설명 : 체력과 마력의 90%를 소모해 다음 발도 공격을 강화한다. 체력과 마력이 1% 이하로 남았을 경우 극한 상태에 돌입, 3초 동안 무적이 되고 30분 동안 체력, 마력 회복 속도가 500% 빨라진다.(재사용 대기시간 : 240분)

‘발도술이라기보단 검술 강화에 가까운 스킬인가.’

스킬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무적이라는 효과도 마음에 든다. 나는 만다라바의 옷장을 통해 검을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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