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교회 앞엔 이미 김선우 목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와 짤막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일백 명도 넘는 신도들이었다.
잠시 침묵이 감돈다. 이내, 교회 내부에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몇몇 보였다. 무슨, 북한도 아니고···
마치 수령님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멀뚱멀뚱 서 있는데, 김선우 목사가 자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가볍게 손이라도 들어주십시오.”
“그냥 들기만 하면 되나요?”
“예, 신도들이 좋아할 겁니다.”
손을 드는 것 정도야 뭐··· 어렵지 않다. 이 정도도 못 할 거라면 애초에 교회를 방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들었고, 그들의 환호성이 더욱더 커졌다.
뒤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치기도 했다.
“노아의 환생, 주 예수 그리스도의 환생!!”
“그분이 우리를 잊지 않으셨어!”
그 사이, 김선우 목사와 함께 단상 위로 올라갔다. 박수갈채 소리는 멎고, 그들은 잔뜩 기대감 어린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선우 목사가 입을 열었다.
“노아의 환생이자, 살아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 이진서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답하듯, 예배당을 방문하셨습니다. 기도하라, 그분이 오시리라. 하늘에 계신···”
신도들이 손을 모아 나를 향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도 아니고, 일백 명이 일제히.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아멘.”
이후로도, 나는 몇 시간에 걸쳐서 특별 예배를 김선우 목사와 함께 진행했다.
낯 부끄럽게도 내 일생을 요약한 프레젠테이션 영상을 보거나, 내 이름이 담긴 찬송가를 부르는 등의 내용이었다. 물론 어색한 것도 잠시일 뿐, 나중 가니 점점 익숙해졌다.
오히려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는 미리 생각했던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내가 여러분께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단 두 개뿐입니다. 바르게 사십시오. 스스로를 위해, 우리 그룹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저는··· 끝까지 여러분들의 옆에 있을 겁니다.”
다음 순간, 해일과 같은 내 마력이 순식간에 교회 전체를 장악했다. 신도들은 열망 어린, 혹은 두려움에 어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메시지가 떠오른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신흥 종교, ‘바른 빛 선교회’를 창시했습니다.]
<바른 빛 선교회>
규모 : 소(小)
창시자 : 이진서
건축물 : 예배당(모든 능력치 +0.5)
스킬 : 없음
‘이건···’
나는 볼 수 있었다. 무지갯빛의 광채가 순간적으로 교회에 스며드는 것을. 나만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본 것은 신도들 역시 마찬가지인지 감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건···”
김선우 목사의 물음에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라고 해서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교회에 이런 기능이 있다는 것을 나도 오늘 처음 알았으니까. 다음 순간, 김선우 목사는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며 광기 어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신의 기적이다!!”
순간적으로 연기가 아닌, 진심이라고 생각될 만큼 리얼한 반응이었다. 하기야, 이 정도니까 정민혁이 그에게 목사 일을 맡겼겠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적을 부리셨어!”
“노아께서···!”
문득 나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인천광역시에서 서문주의 그룹과 대립각을 세우던 범죄 조직이자, 플레이어 그룹이었던 독사파의 리더. 온몸에 못 보던 상처 자국이 난 그는 나를 향해 열렬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옆, 혹은 뒤에 있는 이들 역시 독사파 멤버들이었다. 분위기가 바뀌어서 단숨에 못 알아본 것이었다. 나는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해, 그들의 속마음을 엿봤다.
문득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완벽하게 갱생됐을 것인가.
- 아아, 주 예수 그리스도, 나는 그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 그것이 설령, 교리에 어긋나는 살인일지라도.
- 이진서님의 무한한 영광을 위해! 바른 빛 선교회의 무한한 영광을 위해!
‘······’
데려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완벽하게 ‘세뇌된’ 모습이다. 그런데 이걸 갱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했던 갱생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모습이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지.’
적어도 다짜고짜 총을 쏘고, 다른 이들의 기프트를 갈취하려던 옛날보다야 훨씬 나은 모습이다. 잠시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김선우 목사의 인사를 끝으로, 바깥으로 나왔다.
‘다음 스케줄은 병원인가···’
서문주가 개원한 병원도 한번 들를 생각이었다.
***
서문주는 병원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병원을 찾는 이들을 진찰, 진료하고, 남는 시간엔 질병을 연구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치 전차를 개조하듯 기프트로 질병을, 즉 바이러스 역시 개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바이러스를 개조할 수 있다니. 신의 힘이 아닌가.’
그는 기프트의 힘에 탄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현대 의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21세기도, 인간은 바이러스를 정복하지 못했다.
만약 기프트로 개조한, 강력한 바이러스가 지구에 퍼지기라도 한다면. 매개체 또한 충분했다. 변이체들에게 위생의 개념이 존재하거나,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물론 이 사실을 아는 건, 나와 같은 의사나 과학자들뿐이겠지만.’
세상천지에 미친 과학자나 의사가 없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는 이진서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이진서가 병원을 찾았다. 옆에는 진혜연과 함께였다.
“혜연이, 안녕.”
“안녕하세요. 문주 아저씨. 지나가다 오빠랑 마주쳐서 함께 올라왔어요.”
“그래?”
서문주의 눈치를 살피던 진혜연이 입을 열었다.
“방해되면 잠깐 나가 있을까요?”
“방해되는 건 아니지만, 잠깐만 나가 있을래? 긴밀하게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예.”
진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방안에는 이진서와 그, 둘밖에 남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건 이진서였다.
“이야, 보기 좋네요.”
그의 말이 병원을 향한 것임을 그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서문주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덕분입니다.”
만약 이진서가 그를 구원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도 독사파와 투닥투닥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아니, 이제는 중급 변이체들로 인해 전멸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이진서를 향해 항상 감사한 마음을 품어왔었다.
“에이, 아닙니다. 제가 뭐, 하는 일이 있나요?”
그는 겸손한 이진서의 태도에 진심으로 탄복했다.
“그나저나 긴히 드릴 말씀이라는 게···”
“기프트로 기존의 질병을 개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생소한 말에 이진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질병이요? 혹시 감기나 독감 같은?”
“예, 그렇습니다.”
“음, 그러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게··· 우리가 질병을 개조해 퍼트려, 변이체들을 처치하자, 그런 말씀입니까?”
서문주는 고개를 흔들고는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네요.”
“만약 그런 식으로 변이체들을 처치할 수만 있다면 좋기야 하겠지만···”
“저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변이체들을 매개체로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를 퍼트릴까 봐, 그 점이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그럴 이들이 누가 있을까요?”
“세상에 미친 사람들은 많으니까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으리란 법은 또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기야···
생각하던 이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지금까지 마주했던 악인들- 당장 구원교 교주였던 권두기만 하더라도 질병을 개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틀림없이 이용했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었으니까.
전 세계로 나가면, 각성한 플레이어들 중에 그런 악인이 없으리란 보장은, 서문주가 말한 방법을 사용해 같은 플레이어를 해치는 이가 없으리란 보장은 없는 것이었다.
“그건 그렇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상황을 대비해, 저희가 먼저 질병을 개발하고, 미리 그에 따른 백신을 만들어둬야 합니다.”
“쉘터 내에서 질병을 개발한다라···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는 이진서가 우려하는 것에 공감했다.
“꼭 이곳에서 개발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 혼자, 제가 있던 인천도 좋고, 다른 지역에서 연구를 진행해도 됩니다.”
“민혁이나 다른 간부들과 함께 상의를 해보는 것으로 결정하죠. 저 혼자 결정을 내리기엔 큰 사안이기도 하고···”
“예.”
서문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단하십니다.”
“뭐가 말입니까?”
“그런 힘을 가지고,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신다는 게 말입니다.”
의사 일을 해오면서, 그는 재벌들도, 정치인들도 많이 봐왔다. 피라미드의 정상에 선 이들은 하나같이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깔아뭉개고, 독단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는 서민처럼 친근하다고 떠들어대던 정치인들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진서는 그들과 다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이들의 말에 경청한다.
아니, 단순히 경청하는 것뿐만 아니다. 직접 발로 뛰고, 그렇게 모은 기프트를 다른 이들에게 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나눠준다. 당장 병원 설립에 든 기프트가 누구의 지갑에서 나왔는가.
‘호구?’
이 사람은 오히려 나보다 더 심하구나, 하는 발칙한 생각까지 일순간 들었을 정도로.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이진서는 쓰게 웃었다.
“코인으로 돈 다 날려먹고, 회사 일과 배달부 일을 병행하면서 제가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 서문주는 굳이 대꾸하지 않고, 이진서의 말을 계속 들었다.
“경청? 이 쉘터에서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죠. 어설픈 신념과 어설픈 지식을 가져서 제가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해봐야, 실패나 악수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가 다른 그룹원들과 다른 점은 그저 하나뿐이었다. 기프트가 많고, 채굴량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것. 그 점을 제외한다면, 그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서문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이상적인 리더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완벽한 구심점은 아니다. 그가 없다 하더라도, 쉘터는 자력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는 그저 ‘돌멩이’처럼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매력에 이끌려,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진심으로 충성을 바치고, 그룹을 위해,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앞으로 증명되겠지.’
“흐, 선생님께 그런 칭찬을 들었더니 낯간지럽네요. 민혁이가 지금은 바쁠 거고, 이따 저녁에 이야기 다시 나누는 걸로 하시죠.”
“···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일어나는 그를 향해, 서문주는 진심으로 허리 숙여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