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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48화 (48/236)

48화

미 항공모함, ‘제너럴 부시호’는 일정 항속을 유지한 채, 바다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갑판의 승무원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돌아온 전투기들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 최심부인 함장실, 강릉시에서 구출된 제이드는 함장과 면담하고 있었다.

“반갑네, 제이드 중사. 난 제너럴 부시호의 함장인 소프 대령일세.”

그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소프 대령님.”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 표정이군.”

“예, 그렇습니다.”

제이드는 순순히 긍정했다.

그의 아버지를 철석같이 믿은 그였지만, 그를 구하러 올 수단에 대해선 의구심을 품었던 그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과 한국 사이에는 수천 킬로미터의 물리적 거리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설마 그 수단이라는 것이, ‘항공모함’일 거라고는 그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첫째로 이런 세상 속에서 항공모함을 운용한다는 것에서 놀랐고, 둘째로 이런 항공모함이 고작 그 하나를 구하기 위해 동원됐다는 것에 놀랐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생각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아버지. 즉, 그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그의 아버지가 무언가 손을 쓴 것이다. 하지만 항공모함이라니, 이건 그의 예상을 뛰어넘어도 한참 뛰어넘은 일이었다.

제이드가 생각에 잠긴 사이, 소프 대령이 나긋하게 입을 열었다.

“세상이 빌어먹을 코인 채굴기로 변해버렸고, 우리 미합중국의 인구의 99% 이상이 변이체로 변해버렸네.”

그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전부 다, 한국에서 직접 겪었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혼란에 빠졌지만, 혜성처럼 나타나 혼란을 수습한 인물이 있었지.”

“그 인물이 설마···”

“대리어스, 바로 자네 아버지일세. 만장일치로 그는 임시 리더의 자리에 앉았고 그에게 힘입어, 우리 미합중국은 전력의 일부를 되찾는 데 성공했네. 이 제너럴 부시호는 그 일환일세.”

자신의 아버지가 아무리 임시라지만 미합중국의 리더를 맡고 있다니··· 이 또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연이은, 그의 상식을 초월하는 이야기에 제이드는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이해하네, 나도 한 달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놈이 있었다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그놈의 뺨이라도 후려쳤을 테니 말이야. 하지만 이건 전부 진실일세.”

“예···”

“그나저나 자네, 일행이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자네 아버지에게 분명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말이야.”

“예, 뭐···”

잠시 동료들을 떠올린 제이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직전, 그들은 배달부의 그룹을 따라 그를 떠나간 것이다. 운명의 장난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이들이 조금만 더 일찍 왔다면.

아니, 배달부의 그룹이 조금만 더 늦게 왔다면 지금 이 자리에, 그들과 함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는 이내 그들을 마음속에서 털어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이미 끝난 일이다.

소프 대령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무슨 일인지는 대충 알겠군.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쉬게.”

“감사합니다, 대령님.”

경례를 한 제이드는 자리를 떠난다. 그가 나간 함장실, 침묵한 채 소프 대령의 옆에 서 있던 부관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대령님,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전투기 내부의 카메라를 통해 촬영된 영상입니다.”

소프 대령은 틀어보라는 의미의 손짓을 했다. 이내 부관이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이동하던 전투기는 지상을 향해 미사일을 날렸다. 발사된 미사일은 시내를 헤집어놨다.

빠른 속도로 비행하던 전투기는 이내 강릉시의 외곽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목격하게 됐다. 빠른 속도로 강릉시를 벗어나고 있는 수백 명의 플레이어 그룹을.

- Holy···

조종사의 놀란 듯한 음성이 들려온 건 덤이었다.

“한국군?”

여러 대의 군용 전차 역시 그들의 행렬에 포함돼 있기에 던진 질문이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만, 복장을 보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한국 내의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이 결집한 모양입니다.”

소프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살아남은 이들이 있다 하더라도 이상할 건 없겠지. 한국에도 플레이어로 각성한 사람이 적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야.”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꽤 많이 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한국전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온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접촉해볼까요?”

잠시 생각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던 소프 대령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호의적이리라는 보장도 없고, 무엇보다도··· 지체할 시간이 없네. 그저 한국에도 살아남은 플레이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에 만족하도록 하지.”

항공모함을 운용하기 위해선 적잖은 양의 기프트가 필요하다. 변이체 사냥을 통해 어느 정도 메운다 하더라도 조종사들의 채굴량이 높은 것이 아니기에 효율은 극히 낮은 편이었다.

한마디로 시간이 지체되면 지체될수록, 손해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혹시 모르니까, 정찰용 드론 몇 기만 보내는 걸로 끝내도록 하지.”

그가 보내자고 말한 것은 평범한 정찰용 드론이 아니었다. 기프트를 통해 강화된 정찰용 드론. 기존의 드론의 한계를 극복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운용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알겠습니다.”

부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그렇게 한반도 전역으로 보내진 총 열다섯 기의 정찰용 드론. 물론 그중 다섯 기는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파괴되고 말았다.

하지만 파괴된 드론들은 파괴되기 전까지는 충실히 제 역할을 해냈다.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 부관에게 보고받아, 촬영된 영상을 보게 된 소프 대령은 그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이건···”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십 개의 운석들은 그가 경악하기에 충분했으니까.

“아마 변이체의 소행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변이체가···?”

진실은 달랐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정찰용 드론의 카메라는 운석을 날린 ‘주체’를 담아내지는 못했으니 말이다. 영상을 다시 돌려본 소프 대령은 한숨을 쉬었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생각해보게. 만약 강릉시에 저런 녀석이 있었다면 우리는 ‘소중한’ 조종사들을 잃어버렸을 것 아닌가. 아니, 저런 녀석이 쫓아온다고 생각해보게.”

“설마 비행 능력이 있겠습니까?”

운석을 떨어트리는 변이체가 비행 능력까지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엄청난 재앙이었다.

“그건 모르지만··· 없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한국의 플레이어들은 저런 녀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한국의 플레이어들이 우려되긴 하지만··· 만약 저런 괴물과 마주치게 된다면, 그것도 그들의 운명이겠지.”

“확실히, 그들이 가진 전력으로 저런 괴물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경고 정도는 해주는 게 어떨까요?”

“그건 자네가 맡아서 하게.”

“예.”

곧, 부관은 함장실 바깥으로 나갔다. 한국의 플레이어들에게 운석을 날리는 변이체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남은 정찰용 드론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

한 기도 아니고 수 여 기의 드론들이 이쪽을 향해 접근하다 파괴됐다. 만약 진리의 눈, 게비샤를 계속 사용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만큼 작은 헤프닝이었다.

‘드론이라···’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드론. 솔직히 누가 날렸는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항공모함에 탑승해 있던 미군들이 날린 것이 틀림없었다. 이외에는 딱히 생각나는 존재는 없었으니까.

‘아마 내가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사용하는 모습을 봤을 거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 없었다. 드론을 보낸 걸 보면, 또다시 나타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고··· 그들과 협력한다면 좋겠지만, 적대적이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기프트를 탐내, 다른 플레이어를 습격하는 이들을 봐왔으니 말이다. 같은 한국 사람도 그런데- 물론 일반인이 아닌, 사이비들이긴 하지만- 만약 다른 나라 사람이라면?

그들에게 도덕성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또, 그런 세상이기도 했고.

‘일단은 그냥 넘어가야겠지.’

어차피 이쪽이 예상한들,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막말로 따라가서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강태윤이 그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했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이제 다 했으면 가지···”

찡얼거리는 노인- 장영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갈 생각이었습니다.”

곧 나는 그와 함께, 다시 1층으로 이동했다. 도시 전체는 마치 거인의 주먹에라도 맞은 양 여기저기 크레이터가 패어 있었다. 전부 내가 저지른 일들.

소환된 운석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다시 강원도를 돌아다니면서 변이체들을 처치하고, 플레이어들을 구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열다섯 명의 플레이어들을 추가로 구출 완료했다.

인터넷을 보면 세 명 정도가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긴 하지만, 나머지가 발견되지 않은 걸 보면 그사이 목숨을 잃은 모양이었다. 확실히 중급 변이체부터는 차원이 다르다.

아마 앞으로 가게 될 다른 지역에서도 생존한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급감하고 있을 것이다. 시간, 시간이 부족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서두르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서두르는 것뿐. 나는 플레이어들과 함께 쉘터로 되돌아왔다. 쉘터 안에 있던 기존의 플레이어들은 구출된 플레이어들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나는 어디서 묵게 되는 건가? 역시 감옥 안에 갇히게 되겠지? 그래도 그런 감옥이라면 나쁘지만은 않은데···”

행복회로를 굴리는 장영하에게 말했다.

“영감님은··· 또 저랑 가셔야 합니다.”

“어디, 어디로?”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수년은 더 늙은 것만큼 수척해 보였다. 변이체라는 걸 알면서도, 일순간 동정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편히 쉬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마력을 많이 소모하긴 했지만, 이미 이곳으로 돌아오면서 모조리 차올랐다. 누군가에게는 ‘지옥’일지도 모르는데 시간을 헛되이 쓰기는 싫었다. 바로 충청도 쪽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배려 좀 해주게. 내 나이가 몇인지는 아는가?”

나는 조금 냉정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돌도 안 지났습니다.”

“??”

“영감님이 변이체가 되신지 말입니다. 빨리 가시죠.”

돌은커녕, 이제 갓 한 달 조금 넘었을 뿐이다.

그는 동태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의 변이체를 불러 모으는 능력은, 그를 빼놓고 가기에는 너무나 효율이 좋은 능력이었으니까.

“이번 일만 끝나면, 쉬게 해드리겠습니다.”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던 그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어온다.

“설마 그 쉬게 해준다는 게 평생 쉬게 해준다는 건 아니지?”

“설마요.”

나도 거기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뭐 그것도 나쁘지는···

“열심히 하겠네.”

무언의 살기를 느낀 건지 장영하의 태도가 빠릿해졌다. 그렇게 나는 그와 함께, 즉시 충청도로 이동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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