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하급 변이체가 중급 변이체로 변하기까지, D-1. 토벌 준비가 완료됐다. 지상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그룹원들을 내려다보며, 나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가 내뱉었다.
떨어지는 눈 사이로 흩어져 사라지는 연기. 아직 불씨가 남은 담배를 지상을 향해 던진다. 빌딩 벽에 부딪혀 빠르게 떨어지는 담배를 보며 나도 망설임 없이 지상을 향해 몸을 던졌다.
떨어지기 직전, 경량화의 날개를 사용해 바닥에 착지한 나를 본 그룹원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는 것으로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정민혁을 찾았다.
“형님, 오셨습니까.”
“그래, 준비는?”
“모두 완료됐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형님.”
정민혁과 서문주를 비롯해, 몇몇 간부들은 쉘터에 남기로 했다.
700명(마지막에 추가되어 총 756명)이 강원도 토벌을 위해 떠나지만 나머지 1400명은 이곳에 남아있다. 정민혁과 간부들이 쉘터에 남는 건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들이 남는다면 특수 변이체라 하더라도 쉽게 넘보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최후 대비책으로 3급 안전 가옥까지 놔뒀으니 안에 들어간다면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너도 건투를 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예, 형님.”
나는 이내, 전차로 시선을 돌렸다. 도로를 주행 중인 세련된 전차들. 구원교에서 봤던 그것과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몇 배 이상은 우월한, 김민수의 공방에서 탄생한 걸작‘들’이었다.
그 위에서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는 진혜연. 나는 손을 흔들어주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빠, 자리 남겨놨어요.”
그녀가 눈을 치운 듯, 전차 한쪽에 눈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난 오토바이 타고 갈 건데?”
이번 토벌에서 내 역할은 변이체들의 숫자를 미리 파악하고 보고하는 ‘정찰조’였다. 정찰조는 오토바이에 탑승하기로 했다. 정찰 활동에 있어서 기민함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저도 탈래요.”
그녀는 볼멘 얼굴을 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거절했다.
“안 돼, 자리 없어.”
디아블로는 1인용이지, 2인용은 아니다. 물론 워낙 좌석이 넓어서 낑겨 타면 못 탈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 너무 많아진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정찰조 할걸.”
“버프조나 잘해, 버프조가 제일 중요하니까.”
그녀는 투덜거렸지만 더 떼를 쓰거나 하진 않았다. 눈이 잔뜩 묻은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나는 디아블로에 탑승했다. 나와 같은 정찰조들이 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익숙한 얼굴들. 내가 직접 구출한 플레이어들이니, 알아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가시죠.”
“예.”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헬멧을 쓴다.
곧, 나를 위시한 선두의 오토바이들이 빠르게 출발했다. 달달달. 그 뒤를 따르는 전차들, 각자 무기를 착용한 채 걸어오는 그룹원들. 본격적인 강원도 변이체 토벌, 그 시작이었다.
***
눈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빙판길. 일반 도로보다 훨씬 더 미끄러울 그곳을, 이진서가 탑승한 오토바이는 아무렇지 않게 질주한다. 뒤따르던 정찰조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나도 배달 경력 좀 있었는데. 따라 할 엄두도 안 난다.”
“따라 했다가 저승으로 직행하려고?”
“오토바이 운전 내공이 얼마나 되면 저게 가능한 거야?”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며 서행(徐行)하던 그들은 이내 오토바이를 멈춰 세웠다. 이진서가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앞에는 자욱한 눈안개가 펼쳐져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옵니다.”
그들은 황급히 스마트 워치를 통해 변이체의 위치를 확인했다. 수백 개의 붉은 점들. 눈안개가 자욱해서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 분명했다.
“변이체 수백 마리가 옵니다.”
“대부분 하급 변이체로 추정 중이지만, 중급 변이체도 몇 섞여 있는 것 같다.”
본대와 무전을 마친 정찰조는 긴장한 얼굴로 오토바이를 돌렸다. 이곳에 있다가 저 많은 숫자의 변이체에 휩쓸리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진서는 오히려 액셀을 당겼다.
눈안개를 뚫고 그의 오토바이가 빠르게 이동한다. 도로를 빼곡하게 채운 변이체들이 득달같이 그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러나 기계 정령, 에코의 방벽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잠시 정신없이 질주하던 그는 S31을 열었다. 푸른색 점이 깜빡인다. 분명 플레이어라는 것. 그러나 몇 번 깜빡이던 푸른색 점은 또다시 모습을 감췄다.
그조차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소한 일.
‘뭐지?’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도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그의 무전기가 울렸다.
- 리더, 어디십니까?
강순철의 물음에, 이진서는 재빠르게 대답한다.
“아, 뭣 좀 알아볼 게 있어서, 죄송합니다. 전투는 시작했습니까?”
- 예, 소탕을 완료했습니다.
“벌써요? 한 5분 걸렸나요?”
- 3분 27초입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네요?”
- 변이체들이 너무 약했습니다.
이진서는 엷게 웃으며 말했다.
“변이체들이 약했다기보다는, 우리가··· 강해진 겁니다.”
- ···그런가요?
쉘터 안에 있을 때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강한지. 그러나 오늘 일로 그의 그룹원들은 확실히 깨닫게 됐다. 그들은 강하다는 걸. 하급, 중급 변이체 따위 얼마가 몰려오던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다는 걸.
괜스레 뿌듯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이진서는 S31을 들었다. 푸른색 점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적일까, 아군이었을까. 생각에 잠기던 그는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확실하게 플레이어라는 것이 증명된 것도 아닌데, 본대를 벗어날 이유는 없다. 만약 방금 봤던 푸른색 점이 특수 변이체나 최상급 변이체가 사용하는 위장술이었다면···
따라간다면 ‘녀석’의 계략에 넘어가는 셈이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말자.’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해 눈안개 너머를 ‘꿰뚫어 보던’ 이진서는 이내 순순히 오토바이를 돌렸다.
***
이용년은 세상이 코인 채굴기로 변하자마자, 가택 옆에 있던 버려진 지하 벙커로 피신했다. 다행히 그가 있던 마을의 변이체들은 많지 않았고 그마저도 전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핵전쟁을 대비해 미리 준비해뒀던 비상식량과 식수를 통해 그는 근근이 버텨나갔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애초에 버려진 지하 벙커. 시설이 안락할 리 없었다.
히터와 방열재를 가져와서 보일러 역할을 대신했지만, 전기가 끊긴 이후에는 그마저도 요원했다. 거기다가 식량이 모두 다 증발해버렸고, 이제는 눈까지 내리는 상황이었다.
운 좋게 덫에 걸린 변이체를 사냥해 얻은 기프트로 구매한 식량을 쪼개 먹으며, 식수는 눈을 녹여 먹으며 해결했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점을 맞이했다.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하던 그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침대는 진즉, 차가운 돌처럼 변해버렸다. 꼬르륵. 배고픈 위장은 먹을 것을 요구했지만 더는 먹을 것도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난로가 작동되기 시작한 것은. 그는 눈을 의심했다. 순간적으로 그가 하도 배고파서 헛것을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말로 난로는 작동되고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혹시···’
그는 배터리가 죽은 스마트폰을 들어 허겁지겁 벙커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의 가택으로 돌아온 그는 스마트폰을 충전했다. 순간적으로 찌릿거리긴 했지만, 분명 충전이 되고 있었다.
물론 충전이 된다고 해도, 켜지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영하의 기온. 스마트폰이 고장 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제발 켜져라, 켜져라.’
그의 염원이 빛을 발했는지, 스마트폰이 켜졌다. 스마트폰을 켠 그는 제일 먼저 인터넷을 접속했다. 놀랍게도 인터넷 접속이 됐다. 곧, 그는 떠오르는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강원도에 계신 플레이어 여러분을 곧 구출할 예정이오니, 안전하게 자택에 숨어계시고, 인터넷에 위치를 찍어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구출?’
어디에서 구출한다는 것일까. 대한민국 정부? 아니면 플레이어 그룹?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생각은 길지 않았다. 그가 할 일은 명확했다. 살아남는다. 어떻게 해서든.
한편 강원도에서 살아남은 플레이어들도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었다. 제이드의 그룹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눈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강릉의 호텔을 거점으로 묵고 있었다.
“누가 구출한다는 걸까?”
“글쎄.”
“어떻게 하지?”
그의 그룹원들은 갈등 어린 얼굴이었다.
그들은 1층에서 변이체들을 처치하고 있는 제이드를 바라봤다. 그들 중 제이드에게 목숨을 구원받지 않은 이는 없었고, 그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야기가 달랐다.
얼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국에 있다는 제이드의 아버지의 도움보다는 지금 전기를 연결하고, 인터넷을 연결한 세력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이 더 현실적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제이드를 배신할 수 없어.”
“미안하지만 이건 현실적인 문제라고···”
그들의 고뇌가 더욱더 깊어졌다.
***
원주시.
인구 수 100만 이상의, 결코 작지 않은 도시. 그런 만큼, 우리가 시내로 들어가자마자 수많은 변이체들이 반겼다. 전차가 불을 뿜는 걸 시작으로, 그룹원들이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나도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내 역할은 전투조가 아닌 정찰조. 끼어들더라도 오늘 하루만큼은 끼어들지 말자, 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신 전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세에 빠지거나, 위기에 빠진 플레이어들을 도왔다. 그조차 몇 명 되지 않았지만. 정확히 한 시간. 몰려든 변이체가 싸그리 전멸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지성이 있는 개체 몇몇이 도망치긴 했지만. 위협이 될만한 개체는 없었다.
“다들 괜찮습니까?”
“···예.”
확실히 전투로 인해, 플레이어들은 지친 기색이었다.
“일단 여기서 휴식을 취하죠.”
바리케이드 소환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우리가 있는 주변을 바리케이드로 둘러쌌다. 여기서 휴식을 취하며 식사를 할 예정인데, 변이체에게 식사를 방해받고 싶지는 않았다.
바리케이드 설치 작업을 마치고, 나는 아공간 창고에서 음식들을 꺼냈다. 요리조가 만든 음식들. 미사일과 함께 보관돼있던 것이라는 게 조금 찝찝하긴 해도···
그 맛 하나만큼은 기가 막힌 것들이다. 나는 포장된 체리 파이 하나를 손에 든 채, 진혜연을 찾아갔다. 그녀는 이번 전투에 합류한 동작고의 학생들과 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학생들이 황급히 일어섰다. 나는 쓰게 웃으며 그들을 만류했다.
“다들 앉아. 같이 밥이나 먹을까 해서 온 거니까.”
“응응, 빨리 앉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