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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42화 (42/236)

42화

말 그대로 인천 시내를 초토화시킨 나는 S31을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도시 전체에 구름처럼 깔려있던 붉은색 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다 소탕한 모양이었다.

잠시 지도를 훑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까까지 보지 못했던 푸른색 점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수십 단위의 결코 적지 않은 숫자가.

나는 망설임 없이 호텔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곧 등에서 날개가 펼쳐지며 속도가 줄어들었다. 바닥에 착지한 나는 호텔 옆에 주차해놨던 디아블로에 탑승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오성 병원까지 오게 된 이유였다. 나는 차를 들이켜며, 눈앞의 사내를 바라본다. 서문주. 멸망 전, 이 오성 병원의 전문의였던 그는, 그룹의 리더를 맡고 있다고 했다.

직접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가 이 그룹에서 가장 강하다는 걸 마력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마력으로 따지면, 그의 마력 양은 정민혁을 웃도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째서 저런 건달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있었을까.’

물론 건달들도 강하긴 했다. 제법 많은 기프트를 투자했는지 강인한 신체와, 총기류로 무장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그룹의 플레이어들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서문주는, 어지간한 플레이어의 범주를 넘어섰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건달을 처치하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닐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 내가 묻자, 그는 멋쩍게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기프트까지 바쳐가면서 말입니까?”

진리의 눈, 게비샤를 통해 건달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나는 서문주가 기프트로 평화를 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그가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터.

“돈으로 산 평화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적은 변이체고, 저들은 사람 아닙니까.”

“어디 가서 호구란 소리 안 들으십니까?”

서문주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

“···그나저나, 진서 씨 그룹은 어떻습니까? 저희 그룹보다야 훨씬 낫겠지요?”

모종의 기대감이 어린 물음에 나는 엷게 웃으며 말했다.

“이천 명가량의 플레이어들이 있고, 플레이어들을 계속 구출하고 있는 중입니다.”

“역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저희 그룹도 합류해도 되겠습니까?”

“환영입니다.”

사실 이쪽에서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인성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문주와 악수를 나눴다. 그의 얼굴이 환해진다.

간단하게 조건에 대해 합의를 나눴다. 그는 자신을 제외한 그룹원들의 기초 생활을 보장해주기를 원했고, 나는 흔쾌히 그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마지막 남은 차를 한 모금 들이켠다.

서문주가 내게 물어왔다.

“독사파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냥 놔두고 가도 되겠지만··· 데려갈 겁니다.”

“아, 워낙 독한 놈들이라서 또 문제를 일으킬 수가 있어서···”

“아, 그런 사람들만 따로 ‘교화’하는 곳이 있어서 말입니다. 뭐, 저는 그 과정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사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묵인하고 있었다. 정민혁이 하는 일에는 굳이 관여할 생각이 없었고, 사람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었으니까.

***

저택 안에만 갇혀있던 시흥시의 사람들에게 이진서의 쉘터는 낙원처럼 보였다. 내부의 시설은 멸망 전의 도시와 비교하면 부족함이 있긴 해도 있을 건 다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곧 깨달았다. 이곳에서, 그들의 처지는 그리 좋지 못한 편이라는 걸.

시작은 박승기의 경고였다.

“시흥시에서 있었던 일을 발설한다면, 나나 자네들이나 그렇게 좋지 못한 일을 겪게 될 거야.”

“어떤 일을 말하시는 겁니까?”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묻는 연병후의 물음에 박승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네 아들 살린 일을 말하는 거야. 우리 리더가 자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지불한 대가가 적지 않거든.”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었습니다.”

연병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불만 어린 얼굴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박승기의 사촌 동생이자, 시흥시에서 이진서에게 자신의 아들을 살려달라고 사정했었던 박영자였다.

“그래서 내 아들은 안 살려주겠다고? 쟤 아들만 살려주고, 내 아들은 안 살려주겠다니 그게 무슨 개 같은···”

“그래, 영자야, 그 나이 먹었으면, 정신 차려라.”

“오빠가 힘 좀 써봐. 내 아들, 살려야 한다고.”

박승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박영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냅다 손바닥으로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사촌 오빠가 하는 훈계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지나칠 정도의 폭력.

그녀의 입술이 터져나가고, 이빨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녀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박승기를 쳐다봤다. 박승기는 냉소를 흘리고 있었다.

“아무리 철이 없어도, 정신을 못 차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박승기는 손바닥으로, 이미 새파랗게 변한 박영자의 뺨을 한 번 더 후려쳤다. 핏물이 떨어진다.

“······”

“다른 이들에게 입이라도 뻥긋하는 순간, 네 아들 따라가게 해줄 테니 제발 좀 닥치고 있어라.”

박영자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질색한 얼굴로 말했다. 그때, 지켜보던 연병수가 입을 열었다.

“이, 이건 너무하잖아요.”

“너무하다? 너무하다고 생각하면, 여기서 나가면 되네.”

“······”

“자네, 군대 안 갔다 왔나? 전시에 항명은 최소 영창에, 사형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전시가···”

“다를 게 뭔가? 쯧쯧, 자네들이 ‘편하게’ 저택에 갇혀있는 동안, 이 세상은 그렇게 변해버렸네. 내 사촌 동생이라 하더라도, 나와 지인이라 하더라도 예외를 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짤막하게 경고한 박승기는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나간 이후, 한동안 사람들 사이에서는 침묵이 감돌았다.

“아무튼··· 내 말 명심하는 게 좋을 거네.”

“원래 어르신이 저런 인물은 아니셨는데···”

연병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니, 한편으로 그는 저것이 그가 알지 못했던 박승기의 진면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의 오랜 친우인 최일기가 말했다.

“어르신은 어쩌면, 이 세계에 적응한 것일지도 모르지. 우리가 개구리처럼 저택 안에 갇혀있는 동안 말이야.”

사람들은 박영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불쌍하게도 얻어터진 얼굴 그대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영혼이 나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사실 내부에서도 그녀의 평판은 좋지 못했지만, 저렇게 보니 또 동질감이 들기도 하고, 안타까워 보이기도 한다. 여자들 몇몇이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번에는 젊은 사내가 올라왔다. 그들도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이곳에 오고 나서 가장 먼저 봤던 인물이니까. 이곳의 ‘책임자’인 정민혁이었다. 앳된 얼굴의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의원님이 다짜고짜 폭력을···”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군요.”

“아니, 여기···”

말을 하던 여자도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가 대놓고 모른 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잠시 그들을 응시하던 정민혁이 재차 입을 열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하시게 될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어려운 업무는 아닙니다. 애초에 어려운 업무는 수행할 수조차 없지만.”

정민혁은 그들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플레이어와 일반인. 육체 스펙부터가 다르다. 그들에게 육체노동을 시키느니,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걸.

때문에 그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쉘터의 외곽에 ‘바른 빛 선교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의 뒤처리를 맡아주시면 됩니다.”

“교회···?”

“예.”

정민혁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쉬울지도.’

사람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교회의 일? 어려운 일을 떠올리긴 힘들었다.

휴식을 마친 그들은 곧 플레이어들을 따라 교회로 이동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교회가 평범한 교회가 아니라는 걸.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 역시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걸.

- 우리들의 위대한 메시아, 이진서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들은 사이비였다.

그것도 그룹의 리더인 이진서를 신으로 모시는. 비이성적인 장면에 그들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찡그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도들은 열성적이게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 숫자만 한둘이 아니라, 거의 일백 가까이 됐다. 바른 마음 교회의 잔존 세력과, 구원교의 잔존 세력, 그리고 합류한 소수의 플레이어들이 합쳐지며 탄생한, ‘새로운’ 종교였다.

‘사이비들···’

그야말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법한 장면. 그들은 넋을 놓은 채 바라봤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신도들은 곧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최미라도 찬송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자, 그녀는 노래를 멈추고 짤막하게 말했다.

“우리 업무가 그거잖아요.”

“···그렇지.”

곧 울며 겨자 먹기로 사람들은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하나도 아니고 무려 열 개나··· 마침내 집회가 끝나고 신도들이 빠져나간다. 김선우 목사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다들 힘들진 않으셨습니까?”

“아, 예! 괜찮았습니다!”

“뭐, 사이비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시대에 맞춰 우리 종교도 변한 것뿐입니다.”

사실 그는 바른 마음 교회도, 구원교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 일을 맡기 전엔 평범한 목사였다. 그 때문에, 정민혁은 그에게 이 광신도 세력을 맡긴 것이었고 말이다. 신도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이제 진짜 업무를 시작하죠.”

“진짜 업무요?”

“저희 바른 빛 선교회는 범죄자에게 처벌을 내리고, 교화하는 일도 맡고 있습니다. 여러분 말고, 이번에 그룹에 들어온 플레이어들 중에 전직 조폭들이 있다더군요.”

“조폭···?”

“아무리 악독한 성품을 가진 그들이라 하더라도, 결국엔 사람입니다. 교화할 수 있습니다.

김선우는 엷게 웃었다. 정정한다. 그는 평범한 목사가 아니었다. 그의 외면은 평범했을지언정, 그의 내면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교회 지하로 내려갔다.

사람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지하에는 놀랍게도 감옥이 있었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 플레이어들. 한 명도 아니고, 수십 명. 그들은 김선우를 보더니 격렬하게 몸을 떨어댔다.

독사파의 플레이어들이었다.

“다들 잘 지냈습니까?”

“······”

“잘 못 지낸 것 같으니 다행이군요. 위대한 선지자, 노아는 방주에 인간뿐만 아니라 ‘가축’들도 태웠습니다. 그것이 바로 메시아께서 당신들을 데려온 이유겠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당신들은 가축, 그 미만의 존재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들을 위해, 메시아를 위해, 당신들을 가축 이상의 존재로 끌어올려줄 생각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은 감옥 안이 아닌, 그를 따라온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마치 그들에게 말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떨었다.

곧, 김선우는 감옥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교화’를 시작했다. 압도적인 무력에 의한 폭력, 사람들의 비명.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

하급 변이체가 중급 변이체로 변하기 D-3, 쉘터 외곽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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