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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41화 (41/236)

41화

서문주는 오성 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였다. 동료 의사들 사이에서 평판도 좋고, 수술 실력 역시 그에 걸맞게 뛰어나, 환자들 사이에선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한 가지 은밀한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4년 전 코인 광풍 때 투자했다가 손실률이 -90%에 가까울 정도로 거하게 말아먹었다는 것.

하지만 그 덕에 그는 세상이 코인 채굴기로 변했을 때 플레이어로 각성할 수 있었다. 10만 기프트라는 결코 적지 않은 거금과 함께.

그는 인터넷을 통해 인천의 플레이어들을 끌어모아 그가 있던 병원을 거점으로 한 그룹을 만들었다. 인원수가 50명을 넘어서는, 이 세계에서 결코 작지 않은 그룹이었다.

지난 한 달간, 서문주의 그룹은 성공적으로 변이체를 막아냈다. 최상급 변이체가 침입해온 적도 있었지만 그의 힘으로 무사히 격퇴했다. 하지만 진짜 위협은 따로 있었다.

서문주는 눈앞의 사내들을 바라본다.

총을 든 채, 겨누고 있는 수십 명의 사내들. 하나같이 거대한 덩치를 하고, 험상궂게 생긴 이들. 흡사 조폭을 연상케 하는 생김새의 그들은 정말로 조폭이 맞았다.

‘독사파’라 불리는 인천의 범죄 조직.

무리 중 가운데 서 있는 거한, 독사파의 보스인 김형기를 주축으로 한,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조직원들. 그들은 병원의 존재를 알게 된 후로, 번번이 기프트를 요구해왔다.

서문주는 그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변이체라는 주적이 있는 마당에, 플레이어들끼리 반목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그들에게 기프트를 넘겨줬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기프트의 양이라 해봤자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물론 얼마 안 됐다는 건 과거의 일.

수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제는 그에게도 꽤나 부담이 갈 정도였다. 서문주는 깨달았다. 아무리 기프트를 그들에게 많이 건넨다 한들, 그들은 계속 요구해올 것이라는 걸.

‘저런 놈들이라는 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앞에 선 행동대장이 히죽 웃는 낯으로 말한다.

“의사 양반, 수금하러 왔어.”

“고작 이틀밖에 안 지났습니다.”

“벌써 이틀이나 지났어?”

“그러게.”

조폭들은 낄낄거리면서 김형기를 바라본다. 김형기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앞으로 나왔다.

“그래서 지금 못 주겠다는 거야?”

“······”

서문주는 눈을 감았다. 그도 성자(聖者)는 아니다. 독사파에 대한 분노. 당장이라도 전투를 벌여 그들을 내쫓고, 죽이고 싶다는 욕망. 그러나 그는··· 또다시 편리한 길을 택하고 말았다.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못 드립니다.”

“삼 일 뒤에 올게,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호구 새끼.”

“······”

‘내가 참지 않는다면, 결국 피해는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갈 거다.’

그는 또다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는, 돌아가는 독사파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저 멀리, 도심에서 거대한 초록색 운석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하나도 아니고, 수십여 개나.

쾅!

연쇄적으로 들려오는 거대한 폭발음, 그리고 이곳에서도 뻔히 보일 정도로 거칠게 타오르는 초록색 불길은 지금 그들이 눈으로 본 것이,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저게 뭐지···’

서문주조차 입을 벌리고 멍하니 바라봤다.

지금의 그에게도 몹시 비현실적인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분명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저런 운석이 우리 병원에 떨어진다면···’

죽는다. 아무리 그라 하더라도, 도저히 막아낼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

조폭들도 허겁지겁 점점 가까워지는 운석을 피해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병원 안에서 그들의 만남을 지켜보던 서문주의 그룹원들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야, 다들 눈 안 깔아?”

“안 깔면 뭐 어쩔 건데, 이 깡패 같은 새끼들아.”

당연한 말이지만, 서문주의 그룹원들은 독사파에 대한 감정이 좋으려야 좋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들의 대응은 조폭들의 심기를 ‘몹시나’ 거슬렀다. 조폭들은 흉흉한 얼굴로 물었다.

“뭐라고?”

“씨발, 저것들이 다 뒤지려고.”

총기를 그들을 향해 겨누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서문주의 그룹원들도 그들에게 총기를 겨눴지만.

“다들 그만하세요.”

당장이라도 그룹 간에 무력 충돌할 듯한 일촉즉발의 상황, 제지한 건 서문주였다.

“지금은 서로 싸울 때가 아닙니다.”

또다시 연이어 들려오는 폭발음. 이제는 아예 병원 전체에 진동을 느낄 정도로 가까워졌다. 사람들의 얼굴에 의문과 공포가 함께 어렸다. 대체 갑자기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저게 만약 변이체의 소행이라면···’

서문주는 상상만 해도 끔찍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런 공격을 하는 변이체를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도시를 헤집어놓던, 운석비는 다행히 그들에게 도달하기 전에 그쳤다.

그는 방금 전의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설마 우리와 같은 플레이어의 소행?’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플레이어의 존재.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그 플레이어가 착한 인물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만약 옆에 있는 조폭들 같은 인물이라면···

아니, 사이코 같은 살인마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그새를 못 참고 조폭들과 그룹원들이 또다시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서문주는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번 투닥거림은 단순한 투닥거림으로 끝나지 않았다.

탕! 조폭들 중 한 명이 총을 발사했고, 그의 그룹원이 피격당했다. 충격을 받은 얼굴로, 서문주는 쓰러진 그를 향해 다가갔다.

총을 쏜 조폭 역시 당황한 얼굴이었다. 다른 조폭들 역시 마찬가지다.

“의사 양반, 이건 고의는··· 저, 저 새끼가 먼저 욕을 했다고.”

“욕하면 사람을 쏴도 됩니까?”

딱딱하게 말한 서문주는 그룹원의 맥박을 짚었다.

‘다행히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사실 일반인이라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상처였지만, 기프트로 육체를 강화했기 때문에 생존한 것이었다.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는 ‘힐링’을 사용했다.

그러자 상처가 거짓말처럼, 급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외상은 치유했지만, 그룹원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조폭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진짜, 다들 죽고 싶습니까?”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분위기. 조폭들은 물론, 그룹원들조차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그들도 서문주를 꾸준히 봐왔지만, 그가 분노한 모습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독사파 보스인 김형기조차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날파리 같은 것들이 감히 누구를 건드려?”

뒤이어지는 반말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아니, 우리도 고의는 아니었다고. 정말이야.”

“다들 꺼지세요. 한 번 더 제 눈에 띄면 그때는.”

정말 죽일 생각이었다.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서문주는 확신할 수 있었다. 김형기를 비롯한 조폭들은 차마 대꾸조차 하지 못한 채 허겁지겁 병원 밖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얼마 가지 못해 그들은 마주치고 말았다. 오토바이에 탑승해 있는 남자를. 그는 특이하게도 마법사처럼 로브를 쓰고 있었다.

“너, 넌 또 뭐야?”

그들은 남자에게 총을 겨눴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적 아니니까, 그 총 내려놓으십쇼.”

남자가 조폭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더, 더 접근하면 쏜다···!”

“갈겨버려.”

보스인 김형기의 명과 동시에 조폭들의 총이 불을 뿜었다. 그러나 그들이 발사한 탄환은 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양 속속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드디어 남자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조폭들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쯧.”

가볍게 혀를 찬 남자의 눈이 붉게 빛난다.

“다들 따라 오십쇼.”

조폭들은 뒷걸음질 치던 그 상태 그대로,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남자의 말은 항거할 수 없는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잠시 그들을 응시하던 그는 걷기 시작했다. 방금 그들이 도망쳐 나온 오성 병원을 향해서. 서문주 역시 그의 존재감을 느낀 듯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곧 둘의 눈이 서로 마주친다.

“저기, 혹시···”

그가 말을 잇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혹시가 맞습니다.”

무슨 질문을 하려고 했는지, 마치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아까 전의 운석은 역시···’

남자의 소행이라는 의미였다. 그는 새삼스럽게 남자를 쳐다본다. 그는 곧 남자의 얼굴이 익숙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 만나서 반갑습니다. 멸망 전에 이곳 병원 의사였던 서문주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회사원 겸··· 배달부였던 이진서입니다.”

남자는 그를 향해 짤막하게 고개 숙이며 자기소개를 했다. 배달부? 서문주는 그제야 남자의 얼굴이 익숙했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배달부!”

그 역시 인터넷을 통해, 배달부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적어도 그가 기억하는 배달부- 이진서는 적어도 악인이 아닌 선인이었으므로.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곧 그가 입을 열었다.

“정말 존경합니다.”

“존경이요? 의사 선생님께 그런 말을 들으니, 낯부끄럽네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게비샤를 통해 악의가 없다는 걸 확인한 이진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엉거주춤 그를 따라온 조폭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들은 어쩔까요? 보자마자 제게 총을 갈기기에 일단은 따라오라고 해놨습니다.”

“···하하, 그리 성격이 좋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괜히 안으로 들였다가 말썽 피울까 걱정되긴 하는데···”

방금 전에도 그의 그룹원이 총을 맞는 사고가 벌어지지 않았던가. 그의 생각을 읽은, 이진서는 쯧, 혀를 내차며 그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여기서 또 소란 피울 겁니까?”

“아니, 아닙니다!”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겠습니다!”

“믿겠습니다. 만약 소란을 피웠다간···”

독사파의 조폭들은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서문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사람들이 드디어 맛이 갔나?’

***

영령 빙의를 통해 대마도사, 옐레나를 빙의한 내 마력 능력치는 107. 기존의 마력 능력치를 아득히 뛰어넘은 수치다. 그런 마력으로 새롭게 얻은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말 그대로 난사했다.

물론 미티어 스트라이크에 필요한 마력은 결코 적지 않았다. 하물며 마력 분신을 사용해, 내 마력 소모량은 두 배로 늘어난 상태였으니 아무리 나라 하더라도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마력이 동이 났을 것이다.

대멸겁의 지팡이의 효과가- 마력 소모를 70% 경감한다-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분명 난사함에도 불구하고, 내 마력 능력치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회복제를 복용하자, 역으로 차오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도시를 헤집는 수십 개의 운석. 수만 마리에 달하는 변이체들은 그 압도적인 힘에 휩쓸리며,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었다. 한편으로, 혼돈 속성에 대해 깨닫게 됐다.

‘평범한 파이어 월이었다면 도시가 불바다가 됐겠지.’

여태껏 사용해왔던 화염 계열 마법들은 다 그랬다. 마법을 해제해도, 그 여파는 도시에 남았다. 아마 기존의 미티어 스트라이크라 한들, 그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도시는 깔끔하다. 남아있는 흔적들은 전부 물리력으로 인한 것들뿐. 분명 혼돈 속성은 불과 닮아있지만, 분명히 다른 속성이라는 방증이었다.

나는 흥미를 느끼며, 몰려드는 변이체들을 향해 계속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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