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새로이 탄생한 디아블로에 탑승한 채, 시흥시에 도착한 나는 S31을 펼쳤다. 스마트워치 기능을 통해 주변을 탐색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두 개씩이나. 첫 번째는 붉은색 점. 서울을 포함해, 지금껏 갔던 도시들에서는 변이체의 존재를 의미하는 수많은 붉은색 점들이 나를 반겼다.
하지만 이곳 시흥시에서는 붉은색 점이 둘뿐이었다. 그중 하나는 평범한 붉은색 점이 아닌 지난번 내가 봤던 특수 변이체 ‘루나’를 연상케 할 정도로 거대한. 특수 변이체가 틀림없었다.
그 변이체 옆에는 초록색 점들이 있었다. 초록색? 처음 보는 색. 플레이어의 색은 푸른색이었으니까. 플레이어일까? 변이체일까? 의문이 샘솟았지만, 알아볼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직접 가보는 것. 변이체를 찾아볼 수 없기에, 수월하게 나는 붉은색 점과 초록색 점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일반 가정집이라고 보기에는 힘든, 거대한 저택. 그 앞에 서 있는 거인(巨人).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한다.
[타일런트(Tyrant)]
- 다수의 플레이어를 살해하고, 최상급 변이체에서 한층 더 진화한 특수 변이체.
- 최상급 변이체일 때보다 모든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등에 달린 촉수로 생명을 흡수해 육신의 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포식의 권능과, 흡수한 생명을 소모해 영생(永生)을 누릴 수 있는 불멸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
- 최대 50,000마리의 변이체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
- 진화 조건 : 플레이어 5,000명 살해 시, 혹은 특수 변이체 50마리 포식 시, 킹 타일런트(King Tyrant)로 진화.
- 보유 기프트 : 30,000
‘보통 녀석이 아니다.’
녀석이 보유한 기프트는 무려 30,000기프트. 루나의 세 배에 달하는 양. 이로써 나는 특수 변이체라고 해서 모두 다 동일한 기프트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를 보며 웃음 짓던 녀석은 촉수를 들어 올린다. 명백한 전투태세. 아직 녀석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나는 전력으로 상대하기로 했다.
즉시, 영령 빙의를 사용했다.
[영령 빙의(L)를 사용합니다.]
마도사, 벨루가보다는 방랑기사, 카론이 지금의 상황- 일대일에는 더 적합할 터였다.
[방랑기사, 카론이 몸에 빙의됩니다.]
만다라바의 옷장을 사용해, 용기사의 흑철 세트까지 입은 내 몸이 타일런트를 향해 폭발적으로 가속했다. 내 손에 소환된 폭식의 대검, 아르고스가 녀석을 향해 휘둘러졌다.
아르고스는 그대로 타일런트를 베어냈다. 아니, 베어냈다는 표현보다는 날려버렸다는 표현이 옳겠지만. 상체가 날아간 녀석의 몸이 뒤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그러나 나는 타일런트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핏 보기엔 영락없이 죽은 것 같지만, 기프트 획득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녀석의 몸이 수십 개의 쥐로 변한다.
‘저게 불멸의 권능인가.’
나는 쥐 한 마리를 베어냈지만, 이대로라면 놓칠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쥐들은 빠른 속도로 달아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다음 떠오르는 메시지를 본 나는 미소를 지었다.
[폭식의 대검, 아르고스가 흡수한 영혼이 최대치가 됐습니다. ‘방출’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영혼 방출을 사용한다.
아르고스의 영혼 방출은 마력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지금 내 마력 능력치는 90을 뛰어넘은 상태였다. 순간적으로 독기가 일대에 있는 모든 것을 녹여버린다.
전봇대, 건물, 세워져 있던 차··· 그것은 달아나던 쥐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쥐들의 몸이 녹아내린다. 녀석의 몸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잔뜩 고통스러운 얼굴과 함께.
- 이 녀석은 뭐지?
그의 내면의 목소리가 들어온다. 나는 그를 향해 대꾸하진 않았다. 녀석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 한들,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분명 녀석은 위험한 존재다. 그리고 그런 존재를 여기서 놓치고 싶진 않았다. 녀석의 목을 다시금 베어낸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파이어 월을 사용했다.
화염에 통구이가 돼가던 녀석이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이미 온몸에 붙은 불을 끌 방법이 녀석에게는 없었다. 한 번 더 파이어 월을 사용하자, 잠잠해진다.
그걸로 끝이었다.
[72,300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특수 변이체치고는 허무한 최후가 아닐 수 없다. 하기야 내 모든 기본 능력치가 60 후반대라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지만. 생각난 김에 나는 마력 70을 만들었다.
[기본 마력 능력치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70이 최대치였다. 70부터 올리려면 장비나, 스킬에 투자를 해야겠지. 생각하면서도, 나는 저택을 바라봤다. 아까 눈치챘지만, 평범한 저택이 아니다.
<3급 안전 가옥>
‘3급 안전 가옥?’
그동안 안전 가옥들을 구매했다. 당장 우리 그룹의 구성원들이 묵는 곳도 안전 가옥이니까. 하지만 3급 안전 가옥은 맹세코 처음 봤다. 일단 가격이 더럽게 비싸기 때문이다.
9급 안전 가옥이 10기프트고, 급수가 오를 때마다 그 열 배씩 올라간다. 8급이 100, 7급이 1,000, 6급이 10,000, 5급이 100,000, 4급이 1,000,000. 3급은 무려 10,000,000, 천만 기프트다.
무슨 애 이름도 아니고, 터무니없는 가격. 7급 안전 가옥만 돼도, 대부분의 최상급 변이체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3급이라니. 어떤 괴랄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내가 3급 안전 가옥을 뚫는 것은 가능한가?’
[경우에 따라 가능할 수도,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의 나조차 뚫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저런 안전 가옥을 구매한 사람의 정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위치상으로 보면, 박승기가 말한 인척들의 저택이 맞는데···
‘어쩌면 나 이상의 플레이어가 있을 수도···’
두근거리는 마음 반, 불안한 마음 반으로, 저택을 향해 다가간다. 박영서처럼 악독한 플레이어라는 경우를 생각해 앱솔루트 배리어를 다시금 사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택에 다가가 문을 두드린다.
내부는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해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초록색 점. 내부에 있는 이들이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아닐 거라는 것.
곧 이쪽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 저택 내부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 사람?
“사람입니다.”
- 정말 사람인가?
-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바깥에 괴물들이 그렇게 많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사람이 여기까지 어떻게 와요?
“사람 맞습니다. 혹시, 박승기 의원님 친척분들 아니십니까?”
- ···의원님을 알고 있는 걸 보면 확실하게 사람이 맞는 거 같은데?
- 그쪽은 박승기 의원님과는 무슨 관계요?
무슨 관계라···
엄밀히 말하면 리더지만, 나와 박승기의 관계는 수직 관계라기보다는 보다 수평적인 관계에 가깝다. 그의 나이가 있기도 하고. 잠시 단어를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동업자입니다.”
- 그러면 박승기 의원님은···
“현재 살아 계십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나를 경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 중엔 나를 향해 총을 겨눈 이도 있었다. 나는 저택 내부로 발을 디뎠다.
그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1,324,128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3급 안전 가옥의 소유권을 획득했습니다.]
무려 130만이 넘는 기프트와 이 3급 안전 가옥의 소유권을 획득했다는 말에,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플레이어, 연성준은 플레이어 각성한 직후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인은 자연사입니다.]
‘자연사?’
[플레이어가 자연사할 경우, 그가 보유한 기프트는 최초로 발견한 플레이어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그가 죽기 전, 저택 전체를 3급 안전 가옥으로 개조했다는 것.]
‘······’
[3급 안전 가옥 덕에 본래 채굴자의 손에 들어갔어야 할 기프트는 주인을 기다리는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이곳에 보관돼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내막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3급 안전 가옥의 가격을 생각하면, 적어도 천만 개 이상의 기프트를 보유한 플레이어가 자연사로 죽다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함도 들었다. 최초로 발견한 플레이어?
생각에 잠겨있는 내게 중년 사내가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말을 걸어왔다.
“정말 사람이 맞군. 그쪽이 전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제가 전부입니다.”
“전기가 끊어진 지 좀 돼서. 바깥 상황은 어떻소?”
“바깥 상황이라···”
진리의 눈, 게비샤를 사용해 그들을 훑는다. 그리고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이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것을. 플레이어도 변이체도 아닌 존재. 그들은 바로··· 일반인이었다.
일반인이지만, 더 이상 그들의 존재는 평범하지 않다.
‘일반인이 어떻게···’
나는 곧 내가 떠올린 의문이 헛된 것임을 깨달았다. 무려 천만 기프트를 넘게 가진 소유자가 죽기 전에, 변이체로 변이되는 인간들을 모두 치유해달라고 말했다면.
혹은 이미 저택 내부에 변이된 변이체들을 모두 되돌려달라고 말했다면. 물론 시간 회귀의 물약은 10만 기프트이지만, 그는 충분히 지불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테니까.
“안 좋소?”
내가 말을 하지 않자, 그들이 어두운 얼굴로 물어온다.
그러면서도, 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들이 이쪽을 향해 냅다 총을 갈긴다 하더라도, 피해를 주지 못하겠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할 테지.
“극소수를 제외한 서울 대부분의 인원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서울뿐 아니라 다른 도시,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 우리도 인터넷으로 대략적인 상황은 전해 듣고 있었는데··· 보다시피 전기가 끊겨서 말이요.”
그들의 말을 방증하듯, 그들은 저택 내부를 촛불로 밝히고 있었다.
‘3급 안전 가옥에 임시로 전기 공급해줘.’
[0.1기프트입니다.]
곧 전깃불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갑자기 전기가···”
“그쪽이 한 일이요?”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내 시선은 2층에 있는 문으로 향해 있었다. 쿵쿵, 무언가 때려 부술 것처럼 문을 두드리는 소리. 아까 본 붉은 점은 둘. 하나는 내 손에 죽었으니, 이제 하나가 남은 셈이다.
그리고 저 문 너머에 있는 존재는, 그 나머지 하나일 가능성이 높았다. 내 시선을 의식한 듯 중년 사내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내 아들을 건드릴 생각하지 마시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