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끼이익. 저택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군복을 입은 연병수가 밖으로 나왔다. 등에는 배낭과, 저택 안의 조각상에 장식된 일본도를 멘 채로. 최미라가 젖은 눈으로 그에게 말했다.
“꼭 살아와야 돼.”
“당연한 말을. 위험하니까 얼른 문 닫아.”
이내 문이 닫힌 걸 확인한 연병수는 조심스럽게 울타리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변이체가 없다는 걸 확인하자 울타리를 넘었다.
퍽. 쌓인 눈에 그의 발이 푹 잠긴다. 가볍게 숨을 몰아쉰 그는 눈을 헤치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발전기가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인근의 주유소. 거리는 대략 0.6km.
‘혹시나 했는데 역시···’
인간의 흔적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있는 시흥시는, 인구 50만의 결코 작지 않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생각하던 그는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에, 자동차 옆에 몸을 숨겼다.
그의 몸의 몇 배는 돼 보일 법한 거인(巨人)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공포로 인해,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그때, 거인이 멈춰 섰다. 1초, 2초··· 심장은 박동했고, 몸은 떨렸다.
거인이 이쪽을 눈치챈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당장 일어서서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닐까, 그는 그 찰나의 순간에 수 차례의 고민을 했지만 다행히도 거인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서 모습을 감췄음에도, 연병수는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거인이 몸을 돌려, 자신을 쫓아오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부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일으킨다.
‘대체 어떻게 변해버린 세상이기에···’
새삼스럽게 그는 절망했다. 그러나 그 후, 그는 변이체들을 마주치지 않고 주유소까지 무사히 다다를 수 있었다. 주유소 안에 들어간 그는 자가용 발전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다. 그는 안쪽 창고에서 금방 찾아낼 수 있었으니까.
발전기가 작동이 된다는 것까지 확인한 그는 발전기를 손으로 들었다. 배낭에 넣어서 가져가기에는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다. 그래 봐야 두 개 가져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말이다.
그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주유소 바깥으로 나왔다.
하늘이 돕기라도 한 건지, 아까까지만 해도 득실거렸던 변이체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그는 무사히 저택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발전기를 든 채 간신히, 울타리를 넘고나서야···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제 몇 미터만 더 가면··· 저벅, 저벅. 힘겹게 몸을 이끌고 저택으로 향하는 그. 그 순간, 무언가가 그의 등을 푹 찔렀다. 그는 고개를 돌린다.
아까 봤던 거인이 서 있었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마치 거미의 다리처럼 수십 개의 촉수를 펼친 채로. 그중 하나가 그의 등을 꿰뚫었던 것이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최미라와 했던 약속.
그러나··· 점차 힘이 빠진다. 움직이려 했지만, 움직여지지 않는 몸.
[$&%^&]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목소리.
지금까지 들어본 목소리 중 단언컨대 가장 끔찍한 목소리였다. 촉수가 뽑혀 나오고, 피가 후두둑 떨어진다. 그의 몸 역시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졌다.
지켜보던 최미라가 황급히 문을 열었다.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연병수는 젖 먹던 힘까지 내어, 팔 힘으로 저택까지 향했다. 거인이 언제 다시 그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함께···
“병수야!”
그는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최미라가 그의 상처를 살폈다. 동전 크기만 한 구멍이 뚫린 상처 주변은 검게 변해 있었다. 그녀는 얼른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상처에 단단히 묶어, 지혈했다.
그러나 연병수의 정신은 온전치 못했다.
[$%#?]
[#@#$!]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계속 그의 귓가에 울려 퍼진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이 빠른 속도로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최미라도 곧 이상함을 깨달았다. 그녀 역시 한번 겪었던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최미라는 그녀가 겪은 일이 무슨 일이었는지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바깥에 득실거리는 변이체들. 그것은 한때 인간이었던 존재들일 터. 아마 변이체가 돼가고 있었던 과정이겠지. 즉, 그녀가 사랑하는 연병수는 변이체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거리의 변이체들과 마찬가지로 타인을 죽이려 할 것이다. 주르르 눈물을 흘리면서 최미라는 그의 몸을 안았다. 비참했다. 신에게 버림을 받았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일어난다.
이대로 그를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의 몸이 질질 끌리기 시작한다. 변이체가 되기 전에 그를 죽이는 것이 현명하겠지만, 그녀는 도저히 그녀의 손으로 죽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저택에 남는 공실에 그를 가둬둘 생각이었다. 그의 몸이 질질 끌리기 시작한다. 최미라는 결국 공실에 그를 가두는 데 성공했다. 쿵, 쿵. 문이 계속 쿵쿵거린다.
마침내 깨어난 모양이다. 변이체로서.
그녀는 눈을 감았다.
꿈만 같았다.
이 상황이 전부. 앞으로 몇 시간 후면 저택의 어르신들이 깨어날 것이다. 깨어나시면 뭐라 말한단 말인가. 당신의 아들이 바깥에 돌아다니는 변이체가 돼버렸습니다, 이렇게?
‘제발 누군가가···’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그로부터 세 시간 뒤, 저택의 어른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간밤에 일어난 이 사건에 대해 통곡함과 동시에, 연병수의 처리 방법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뭐? 다들 붙어사는 주제에 내 아들을 감히 죽이겠다고?”
중년 사내- 연병수의 아버지, 연병하가 길길이 날뛰었다. 그의 눈길을 받은 다른 이들은 움찔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저택의 소유권은 그의 아버지였으므로.
“내 아들은 아무도 못 죽여, 다 저년 때문이야.”
그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에서는 최미라가 벌벌 떨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미라가 말했잖아요? 병수가 말려도 듣지 않고 나갔다고.”
최미라의 어머니인 최미연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잘못했다간 자식의 거취 문제까지 논의될 수 있는 상황인지라, 그녀는 필사적이었다. 서로의 자식 문제에, 다른 이들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우리 미라야 그렇다 치고, 병수 쟤는 고칠 방법도 없잖아요?”
“의사 선생님!”
그의 부름에 안경 쓴 여자가 말을 흐렸다.
“저는 저런 병을 본 적이···”
“고쳐, 고치라고. 당신, 의사잖아? 그러려고 된 의사 아니야?”
“일단 상태라도 확인하려면 열어서 포박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리 없잖아요.”
“포박? 해야지. 그럼 하면 되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그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다른 이들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외부의 변이체를, 그들은 상대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들은 줄곧 이 저택 내부에만 있었으니까.
그런 그를 막아선 건, 그의 동생이었다.
“형님, 일단 진정하슈. 병수 일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우리 목숨까지 다 위협하는 건 아닌 것 같소.”
“네가, 네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나 혼자라면 얼마든 목숨이야 바칠 수 있겠지만 나도 홀몸이 아니지 않소. 병수 일은 정말 안타깝게 됐지만, 이성적으로 봅시다. 형님도 와이프와 다른 자식들이 있지 않소.”
“씨발.”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욕설. 아버지의 손에 힘이 빠진다. 반대로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점차 커지고 있었다. 내부에서 변이체로 변한 그가 방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병수는 저렇게 죽으면 안 돼···”
“그래도 지금 당장은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지 않소. 나올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일단은 지켜봅시다.”
“저 괴물을 그냥 놔두겠다고?”
“엄마···!”
소수의 반발이 있긴 했지만, 저택 내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며칠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것에 동의했다. 아버지 앞에서 아들을 죽이겠다는 건, 지나치게 잔인한 짓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변이체들은 시간이 흐르면 진화한다는 것. 최하급 변이체가 하급 변이체가 되는 데는 3일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
저런 문 따위는 얼마든지 부수고,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 카운트다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
서울의 변이체들을 내가 먼저 소탕하고, 박승기의 진두지휘하에 그룹원들의 2차 소탕 작업까지 마쳤다. 물론 워낙 숫자가 많은 만큼, 이쪽이 놓친 변이체들도 존재하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변이체들을 ‘소탕’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리다.
물론 소탕한 건 어디까지나 ‘지금’ 서울에 존재하는 변이체고, 다른 지역의 변이체들이 서울로 넘어오지 않도록 막는 건 불가능하지만.
“내가 붉은 점으로 그려준 곳 보이는가?”
나는 S31의 지도를 바라봤다. 지도에는 실시간으로 붉은 점이 그려지고 있다. 화상 채팅 기능이었다.
“예.”
“주요 길목일세. 거기에 바리케이드를 지으면, 좀비들은, 아니 변이체들의 침입을 막기 편해질 거야. 콘크리트 건물이라도 부수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야.”
“예, 설치해두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경기도 말일세. 경기도 인구가 얼만지는 아는가?”
그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서울과 비슷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20년 11월 기준으로, 1341만이야. 서울 못지 않게 변이체들이 득실거릴 거란 말이지.”
과연 국회의원답게 인구수에 빠삭한··· 모습인가? 새삼 그가 국회의원이라는 걸 느끼면서도, 그에게 멋쩍게 말했다.
“사실 이미 경기도로 나갔다 왔습니다.”
말 그대로 맛보기에 불과했지만 경기도에도 발을 들였었다. 하남시, 성남시··· 높은 인구 숫자만큼 변이체들로 득실거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살아있는 플레이어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급 변이체의 출현. 하루도 빠짐없이 멈추지 않는 폭설. 지금까지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에게도 지나치게 극한의 환경이긴 했다.
‘뭐, 이제는 기대도 안 하지만.’
“그런가? 경기도는 어떤가?”
“변이체들을 가볍게 처치하면서 돌아다녀 봤지만, 플레이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
그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경기도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그가 불현듯, 과거 이야기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나는 국가와 결혼한 몸이지만, 나도 인척이 아예 없는 건 아니네.”
“국가와 결혼? 의원님이요? 그냥 노총각이라고 말하시는 게···”
디저트를 내오던 김하나의 말에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노총각? 내가 젊었을 적에 인기가···”
물론 돌아오는 건 김하나의 비웃음이었다. 그녀가 나간 후, 나는 쓰게 웃었다.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의원님 때문에 씨게 물렸다고 하던데, 하나 씨도.”
그는 푹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내 업보겠지. 어쨌거나 아까 얘기하던 거마저 하지. 시흥시에 친척이 있네. 혹시 그들의 생사를 확인해줄 수 있겠나?”
“시흥시라면···”
“서울의 남서쪽. 이곳과 조금 거리가 있긴 하네만··· 자네의 그 괴물 같은 오토바이라면 금방 갈 수 있을 테지.”
딱히 어려운 부탁은 아닌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시흥 어디입니까?”
“어디냐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