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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35화 (35/236)

35화

나를 향해 달려드는 수천 마리의 변이체들. 당연하게도 전부 하급 변이체다. 그 속도는 일반인이 전력질주를 해도 따돌릴 수 없는 정도. 그러나 내게는 ‘고작’ 하급 변이체일 뿐이다.

마도사 로브가 펄럭인다. 그들을 향해 지팡이를 휘두른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죽음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지상에 있는 것을 모조리 불살라버리는. 레인 오브 파이어.

비에 닿은 변이체들의 몸이 타올랐고, 순식간에 잿더미로 화하고 말았다. 한때 인간이었던 존재들. 누군가는 잔인하다고 평가할 풍경이지만, 나는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내가 비정상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무언가 감상을 가지기에는, 지나치게 익숙해진 풍경이기 때문이다. 비정상이라 칭해야 한다면 내가 아닌, 이 세계가 비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곧, 메시지가 떠오른다.

[8,800기프트를 획득하셨습니다.]

내 입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좋아. 얼마 남았지?”

[보유 기프트 : -149,785]

‘대략 15만 정도 벌어들인 건가?’

[플레이어, 이진서가 직접 전투로 획득한 기프트는 10만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센트리 건이 벌어줬다는 거군.’

쉘터에 설치해둔 센트리 건은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 중인 모양이었다. 조금 서두르면, 밤이 되기 전에 빚을 모조리 청산할 수 있을 것이다. 기프트 수급이 기존의 다섯 배 이상 늘었다.

하급 변이체가 보유한 기프트(0.5)가 최하급 변이체가 보유한 기프트(0.1)의 다섯 배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계산상으로는 하루 30만 정도인가.’

물론 매일 그렇게 벌지는 못할 것이다. 변이체의 숫자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천만 명에 달하는 서울 시민들. 그들이 모조리 변이체로 변이됐다고 생각하면, 변이체의 숫자는 천만.

그리고 내가 사냥한 변이체는 대략 400만 정도. 그리고 구원교에서 나와 비슷한 숫자를 처치했다고 추정한다면.

사실 남은 숫자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말이 얼마 안 된다 뿐이지, 숫자로 따지면 어마어마하겠지만, 숫자가 줄어든 만큼 수급량 역시 줄어들겠지.

그러나 나는 별로 걱정하지는 않았다. 서울이 아닌, 대한민국 전체로 뻗어나간다면 변이체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9일 뒤면 하급 변이체는 중급 변이체로 진화한다.

중급 변이체가 보유한 기프트는 3. 하급 변이체의 6배. 중급 변이체까지는 큰 힘 들이지 않고도 대규모로 처치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단순 계산으로 30배.

일 100만 기프트를 벌어들일 순간까지 머지않은 셈이었다. 이제는 기프트보다는···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시간··· 기프트로 시간을 살 수는 없나?’

혹시 하고 물어본 것이었다. 아무리 기프트가 만능이여도, 설마 시간까지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딱 잘라 가능하다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답변. 나는 무언가 제약이 걸려있음을 깨달았다.

[다만 시간 회귀의 물약과 마찬가지로 ‘채굴자의 의지’를 거스르는 일. 당연하게도 상당히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시간 회귀의 물약이, 변이체를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던 그 물건임을 깨달았다. 가격이 10만 기프트라고 했었지.

‘얼만데?’

[현재 기준으로 하루에 1,000,000기프트입니다.]

백만 기프트. 비싸긴 하지만, 지불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아직 마이너스인 내 기프트 상태로 할 말은 아니지만, 대출을 풀로 땡기면 하루 정도는 살 수 있다는 말 아닌가.

“···현재 기준이란 건?”

[현재 지구의 일일 기프트 채굴량입니다. 이것은 변동될 수 있는 수치입니다.]

‘일일 기프트 채굴량이라···’

이번에는 나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이 지구를 코인 채굴기로 테라포밍한 채굴자. 그의 목적은 당연히 기프트일 터. 다른 플레이어들은 시작부터 채굴량이 -99%로 시작한다.

어째서 그럴까. 이에 대해서, 도지코인800층- 인터넷이 끊기기 전 활동하던 인터넷 유저- 한 가지 추론을 낸 적이 있었다. 나머지 기프트는 모조리 채굴자에게 가고 있는 거라고.

내가 생각해도 그럴듯한 추론이었다.

즉, 지구의 하루를 구매한다는 건, 채굴자에게 향할 기프트를 대신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 그런 기프트가 100만 기프트라는 것은. 최하급 변이체로 환산하면 ‘대략’ 천만 마리.

지구에서 하루에 천만 마리 가량의 변이체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말이 천만이지, 서울 인구에 달하는 숫자다.

물론 이제는 최하급 변이체가 아니라, 하급 변이체이기에 내가 옳게 계산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기야, 전 세계로 따지면 플레이어 숫자는 수십 배로 늘어날 테고, 그 플레이어들 중에 나와 같은 플레이어가 없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이나 인도의 플레이어라면 어땠을까?

우리 대한민국의 인구와 비교해도 ‘넘사벽’이라 말할 수 있는 수십억의 인구. 과거 기사를 본 적 있다. 유명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의 숫자가 우리 대한민국의 인구를 뛰어넘는다고.

그런 중국이나 인도에서 플레이어로 각성한다는 것은, 없는 자들에게는 비극일 것이고, 가진 자들에게는 성장의 발판일 것이다. 어쩌면 나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수십억의 변이체···’

생각하는 것만으로 아득해진다.

[물론 플레이어, 이진서의 지불 능력이라면 하루의 시간을 구매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별로 추천 드리지는 않습니다. 채굴자의 눈을 속였다는 사실이 들통나게 된다면 그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너는 채굴자의 편이 아니었나?’

시스템이 채굴자의 편이라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코인 채굴기를 관리하는 시스템이니까. 하지만 지금 메시지를 보면, 채굴자와는 거리를 두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는 그저 플레이어들의 성장을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코인 채굴기 시스템일 뿐입니다.]

바닥에 걸터앉은 채, 한동안 메시지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치 할 말이 더 없다는 것처럼, 메시지는 더 이상 출력되지 않았다. 뭔가 읽씹 당한 것처럼 기분이 묘해지는데···

하지만 더 군말하지 않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당장 내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명확해졌다.

‘변이체를 사냥해서, 강해진다.’

***

세상이 코인 채굴기로 변했을 때 노인은 죽어가고 있었다. 질병 때문이 아닌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노화 때문에. 플레이어로 각성했지만, 죽음이라는 그의 결말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덕에, 그의 주변 사람들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다. 변이체로 변이되던 사람들, 혹은 변이체로 변해버린 사람들. 그는 가진 기프트를 소모해 그들의 변이를 원점으로 되돌려 놨다.

플레이어가 아닌 ‘최초로’ 살아남은 일반인들이었다.

남은 기프트로는 저택 전체에 안전 가옥을 만들었고, 그들이 평생 먹어도 모자라지 않을 식량과 식수를 구매했다. 그리고 노인은 죽었다. 그러나 노인의 유산은 고스란히 남았다.

다른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도망 다닐 때, 그들은 안전한 저택 안에서 노인의 유산을 누릴 수 있었다. 식량이 증발했지만, 기프트로 구매한 식량은 증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저택에 부족한 것은 있었다. 바로 전기(電氣)였다. 그들에게도 전기가 끊긴 것은 꽤나 치명적인 문제였다.

물론 전기가 끊겼다는 것이 중대한 문제라는 것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다소 배부른 말일지도 모르지만, 문명의 이기를 누리던 인간이 문명을 잃어버리는 것만큼 잔인한 일은 없다.

한 쌍의 남녀가 촛불로 켜진 방안, 창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저택 주인인 노인의 손자인 연병수와, 노인을 간병하던 간병인의 딸, 최미라. 안면조차 없었던 그들은 근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꽤나 친해졌다.

심적으로도,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비슷한 나이대에, 이렇게 돼버린 세상이니 그들이 친해지는 것은 당연한 노릇일지 몰랐다.

먼저 입을 연 건 연병수였다.

“이대로는 계속 못 살아.”

그가 푸념을 한두 번 했던 것이 아니라, 최미라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깥에 나가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위험하다니까.”

“그래, 위험하지.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야. 나가서 발전기만 찾아오면 돼.”

저택에도 발전기는 있었지만, 저택의 외부에 있었고, 지난 폭설로 고장 나 버렸다.

“그러다가 저놈들한테 붙잡히기라도 하면?”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거리. 그곳에는 괴물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쫓기라도 하듯 내리 달리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걷는다. 비정상적이다.

그런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거리로 나가겠다는 연병수의 말은, 최미라의 시선에서는 지나치게 위험해 보였다.

“여기서 평생 먹고 자고 싸고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여기도 언제까지고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잖아?”

그의 말에도, 확실히 일리는 있다.

최미라 역시 현재의 생활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그 때문에 자꾸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현재의 생활을 개선하는 것이 바깥으로 나가는 거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대상이 연병수나 자신이 아니길 바랐을 뿐이지.

“금방 갔다 오면 돼. 차고에 있는 차 몰고 나가면 저 녀석들은 차를 따라오지도 못할 거야. 그리고 따라온다 하더라도, 제깟 놈들이 어떻게 차 안으로 들어오겠어?”

“······”

“내 차는 방탄유리라고.”

그렇게 주장하는 연병수의 말에, 최미라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위험해. 어른들이 반대하실 거야.”

“굳이 허락을 구할 이유도 없지. 그리고 어차피 몇 시간만 있으면, 다들 곯아떨어질걸?”

“위험하게 밤에 나가겠다고?”

“낮은 안 위험할 거 같아? 내가 저놈들 테스트해봤는데, 시각에 아주 민감한 것 같더라고. 차라리 낮보다 밤이 나아.”

“···그럴 거면 차는 왜 끌고 나가겠다는 건데?”

“발전기가 무거울 수도 있잖아. 미라야, 내 말 들어봐. 발전기만 있으면 돼. 우리가 언제까지 전기도 없이, 이렇게 촛불로 생활할 수는 없잖아? 촛불도 언젠가는 떨어질 테고 말이야.”

“그러면 나도 갈게.”

“너는 그냥 있어. 적어도 한 명은 남아서 어른들 동향 살펴야지.”

최미라는 연병수를 말리지 못했다. 그저 어두운 얼굴로 연병수가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채비를 도울 뿐이었다. 그는 저택의 지하 차고로 내려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차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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