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교주님, 준비됐습니다.”
권두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세요.”
격납고 문이 열림과 동시에, 전차가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대한민국 국군의 대표 전차인 K-2 흑표 전차. 한 기, 두 기, 세 기··· 도합 스무 대의 전차가 위용을 자랑하며 도로를 질주한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인근의 건물 옥상 곳곳에 배치된 신도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내 전차의 맞은편에서 거대한 괴물이 나타난다. 쇼를 위해 유인한 상급 변이체다.
상급 변이체는 움직이는 전차를 향해 대번에 달려들었다. 민첩이 극도로 발달한 개체. 찰나의 순간, 순식간에 전차의 앞에 접근한 상급 변이체가 손톱을 휘둘렀다.
하지만 손톱은 별로 효과가 없었다. 전차의 포문이 불을 뿜었다. 포탄에 맞은 상급 변이체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전차는 그대로 뒤로 물러난다. 전차들이 상급 변이체를 에워쌌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연이은 포탄 발사. 상급 변이체는 저항했지만, 그뿐이었다. 아스팔트 도로가 가루가 되듯, 녀석의 몸 역시 가루가 돼버렸다. 권두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그의 옆에서 축배를 들고 있던 간부들도 하나 같이 감탄의 말을 내뱉었다.
“상급 변이체를 저렇게 쉽게 처치하다니.”
“최상급 변이체라 하더라도, 능히 쓰러트릴 수 있었겠습니다.”
“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권두기도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상급 변이체를 상대로 저 정도 화력이라면, 하급 변이체 정도는 아무리 많아도 손쉽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 시작될, 배달부와의 전쟁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펼치겠지.
“그런데 제가 군에서 일해서 아는데, 저 전차, 평범한 전차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주교님. 지난밤, 차를 기프트로 강화했습니다.”
기프트를 사용해, 전차의 재질을 전부 미스릴로 교체했다. 그러자 전차의 성능 역시 바뀌었다. 부정한 존재에게 50%의 추가 데미지를 입힌다고.
비록 그 과정에서, 대량의 기프트를 소모하긴 했지만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렇다면···”
“현대 과학 기술과, 기프트의 융합으로 저런 괴물이 탄생한 것이죠. 앞으로도 더 강해질 여지는 충분합니다.”
이건 시작 단계에 불과했다.
전투기, 특히 폭격기를 운용할 수만 있다면, 수천 마리의 변이체도 단숨에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프트가 많이 필요하겠지만. 그가 흡족한 웃음을 지을 때였다.
와인을 한 모금씩 홀짝이고 있던 이장우가 느닷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권두기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그를 바라봤다. 이, 좋은 날에 갑자기 웬 호들갑들이란 말인가.
“왜 그러십니까?”
“교주님 저기···”
이장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 권두기는 미간을 좁힌다. 꽤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오토바이 한 기.
“신성한 열병식에, 오토바이?”
‘누구지?’
혹시 이 모든 것이 권두기의 계획일까 싶어, 간부들은 그를 쳐다봤지만 그 역시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장우만이, 지금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글 아이’라는 스킬을 습득했기에, 오토바이에 탑승해있는 사내를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저거 배달부입니다···!”
“배달부?”
간부들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배달부.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던, 그들의 주적 아닌가.
- 어떻게 합니까, 교주님?
권두기는 사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오토바이 하나만 탑승한 채 적진에 기어들어 오다니.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그 정도로 자신감이 대단하단 말인가.
‘하기야, SNS에 그런 영상을 올렸을 때부터 알아봤지.’
“사지(死地)로 알아서 들어왔는데, 가만히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죠. 저희 교의 위신과도 관련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전차 부대에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전차 부대.”
잠시 서 있던 K-2 흑표 전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눈앞에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그 위에 타 있는 배달부를 섬멸하기 위해. 포탄이 불을 뿜었다. 포탄들 사이로 달려오는 오토바이는 아무리 봐도, 무모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쌓여있던 눈이 휘날리며, 순간적으로 시야를 가린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멈추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 권두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중얼거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눈앞의 표적을 섬멸하십시오. 사탄의 재림입니다.”
곳곳에 배치된 구원교의 신자들, 오토바이를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총기를 사용하거나, 활을 사용하거나, 마법을 사용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그러나 전부 튕겨져 나간다.
“방어 스킬인 것 같습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다 쏟아부어!”
특히, 배달부와 원한 관계가 깊은 이장우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외침도,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아스팔트 도로가 박살 나고, 구덩이가 팰 정도의 포화 끝에도.
배달부는 멀쩡할 뿐이었다. 그는 어느새 오토바이에서 내려있었다. 날아드는 탄환들 사이에서 그는 정확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권두기는 깨달았다.
‘너무 우습게 봤다.’
그가 영상만 보고, 이진서를 너무 우습게 봤다는 걸. 뛰어난 공격 능력이 있다면, 뛰어난 방어 능력 역시 있을 수 있다는 걸 가정했어야 한다. 물론 그 방어 능력이라는 게.
기프트를 쏟아부어 강화된 전차의 포탄을 튕겨낼 거라고는 그도 예상치 못했지만.
“안 되겠군, 플랜 D로 갑시다.”
옆에서 듣고 있던 간부가 놀란 듯 외친다.
“프, 플랜 D?”
곧,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근거리라, 주변에 피해가 갈 수 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지. 서두르세요.”
- 목표는?
“오토바이.”
‘이걸로 끝이다.’
그의 명령이 떨어졌다. 곧, 미사일이 발사된다. 군부대에서 입수한 현무 미사일. 아직 실험 단계라 기프트로 강화하지는 않았지만, 핵무기에 준하는 무기라는 평가를 받는 ‘괴물’이다.
물론 지척이라, 이쪽의 피해도 없진 않겠지만- 전차를 모두 잃겠지만 그 정도야 감수할 수 있었다. 저 배달부만 죽일 수 있다면. 배달부가 가진 ‘막대한’ 기프트만 얻어낼 수 있다면.
그리고 마침내, 하늘에서 강렬한 불빛이 번쩍였다. 권두기는 바리케이드를 구매함으로써 충격에 대비했다. 쾅! 한발 늦게, 거대한 폭발이 시가지를 감쌌다.
건물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강렬한 폭발. 뒤이은 충격파.
미처 대비하지 못한 이들은 멀쩡하지 못했다. 폭발에 정통으로 휘말린 전차들은 대부분 박살이 나버렸고, 지켜보던 이들 중 충격파에 휘말린 이들도 있었다.
고막이 먹어버린 고요한 세상. 그러나 권두기의 눈은 또렷하게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그의 입이 벌어졌다.
***
강렬한 섬광과 함께, 눈을 감았다 뜬다. 도로의 잔해들.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설마 미사일, 미사일 하기에 설마 했는데, 정말 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적진도 아니고, 자신들의 본진에서.
안일하다면 안일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면, 난 살아남았다. 찰나의 순간, 순간적으로 메모라이즈를 통해 앱솔루트 배리어를 연이어 사용한 탓에.
삼중 앱솔루트 배리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준비하긴 했지만, 설마 사용하는 순간이 올지는 몰랐다. 그럼에도 한 겹이 벗겨졌으니, 미사일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방증이었다.
‘미사일도 이런데 핵무기였다면···’
뼈도 못 추렸겠지. 나는 우리나라가 핵보유국이 아님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말았다.
“내 디아블로는···”
나는 무심코 오토바이를 쳐다봤다. 디아블로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를 빠득 갈았다. 내 애마가··· 이제는 갚아줄 시간이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구원교의 본당을 향해서.
가로막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내 앱솔루트 배리어를 깨버릴 정도의 엄청난 위력. 폭발에 휩쓸려버렸을 것이다. 단숨에 도약해서, 깨진 유리창 너머로 들어간다.
안에는 신도들이 있었지만,
“내 눈···!”
“눈이 안 보여···!”
그들은 저항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게비샤를 사용한다. 세상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가 빠르게 원상태로 돌아왔다. 감각의 확장. 이 건물 안에서 가장 강력한 기(氣)를 찾아낸다.
이내, 나는 포착할 수 있었다. 천장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근력과 마력을 함께 실은 두꺼운 시멘트벽 정도는 가볍게 부숴버릴 수 있는 위력이었다. 쾅!
시멘트 조각이 우수수 떨어지며 구멍이 뚫린다. 나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이들은 폭발에서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배달부?”
“당신이 교주인가.”
곰같이 거대한 사내. 최유미가 말한 구원교의 교주, 권두기.
“그렇습니다만.”
“그렇습니다만?”
“그 유명한 배달부가 우리 구원교까지는 무슨 일입니까?”
“미사일까지 날려놓고 그렇게 말하는 건, 음··· 좀 뻔뻔하다고 생각 안 하나?”
“글쎄, 이곳에 침입한 건 당신이 먼저인데 말입니다.”
“나는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지.”
어떻게 꿰뚫어 볼까, 그 방식에 의아해했는데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면의 목소리가. 지금의 이 상황을 타개하고, 도망칠 방법을 궁리하는 그의 목소리.
그때 옆에서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당연히 탄환은 튕겨져 나간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내게 탄환을 발사한 남자를 바라봤다. 익숙한 얼굴이다.
우리 그룹에 받아들인 바른 마음 교회의 신도들 중 ‘목사’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바로 그런 얼굴이었다. 바른 마음 교회의 목사, 이장우. 끼리끼리 만난 셈인가.
“이 개새끼가, 내가 너 때문에···”
“쓰레기들이 한데 모였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살려둘 가치가 없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방금 튕겨 나간 탄환을 강제로 들어 올리고, 그에게 되돌려줬다.
그대로 그는 절명(絶命)했다. 나는 다른 이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내게서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었다. 한 명, 한 명 죽여나간다.
그리고 권두기 혼자 남았다. 권두기가 입을 열었다.
“살려주십쇼.”
교주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치고는, 다소 비굴한 목소리였다.
“애초에 우리를, 나를 먼저 습격하려 한 건 당신 아니었나.”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에 아주 약간의 동정심이 일었다. 하지만 동정심은 금세 사라졌다. 방금 전, 미사일이 우리 쉘터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면서다.
전쟁이라는 명목하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었겠지. 어쩌면 그중에 정민혁이나, 진혜연 등이 휘말려서 죽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그는 살려두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인물이었다.
다짜고짜 자기 본진에 미사일을 날리고 보는, 소름 돋는 판단부터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