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펑-!
귀를 찌르는 강렬한 폭음. 사람들은 황급히 무기를 들고, 안전 가옥에서 빠져나온다. 그들은 곧 이상함을 깨달았다. 시간상으로는 밤중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대낮처럼 환했다.
세상을 환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불사조였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쉽게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불사조. 불사조가 움직일 때마다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비현실적인 장면에 사람들은 입을 벌린 채 하염없이 바라본다. 변이체의 침입 정도를 생각했던 그들에게, 불사조의 존재란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그들은 입을 벌렸다.
“이게 무슨···”
“플레이어입니다.”
장발을 묶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 관악산 그룹의 리더인 강태윤이었다.
“저, 저게 인간의 소행이란 말입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기프트를 사용해 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합니다.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마법을 사용한다든가, 정령을 불러낸다든가.”
“하지만 저건···”
자신들이 지금까지 본 것-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다. 그에게 질문을 던진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다. 강태윤도 그의 심정을 이해했다.
‘미치겠네, 어떤 괴물딱지야.’
그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기프트가 얼마나 많으면, 저런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자신도 기프트를 꽤 많이 들고 있다 생각했지만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자신의 쉘터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호재인지, 악재인지 그는 쉽사리 결론지을 수 없었다. 미지의 인물이 자신들에게 호의적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만약 자신들에게 적대적이라면,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을까?
‘······’
아무리 생각해도 부정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배달부’가 불침번들과 함께 산 정상으로 올라온 것은 그로부터 정확히 한 시간 뒤였다. 강태윤은 배달부를 바라본다. 불사조가 나타난 것과 그 유명한 배달부가 찾아온 것.
둘 사이에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으리라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아마 불사조를 소환한 것은 배달부겠지.’
그도 배달부의 영상을 본 적 있다. 그 당시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따라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한 달. 차이가 생각보다 많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배달부에게 천천히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악수를 받았다.
자신을 비롯한 플레이어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당당한 모습이었다. 설령 자신들이 적대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다는 자신감 때문이겠지.
하기야, 그 불사조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의 자신감은 당연한 것이라고 느껴졌다.
“강태윤입니다.”
“이진섭니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은데··· 안에서 하실까요?”
“좋습니다.”
이진서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나 플레이어들이 적대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심 걱정했던 그였는데, 다행히 그들의 리더는 말이 통하는 인물 같았다.
곧 그들은 강태윤의 숙소이자, 회의실로 사용되는 7급 안전 가옥 안으로 들어갔다.
***
“실례지만 혹시 아까의 불사조는···”
“아, 보셨나 보네요.”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그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숨기지 않고, 확실히 드러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놀람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형님,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도 될까요?”
강태윤의 말에 쓰게 웃으며 말했다.
“연세라고 불릴 나이는 아닙니다만··· 올해로 스물아홉입니다.”
“아, 스물아홉. 제가 스물여섯입니다. 말 편하게 하십쇼, 형님.”
저자세로 나오는 그. 솔직한 말로, 존대, 혹은 반존대가 더 편했지만 저쪽에서 먼저 권유했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다. 그동안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
“그래, 그러면 편하게 할게.”
“예, 형님. 본론을 꺼내기에 앞서, 간단하게 술이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술, 그러고 보니, 세상이 이렇게 되고 나서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원래부터도 술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고, 마실 여유가 없다는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잔하자.”
곧 허공에서 척 봐도 독해 보이는 위스키 한 병이 나온다. 얘, 혹시 나 술 먹고 뻗게 만들려 그러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술에 독을 탔다든가. 뭐,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상관없긴 하지만.
앱솔루트 배리어에, 기계 정령, 에코의 지원까지 받고 있다. 그가 보호막을 뚫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독을 탔다 하더라도 만독불침 칭호에, 압도적인 마력이 막아줄 테고.
곧 글라스에 위스키가 따라지자, 나는 망설임 없이 글라스를 들이켰다.
“그 독한 걸 원샷에···”
코끝이 찡하긴 했다.
“위스키 먹는 건 처음인데, 먹을 만하네.”
“저도 원샷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그는 단숨에 글라스를 들이켰다. 한 잔, 한 잔··· 잔이 병으로 변한다. 한 병, 두 병··· 조금씩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 이곳까지 찾아오신 이유는···”
“아우 얻은 기념으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게. 우리 그룹에 들어와라.”
원래는 조심스럽게 권유할 생각이었는데, 술기운 때문인지 직설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주워 담지 않았다. 어차피 말이라는 게 한번 뱉고 주워 담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형님이 대단하신 분인 건 알겠는데, 형님 그룹이 어떤 그룹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아, 형님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저도 이끄는 인원이 적지 않다 보니 신중할 수밖에 없어서요.”
“우리 그룹엔 대략 일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다.”
“일천 명···? 유지가 되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한마디로 그룹의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수용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소리다.”
사실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
강태윤은 갈등 어린 눈빛이었다. 나는 확실하게, 쐐기를 박기로 했다.
“내가 여기서, 우리 쉘터를 보여주면 들어오겠냐?”
“······”
“너도 그렇겠지만, 나는··· 시간이 없어. 앞으로 이틀 후면, 최하급 변이체가 하급 변이체가 될 거고, 다시 9일 뒤면 중급 변이체가 될 테니까.”
지금까지는 사람들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왔다. 하지만··· 놔뒀다간 죽을 걸 뻔히 아는데,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건 그렇죠. 저도 그래서 걱정이 많습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버텨나가고 있지만, 당장 내일이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니까요.”
“미안하지만 결정을 빨리 내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곳에 오래 지체할 시간은 없어.”
“형님, 그러면 저한테 딱 하루만 시간을 주십쇼.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싶지 않아서··· 사람들과 상의 후에 결정을 내려도 되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민혁아, 들었지?”
기계 정령, 에코가 S31에서 튀어나왔다. 그와 그의 그룹에 시간을 주는 건 주는 거고, 이쪽도 보여줄 건 확실히 보여줘야겠지.
- 예, 형님.
생소한 모습에, 강태윤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뭡니까, 형님?”
- 형님은 무슨 형님. 형님을 형님이라 부를 수 있는 건 나밖에···
“시끄럽고, 쉘터 모습이나 보여줘.”
에코가 가진 기능 중 하나인 시각 공유. 에코가 보는 것을 소환자도 볼 수 있고, 소환자가 보는 것을 에코 역시 볼 수 있다. 그렇게 본 것을, 영상으로 출력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곧 정민혁의 시각이 에코와 연결된다. 정민혁은 L 주상 복합 단지 위에 올라가 있었다. 쉘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쉘터 전체를 둘러싼 거대한 바리케이드들. 그 규모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곳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애초에 산하고 도시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산은 변이체들을 막아내기에 최적화된 지형일지 몰라도, 사람들이 주거하기에 좋은 공간은 아니다.
- 촌뜨기, 우리 쉘터다.
나는 에코의 입을 막아버렸다. 이게 다 된 밥에 어디서 재를 뿌리려고.
- 읍읍.
“이제 됐냐?”
강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합니다, 형님.”
“내일 다시 올 테니까 그때까지 준비 마쳐놔.”
강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까지 보이던 망설임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완전히 결정을 내렸다는 방증일 것이다.
“예.”
대략 이야기를 마친 우리는 안전 가옥 바깥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우리를 힐끔거린다. 아마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어차피 곧 알게 될 거다.
“피우냐?”
“아닙니다, 형님. 혹시 제가 불편하시면···”
“아냐, 아냐.”
나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설경을 내려다보며, 담배 연기를 들이마신다.
“형님, 저, 서울대 에너지 자원 공학과 수석 출신입니다.”
에너지 자원 공학과? 뭐, 재생 에너지 다루는 그런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서울대 중에서 수석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대단하다는 건 충분히 알겠다.
“제가 가진 미약한 지식이라도, 꼭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인재는 환영이다. 설령 나보다 기프트가 적을지라도, 지금의 쉘터를 이뤄낸 건 집단 지성의 힘이니 말이다.
- 내가 서울대는 못 나왔어도···! 과탑은···
뒤에서 에코가, 정민혁이 열폭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정순한 마력이 알코올을 모조리 분해해버린다. 혹시 되지 않을까 했는데, 이게 되네.
강태윤과, 그의 그룹과의 짧은 만남을 그렇게 마치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왔다. 연이은 활동에 피로가 느껴졌지만, VVIP 상점에서 피로회복제를 하나 구매하는 걸로 해결했다.
<피로 완전 회복제 4>
종류 : 소모품
등급 : 유일(Unique)
설명 : 전설의 연금술사, 하인켈이 개발한 피로회복제. 한 모금을 마시면 피로를 모두 해소할 수 있고, 한 병을 모두 마시면 확률적으로 마력이 0.005 상승한다고 한다.
한 병에 1,000기프트짜리 사치. 그러나 사치 좀 부리기로 했다. 돈으로도, 기프트로도 살 수 없는 유일한 것-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단숨에 들이켰다.
방금 전까지 느껴지던 피로감이 싹 사라지고, 청량함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높은 행운이 기적을 불러옵니다.]
[마력이 영구적으로 0.01 상승했습니다.]
그 와중에 마력 능력치가 오른 건 덤이다.
‘다시 가볼까.’
가볍게 산길을 주파하기 시작한다. 정상에서 입구까지 내려오는 데는 채 일분도 걸리지 않았다. 60이 넘은 민첩의 위엄이다. 다시 산 아래 세워놓은 디아블로에 탑승했다.
“몸이 부서져라 가보자.”
혼자 되뇌면서, 나는 또다시 어둠에 잠긴 도시로 나아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