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권두기는 이진서나 박영서처럼 대량의 기프트 보유자는 아니었다. 그 역시 다른 플레이어들과 마찬가지로 초기 기프트 보유량은 ‘0’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구원교가 있었다.
신의 말씀이라면 불구덩이에도 몸을 던질 정도의 열렬한 신봉자들이. 어떻게 보면 바른 마음 교회의 목사, 이장우와 비슷한 상황이라 말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이장우와 달랐다.
변이체로 변해버린 교주를 대신해, 교주에 오른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인근의 경찰서를 털어 총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최하급 변이체가 대부분이었기에 작업은 수월했다.
총기로 무장한 수백 명의 신도들은 닥치는 대로 강북을 휩쓸고 다녔다. 그 와중에 플레이어들도 수백 명 가까이 발견할 수 있었고, 그들은 대부분 반강제로 구원교에 합류했다.
권두기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변이체들이 더 강해질 것이라는 걸 예측했고, 더 강력한 화력을 가진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군부대를 털었다. 그 역시 성공적이었다.
구원교가 변이체를 처치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신도들에게 걷은 기프트를 통해, 권두기 역시 강해졌다. 한 달이 흐른 지금, 그는 상급 변이체도 손쉽게 상대할 정도로 강해졌다.
아니, 단순히 그만 강해진 것이 아니라, 구원교 전체가 강해졌다. 그는 걷은 기프트의 일부를 신도들에게 반환해, 신도들의 신체를 강화한 것이다.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강화된 신도들.
구원교를 막을 것은 없었다. 그나마 위협이 될 만한 것이라곤 같은 플레이어, 배달부. 권두기도 그의 존재를 주시하고 있었고, 정찰병을 파견한 적도 있었지만 강북으로 넘어오진 않았다.
그러나 권두기에게도 겨울은 찾아왔다. 혹한기와 함께, 떠오른 메시지. 앞으로 네 달 뒤, 최하급 변이체들이 모조리 최상급 변이체로 변한다는 말. 그는 처음으로 절망했다.
한국 인구가 대략 5천만. 그중 플레이어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변이체로 변해버렸다. 그를 위시한 구원교가 많이 처치하긴 했지만,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그중 십분지 일만 최상급 변이체로 진화한다 해도, 5백만이다. 그가 이끄는 신도들은 간신히 2천을 넘겼는데, 그의 2,500배다. 120일만 있으면 그 최상급 변이체들을 상대해야 한다.
그는 최상급 변이체를 본 적도, 상대해본 적도 없기에, 상급 변이체의 두 배 정도 강하다고 추정하고 결론을 내렸다.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구원교는 멸망할 거라고.
‘아니, 며칠도 아니지.’
운이 좋았을 때 며칠이요, 멸망에 걸리는 시간은 하루도 안 되는 시간일 가능성이 높았다. 권두기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대비해야 한다. 120일. 더 강해져야 한다.
“목사님, 전차 수리에 성공했습니다.”
이장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우리를 도우셨군요.”
다른 운송 수단들과 마찬가지로 전차 역시 고장 났지만, 수리 스킬을 습득한 기계공이 수리에 성공했다. 현대전의 핵심이라 불리는 전차. 최상급 변이체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차를 운용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기프트가 들어간다는 말이군요.”
“예.”
권두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프트의 중요성은 두말해봐야 입 아픈 사실이었다. 신도들을 통해 기프트를 확보하고 있었지만, 폭설로 인해 그 속도가 더뎌졌다.
매서운 추위에 의해 총기가 고장 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물론 수리 스킬을 사용하면 손쉽게 수리할 수 있긴 하지만 한두 번도 아니다 보니 인력 부족이 심했다.
수리 스킬을 추가로 습득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것도 기프트가 들어가는 일이었다. 식량과 식수를 보급하는 것도, 발전기를 돌리는 것도 전부 다 기프트가 필요하다.
기프트, 기프트, 기프트.
‘달란트도 아니고 이런 스캠 코인이 화폐가 돼버릴 줄이야.’
이것은 신의 농간인가. 그는 쓰게 웃었다.
“대책은 있으십니까?”
이번엔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던, 이장우가 슬며시 손을 들며 말했다. 바른 마음 교회의 목사였던 그는 지금은, 구원교의 맹렬한 신봉자를 자처하고 있었다.
“한 가지 생각해놓은 게 있긴 합니다.”
“오오, 역시···”
기대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는 구원교의 간부들에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입니다.”
“···전쟁?”
“여러분도 다들 아실 겁니다. 플레이어를 죽이면, 그 플레이어가 지닌 기프트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구원교에 대립하려 했던 플레이어들을, 혹은 반기를 일으키는 플레이어들을 직접 두 손으로 죽였던 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다른 간부들도 마찬가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곧 그가 몇 번 조작하자,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저번에 정찰병을 통해 확보한 영상입니다.”
영상 속, 거대한 화염 불길이 일었다. 당황했는지 헙, 하는 소리와 함께 스마트폰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러나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화염 불길 속을 걸어오는 한 남자.
“저 새끼는···”
이장우는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와는 상당한 악연이 있는 인물이었다.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배달부였으니까.
-물론 이진서가 알게 된다면 다소 억울함을 표할 일이지만.
“너튜브 영상을 통해 접한 분들도 이미 계시겠지만··· 저 남자는 배달부입니다. 그리고 배달부는 대량의 기프트 보유자로 추정됩니다.”
듣고 있던 간부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코인 채굴기로 변한 이 세상 속에서, 기프트는 힘,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배달부는, 이진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틀림없이 대량의 기프트 보유자이리라.
“확실히···”
“찬성입니다.”
“하지만 교주님, 저희가 그를 죽일 수 있을까요?”
“개인이 아닌 ‘우리’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강해 봐야 미사일을 정통으로 맞고도, 버틸 수는 없으니까.”
“오오, 미사일이라니.”
그들은 밝은 표정을 지었다. 미사일. 아무리 인간이 강해진다 한들, 미사일을 막아낼 수는 없을 거라는 것이 그들의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뭐, 어디까지나 예시를 들었을 뿐, 대물 저격총으로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군부대에서 얻은 총기 중에는 대물 저격총도 들어있었다. 원거리에서 기습을 가한다면, 아무리 강력한 플레이어라 하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전쟁··· 언제 일으킬 계획이십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요.”
그는 문득 여자를 바라본다. 권총으로 무장한 채 문 옆에 서 있는 여자. 경찰 출신이었던 그녀가 구원교에 합류한 지 벌써 한 달째다. 어째서인지 그녀는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여자는 딱딱하게 대답했다. 권두기도 그녀에게 더 묻지는 않았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야기는 대충 마친 거 같으니, 다들 일어나시죠.”
권두기가 나간 후, 방을 지키고 서 있던 여자, 최유미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이진서와 헤어진 후, 그녀는 인터넷을 통해 접선한 플레이어들과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문제점이 있다면, 그 플레이어들이 구원교라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이비 종교라는 걸 알게 된 이후에도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룹에 적응하기 위해 애썼다.
그녀는 달라졌다. 아니, 이 세상이 그녀를 달라지게 만들었다. 그녀가 간부들을 지키는 호위역이라는 ‘특출한’ 자리에 오른 건 그러한 방증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전쟁이라니···’
배달부. 이진서. 이러다간 영락없이 그녀를 구해준 은인이 죽게 생겼다. 그리고 그의 그룹은 괜찮을까? 강순철은? 아니, 괜찮을 리 없지. 그녀는 권두기를 잘 알고 있었다.
노예로 일하든가, 모조리 죽일 것이다.
‘막아야···’
하지만 그녀는 곧 결론을 내렸다. 그녀가 막을 방법은 없다는 것을.
‘적어도 알려야 한다.’
구원교를 나와서, 이진서에게, 그의 그룹에게 알려야 한다. 목숨이 위협받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동작 고등학교에서 구출한 학생들을 데리고, 임시 쉘터로 이동했다. 동작구 중앙에 위치한 대학교 강연장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 플레이어들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데려갈 생각이었다.
“아저씨, 안 돌아오는 거 아니죠?”
그 사이, 친해진 홍현기라는 남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녀석은 이 작은 그룹의 리더였다. 총기도 보유하지 않은 그들이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판단 덕분이라고.
“형이라 불러, 인마. 너보다 나이 어린 애도 오빠라 부르는데.”
“헐.”
“어차피 사람 구할 때마다 여기로 돌아올 거다. 밥 먹으면서 기다려.”
나는 그들에게 식량과 식수를 건넸다. 그들이 요 며칠간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게 깊이 고개를 숙임으로써,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형. 꼭 기다릴게요.”
다시 오토바이에 타고, 시내로 나왔다. 여전히 눈은 퍼붓고 있다. 지나온 길은 어느새 눈으로 뒤덮여있다. 조금 눈이 덜 온다, 녹는다 싶었더니, 미끄러운 빙판길로 변해버렸다.
‘거 날씨 한번 더럽네.’
배달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를 당해도 괜찮았지만, 유독 서러운 날이 있었다. 바로 눈이 오는 날이었다. 빙판길에 미끄러지는 오토바이. 생사의 위협을 느끼는 그 순간이면.
내가 정녕 이런 날까지 일을 해야 하는가, 하고 생각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뭐, 익숙해진 나중에는 별생각 없긴 했지만··· 감상에 잠겨있던 내게 하급 변이체가 달려들었다.
눈을 헤치면서 달려옴에도, 속도는 거의 그대로였다. 내 코앞까지 다다른 녀석이 나를 향해 도약했다. 그러나 녀석은 내 주위를 둘러싼 보호막에 튕겨져나가고 말았다.
‘앱솔루트 배리어’였다. 녀석은 마치 불구대천의 대원수를 보기라도 하듯, 울음소리를 흘리며 계속 보호막을 긁어댔지만··· 최상급 변이체도 아닌 녀석이 뚫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시스템이 말하기를, 특수한 개체가 아니고서는 최상급 변이체조차 흠집조차 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게 바로 마력 84의 위엄이었다. 나는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퍽! 머리가 으깨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게 지금 기분 나쁘니까 건드리지 말지.”
괜스레 혼잣말을 하면서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탄다. 눈길을 헤치면서, 한편으로는 S31을 살피면서. 곧, 푸른색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여럿이 아닌, 단 하나였다.
‘위치가···’
4성급 D호텔. 푸른색 점은 틀림없이 그곳에 있었다. 목표가 정해진 나는 속도를 높였다. 디아블로. 무려 ‘희귀’ 탈 것인 녀석은 눈길을 거칠게 헤치면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