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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26화 (26/236)

26화

[2023-02-17]

세계가 코인 채굴기로 변한 지 정확히 한 달째. 하늘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의외는 아니었다. 2월달에도 종종 눈이 내리고, 3월··· 심지어 4월에도 눈이 내린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눈이, 평범한 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눈은 멎지 않았으니까. 진정한 겨울이 찾아왔다.

[앞으로 한 달간 혹한기입니다.]

[변이체들에게 동상 면역 특성이 생깁니다.]

“으아, 진짜 겁나 춥네.”

김하나는 코트를 걸쳤음에도 불구하고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연신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 때마다 입김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이내, 의아한 얼굴로 물어온다.

“진서 씨는 못 느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60에 도달한 체력 덕분인지, 추위가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뭐, 설령 추위를 느꼈다 하더라도 추위를 막아주는 아이템을 구매하면 그만이지만.

“딱히 못 느끼겠네요.”

“괴물이라서 그래요. 저 빌어먹을 눈이 한 달 내내 내린다니···”

“빨리 피우고 내려가죠. 그러다 진짜 얼겠네.”

건물 아래로 내려왔다. 사람들은 한창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눈을 치우고, 바닥에 제설제를 뿌리고 있다. 국회의원, 박승기가 노구의 몸을 이끌고 그들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뭐, 어떻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지긋지긋하군. 마치 내 군 시절을 연상케 만들어.”

그러자 김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의원님, 군대 안 갔다 오신 걸로 아는데요?”

“···어허! 누가 그런 유언비어를···”

박승기의 얼굴이 붉어진 것은 추위 때문일까?

“인터넷에서 봤던 거 같은데? 아닌가?”

“다 유언비어야, 유언비어!”

나는 역정 내는 그를 바라보다가, 짤막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조금만 더 수고해주십쇼, 의원님.”

“나만 믿게.”

“저도 이만 들어가 볼게요. 점심 만들 시간이라.”

“하나 씨도 수고하십쇼.”

김하나를 뒤로, 내가 향한 곳은 바리케이드였다.

약 이주에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는 천호동을 아우르는 바리케이드를 쌓는 데 성공했다. 약 6m 높이의 장벽. 어지간한 변이체는 넘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높이.

물론 변이체가 장벽을 넘어 들어온 적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며칠 전, 상급 변이체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던 적이 있었다. 다만 그것은 녀석의 특수성- ‘도약력’에 기인할 뿐, 다른 상급 변이체는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바리케이드 앞에는 변이체들이 몰려 있었다.

분명 어제 깔끔하게 정리하고 잤는데, 언제 자리를 다시 메웠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하기야, 구성원 중 하나인 고등학교 생물 교사가 내게 얘기한 적이 있다.

변이체의 움직임은, 플레이어를 따라 움직이는 거 같다고. 즉, 쉘터 내에 플레이어가 많으니, 변이체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미였다. 방벽에 걸터앉은 채, 유심히 내려다봤다.

종류도, 생김새도 가지가지다. 마치 인간처럼. 아니, 그들이 한때 인간이었다가 변이된 존재이니 인간을 닮아있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문득 생각이 든 나는 시스템에게 물었다.

“변이체들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도 가능한가?”

[채굴자의 의지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가능은 하다는 소리네.”

[······]

“얼마지?”

[시간 회귀의 물약 - 100,000기프트]

나는 여경, 최유미와의 일을 회상했다. 변이체로 변해가던 그녀의 동생의 치료비가 50기프트라고 했었지. 기실, 50기프트도 비싸다.

최하급 변이체가 0.1기프트를 준다. 물론 현재 내 채굴량 111%를 생각하면 0.211기프트를 주는 셈이지만, 그럼에도 200마리를 넘게 잡아야 얻을 수 있는 기프트 양이다.

그런데 100기프트도 아니고, 1,000기프트도 아니고··· 100,000기프트라니. 물론 작정하고 모은다면, 아주 못 모을 양은 아니지만···

[추천 드리지 않습니다.]

“···그래.”

아무리 내가 예전의 세상을 그리워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현실 감각은 있었다. 변이체 하나를 치료한다고 해서, 사람으로 되돌린다고 해서, 이 세상을 되돌리지는 못한다는 것.

그럴 만한 여유가 있다면, 차라리 남아있는 사람들을 챙기는 게 더 낫다. 나를 향해 허우적거리는 변이체들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손을 들었다. 화르르.

일순간 장벽을 압도할 정도로 거대한 불길이 솟았다. 파이어 월. 변이체들은, 한때 사람이었던 존재들은 한순간에 잿더미로 화한다. 그들의 목숨은 기프트로 환원돼, 내게 들어온다.

***

[채굴 난이도가 올라갔습니다.]

[변이체들의 진화 조건이 하향 조정(-90%)됩니다.]

[변이체들이 자연 진화하기 시작합니다.]

[최하급 변이체 > 하급 변이체(3일)]

[하급 변이체 > 중급 변이체(9일)]

[중급 변이체 > 상급 변이체(27일)]

[상급 변이체 > 최상급 변이체(81일)]

아무래도 ‘채굴자’라는 놈이 혹한기로는 만족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떠오른 메시지. 간단한 메시지였고,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앞으로 변이체가 자연 진화한단다.

최하급 변이체가 하급 변이체로 변하는데 3일, 하급 변이체가 중급 변이체로 변하는데 9일, 중급 변이체가 상급 변이체로 변하는데 27일, 상급 변이체가 최상급 변이체로 변하는데 81일.

즉, 지천에 깔린 최하급 변이체가 모두 다 최상급 변이체로 변하는 데 고작 120일, 4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물론 최상급 변이체라고 해도, 지금의 나는 손쉽게 상대할 수 있다.

그러나 최하급 변이체의 물량을 생각하면 저것들이 모두 다 최상급 변이체로 변하는 날엔··· 장담하지 못한다.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란 것이다.

‘내게는 좋다고··· 말해야 하나?’

최하급 변이체가 0.1기프트, 하급 변이체가 0.5기프트를 준다. 즉, 3일만 있으면 기프트 수급량이 다섯 배로 늘어나는 셈. 아니, 9일만 있으면? 중급 변이체는 3기프트를 준다.

하급 변이체의 30배다. 그리고 나는 중급 변이체 수백 마리를 가볍게 학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상급 변이체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상급 변이체가 지닌 기프트는 50기프트.

기프트 수급량이 못해도 지금의 수십 배 ‘이상’ 늘어난다. 그러나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이것은 호재인가, 악재인가 구분할 수 없었다. 세상은 격동(激動)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변이체들의 첫 번째 진화까지 D-3.

L 주상 복합 단지로 돌아가자, 정민혁이 허겁지겁 뛰쳐나왔다.

“형님, 보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떻게··· 할까요?”

“하급 변이체나, 중급 변이체까지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내 말에 정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들은 방벽을 넘을 수 없다고, 형님께서 말씀하셨었죠.”

“하지만 상급 변이체부터는··· 넘을 수 있는 개체도 존재하지.”

모든 상급 변이체가 넘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넘을 수 있는’ 개체도 있다.

이른바 가능성의 문제였다. 상급 변이체가 드문 지금에야 그런 개체가 드물지만, 상급 변이체가 흔해진다면 그런 개체 역시 흔해질 확률이 높다.

즉, 천호동 일대를 아우르는 이 쉘터가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간은··· 최하급 변이체가, 상급 변이체가 되기까지 39일. 한 달, 조금 넘는 기간이었다.

길다면 길다고 말할 수 있는 기간이지만, 짧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도 이런데, 바깥은 죽어나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다가 플레이어가 ‘전부’ 죽게 생겼다. 세상에 우리만 남겨지게 되는 것이다. 구출할 것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야 했다.

“외부의 플레이어들을 구출하려면 서둘러야겠지.”

“눈도 오는데··· 큰일이네요, 정말.”

“나가봐야겠다.”

발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형님, 걱정은 안 하지만 그래도 조심하십쇼.”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평범한 오토바이가 아니다. 나는 김민수에게 유일 등급의 제작 스킬을 투자했고, 그는 나를 위한 전용 오토바이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디아블로 MK1]

종류 : 탈것(Vehicle)

등급 : 희귀(Rare)

내구 : 125/125

기능 : 속도 Lv.3, 부스터 Lv.2, 쉴드 Lv.2, 오토 쉴드 Lv.2

눈길을 거침없이 달릴 수 있는 잔혹한 악마. 디아블로는 김민수가 붙여준 이름이었다. 나는 시동을 걸었다. 드드드. 거친 떨림과 함께 곧, 오토바이가 눈길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

한 무리의 학생들이 유리창 너머로 지상을 내려다본다. 하늘에 쌓이는 눈. 운동장은 어느새 하얗게 물들어 있다. 과거였다면, 그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내며 나가 놀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세상이 코인 채굴기로 변했고, 그들은 변이체들에게 쫓겨 하루하루 간신히 살아나가는 약자들이었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

학교에서는 시범적으로 농원을 운영했다. 식량은 증발했지만 농원에 심어진 야채들은 다행히 멀쩡했고 그걸 먹어가며 버텼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마지막 식량이었다.

게다가 수도와 전기가 끊기며, 학교 내의 난방 역시 뚝 끊어졌다. 추위를 증명하듯 그들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

“그냥, 지금이라도 다 같이 죽을까?”

“······”

“변이체 새끼들한테 죽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낫잖아?”

말을 꺼낸 여학생은 눈물을 흘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난 그렇게 못 해.”

“차라리 지금이라도 학교를 떠나는 게 어떨까?”

“떠났었잖아.”

떠났었다. 그리고 실패했다. 변이체들은 많았고,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도망치고 말았다.

“누군가 도우러 오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남학생이 퉁명스럽게 말한다.

“씨발, 이런데 누가 도우러 오겠냐. 우리 빼고 다 죽었는지도 몰라.”

“······”

자살을 고민할 정도로,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주위를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의 굉음이 들려온 것은. 무언가 폭탄이 터진 것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오토바이···?”

멍하니 바라본다. 두 눈으로 보고 있지만, 믿을 수 없었다.

“오토바이다.”

한 대의 오토바이가 운동장을 질주하고 있다. 변이체들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누구지?”

“딸배 아저씨 아닐까? 마지막으로 봤을 때, 사람들을 구하고 다닌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살았다.”

그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저 아저씨가 우리를 구해줄까?”

“뭐라도 해야지. 가자, 얘들아. 우리가 있는 걸 모를 수도 있어.”

그들은 허겁지겁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학교 크기만 한 거대한 화염의 벽이 변이체들을 모조리 불사르는 모습을. 그들은 어버버 멈춰 섰다.

곧, 헬멧을 걸친 한 남자가 그들에게 손짓했다. 당연하게도, 남자의 정체는··· 이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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