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일식이 끝났고, 영령 빙의가 끝났고, 내가 들고 있던 아르고스도 사라졌다. 파티 타임은 끝났다. 붉은 태양 아래 드러난 아스팔트 도로는 변이체의 잔해들로 덮여있다.
나는 오토바이 옆에 비스듬히 기댄 채, 담배를 입에 물었다. 강남구에서 살아본 적은 없어도, 배달 차 몇 번 온 적이 있었다. 수백만 명이 지나다니던 서울의 허브(Hub).
이렇게 변해버릴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파츠츠. 담배 끝이 타들어 가며, 말라비틀어지는 소리를 낸다. 몇 번 담배를 음미하던 나는, 하수구에 담배꽁초를 던졌다.
오물로 얼룩진 하수구에 담뱃재가 뿌려진다.
이내, 오토바이는 출발한다. 아직 강남구에서 할 일이 남았다. 변이체들은 얼추 처치를 마쳤지만, 플레이어들은 아직 남아있을 것이다. 그들을 구출해서, 쉘터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강남구를 꽤 많이 돌아다녔지만, 플레이어들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설마 모두 죽어버린 건 아닐 테고··· S31의 탐지 범위가 작아, 발견하지 못한 걸까.
[S31의 스마트 워치 기능을 강화하겠습니까?(현재 3회)]
간만에 S31의 스마트 워치 기능을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그동안 써먹은 것만 해도, 본전은 한참 전에 뽑고도 남았다. 추가로 투자할 만한 값어치는 충분했다.
[스마트 워치 +10]
무려 1000기프트를 지불해 스마트 워치를 10강화했다. 설마 5강화부터 확률 강화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높은 행운 덕에 10강화까지 성공할 수 있었다.
하기야, 행운에 쏟아부은 기프트를 생각하면 당연한 건가 싶긴 했지만···
‘그나저나··· 행운을 올려주는 장비 아이템도 있나?’
근력이나, 마력을 올려주는 아이템이 있는 것처럼, 행운을 올려주는 아이템 역시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VVIP 상점에서는 모든 상품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행운을 올려주는 장비 아이템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다만?’
[행운을 올려주는 아이템은 VVIP 상점에도 몇 종류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가격이 비싼 축에 속합니다.]
‘비싸다라···’
어차피 지금 당장 살 생각은 없었다. 행운 때문에 ‘득 봤다’고 느낀 것은 카드깡을 할 때가 전부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10강화된 스마트 워치 기능을 사용했다.
3강 스마트 워치는 반경 250m의 변이체와 플레이어들의 존재를 살필 수 있었다. 하지만 10강 스마트 워치는 무려 반경 2km의 변이체와 플레이어들의 존재를 살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레이더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남구가 훤히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내, 푸른색 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한 개가 아닌, 무려 수십 개에 달하는 푸른색 점을.
이들은 한 개의 그룹으로 뭉쳐 있었다. 멸망 후에 뭉친 건지, 아니면 멸망 전에 뭉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들의 상황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알아볼 필요성을 느꼈다.
만약 그들의 상황이 좋지 못하다면,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쉘터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위치가··· D미디어 본사인가.’
오토바이가 출발했다. 방금 전까지 내가 썰어 넘긴 변이체들의, 잿더미를 밟으면서. 순식간에 도로를 가로지른 오토바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D미디어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입구에 다가갔다. 입구는 막혀있었다.
‘응?’
<6급 바리케이드>
9급도, 8급도, 7급도 아닌··· 6급 바리케이드로.
‘······?’
순간적으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6급 바리케이드. 그것이 여기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 이외의, 다량의 기프트를 보유한 플레이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기야, 뭐 생각해보면 있다 하더라도 이상할 건 없었다. 코인 광풍 때 기프트 코인에 투자했던 이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중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몇억을 꼴은 호구도 있겠지.
나만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중2병은 코인으로 다 날림으로써, 금융치료 됐다.
‘6급 바리케이드를 설치할 정도의 누군가가 있다면, 굳이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살아가겠지.’
‘나’라는 존재는 어쩌면, 이들에게는 불청객일지도 모른다.
왜, 좀비 영화에서도 좀비보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더 위협일 때도 있지 않은가. 돌아갈까, 말까 고민하던 나는 우선 안면 정도는 익혀두기로 했다. 강동구, 강남구. 서로 가깝다.
자연스럽게 활동 영역 역시 겹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내가 피하려 해도, 언젠가는 마주치게 될 사이다. 나는 D미디어의 건물을 올려다보며 가볍게 외쳤다.
“생존자 있습니까?”
곧 사람들이 유리창 밖으로 이쪽을 내다본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를 발견한 그들의 표정이 좋지 못하다. 그들 중 한 여자는 내게 손사래를 치는 이들도 있었다. 손사래···
환영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이런 세계가 돼버린 후, 사람들을 발견할 때마다 내가 느낀 감정은 ‘반가움’이었는데.
그러나 그들은 곧 사라진다. 곧 한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말끔하게 생긴 남자. 전형적인 회사원의 얼굴을 연상케 만든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이 집단의 리더임을 깨달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저기, 생존자?”
“예.”
“어디서 오셨습니까?”
“강동구에서 인사차 들렀습니다.”
“아, 강동구··· 어디서 본 거 같은데. 혹시 인터넷 그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올라와서 잠깐 차라도 한잔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좋습니다.”
조금 위화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바리케이드 문이 열렸고,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비상구 계단 옆에는 남자 둘이 서 있었다.
남자는 앉아있다가, 나를 보고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 사람?”
“예.”
“······”
그들의 반응 역시, 위화감이 느껴졌다. 대체 이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들의 수상쩍은 얼굴 표정을 살피며, 나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올라가서 차 한잔하러 왔습니다.”
“···예, 이리로 오십시오.”
나는 그들을 따라 비상구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인 9층 ‘직원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까 창문을 통해 봤던 사람들이 서 있었다.
마치 군대처럼, 일렬로 도열한 채. 그들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두려움이라···’
대충 상황이 그려진다. 현대 사회에서도 힘의 논리는 냉철하게 적용된다. 힘이 있는 자가 힘이 없는 자의 위에 서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하물며 이런 세계에서는···
힘이 있는 자가 마음을 먹는다면, 힘이 없는 자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다. 힘을 가지고 있다면 중세 시대의 왕처럼 군림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정작 나는 그렇게 될 생각이 없지만.’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곧 안쪽에서 남자 하나가 걸어나온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방금 전 내게 올라와서 차 한잔하자고 말했던 ‘그 남자’다.
그는 내게 악수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박영서입니다.”
“이진서입니다.”
박영서와의 첫 만남이었다.
***
세상이 코인 채굴기로 변해버린 후, 강남구에 거주하던 수많은 시민들은 대부분 변이체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D 미디어의 직원들만은 어째서인지 재앙을 피해갈 수 있었다.
사장과 직원 포함 80명. 리더는 자연스레 사장인 김주원이 맡게 됐다. 김주원의 지시하에 사람들은 힘을 합쳐, 건물을 폐쇄하고 외부의 변이체들을 하나둘씩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
회사 안에 물자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조금 곤란하긴 했지만, 그때까지도 상황은 분명히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박영서가 나타났다. 김주원은 초라한 몰골의 그를 무시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목숨을 잃었다.
- 어디 쓰레기 같은 게. 네가 아직도 내 사장인 줄 아냐?
- 너는 그냥 쓰레기다, 쓰레기.
그 장면은 다른 직원들도 모두 보고 있었지만 그를 말린다거나 하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말릴 수 ‘없었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그 정도로 그는 잔혹하고, 또 신속하게 김주원을 살해했다.
- 이제부터는 내가 리더다.
몇몇 남직원들이 반기를 들었지만, 김주원과 마찬가지로 잔혹하게 살해됐다. 그렇다고 그를 피해 달아나자니, 바깥에는 변이체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진퇴양난. 그들이 택한 생존 방식은.
결국 박영서에게 복종하는 것이었다. 그는 가장 강했으니까. 직원들 그룹도 둘로 갈렸다. 박영서에게 진심으로 복종하는 부류와, 마지 못해 그의 말에 따르는 부류.
박영서는 전자에게는 포상을 확실하게 내렸다. 기프트로. 그리고 후자에게는··· 벌을 내리진 않았지만, 포상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위험한 임무를 맡기기도 했다.
아니, 애초에 그 위험한 임무는 그의 여흥을 위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변이체를 따돌리는 죽음의 달리기라든가. 사옥에서 500m 떨어진 건물에 손을 찍고 온다든가.
‘임무’에 의해 희생된 직원의 숫자만 셋이었다.
“부장님, 정녕 이렇게 저놈한테 우리 목숨을 맡길 생각이세요?”
“그럼 뭐 어쩌겠나··· 박영서는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데.”
“회삿돈이나 빼먹은 저런 사회의 쓰레기한테···”
김 부장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꼈다. 혹여나 누군가 박영서에게 찌르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모양새였다. 그에게 말을 꺼낸 직원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머리가 날아갔다. 꺄악. 여직원들의 짧은 비명. 그러나 비명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진짜 ‘공포’를 봤을 때, 사람은 소리를 지를 겨를도 없이 입을 다문다.
“다들 뭘 그렇게 좋은 이야기를 나누시나?”
박영서가 그들에게 진짜 공포였다.
“아니, 그냥 이 친구가 실언을 해서···”
“부장님은 제가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잘하세요.”
“···네.”
그 모습은 직원들도 모두 바라보고 있었다. 이진서가 나타난 건, 박영서에게 불만을 토로하던 남직원의 사체가 사옥 앞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거의 직후였다.
“배달부···?”
“배달부? 인터넷에 나온 그 사람이다.”
그들도 이진서의 영상은 봤다. 물론 박영서에 의해, 통신기기가 압수돼서 모든 영상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도움을···”
“도움? 무슨 도움? 우리한테는 박영서가 있잖아?”
의견을 제시했던 직원은 입을 다물었다. 도움 요청, 말이 쉽다. 만약 도움을 요청했는데 배달부가 안 들어주면? 아니, 설령 들어줬다 하더라도 박영서를 이길 수 있을까?
‘박영서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몇몇 아직 정신이 깨어 있는 이들은 배달부를 위해, 진심으로 손사래를 쳤다. 가라고. 이곳에 오면 안 된다고. 박영서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