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마도사, 벨루가가 빙의했을 때는 유일 등급 스킬은 ‘이프리트의 축복’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카론식 검술’, ‘폭식의 대검, 아르고스’, 이렇게 두 개다.
<카론식 검술>
종류 : 패시브(Passive)
등급 : 유일(Unique)
설명 : 방랑기사 카론이 직접 창안한 검술. 실전에 특화된, 어떠한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고급 검술이다. 검을 사용할 경우, 근력에 비례해 검의 위력이 50% 상승하고, 검에 마력을 불어넣을 경우, 마력에 비례해 최대 50%까지 추가로 위력이 상승한다.
<폭식의 대검, 아르고스>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유일(Unique)
설명 : 폭식의 대검, 아르고스를 소환한다. 사용자의 마력이 모두 떨어질 때까지 아르고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①폭식 : 아르고스가 벨 때마다 영혼을 흡수한다. 최대 100개의 영혼을 흡수해 사용자의 능력치를 강화한다. ②방출 : 모은 영혼을 일제히 방출한다. 일정 범위에 마력에 비례한 피해를 입힌다.
스킬 설명을 읽던 나는 엘레스틱 완드를 내려놓고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카론이 들고 있던 거대한 대검이 내 손에 소환된다. 이게 바로 폭식의 대검, 아르고스.
그 상태에서 가볍게 휘두른다.
카론식 검술에 의해 강화된 아르고스는 단숨에 지면을 박살 냈다. 아니, 박살 내는 걸 넘어 주변에 저저적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닌데, 경이로운 위력이다.
‘전력을 다했다면 아예 건물 자체가 붕괴되지 않았으려나?’
이게 바로 근력 51의 위력인가. 이 정도만 해도 변이체를 사냥하는 데는 전혀 문제없겠지만, 근력을 더 끌어올리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순수한 욕심이었다.
‘남은 기프트가 얼마나 되지?’
[보유 기프트 : 7,856.5675]
7,856개. 많은 양이라 할 수는 없다.
능력치를 50에서 51로 올리는데 요구되는 기프트는 7,776개. 한마디로 능력치 1 올리면 그걸로 땡이다. 하지만 장비 구매 쪽으로 넘어간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근력 올려주는 유일 등급 세트 장비 추천해줘.’
[용기사의 흑철 투구(U) - 400기프트]
[용기사의 흑철 갑주(U) - 600기프트]
[용기사의 흑철 신발(U) - 400기프트]
[360기프트를 지불해, 용기사의 흑철 투구(U)를 구매했습니다.]
[540기프트를 지불해, 용기사의 흑철 갑주(U)를 구매했습니다.]
[360기프트를 지불해, 용기사의 흑철 신발(U)를 구매했습니다.]
내 앞에 놓인, 번쩍거리는 흑색 장비들.
나는 장비들을 보며 생각했다. 설마 장비를 일일이 바꿔 입어야 하는 건가. 아니, 바꿔 입어야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보관하는 것이 문제다.
좋은 장비 사놓고, 막상 필요할 때 못 꺼내 입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프리셋 기능 같은 거 없나? 스킬이라도 상관없는데.’
[‘만다라바의 옷장’ 스킬을 습득하면 옷장에 저장 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럼 구매해줘.’
[빈 스킬 슬롯이 없습니다.]
[스킬을 삭제하거나, 추가 스킬 슬롯을 해금해야 합니다.]
나는 삭제할 스킬로 ‘위압’을 선택했다. 괜찮은 디버프 스킬···이긴 하지만, 사실 쓸모는 별로 없었다. 굳이 디버프를 걸지 않아도, 변이체를 처치하는 건 쉬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고급 스킬이니, 필요해지면 또 습득하면 된다는 심산에서였다.
[위압(S)을 삭제했습니다.]
[만다라바의 옷장(R)을 습득했습니다.]
<만다라바의 옷장(R)>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희귀(Rare)
설명 : 황실 재단사, 만다라바의 옷장. 옷장에 최대 5개의 장비 프리셋을 저장하고, 원할 때마다 꺼내 착용할 수 있다. 옷장 안에 보관된 장비는 항상 최상의 상태로 보관된다.
만다라바의 옷장을 사용한다. 그러자, 허공에 생겨나는 문. 문을 열고, 방금 얻은 용기사의 흑철 세트를 안에 넣었다.
[만다라바의 옷장 1번 프리셋에 저장됩니다.]
[현재 착용하는 장비와 교체를 할 경우, 교체된 장비는 1번 프리셋 안에 보관됩니다.]
‘1번 프리셋으로 교체.’
이렇게 하는 건가?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새 나는 용기사의 흑철 세트를 걸치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재밌네. 능숙해진다면 전투에 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용기사의 무장’ 세트 효과가 발동합니다.]
<용기사의 무장 3/3 : 근력 +1.5, 체력 +1.5]
[근력이 60에 도달했습니다.]
[‘거인의 힘’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거인의 힘>
등급 : 희귀(Rare)
조건 : 근력 능력치가 60에 도달할 것.
보상 : 기프트 채굴량 +9.5%
‘가볼까.’
건물 아래로 내려온 나는 아르고스를 손에 든 채 오토바이에 탑승한다. 부릉. 시동을 걸고, 오토바이가 출발한다. 어느새 건물 앞에 몰려든 변이체들이 나를 향해 달려 들었다.
그 상태에서 아르고스를 가볍게 앞으로 뻗는다. 아르고스에 닿을 때마다 서걱, 고기 잘리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토막 나는 변이체들. 마치 중세 시대의 기사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오늘 목표는 강남구인가.’
아직 송파구에도 변이체가 남긴 했지만, 영령 빙의를 사용한 한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사냥할 생각이었다. 을씨년스러운 도로를 헤치고, 내가 탄 오토바이는 강남구에 도착했다.
S31의 스마트 워치 기능을 사용해, 주변에 플레이어들이 있는지 없는지 살핀 후, 파이어 월을 사용했다. 펑! 펑! 거대한 불의 벽이 솟아오르며, 연신 폭발이 일어난다.
건물에서 변이체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 수천··· 헤아릴 수도 없는 숫자의 변이체들이. 그러나 긴장감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달리기 시작한다.
중급 변이체가 개구리처럼 도약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녀석은 나를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나는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아르고스를 휘둘렀다. 갑주에 닿은 녀석의 손톱은···
그대로 부러져버렸다. 반면 내 아르고스는 녀석의 상체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녀석의 몸에서 빠져나온 붉은 구체가 아르고스에 흡수된다. 설명에 쓰여 있던 ‘폭식’ 옵션이었다.
[모든 능력치가 0.02 상승합니다.]
최대 100개의 영혼을 흡수할 수 있다고 했으니, 모두 흡수하면 능력치 2가 상승하는 셈인가. 나쁘지 않다. 아르고스를 다시 쥐고, 달려오는 변이체들을 향해 휘두른다.
변이체들은 많았지만,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게임이었다. 녀석들은 1.5배 강해지긴 했지만, 그동안 나는 1.5배가 아닌, 수십 배로 강해졌으니까. 일방적인 학살극이 펼쳐졌다.
[폭식의 대검, 아르고스가 흡수한 영혼이 최대치가 됐습니다. ‘방출’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나는 만다라바의 옷장을 사용해, 1번 프리셋을 불러왔다.
<대마도사 옐레나의 부름 3/3 - 마력 +3.0>
그리고 아가멤논의 가면까지 사용했다. 방출의 피해량은 마력에 비례한다고 했었다. 마력을 극대화시켜서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대마도사 옐레나 세트를 착용한, 내 마력은 61.
‘엘레스틱 완드까지 착용했다면 64였겠지만···’
어차피 폭식의 대검, 아르고스를 착용하고 있으니,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방출.”
낮게 중얼거리자, 아르고스의 검신이 녹색으로 물든다. 다음 순간, 사방에 독무(毒霧)가 펼쳐진다. 닿는 것을 모조리 녹여버리는 살인적인 독안개. 변이체들은 모조리 녹아내렸다.
‘이게 방출···’
곧 독무가 사라진다. 나는 다시 만다라바의 옷장을 사용해 프리셋 1, 용기사의 흑철 세트를 불러왔다. 수백, 수천 마리를 죽였음에도, 변이체들은 여전히 많다.
세상을 집어삼킨 어둠. 그 속에서 태양처럼 환히 빛나는 불의 벽. 강남구 전역에 있는 변이체들이 빛을 따라 모여들고 있었다.
***
남들이 다 그렇듯, 박영서 역시 코인 광풍에 달려들었다. 적금을 깨고 넣은 돈이 작전 세력에 당해 한순간에 날아갔고, 대출을 받았지만 역시 날아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순간에 빚더미에 앉게 된 그가 눈을 돌린 곳은 회사였다. 손대면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그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따서 갚으면 된다···’
자신은 투자를 못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시드가 작아서 기회가 나지 않았을 뿐. 이제 10%만 따면 대출금은 모두 갚는다. 그리고 그대로 돌려놓기만 하면···
완전 범죄를 꿈꿨던 그였지만, 당연히 실패로 돌아갔다. 코인의 가격이 내려갔으니까. 올라갈 것만 생각하고, 내려가는 건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결국 그의 횡령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들통났고··· 그는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징역 5년 형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로부터 민사 소송까지 걸린 그는 징역을 살고 공금까지 모두 다 물어줘야 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씨발, 인생 더럽네.’
이때쯤 돼서는, 박영서는 스스로를 탓하기보다는 회사를 탓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내 코인은 떡상해 있을 거다.’
그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 해외 거래소에 코인들을 옮겨 놨다. 그리고 몇 번이나 세탁을 거친 그 코인들은 회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시간이 흘러 흘러 4년 차.
이제 출소까지 단 일 년만을 남겨둔 시점. 떠오른 메시지와 함께, 세상이 코인 채굴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는 기프트 부자가 되었다.
[보유 기프트 : 100,000]
구치소 내부의 다른 죄수들이 모조리 변이체로 변해버렸다.
처음에는 공포에 질린 채 정신없이 도망 다니던 그였지만, 곧 기프트를 사용하면 그들을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 세상은 내가 바라던 세상이야.’
그는 구치소 내부의 변이체들을 모조리 살해하고, 자신의 발로 구치소를 나설 수 있었다. 그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회사였다. 강남구에 위치한 D미디어.
구치소부터 D미디어까지 50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서, 그는 마침내 도착했다. 놀랍게도 회사 안에는 그처럼 각성한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회사 대표와, 동료들이었다.
“바, 박영서? 영서 씨도 플레이어가 된 거야?”
“다들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그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복수할 수 있어서.
“감히 내 값어치도 알아보지 못하는 놈들이 그깟 푼돈 때문에···”
“그게 무슨···”
그는 본보기로 회사 대표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를 보며 두려움에 떠는 동료들. 그중에는 한때 그가 흠모했던 여직원도 있었다. 그의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나는 위대하다, 나는 위대하다.’
D미디어의 직원들에게는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 그는 폭군이었으니까. 그들이 감히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압도적인’ 힘을 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