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400명의 인원이 5개씩 버프 스킬을 배운다면, 도합 2,000개의 버프 스킬이 생기는 셈이다. 물론 동일한 버프의 중첩은 불가능하겠지. 혹시나 해서 시스템에게 물었지만, 역시였다.
[동일한 버프 스킬의 중첩은 불가능합니다.]
하기야, 이게 가능했다면 너무 날로 먹는 거긴 했다.
[서로 다른 종류의 버프 스킬은 중첩이 가능합니다.]
시스템의 대답을 들은 나는 결론을 내렸다. VVIP 상점에 있는 버프 스킬을 싹쓸이하겠노라고. VVIP 상점에 있는 스킬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짓수로 따지면 모르긴 몰라도 수천 가지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버프 스킬’로 한정한다면 그보다 적을 것이다.
먼저, 고급 등급과 희귀 등급의 버프 스킬을 싹 다 구매했다. 고급 등급은 총 24종류, 희귀 등급은 13종류였다. 모두 구매하는데 소모한 기프트는 3천 기프트 정도.
확실히 일반 스킬보다 버프 스킬이 비싸긴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내게 3천 기프트는 큰 금액이라 할 수 없다. 당장 바깥에 나갔다 올 때마다 일만 기프트도 넘게 벌어들이니까.
다음으로 눈을 돌린 곳은 유일 등급 버프 스킬이었다.
유일 등급 버프 스킬은 다섯 종류에 지나지 않았지만, 비싸긴 했다. 가장 저렴한 것조차 5천 기프트에, 1만 5천 기프트를 호가하는 것도 있었으니까. 말 그대로 천차만별.
[대지모신의 가호(U) - 5,000기프트]
[순혈 혈통(U) - 7,000기프트]
[드래곤 스킨(U) - 10,000기프트]
[암흑 공주의 오라(U) - 13,000기프트]
[해신의 축복(U) - 15,000기프트]
차라리 카드깡을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행운이면, 한 열 개 사서 까면 하나는 나오지 않을까···? 이내 관두고 말았다.
무작위 희귀 스킬 카드에서 유일 스킬 카드가 나올 확률, 그것도 내가 원하는 버프 스킬 카드가 나올 확률은 훨씬 적을 것이다.
‘일단 시험 삼아 하나만 구매해볼까.’
유일 등급 버프 스킬에 그만한 값어치가 있을까. 그래서 제일 저렴한 ‘대지모신의 가호’를 구매해봤다.
[4,500기프트를 지불해 ‘스킬 카드 - 대지모신의 가호’를 구매했습니다.]
<대지모신의 가호>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유일(Unique)
설명 : 아군에게 대지모신의 가호를 내린다. 가호를 받은 자는 24시간(사용자의 마력 능력치에 비례함) 동안 근력이 1.5, 체력이 1.5 상승한다. 또한 가호를 받은 자가 땅 위에 서 있을 시 체력 회복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
‘좋네.’
다른 유일 등급 스킬도 이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5개니까, 아무리 못해도 능력치 10~20은 보너스로 얻을 수 있는 셈. 물론 지금 당장은 내 능력치에 투자하는 편이 낫겠지만.
언젠가는 능력치를 맥스(Max)까지 찍게 될 것이고, 버프 스킬의 값어치는 천문학적으로 상승하게 될 것이다. 나는 다른 유일 등급 버프 스킬을 구매하는 건, 조금 미루기로 했다.
어차피 기프트도 없었고, 일단 모든 능력치 50을 찍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짤막하게 정리를 마친 나는 진혜연에게 희귀 등급 버프 스킬들과 유일 등급 버프 스킬을 배우게 시켰다.
“오빠, 제가 정말 받아도 될까요···?”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받아.”
내게 미안한 표정을 짓던 진혜연은, 내게 고개를 숙이고는 스킬을 배웠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의 기강을 잡고 있던 정민혁을 만나, 고급 등급 스킬들과 희귀 등급 스킬 카드들을 건넸다. 그는 내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 저를 시험에 들게 만드시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혜연이 생각대로 전문 버퍼를 만들 생각이다.”
“확실하게 좋은 생각이긴 합니다만···”
“네가 배워도 좋긴 하지만··· 네 스킬은 나중에 전투 계열로 맞춰줄 테니까,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겨.”
“형님, 제 스킬은 안 맞춰주셔도 됩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
그는 이내 결정을 내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상황을 일단락시켰다. 어차피 내가 배울 수 없는 이상, 다른 이들에게 맡길 생각이었고, 내가 그룹 내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은 역시 진혜연과 정민혁이었으니까.
***
이장우는 바른 마음 교회의 잔존세력을 이끌고, 광진구를 넘어 용산구까지 이동했다. 그 와중에 변이체들에게 신도들 중 적잖은 수가 희생되긴 했지만 가까스로 도착할 수 있었다.
“목사님, 용산구에 뭐라도 있는 겁니까?”
“우리들의 예루살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예루살렘이라는 게, 변이체로부터 안전한 곳을 말하는 겁니까?”
이장우는 질문을 던진 신도를 힐끔 바라본다. 불과 며칠 전이었다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른 마음 교회가 와해되며, 그의 지도력 역시 낮아진 상태.
그는 조금 불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산구 지하철역. 옆에 있는 거대한 빌딩에 도착한 그들을 마중 나온 것은 중화기를 든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개 중에 교복을 입고 있는 걸 보면, 학생도 있는 듯했다. 그들은 총을 겨눴고, 신도들은 손을 들어야만 했다. 이장우는 조금 당황했지만, 앞으로 나섰다.
“권두기 목사님의 소개를 받고 왔습니다.”
“권두기 목사님?”
그들이 술렁거린다.
이내, 사람들을 뚫고 한 명의 사내가 걸어 나온다. 인자해 보이는 사내. 이장우의 덩치의 두 배 이상은 돼 보이는 곰 같은 사내였다. 그러나 한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성경.
“이장우 목사님, 먼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 예··· 권두기 목사님, 이들은···?”
“시대가 변했으니, 우리도 따라서 변해야겠지요. 일단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권두기는 미소 짓고 있었다. 이장우는 어쩌면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도 없을 뿐더러···
저들이 보내줄지도 미지수였으니 말이다. 결국 이장우는 권두기를 따라나섰다. 그들이 들어간 후 붉은 페인트로 적힌 교회 간판이 흔들렸다. ‘구원교’
***
컴컴한 어둠 속, 빛나는 것이라곤 내가 불러낸 거대한 불의 방벽들밖에 없다. 변이체들은 불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고, 불에 닿는 즉시 잿더미가 돼버렸다.
“형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크··· 팔로워 상승하는 소리가 들린다.”
정민혁, 26세. 그는 사뭇 기쁜 얼굴로 촬영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렇게 돼버린 세상 속에서도 SNS에 진심인 남자··· 녀석은 대체 어떤 과거를 살아온 걸까, 새삼스럽게 궁금해졌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엘레스틱 완드를 들었다. 그리고 완드를 휘둘렀다. 기어코 방벽을 뚫고 내 앞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한 상급 변이체가 완드에 맞아 수십 미터를 날아가고 말았다.
“와, 이게 말로만 듣던 물리 법사인가?”
정민혁은 입을 벌린 채 물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도 조금 놀라긴 했지만 뭐, 기본 근력치가 50에 도달했다는 걸 생각한다면, 그리고 버프 스킬‘들’을 받아 근력이 60을 넘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긴 했다.
쓰러진 상급 변이체는 일어나지 못했고, 결국 기프트로 환원되고 말았다.
“근데 형님, 문득 궁금해졌는데 말입니다.”
“무슨 생각?”
“지금 형님은 얼마나 강하신 겁니까?”
“글···쎄?”
“최상급 변이체조차 형님한테는 안 됐다면서요. 뭐, 어디 변이체의 왕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형님한테는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변이체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하더라도 안될걸?”
자신감이 아닌,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한 추측이었다. 최상급 변이체가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던 시절보다 단언컨대 나는 수 배, 아니 수십 배 이상 강해졌다.
스킬 활용도도 활용도지만, 능력치 때문이다. 근력 1과 10은 간단하게 계산해서 열 배 차이라고 보면 편하다. 하지만 1과 20은 20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능력치가 오르면 오를수록, 요구하는 기프트 숫자도 많아졌지만, 능력 역시 배로 상승하고 있었다.
지금 나는··· 최상급 변이체는 물론, 그보다 상위의 개체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가볍게 찜쪄먹을 수 있는 상태였다. 애초에 상위의 개체가 나타난다는 것 자체도 결코 쉽지 않다.
‘상위의 개체가 나타나려면 조건이···’
플레이어 1,000명을 살해하거나, 같은 최상급 변이체 10마리를 포식하는 거였지.
애초에 플레이어가 그 정도로 많지 않을 뿐더러 최상급 변이체는커녕 상급 변이체조차 찾아보기 힘든 것이 실정이었다.
그때였다. 말이, 아니 생각이 씨가 됐다는 표현처럼 메시지가 떠올랐다.
[목표치에 달성해, 채굴 난이도가 상승합니다.]
[수도와 전기가 끊어집니다.]
[인터넷 서비스 지원이 종료됩니다.]
[플레이어들이 보유한 식량이 무(無)로 돌아갑니다.]
[변이체들의 능력치가 1.5배 상승합니다.]
[변이체들이 드랍하는 기프트의 양이 1.5배로 상승합니다.]
이 빌어먹을 세상을 한층 더 빌어먹게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씨발, 뭐, 뭐여.”
반응은 내가 아닌 정민혁의 입으로부터 나왔다.
하기야, 그는 그럴 법도 하다. 인터넷 서비스 지원이 종료된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그가 더 이상 SNS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돌아가자.”
“형님, 이거 정말입니까?”
나는 가방을 열었다.
진혜연이 당 떨어질 때마다 먹으라고, 초코바를 몇 개 넣어줬었다. 하지만 초코바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메시지대로라면 그것 역시 ‘식량’으로 인식돼, 증발한 모양이다.
‘한마디로 돈 주고 사 먹어라 이거지.’
이 세상을 코인 채굴기로 ‘테라포밍’시킨 채굴자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존버’만 하는 사람들이 몹시 거슬렸던 모양이다. 쓰게 웃으면서, 오토바이에 탑승했다.
정민혁 역시 오토바이에 탑승한다. 변이체들이 불길을 헤치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불과 몇 분 전과 달리, 변이체들의 몸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종, 그 자체가 달라진 모양새다.
‘그래봐야 변이체지.’
나는 완드를 들었다. 거대한 화염 방벽이 피어오르며 그들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기껏 불길을 헤치고 나온 그들은 잿더미로 화하고 만다. 능력치가 1.5배로 상승했다고?
그래서, 그게 뭐?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지옥일지 몰라도, 내게는 버닝 타임 이벤트다, 하고 퍼주는 꼴이다. 능력치가 상승한 만큼, 기프트 획득량 역시 늘어났으니까.
‘이제 일식 때는, 기존의 세 배를 주는 건가?’
곧 두 대의 오토바이가 도로를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일단 L 주상 복합 센터로 돌아가 상황을 확인해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