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코인 광풍이 불어왔고, 서민들, 돈 냄새를 맡은 재계는 물론, 정계조차 코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광진 을’ 국회의원인 박승기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당시 저조했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코인 투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여럿 했다. 비록 보여주기식이긴 하지만, 코인을 구매하기도 했다. 소위 김치 코인이라 불리는 K코인.
[저는 K코인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가능성을 믿기는 개뿔.
박승기가 코인을 구매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K코인들은 끊임없는 나락 길을 걷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은 곡소리를 냈지만, 어차피 소액만 구매했던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구매했던 코인 중에 기프트라는 이름의 코인이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4년 후,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게 될지, 당시의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구가 코인 채굴기로 테라포밍될 당시, 그는 국회의원 사무실에 보좌관과 둘이 있었고 그 덕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보좌관 역시 그를 따라 코인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불빛을 본 최하급 변이체들이 들이닥쳤고, 그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만 했다. 생전 몸 쓰는 일이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박승기에게는 ‘지옥’의 시작이었다.
그나마 보좌관이 살아있던 시절에는 나았다. 보좌관은 그보다 나이도 어렸고, 무엇보다도 전문적으로 무술을 배워, 변이체를 상대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도 지난 일식 때 목숨을 잃고 말았다.
- 의원님, 꼭 살아남아 대업(大業)을 이루셔야 합니다!
박승기는 눈물을 머금고 그를 뒤로한 채 도망을 쳤다. 근처의 모텔까지. 다행히 모텔 안에는 변이체가 없었고, 그는 무사히 최상층에 있는 스위트룸에 들어와 문을 잠그는 데 성공했다.
긴장이 풀린 그는 침대에 주저앉았다. 하필이면 청소를 마치지 않았는지, 테이블 위는 휴지로 가득하다. 퀴퀴한 냄새도 코를 자극한다. 이번에는 비참함이 몰려왔다.
‘국회의원인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물론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싸구려 모텔이라지만, 변이체가 득실거리는 바깥보다야 훨씬 나았으니까. 그러나 그는 곧 생각을 바꾸고 말았다.
무언가가 연쇄 폭발을 일으키는 소리. 그는 창가의 커튼을 걷고, 바깥을 바라봤다. 모텔의 경관이 좋을 리 없다. 때문에 그가 볼 수 있는 풍경은 지극히 단편적인 것일 뿐이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사람이다.’
그가 다른 ‘플레이어’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는. 그는 몸을 일으키고, 허겁지겁 바깥으로 나왔다. 하필이면 폭발음을 듣고 따라오던 변이체와 마주쳤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으아아악!”
박승기는 공포에 비명을 지르며 미칠 듯이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법사 복장을 한 사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를 만난 그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제발, 제발 나 좀 살려주게!”
그리고 사내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의 의지로 하늘에 떠오른 수십여 개의 불화살. 그의 의지로 단숨에 그의 뒤를 쫓아오던 변이체를 사정없이 꿰뚫었다.
***
“고맙네, 고맙네.”
연신 고마움을 호소하는 노인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운이 좋았다. 만약 노인이 비명을 지르지 않았더라면, 파이어 월을 사용했을 테니까. 그랬다면, 노인은 잿더미가 됐겠지.
‘앞으로 사용에 주의해야겠어.’
지나치게 강한 힘을 얻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 할 수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디 있습니까?”
“나 말고는 아무도 없네.”
“그렇습니까?”
내 생각은 달랐다. 암사동과 마찬가지로, 곳곳에 숨어있는 플레이어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일단 안전한 곳에 숨어 계십시오.”
노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쪽도 바빴다. 지금은 영령 빙의를 사용한데다, 기프트를 두 배로 주는 ‘버닝 타임’이었으니까.
“나, 나를 데리고 가지 않을 건가?”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연신 말을 더듬는 걸 보니, 확실했다.
“내, 내가 누군지 모르나?”
그러고 보니 조금 얼굴이 낯이 익긴 하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좀 바빠서 말입니다. 어차피 이 근방의 변이체들은 죄다 제게 몰려들고 있을 테고··· 당분간은 안전할 겁니다.”
여태까지 살아남은 걸 보면, 무언가 한 수는 있을 것이다.
“나, 박승기네. 광진 을 국회의원 박승기 말이야.”
“박승기?”
얼굴도, 이름도 낯이 익다 했더니··· 지인이 내게 기프트 코인을 추천했을 때 덧붙였던 말이 있었다. 이거 국회의원도 투자한 코인이라고. 그리고 그 국회의원의 이름이··· 박승기였다.
세상에 동명이인 국회의원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으니, 그리고 그것도 플레이어로 각성했으니 지인이 말한 박승기와 눈앞의 박승기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개객···”
흘러나오려던 욕설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쭉 펴고 있던 그의 몸이 위축된다.
“······”
“···일단 제 말에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과거 청산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는다.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다가오는 변이체들을 향해 손을 뻗는다. 레인 오브 파이어. 하늘에서 불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변이체들은 숨 쉴 시간조차 없이 그대로 잿더미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타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화력. 박승기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달리기 시작했다.
소리를 들은 변이체들이 곳곳에서 기어 나오고 있다. 최하급, 하급, 중급··· 그중에는 상급 변이체도 섞여 있었다. 상급 변이체를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러나 생김새는 지난번 상급 변이체와는 달랐다. 마치 어디 판타지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거인 같이 생긴 녀석이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긴장감은 들지 않는다.
최상급 변이체조차 내 앞에서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고작 상급 변이체?
“파이어 볼.”
내 위로 구체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구체는 점점 더 몸집을 키워나갔다. 상급 변이체는, 거인은 자동차를 들어 방패로 삼고는 이쪽을 향해 계속 걸어왔다.
그런 녀석을 향해 의지를 담아, 손가락을 뻗자, 파이어 볼이 빠르게 녀석을 향해 날아간다. 쾅! 강렬한 폭발 소리와 함께 자동차가 산산조각 났고, 녀석의 몸 역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명색이 상급 변이체라고 살아있긴 한 모양이지만, 그뿐이다.
애초에 내가 소환한 파이어 볼은 하나가 아니었다. 융단 폭격을 하듯, 수십 개의 파이어 볼이 녀석이 있던 곳을 초토화시킨다. 남은 것은 녀석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잿더미뿐이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화력이었다.
[184.5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녀석 하나를 잡는 것만으로, 거의 200개에 달하는 기프트가 수중에 들어왔다.
[‘퍼스트 무버 3’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처치 업적도 달성할 수 있었다.
<퍼스트 무버 3>
등급 : 희귀(Rare)
조건 : 플레이어 중 가장 먼저 상급 변이체 처치.
보상 : 기프트 채굴량 +5.5%
날개를 달고 있는데, 거기에 제트 엔진까지 더한 격이다. 기프트 획득 속도가 지금보다 더 빨라졌다.
[보유 기프트 : 9,674.3565]
불과 반 시간 정도 만에 거의 일만에 육박하는 기프트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물론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는 변이체가 없어서, 나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때때로 다른 플레이어들을 마주치기도 했다. 박승기와 마찬가지로 건물에 숨어있다가, 소리를 듣거나, 나를 보고 나온 플레이어들인 모양이었다. 그 숫자는 얼추 일백 명을 넘어섰다.
그들은 하나 같이 구세주를 본 듯한 환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고, 무릎을 꿇으며 부탁을 했다. 방식과 말투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목적은 비슷했다.
- 제발 우리 좀 데려가 주세요.
그들은 내가 자신들을 보호해주기를 원했고, 그중 몇몇은 내게 앞으로 얻게 될 기프트를 모두 바치겠노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굳이 그들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바른 마음 교회의 일부를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며, 우리 그룹의 숫자는 어차피 일백 명을 넘어선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일백 명이 추가되든, 이백 명이 추가되든···
솔직히 별로 다를 건 없을 것 같았다.
“일식이 끝난 후, 제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가, 감사합니다!”
다시 변이체 처치를 이어나갔다.
[영령 빙의(L)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남은 재사용 대기시간 : 47시간 59분 59초]
[일식이 끝났습니다.]
[보유 기프트 : 17,856.1875]
앞으로 이틀 동안 영령 빙의를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배가 불러도, 한참 부를 정도의 기프트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17,856기프트. 모든 능력치를 40까지 올렸다.
[근력 능력치가 40에 도달했습니다.]
[민첩 능력치가 40에 도달했습니다.]
[체력 능력치가 40에 도달했습니다.]
[지력 능력치가 40에 도달했습니다.]
[행운 능력치가 40에 도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기프트는 일만 개 넘게 남아있었다.
마력을 50까지 올릴까, 유일 등급 스킬을 구매할까, 조금 고민이 되긴 했지만 일단은 보류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이 상태로도, 변이체들을 사냥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토바이에 탑승한 채, 광진구를 돌아다녔다. 나를 본 플레이어들이 바깥으로 나왔고- 그 중엔 박승기도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천호대교를 건너 강동구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변이체를 만나는 일은 없었다.
정민혁이 우리를 달갑게 맞았다.
“형님, 광진구의 플레이어들을 데려오신 겁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 김에 겸사겸사. 근데 넌 내가 광진구에 간 건 어떻게 아냐?”
“형님이 계신 곳을 제가 모를 리 없겠···는 건 아니고, 인터넷에서 형님, 화제가 됐습니다. 형님이 데려오신 플레이어 중 누군가가 형님 동영상을 촬영해 올렸습니다.”
나는 그가 내미는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 와 ㅁㅊ 이게 사람이냐?
- 대체 스캠 코인을 얼마나 샀기에, 저 정도임?
- 나도 기프트만 있었으면 저렇게 될 수 있었는데, 고작 딸배 주제에, 밉다 미워.
“죄다 형님을 찬양하는 댓글들뿐입니다.”
저게 찬양이 맞나?
“찬양 필요 없거든? 얼른 인터넷이 끊기든가 해야지.”
“저 그러면 뛰어내릴지도 모릅니다.”
“뛰어내리기는 개뿔.”
그의 헛소리에 코웃음 치며 나는 사람들을 돌아봤다.
“앞으로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민혁이가 하게 될 겁니다. 민혁이와 대화를 나누세요.”
나는 정민혁에게 전권을 맡기기로 했다. 바른 마음 교회에서의 일도 있고,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은, 굳이 내가 맡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가 알아서 처리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