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 모든 신도들은 십일조를 제외한 나머지를 바른 마음 교회에 헌금해야 한다.
자신을 노아의 환생이라 주장하는 목사 이장우가 신의 뜻이라며 새롭게 제정한 ‘법’이었다. 이에 몇몇 깨어 있는 신도들이 반발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의견은 죄다 묵살 당하고 말았다.
대부분의 신도들이 이장우를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400명가량이었던 신도들은 불과 며칠 사이에 500명으로 불어난 상태였다. 주변의 플레이어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며 거둔 성과였다. 무려 500명의 플레이어가 벌어들이는 기프트.
이장우는 그렇게 거둬들인 대량의 기프트를 스스로에게 투자하기 시작했다. 일말의 죄책감조차 없었다.
이미 그는 수년 전부터, 신도들의 헌금을 횡령해왔던 전적이 있으니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집무실 의자에 앉은 채, 이장우는 자신의 상태창을 보며 웃음 지었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 이장우
출생 : 지구
종족 : 인간
성별 : 남자
나이 : 34
칭호 : 없음
기프트 : 1.5435
채굴량 : -98%
◈능력치
[근력 6.000] [민첩 4.000]
[체력 4.000] [지력 3.000]
[마력 4.000] [행운 1.000]
◈스킬
◈업적
<최하급 기프트 보유자(N)>
‘체계가 제대로 잡히기만 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기프트를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했다.
앞으로 한 달 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플레이어보다 강력해질 것이고, 그가 이끄는 바른 마음 교회는 서울을 넘어, 이 대한민국 전체를 집어삼킬 것이다.
‘대통령?’
문득 그는 예배당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초등학생 정도 되는 천진난만한 아이가 그에게 물었다. 목사님은 대통령보다 대단한 사람이냐고. 그는 대답하지 않고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생각했다.
‘대통령? 나는 이 세계의 신이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있었다.
역시나 사탄, 이진서의 존재. 정보원을 통해 조사한 결과, 그는 천호동의 L 주상 복합 센터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그가 어디 머무는지 알게 됐다는 것은 호재였지만···
그래도 이건 가까워도 너무 가깝다.
암사동과 천호동. 엎어지기만 해도 닿을 거리 아닌가. 즉, 언젠가 그는 필연적으로 이쪽과 부딪치게 될 것이다. 아니, 그도 모르는 사이 벌써 부딪쳤다고 했다.
그는 정민혁의 SNS를 통해, 자신들에게, 바른 마음 교회에 경고했다.
‘시간이 필요해.’
그는 보류해뒀던 ‘이주 계획을 다시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그의 집무실 문이 노크 없이 열렸다. 그는 무슨 일인가,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봤다.
안으로 들어온 곳은 그의 친위대 중 하나였다.
“목사님!”
“무슨 일입니까?”
“변이체가, 변이체가 쳐들어왔습니다.”
“숫자는?”
“단 하나입니다.”
“고작 하나 가지고 이 밤중에 소란을 피운단 말입니까?”
이장우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만약 변변찮은 이유라면 친위대에게 벌을 내릴 생각도 있었다.
“그 하나에 3부대가 모두 당했습니다.”
그제야 이장우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3부대. 이곳, 바른 마음 교회를 지키는 수비대. 그 숫자는 무려 50명에 달하고 경찰서를 털어 얻어낸 권총과 산탄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런 3부대가 모두 당할 정도면 어떤 녀석이 나타난 것이란 말인가?
“상급 변이체입니다. 목사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장우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길 수 있을까?’
그도 상급 변이체를 상대해본 적은 없다. 중급 변이체도 멀찍이서 본 것이 고작이었다. 때문에 그는 쉽사리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도망치는 것이 옳을지, 상대하는 것이 옳을지.
째깍. 째깍.
집무실 벽시계 초침이 움직인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아직 내게는 450명의 병사들이 남아있다.’
정 위험하면, 450명의 병사들을 방패로 삼으면 될 노릇이다.
생각을 마친 그는 결정을 내렸다.
“갑시다.”
“옛!”
사제복을 걸친 그는 바깥으로 나온다. 그제야 그는 바깥의 상황을 두 눈으로 똑똑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닥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신도들의 시체. 피가 모여 강을 이룬다.
살아남은 신도들은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히익, 괴, 괴물이다!”
날개를 펼친 하얀 여자는 가볍게 날아올라 신도를 낚아챘다. 신도는 발톱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다. 탕! 탕!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신도 하나가 여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무의미하다. 하얀 여자가 날개를 움직이는 순간, 탄환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후두둑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신도는 권총마저 떨어트리고 말았다.
“저런 괴물이 어째서··· 저기, 저게 어딜 봐서 상급 변이체야?”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이장우는 존댓말을 하는 것도 잊고, 반말로 소리쳤다.
“그 사이에 지, 진화한 모양입니다.”
[최상급 변이체]
- 플레이어를 살해하고 진화한 변이체.
- 상급 변이체일 때보다 모든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마비독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진화 형태에 최적화된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 최대 1,000마리의 변이체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
- 진화 조건 : 플레이어(Player) 1,000명 살해 시, 혹은 같은 최상급 변이체 10마리 포식 시, 루나(Runa)로 진화.
- 보유 기프트 : 1,000
상급 변이체가 플레이어 125명을 살해하면 최상급 변이체로 진화한다. 바른 마음 교회의 신도들을 살해해 최상급 변이체로 진화한 것이다. 이장우는 바보가 아니다.
직접 상대해보지 않아도, 그가 최상급 변이체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건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도망친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의 방주 아닙니까?”
“방주야 또 만들면 돼!”
이장우는 몸을 돌려 허겁지겁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그는 귀중품들을 배낭에 모아 놨다. 배낭을 챙겨 달아날 생각이었다. 신도들은 그의 안중에 없었다.
신도고 뭐고, 일단 자신의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장우가 사라지자, 그 모습을 허망하게 바라보던 신도들은 이내 자신들의 신세를 깨닫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얀 여자- 최상급 변이체는 묵묵히 그들을 살해할 뿐이었다.
***
예배당 지하, 작은 창문을 통해 푸른색 머리 여자는 바깥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여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김하나, 가락시장 유흥업소 SAND의 (전)종업원이었다.
이진서에게 몸을 의탁하기 위해 한강 공원을 따라 암사동까지 이동했지만 그녀는 이진서를 만나지 못했고, 오히려 동료들과 함께 바른 마음 교회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광신도 새끼들 다 죽고 있네?”
인과응보(因果應報)처럼 잔혹하게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그 광신도들을 죽이는 것이, 다름 아닌 변이체였기 때문이다. 최상급 변이체. 그녀가 지금껏 마주쳤던, 혹은 상대했던 변이체와는 궤를 달리하는 존재.
‘솔직히 저게 진짜 변이체인지조차 의심스럽지만.’
변이체보다는 인간에 가깝게 생겼다.
“언니, 이제 우리 어떻게 해?”
“SOS를··· 씨발, 폰을 다 뺏겼지.”
욕설이 절로 흘러나온다. 그녀는 문을 힘껏 발로 걷어찼다. 그러나 강철로 된 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빌어먹을. 이놈의 사이비는 마지막까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저 변이체가 우리의 존재를 모르길 바라야지.”
이곳에서 잠자코 지켜보는 것 이외에,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최상급 변이체들은 신도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이장우가 코앞에서 도망치는 걸 본 그들은 저항의 의지마저 상실했다.
살아남은 신도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시끌벅적했던 정원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김하나는 몸을 숙였다. 창문으로 계속 지켜보다가는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상급 변이체는 창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예배당 지하에 있다는 걸 말이다.
고작 지하 1층에 숨는다고, ‘괴물’이 눈치를 채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김하나와 그녀의 동료들은 간절하게 빌었다. 제발, 이 상황을 무사히 넘기게 해달라고.
혹은 누군가가 구해달라고.
그리고 그녀들의 소원은 거짓말처럼 이루어졌다. 최상급 변이체가 돌연 멈춰선 것이다. 그녀는 입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 남자- 이진서가 서 있는 입구를.
먼저 입을 연 건 이진서였다.
“우리, 구면 아니냐?”
그가 그녀를 기억하듯, 그녀 역시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상급 변이체 때의 기억이긴 하지만. 그녀는 그를 만났었고,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꼴사납게 도주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그녀는 최상급 변이체로 진화했다. 이제는 저 간악한 인간에게 복수의 시간이다. 날개를 활짝 펼치며, 도약한 그녀는 순식간에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이진서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는 그저, 담담하게 서 있을 뿐이다.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최상급 변이체는 주먹을 회수했다. 본능적인 위기감이 느껴졌다.
만약 주먹을 회수하지 않았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왜, 쫄았냐? 이번엔 내 쪽에서 가면 되나?”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투쟁심은 사라지고 생존 본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최상급 변이체가 날개를 펼쳤다. 하늘 높이 날아올라, 이 자리를 벗어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진서는 이번에는 그녀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3천 기프트짜리.’
엄밀히 말하면 3,500기프트 정도.
그가 지금 최상급 변이체를 살해할 경우, 얻을 수 있는 기프트의 양이었다. 그야말로 황금 고블린. 비록 생긴 게 인간을 닮아 죽인다는 것이 조금 찝찝하게 느껴졌지만.
‘인간도 아니고, 최상급 변이체인데···’
플레이어들을 닥치고 살해하고 다닐 놈인데, 살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며 이진서는 아가멤논의 가면을 사용했다. 그의 얼굴에 씌워지는 제사장의 가면.
곧 그가 손을 흔들자, 파이어 월이 생성됐다. 지상이 아니라, 하늘에. 사면이 봉쇄된 최상급 변이체는 요란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 순간, 사방에서 변이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많은 숫자가 어디서 기어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이진서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변이체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변이체들은 당연하게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주먹이면 주먹, 장검이면 장검. 그가 무언가 행동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머리가 박살 나고 말았다. 과정이 달라질지언정,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상급 변이체는 원하는 바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집중이 흐트러지자, 파이어 월의 사용도 취소됐고, 그녀는 하늘 높이 날아 도망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