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내 손에 들린, 영롱하게 빛나는 주황색 스킬 카드.
<스킬 카드 - 영령 빙의(L)>
방금 내가 랜덤 희귀 스킬 카드에서 뽑은 전설 스킬 카드다. 영령 빙의가 어떤 스킬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설 등급 스킬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습득할 이유는 충분했다.
[빈 스킬 슬롯이 없습니다.]
[스킬을 삭제하거나, 추가 스킬 슬롯을 해금해야 합니다.]
현재 내가 보유하고 있는 스킬은 위압, 나이트 비전, 아가멤논의 가면, 파이어 월, 메모라이즈. 이 중에서 하나를 삭제해야 한다면 고급 스킬인 위압이나 나이트 비전을 삭제해야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스킬 삭제가 아닌, 추가 스킬 슬롯을 해금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스킬 슬롯을 해금하는데 드는 비용은 100기프트. 지금의 내게 부담될 정도는 아니었다.
[여섯 번째 스킬 슬롯을 해금했습니다.]
[‘666’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666>
등급 : 고급(Superior)
조건 : 플레이어 중 최초로 여섯 번째 스킬 슬롯 해금.
보상 : 기프트 채굴량 +2.5%
[스킬 카드 - 영령 빙의(L)를 소모해 스킬 - 영령 빙의(L)을 습득하겠습니까?]
일말의 망설임 없이 ‘예’를 눌렀다.
[영령 빙의(L)을 습득했습니다.]
<영령 빙의>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전설(Legendary)
설명 : 마력을 소모해 떠돌이 영령과 빙의를 시도한다. 빙의에 성공할 경우, 영령의 생전 스킬과 능력치를 빌려올 수 있다. 동화율과 지속 시간은 사용자의 마력 능력치와 비례한다.
[‘전설의 길을 걷는 자’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전설의 길을 걷는 자>
등급 : 희귀(Rare)
조건 : 플레이어 중 최초로 전설 등급의 스킬 보유
보상 : 기프트 채굴량 +7.5%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천천히 읽어내린다. 영령 빙의··· 어릴 적 TV쇼에 나온 무당이 귀신에 빙의하는 장면을 본 적 있다. 그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이 영령 빙의가 어떤 스킬인지 확실하게 알아볼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로···
‘직접 사용해보는 것.’
옥상으로 올라왔다.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영령 빙의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혹시 내가 조종당할지도 모르니-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생각을 마친 나는 중얼거렸다. 영령 빙의. 그 순간, 체내의 마력이 모두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노인의 목소리가 내게 들려왔다.
- letj qidk? eiwo psla.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보니 몸이 반투명한 노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게 대화를 시도하는 듯 입을 열었지만,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숨을 쉰 그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사라져버린다. 그걸로 끝이었다.
[영령 빙의(L)에 실패했습니다.]
곧이어 실패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는 간신히 숨을 쉬었다. 마력을 상실한 느낌. 마치 처음 파이어 볼트를 사용할 때를 연상하게 만든다. 기껏 얻은 전설 등급 스킬을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입구 컷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상심하지는 않았다.
마력이 부족하다면 기프트로 올리면 되니까. 아가멤논의 가면, 파이어 월, 메모라이즈. 그리고 업적 둘까지 달성해 채굴량 버프가 올랐으니 기프트를 훨씬 더 빨리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목표가 정해졌군.’
***
“으아! 씨발!”
타다다닥.
나지막이 욕설을 흘린 정민혁은 앞만 보며 달린다. 도저히 뒤를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변이체들이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의 예상처럼, 변이체들은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한 마리도 아니고, 물경 수십, 아니 수백 마리의 변이체가. 그의 욕설이 변이체들을 끌어모으는 효과를 낳았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욕설을 멈출 수 없었다. 욕설을 멈추는 순간 그 전에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씨발, 씨발.”
대체 주상 복합 센터에서 편히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던 그가 어째서 이런 처지에 놓인 것일까. 그 내막을 알려면 지금으로부터 대략 한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 형님 영상 추가로 없어여?
- 우리 배달부 형님 영상 점 더 올려봐
- ㅋㅋ 못 올리겠지, 사기꾼이니까.
안마의자에 드러누운 채, 반응을 보던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슬슬 쿨이 돌긴 했지.’
쉽게 전달될 수 있는 매체는 역시 동영상이다. 사람들에게 형님의 ‘선한’ 영향력을 알리기 위해 그는 두 번째 영상을 찍어 올리기로 했다. 물론 그는 허락을 맡는 것도 잊지 않았다.
- 민혁씨가 필요하긴 하지. 정말 도와줄 거예요?
- 예? 예!
이진서의 물음에,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긴 했지만 설마 죽겠어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 변이체들의 미끼가 되는 것, 이진서가 내린 그의 역할이었다.
“씨발, 살아 돌아가면 보자! 형님이고 뭐고!”
한편, 이진서는 인근의 빌딩 위에서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민혁이, 욕, 찰지게 하네.”
혹시 변이체가 몰리지 않는 상황을 대비해 앰프를 가져오긴 했지만, 이래서는···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의 욕설만 듣고 수백 마리의 변이체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형님! 절 버리시는 겁니까!?”
정민혁은 거의 절규를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이진서는 담담할 뿐이었다.
‘엄살은.’
그가 아무런 대책 없이 그를 사지로 내몬 것은 아니다. 그를 ‘전문 미끼’로 만들기 위해 그는 그에게 기프트를 투자했으니까. 그것도 1기프트, 2기프트도 아니고 무려 30기프트나.
현재 그의 근력, 체력, 민첩은 각각 10이었다. 최하급, 하급 변이체는 물론 중급 변이체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 이왕 뽑아먹을 거, 확실하게 뽑아먹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진서는 조용히 타이밍을 기다렸다.
‘곧 일식이다.’
정민혁을 따라 교차로에 모여드는 수백 마리의 변이체들. 해가 점점 어두워지며, 세상이 어둠에 잠긴다. 그의 비명소리가 한층 더 구슬프게 들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얼굴에 씌워진 제사장 가면이 씌워진다.
[아가멤논의 가면(R)을 사용해 마력 능력치가 30분 동안 2.5 상승하고 스킬의 위력이 20% 상승합니다.]
마력이 흘러넘치는 걸 느끼며, 그는 중얼거렸다.
‘메모라이즈.’
[메모라이즈(R)을 사용합니다.]
단 3회에 한해서 저장된 스킬을 대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메모라이즈 스킬. 저장된 스킬은 파이어 월이었다. 교차로에 세 개의 화염 벽이 세워진다.
모든 것을 불살라버릴 듯 압도적인 화염 벽이.
“이, 이대로 타죽을 수는 없어!”
열기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정민혁은 마지막 남은 탈출구를 향해 죽을힘을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빠져나오는 순간, 마지막 파이어 월이 탈출구를 틀어막았다.
졸지에 갇히게 된 변이체들. 하지만 파이어 월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불길은 이진서의 의지에 의해 더욱더 거세졌고, 닿는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 모습을 정민혁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허탈하게 웃으며 쳐다봤다.
“하, 하하. 대박이네···”
“저기, 민혁 씨, 이거 다 올리면 되는 거죠?”
이진서가 그런 그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예, 예?”
“이거 그냥 업로드해버렸는데.”
“펴, 편집 없이 그냥 말입니까?”
“실수로 해버렸네.”
“누가 봐도 실수가 아닌··· 아, 아닙니다, 형님···”
그의 말에 정민혁은 황급히 댓글들을 확인했다.
- ㅋㅋㅋ 겁나 잘난 척하더니, 우리 민혁이 겁나 잘 뛰누.
- 왜 얘는 지 무덤을 지가 판 거지? ㅋㅋㅋ
- 그동안 이미지 관리해왔던 거 다 날려먹노 ㅋㅋ
하나 같이 그에 대한 조롱 어린 댓글들만 가득하다. 그가 워낙 ‘형님’과 친분이 있다며 자랑을 많이 해댄 탓에 ‘까’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평소에는 유명인의 숙명 정도로 생각했던 그였지만.
“하.”
정민혁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좋게 좋게 생각해.”
이진서는 그에게 그의 ‘몫’을 넘겨줬다.
아무런 대가 없이 그를 미끼로 쓰는 것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몫이라고 해봐야 끽 해봐야 1퍼센트 남짓이었지만, 채굴량이 -98%인 정민혁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양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시무룩하던 그가 호기 있게 벌떡 일어났다.
“형님,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
아직 일식이 끝날 때까지 15분 정도 남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목표량을 초과 달성했다. 그것도 조금도 아니고, 퍼센트로 따지면 대략 300% 정도 된다고 할 수 있을까.
[보유 기프트 : 1378.3475]
파이어 월과 미끼인 정민혁이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낸 탓이다.
‘이렇게 쉽게 벌어도 되는 건가?’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100기프트도 없었는데, 지금 내 수중엔 1,000기프트가 훌쩍 넘는 거금이 있었다. 고작 1,000기프트 가지고 거금이라고 말하니, 그것도 웃기긴 하지만.
[360개의 기프트를 10의 마력으로 전환합니다.]
[마력 능력치가 30에 도달했습니다.]
[앞으로 마력 능력치를 올리려면 6배의 기프트를 필요로 합니다.]
[360개의 기프트를 10의 근력으로 전환합니다.]
[근력 능력치가 30에 도달했습니다.]
[앞으로 근력 능력치를 올리려면 6배의 기프트를 필요로 합니다.]
[360개의 기프트를 10의 민첩으로 전환합니다.]
[민첩 능력치가 30에 도달했습니다.]
[앞으로 민첩 능력치를 올리려면 6배의 기프트를 필요로 합니다.]
[‘이 정도면 중수는 되겠지?’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이 정도면 중수는 되겠지?>
등급 : 고급(Superior)
조건 : 세 개의 능력치 합이 90 이상
보상 : 기프트 채굴량 +3%
올 스텟 30까지는 이제 체력과 지력, 단둘만 남겨놨을 뿐이다.
‘이런 식이면 30이 문제가 아니라···’
50을 찍는 것도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야말로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미끼를 시켜볼까.’
진혜연이나 강순철이 정민혁과 마찬가지로 돕는다면, 사냥 속도는 한층 더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근방의 변이체를 거의 섬멸하다시피 한 만큼, 채워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테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그때, ‘무언가’가 내 감각에 포착됐다.
‘이건···’
지금까지 만났던 변이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존재감.
“형님··· 비록 이 민혁이 까가 많긴 하지만, 형님의 동영상은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크윽.”
“민혁 씨, 아니 민혁아, 카메라 들고 먼저 돌아가 있어라.”
“예? 형님은 어디 가시려고···”
나는 더 말하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 존재감이라면 지난번 놓쳤던 놈보다도 상위의 존재다. 그래, 최상급 변이체가 출현했음이 틀림없다.
물론··· 내게 위협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일식 기간 안에 잡으면 두 배.’
그저 일식 기간이 끝나기 전에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