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코인 채굴-13화 (13/236)

13화

남자의 이름은 강순철, 여경의 이름은 최유미. 멸망 이전, 서로 안면조차 없던 둘의 사이는 강순철이 변이체로 변해가는 최유미의 동생을 권총으로 쏴 죽이며, 급격히 악화됐다.

“권총 들이밀면서 자수하라고 하는데, 뭐 어떻게 합니까?”

물론 마음먹으면 저항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역시 일말의 죄책감을 가졌기에 순순히 그녀의 지시에 따라왔노라고 그는 덧붙였다. 최유미가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 소미는 살릴 수 있었어.”

“변이체로 변하는데 어떻게 살려, 이 여자야? 네 모가지나 안 물어뜯었으면 다행이지.”

“···기프트만 지불하면 치유할 수 있다고 그랬어.”

“50기프트가 뉘집 애 이름이냐?”

요컨대 시스템은 50기프트를 지불하면 그녀를 치유할 수 있노라고 말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도, 그녀도 50기프트가 없었다고 했다. 하기야, 50원이 아니라 50기프트다.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최하급 변이체 한 마리를 처치할 때마다 얻는 기프트는 0.001기프트. 한마디로 50,000마리의 최하급 변이체를 처치해야 얻을 수 있는 양이란 말이다.

애당초 동생을 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최유미의 눈에서 엿보였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은 강순철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을. 그의 말대로, 그가 그녀의 생명의 은인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와 마찬가지의 생각을 했는지 진혜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못 받아들였겠죠. 그저 눈앞에서 제대로 된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죽은 동생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런 동생을 죽인 게 저 형사님이라고 생각하면···”

“···맞아.”

“하지만 언니의 그런 판단 때문에 ‘죄 없는’ 형사님을 죽음으로 내몰 뻔했어요. 만약 오빠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죽었겠죠. 뭐, 어차피 같이 죽었겠지만.”

내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내가 근처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시간문제일 뿐 어차피 변이체들에 의해 죽고 말았을 것이다.

“······”

가만히 SNS를 하고 있던 정민혁도 입을 열었다.

“자자, 여기서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네요. 위대하신 우리 형님께서는 여러분을 데려오는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

최유미는 나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반면, 강순철은 진심으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형님이 여러분을 이곳에 데려온 건 여러분이 이곳에서 생활해도 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쉘터를 크게 지었다.

“응, 맞아.”

“일단은 뭐, 저도 환영합니다. 저희만 지내기에 이곳은 지나치게 크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말을 흐렸던 그는 최유미와 강순철을 한 번씩 바라보며, 다 말을 이어나갔다.

“분란이 생기는 건 원하지 않아요. 들어와서 서로 총질하거나, 주먹질하거나, 욕하거나, 하는 그런 꼴도 보기 싫고 말이에요. 물론 이건 제 생각이 아니고, 형님 생각입니다.”

내가 그런 말 한 적이 있었던가? 음··· 그래도, 그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기에 잠자코 있기로 했다.

“앞으로 둘이 안 싸울 자신 있습니까?”

“예, 저는 자신 있습니다.”

강순철은 자신 있다고 말한 반면 최유미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자신 없어요. 나갈게요.”

무슨 심리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그녀는 강순철을 계속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볼 때마다 계속 동생 생각이 떠오르겠지. 그녀에게 이곳은 ‘또 다른’ 지옥일지도 모른다.

“이 여자야, 바깥에 나가서 죽겠다고?”

“···그동안 죄송했어요.”

강순철을 향해 사죄의 말을 내뱉은 그녀는 나를 바라봤다. 바리케이드를 열어달라는 의미다. 나는 그녀를 순순히 보내주기로 했다.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맨몸으로 보내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야박하지 못했다.

[플레이어, 최유미에게 1기프트를 양도했습니다.]

1기프트로 바깥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녀에게 행운을 빌어주었다.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 내게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숙인 그녀는 곧 어둠 너머로 사라진다.

‘기회가 닿는다면 언젠가 또다시 만나게 될 날이 오겠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

[360개의 기프트를 10의 행운으로 전환합니다.]

[행운 능력치가 30에 도달했습니다.]

[앞으로 행운 능력치를 올리려면 6배의 기프트를 필요로 합니다.]

모은 기프트의 절반 이상을 행운 능력치에 투자해, 30으로 만들었다. 30의 행운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진 나는 진혜연의 도움을 받아 시험해보기로 했다.

그 시험 방법이란 간단했다. 박스 안에 O를 적은 종이를 한 장, X를 적은 나머지 종이 아홉 장을 넣고, O를 뽑는 것. 그리고 난 어김없이 손을 넣을 때마다 O를 뽑았다.

행운 능력치가 직접적으로 작용했다는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분명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처음으로 X를 뽑은 건 시행 횟수가 13번에 이를 때.

정민혁이 감탄 어린 눈초리로 말했다.

“형님, 홀짝 도박하시면 겁나 잘하시겠는데요.”

그런 우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순철도 한마디 입을 열었다.

“나중에 모든 것이 다 정상으로 돌아온다면, 같이 사업이나 하지 않으시렵니까?”

나는 쓴웃음을 흘렸다. 모든 것이 다 정상으로 돌아오는 날이, 오긴 하는 걸까?

“생각해보겠습니다. 다들 여기 계세요. 잠시 위층 좀 올라갔다 오겠습니다.”

역시, 카드깡은 혼자 까야 제맛이다. VVIP 상점에서 5기프트로 랜덤 고급 스킬 카드를 열 장 구매했다. 그리고 50기프트로 랜덤 희귀 스킬 카드도 두 장.

총 150기프트짜리 플렉스를 한 셈이다. 10퍼센트 할인을 받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135기프트짜리 플렉스지만··· 나는 본격적으로 카드깡을 시작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열장의 녹색 카드들.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개봉하기 시작했다.

[스킬 카드 - 라이트닝 볼트(S)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카드 - 명사수(S)를 획득했습니다.]

스타트가 별로 안 좋나, 하고 생각했는데 세 번째 카드에 손을 대는 순간.

녹색 카드가 별안간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희귀 등급이다.’

[행운 30이 기적을 불러옵니다.]

[기존 보상이 상향 조정됩니다. 랜덤 고급 스킬 카드가, 랜덤 희귀 스킬 카드로 변경됩니다.]

[스킬 카드 - 아가멤논의 가면(R)을 획득했습니다.]

아가멤논의 가면이라는 스킬, 어떤 스킬인지는 잠시 후에 보기로 하고··· 희열감에 입꼬리를 올린 나는 이내 네 번째 카드에도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네 번째 카드 역시,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행운 30이 기적을 불러옵니다.]

[기존 보상이 상향 조정됩니다. 랜덤 고급 스킬 카드가, 랜덤 희귀 스킬 카드로 변경됩니다.]

[스킬 카드 - 파이어 월(R)을 획득했습니다.]

‘이대로만 가줘라.’

[스킬 카드 - 방랑기사, 벤트의 검술(S)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카드 - 고급 연금술(S)을 획득했습니다.]

···

앞서서 운이 너무 좋았던 탓일까, 다섯 번째 카드부터 아홉 번째 카드까지는 모조리 고급 등급 카드가 나왔다. 이대로라면 잘해봐야 본전치기. 마지막 카드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하지만 마지막 카드 역시 내 기대를 배신했다.

[스킬 카드 - 강심장(S)을 획득했습니다.]

랜덤 고급 스킬 카드 열 장 중 희귀 등급 카드 두 장. 확률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행운 30을 굳게 믿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일말의 배신감마저 치밀 정도였다.

‘일단···’

파이어 볼트, 집중, 강타는 삭제하기로 했다.

어차피 구하려면 또 구할 수 있는 일반 등급 스킬들. 등급이 깡패라는 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닌 만큼, 아가멤논의 가면과 파이어 월을 습득할 생각이었다.

[아가멤논의 가면(R)을 습득했습니다.]

<아가멤논의 가면>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희귀(Rare)

설명 : 위대한 제사장의 가면. 사용 시, 마력 능력치가 30분 동안 2.5 상승하고, 스킬의 위력이 20% 상승한다.

아가멤논의 가면. 마력 능력치를 30분 동안 2.5 올려주고, 스킬의 위력을 20% 올려주는, 전형적인 마법 보조 스킬이라 말할 수 있었다.

[파이어 월(R)을 습득했습니다.]

<파이어 월>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희귀(Rare)

설명 : 전방에 화염으로 된 벽을 소환한다. 벽의 크기와 피해는 마력과 비례한다. 화염에 피해를 입은 대상은 일정 확률로 화상에 걸리게 된다.

파이어 월은 글자 그대로, 전방에 불의 벽을 설치하는 것.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아가멤논의 가면을 사용해 마력 능력치와 마법의 위력을 끌어올린 후, 파이어 월을 사용한다.

파이어 볼트로 중급 변이체를 쉽게 처치할 수 있었던 걸 생각한다면, 중급 변이체까지는 파이어 월 안에 갇히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몰이사냥에 좋겠네.’

다수의 변이체를 상대하기에 용이해 보인다.

특히 어제처럼 직접 근접전을 벌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스킬 습득과 이해를 마친 나는 아직 남아있는 두 장의 카드로 시선을 돌렸다.

50기프트짜리 랜덤 희귀 스킬 카드. 아직 진짜가 남아있었다.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첫 번째 카드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스킬 카드의 색은 변하지 않았다.

[스킬 카드 - 메모라이즈(R)을 획득했습니다.]

<메모라이즈>

종류 : 패시브(Active)

등급 : 희귀(Rare)

설명 : 스킬을 최대 3회(마력 능력치에 비례함) 미리 저장해둘 수 있다. 저장된 스킬은 마력의 소모, 재사용 대기시간 없이 불러오는 것이 가능하다.

‘이건 좋긴 한데···’

직접 사용하는 스킬이 아닌, 보조 스킬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희귀 등급 스킬이라는 것. 내심 유일 등급 스킬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메모라이즈(R)을 습득했습니다.]

남은 스킬 카드는 이제 한 장.

‘이제는 찐막이다.’

마지막 남은 랜덤 희귀 등급 스킬 카드에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떠오르는 메시지.

[축적된 행운이 다시 없을 기적을 불러옵니다.]

[기존 보상이 상향 조정됩니다. 랜덤 희귀 스킬 카드가, 랜덤 전설 스킬 카드로 변경됩니다.]

‘전설?’

분명 2단계 높은 스킬이 뜰 확률도 있다곤 했지만, 진짜로 뜰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보라색 스킬 카드가 불가사의한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전설 등급. 심장이 쿵쾅쿵쾅거린다.

‘대박···’

물론 어떤 스킬이 나올지 모르지만 대박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황색 카드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입을 벌리고 말았다. 아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