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서울시의 인구가 대략 1000만. 이곳 천호동에 거주하는 인구만 9만 명에 달한다. 그들 중 극히 일부만 플레이어로 각성했고, 나머지는 모조리 변이체로 변해버렸다.
내가 죽인 변이체들의 숫자는 고작 3천 안팎일뿐이다. 한마디로 변이체들은 여전히 많았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붉은 점이 가득할 정도로.
대부분 건물 안에 있지만, 곧 바깥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익숙하게 S31의 알람을 세팅한다. 내가 좋아하는 로커(Rocker)의 노랫소리가 도시의 적막을 깬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건물의 창문을 깨고, 사족 보행하는 중급 변이체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손바닥을 펼친다. 곧 손바닥 위에 생겨나는 파이어 볼트. 녀석을 향해 가볍게 집어 던졌다.
녀석은 파이어 볼트에 그대로 불쏘시개가 되고 말았다. 마력 20을 찍으면서 중급 변이체도 한 방에 죽일 수 있게 됐다. 시체가 활활 타오르며, 도시의 어둠을 밝힌다.
변이체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종류도, 생김새도 가지가지. 그러나 그들은, 나를 향해 맹렬히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많다.
물론 내게 위협이 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토끼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사자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 변이체를 토끼···에 빗대기는 뭐하지만, 틀린 비유는 아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그들을 처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을 처치하지 않았다. 그저 뒷걸음질 치며 그들을 유인할 뿐이었다. 사실은 기다리고 있었다.
[일식까지 남은 시간 : 45분 37초]
일식이 일어나는 시간까지 45분가량 남았다. 일식 때는 변이체들이 강화되지만, 드랍하는 기프트가 두 배로 늘어난다. 버닝 이벤트를 대비한 몹 몰이 중이었다.
‘두 배, 두 배.’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꺄악!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기껏 몰아놨던 변이체들이 비명소리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S31의 스마트 워치 기능을 사용했다.
푸른 점이 번쩍거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마치 붉은 점들이 푸른 점을 뒤쫓고 있었다. 오래는 못 갈 것 같다. 그냥 놔둘까? 아니면 가볼까? 고민하던 나는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구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 작정하고 달리기 시작한다. 민첩 20. 나는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변이체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푸른색 점과의 위치는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나를 가로막는 변이체들을 주먹을 휘둘러가며 치운 나는 곧 발견할 수 있었다. 변이체를 향해 권총을 겨누고 있는 경찰복을 입은 여자를.
‘여경인가.’
배달부도 플레이어가 됐는데 여경이라고 플레이어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녀는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 그녀에게 달려오는 변이체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
당연하지만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다. 내가 기껏 몰아놨던 변이체들의 이목을 모조리 끌어버렸을 테니까. 그녀에게 다가오던 변이체를 쓰러트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시작일 뿐이었다.
물론 그녀를 죽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미스릴 장검을 들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중급 변이체를 향해. 중급 변이체의 목이 떨어진다.
내 압도적인 근력과, 미스릴 장검의 예기가 더해져 가능한 일이었다.
“프, 플레이어?”
“혼자입니까?”
당황한 듯 묻는 그녀에게, 담담하게 묻는다.
“아니, 둘인데···”
“한 명은 어디 있습니까?”
그녀는 슬그머니 손가락으로 경찰차를 가리킨다. 경찰차 안에는 수갑이 묶여있는 남자가 보였다. 수갑에 묶여있는 걸 보면 범죄자일까? 그녀는 내 속내를 읽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살인범이에요.”
“그동안 계속 묶어놨던 겁니까?”
“차마 풀어줄 수는 없어서···”
변이체들이 남자를 본 모양인지, 경찰차를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곧 자동차의 유리가 깨지고 변이체들이 안에 들어가면 남자는 죽을 것이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남자가 죽는 걸 가만히 지켜볼 거냐, 아니면 일단 구하고 볼 거냐. 나는 경찰차를 향해 도약했고, 몰려드는 변이체들을 베어냈다. 위압까지 사용하자, 변이체들은 그대로 달아나버린다.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문을 열고, 남자의 수갑을 검으로 베어낸다. 수갑은 무 썰듯 가볍게 썰려나간다. 어느새 여경이 내게 다가와 소리치듯 말했다.
“머, 멋대로 풀어주면 안 돼요! 이 사람은···”
그때, 남자가 인상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어디 한번 멋대로 중얼거려 보시지.”
여경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어버렸다.
“······”
나는 그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저 여자가 나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경찰입니다.”
“경찰?”
그렇다면 저 여경은 앙심을 품고 남자를 죽이려 했다는 뜻일까? 여경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남자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듯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이상한 반응이다.
“······”
자세한 내막에 대해 듣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이대로 둘러싸이면, 내 목숨은 보전하겠지만 이 둘의 목숨은 보전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허공에 중얼거렸다. 9급 안전 가옥 구매해줘.
10 기프트가 소모됐다는 메시지와 함께, 안전 가옥이 출현한다. 나는 둘을 밀어 넣었다.
“이렇게 같이 두면···!”
여경이 애가 타는 듯한 시선으로 말했지만,
“안에서 절대로 나오지 마세요. 만약 내부에서 살인을 일으킨다면··· 둘 중 어느 쪽이든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으름장을 놓듯 말한 나는 문을 닫아버렸다. 어느새 변이체들이 나를 포위했다. 나는 바로 베어 넘기기보다는 시간을 살핀다. 35분. 앞으로 반 시간.
‘이대로 놔둬도 괜찮겠지?’
중급 변이체를 막아낼 수 있다고 했으니, 상급 변이체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엔 이대로 놔둔다 하더라도, 무사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놔둔 채, 나는 변이체 몰이를 하기 시작했다.
S31은 알람시계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고, 마침내···
[일식이 시작됩니다. 변이체들의 능력치가 상승하는 대신 드랍하는 기프트의 양이 두 배로 상승합니다. 남은 시간 59분 59초.]
일식이 시작됐다. 변이체들이 한층 더 공격적으로 변한다. 능력치 역시 덩달아 상승한다. 그러나··· 나는 웃을 뿐이었다. 기다리느라 목 빠질 뻔했네. 검을 들고 달려든다.
거리낄 것이 없으니, 전력으로 상대할 생각이었다. 수십 마리의 변이체를 향해 검이 휘둘러진다. 검은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고 지나간다. 저항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스팔트에 부딪히자 아스팔트가 그대로 움푹 패어나간다. 나는 재차 검을 들어 올리며 강타를 사용했다. 검에 다가오던 하급 변이체의 몸이 그대로 수박처럼 터져나간다.
그러나 다른 하급 변이체가 그 자리를 메운다. 녀석의 손톱이 뻗어진다. 위기감은 들지 않았다. 그 일련의 과정은 내게 느릿느릿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민첩 20의 위력이었다.
손톱이 닿기 직전 나는 주먹으로 녀석의 손을 쳤다. 손이 터져나간다. 그리고 검으로 녀석의 몸을 찌른다. 푹. 검을 빼내자 시체는 그대로 검은 잿더미로 변해 사라진다.
‘끝이 없네.’
행운 30만 찍고 나면, 대규모 마법 스킬이라도 하나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이 변이체 몰이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었다.
일식이 끝날 때까지 계속 검을 휘둘렀다. 체력 20 덕에 육체적 피로는 없었다. 정신적 피로가 없었느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보유 기프트 : 665.6875]
그 대가가 확실했기 때문에 정신적 피로 같은 건 잠시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무려 600이 넘는 기프트. 이번에는 확실하게 대비를 한 탓에, 어제와도 비교를 할 수 없는 기프트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정산은 조금 뒤로 미뤄두기로 하고.’
주변에 즐비하게 늘어진 변이체들의 시체.
아직 변이체들이 남긴 했지만, 영양가 없는 최하급 변이체들뿐이다. 그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온몸에 묻은 변이체들의 핏물과 살점을 탈탈 털어낸다.
줄곧 겪어왔지만,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느낌이다. 나는 안전가옥의 문을 열었다. 여경은 남자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고, 남자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주먹을 쥐고 있었다.
설마 이 상태로 계속 있었던 건 아니겠지.
“나오십쇼.”
여경은 계속 권총을 겨눈 채로 안전 가옥 밖으로 나왔고, 남자도 안전 가옥 밖으로 따라 나왔다.
“우선 권총은 내려놓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경찰이에요.”
“그런 게 이 세상에서 무슨 의미입니까?”
평범한 공시생이었던 정민혁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가 됐고, 중학생이었던 진혜연은 최하급 변이체의 머리를 능숙하게 박살 낼 수 있는 사냥꾼이 됐다.
이 미친 세상 속에서, 과거의 신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나만 해도 배달부였지 않은가.
“지금 범죄자를 옹호하겠다는 건가요?”
“옹호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나는 아직 그쪽도 그렇고,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니까.”
“계속 말하고 있잖아요. 저는 경찰이라고···!”
“제가 그걸 믿을 수 있겠습니까?”
“공무원증을 보여드리면 되잖아요?”
그때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 여자가 말하는 대로 저는 살인자가 맞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경찰인 것 역시 맞습니다. 제가 살인을 저지른 건 세상이 이 빌어먹을 코인 채굴기인지 뭔지로 변해버린 후니까요.”
“자세한 사정은 가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누구 마음대로 범죄자를 데리고 가겠다는 건가요?”
계속되는 태클에 나도 슬슬 짜증이 났다.
“그러면 안 따라올 겁니까?”
그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아버렸다.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권총을 내려놨다. 무언의 승낙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과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정민혁과 진혜연은 깨어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정민혁은 보나 마나 SNS 삼매경이었을 거고, 진혜연은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 내가 걱정된 모양이었다.
둘은 내 뒤를 따라오는 여경과, 남자를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 이 사람들은 누굽니까?”
“······”
진혜연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경계 어린 눈빛이었다.
“길 가다가 마주친 플레이어들?”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형님, 아무나 주워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제가 물건이에요?”
여경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쓸모도 없는 물건이죠, 그럼.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솔직히 어디다 씁니까? 아, 물건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안 들면 신줏단지로 대신할게요.”
그때 남자가 조금 감탄하듯 말했다.
“저 친구 조금 치는데···”
“그런데···”
정민혁이 남자를 신중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 같은데? 혹시 아저씨, 강순철 아니에요?”
“강순철?”
“왜, 혜연아, 넌 모르냐? 그 귀신 잡는다는 형사 있잖아.”
“귀신이 아니라 범죄자를 잡긴 했는데···”
나는 S31로 강순철이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대번에 떠오르는 기사들. 범죄자 잡는 강력계 형사. 단독으로 잡은 범죄자만 수십 명에 달한다고. 이런 걸출한 인물이 어째서 이런 꼴이 된 걸까.
남자는, 강순철은 입을 열었다.
“오해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