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집중 스킬을 사용하고, 창문을 통해 달아나는 상급 변이체를 향해 파이어 볼트를 집어 던졌다. 그러나 제구력 강화를 삭제한 탓일까, 파이어 볼트는 빗나가 애꿎은 가로수만 때렸다.
상급 변이체는 순식간에 주택 골목으로 사라져버린다. 쫓아갈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지만 날개까지 펼치고 달아나는 녀석을 잡는 것은 지금의 내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행운이 아니라 민첩을 찍었다면 달랐겠지만.’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비독에 걸린 채 쓰러져있는 진혜연을 놔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말이다. 나는 VVIP 상점에서 9급 해독제를 구매했다. 작은 초록색 약병.
마개를 열어 그녀의 입에 흘려 넣는다. 해독제의 효과는 즉효였는지, 그녀는 금세 정신을 차렸다. 잠시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고 있던 그녀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아저씨, 아니, 오빠, 안녕하세요.”
“···그래.”
고작 헤어진 지 하루 만에 재회했지만 체감상 며칠은 된 기분이었다. 이내, 나는 그녀에게 상세한 내용에 대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먼저 그녀가 다수의 플레이어들에게 쫓겼다는 것.
“플레이어들?”
“그들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어요. 저를 교주님께 데려갈 거라고···”
“어디 사이비인가?”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모르겠어요. 맞다, 바른 마음 교회라고 그랬어요.”
“바른 마음 교회 검색해줘.”
“와, 그거 S31 아니에요?”
그녀도 S31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이거 나올 때 광고 겁나 때렸으니 모를 수가 없지. 게다가 이건 평범한 S31이 아니다. 뿌듯한 얼굴로 매만지며 말했다.
“하나 장만했지.”
S31이 자동으로 음성을 인식해, 검색 결과를 출력한다.
-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 현재 위치에서 약 3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정말 존재하는 교회. 그녀가 잘못 들은 건 아니라는 소리다. 단체로 몰려다니면서 플레이어들을 끌고 가서 어디 쓰려고 그러는 거지? 솔직히 말하면 좋지 않은 생각만 떠오른다.
워낙 사이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기 때문일까?
“대략 스무 명 정도 됐던 거 같아요. 안전 가옥 밖에서 나오라고 협박하는 걸 듣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방금 전의 그 변이체가 나타났고, 그들을 모조리 죽였다고 했다. -물론 그녀는 직접 보지 못해, 상황을 짐작할 뿐이었지만.
‘어쩌면 상급 변이체로 진화한 건 그들을 잡아먹은 이후일 수도 있겠네.’
상급 변이체로의 진화 조건은 25명의 플레이어들을 죽이는 것이니, 제법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어쩌다가 이곳으로 오시게 된 거예요?”
나는 말하는 대신 S31의 스마트 워치 기능을 사용했다.
지도에 표시되는 무수한 붉은 점들. 물론 붉은 점들끼리의 크기 차이는 존재한다. 하급 변이체가 최하급 변이체보다 크고, 중급 변이체가 하급 변이체보다 크고, 뭐 이런 식이다.
근방을 걷고 있던 나는 중급 변이체의 족히 배 이상은 돼 보이는 커다란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점을 따라와 보니, 다른 곳도 아니고 진혜연이 머물던 원룸이었다.
순전 우연이었다. 늦기 전에, 도착해서 문을 부수고 있는 상급 변이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다. 나는 9급 안전 가옥을 향해 다가갔다.
완전히 파괴된 9급 안전 가옥은 제 역할을 하기 힘들어 보였다.
[내구 0/500]
“죄송해요, 오빠. 오빠가 기껏 사주셨는데··· 제가 다른 곳으로 따돌렸어야 했는데···”
자책하는 그녀에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무사하면 됐다.”
어차피 기프트야 또 벌면 되니, 그녀가 살았으면 그걸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상황이 절박하다면 이런 동정심을 발휘할 여유도 없겠지만 내 상황은 절박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나저나 어쩐다.’
그런 녀석이 또다시 출현하면 그때는 정말로 죽는다. 애초에 내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녀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데리고 다닐 수도 없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만나게 될 플레이어들은 그녀 이외에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진혜연 같은 경우가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안전한 쉘터를 만들자.’
설령 상급 변이체, 그 이상의 변이체가 오더라도 완전히 안전한 쉘터를.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 멸망한 세상에서 나만의 세력을 만들겠노라고 마음속으로 선언한 순간이었다.
***
세상이 멸망했지만 인터넷은 여전히 작동됐다. TV 방송은 모조리 송출이 중단됐지만, VOD는 여전히 잘 재생이 됐다. 그래, 세상은 여전히 먹고 살 만했다.
아니, 정민혁은 오히려 이 세상이 좋았다. 멸망 이전에는 관심조차 못 받았던 찌질이에 불과했지만 이 세계에서 그는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그의 분신이지만.
- 오빠, 딸배 아저씨 연락처 좀 알려주세여 :)
슬그머니 채팅을 걸어온 여자의 사진을 눌러서 몸매를 감상한다.
“휘유, 개쩌는데.”
그는 이내, 채팅을 캡쳐한 후 게시물을 올렸다.
- 이런 것 좀 그만 보내라. 형님은 나만 알 수 있다고. 나만 알고 있는 존재가 돼야만 한다고.
동시에 그의 지지자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한다.
- 쯧쯧, 추하다, 추해.
- 남은 세계 구하겠다고 다니는데 연락처 알아서 뭐 하게?
- 저 정도 몸매면 나 같으면 그냥 딱 눈감고 알려줬을 텐데, 딸배 형님 못지 않게 형님도 대단하신 듯. 다크나이트네.
물론 모르는데 알려줄 수 있을 리 없다.
그래, 이 기분이지. 그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세상 살 만하네. 그때였다. 쿵, 쿵. 현관문을 누군가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는 소름이 끼치는 걸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체 누가 현관문을 노크한단 말인가. 아니, 저건 그냥 단순한 노크가 아니다. 무슨 노크를 문을 때려 부술 듯이 한단 말인가.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골프채를 집어 들었다.
상대하기 위함이 아닌, 본능적인 방어 기제였다.
‘어떤 놈인지도 모르는데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판단을 내린 그는 집에 있는 캠(Cam)을 켠 후,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갔다. 캠을 통해 바깥의 상황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곧 현관문이 열리며 변이체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슬렁, 어슬렁.
짐승처럼 사족 보행하는 녀석은 곧 집 전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가 들어간 방 앞에서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제발 좀 가라, 개새야.’
숨 막히는 상황.
속으로 욕설을 내뱉어봤지만 녀석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로 다음 순간, 변이체가 문을 들이받았다. 쾅! 문이 대 자로 무너졌고, 정민혁은 열린 창문을 통해 재빨리 넘어갔다.
변이체가 득달같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허겁지겁 달아났다. 골프채는 손에서 놓친 지 오래였다. 베란다를 통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온 그는 현관문을 통해 달렸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현관문 앞에서 맞닥뜨리고 말았다. 또 다른 변이체와. 그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느끼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 젠장.’
이렇게 죽는 건가. 여기서 이 정민혁이 죽는단 말인가. 문득 이진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위험에 빠지면 배달앱으로 주문하라고 말했던 그. 씨발, 주문도 안 받으면서···!
“형님, 씨발, 형님!”
형님이 나타날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그는 부르짖었다.
그 순간, 그는 목격하고 말았다. 변이체의 뒤에서 나타난 남자가 단숨에 장검으로 변이체를 베어버리는 것을. 하급 변이체의 몸이 두 동강 나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생각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혀, 형님?”
그는 이 상황이 꿈인가, 생신가,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진서는 정민혁의 등 뒤에서 달려오는 변이체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검이 단숨에 갈라버린다.
그런 그를 감동 어린 얼굴로 바라보는데, 이진서가 중얼거렸다.
“SNS 글 좀 작작 써요. 보는 내가 다 부끄럽네···”
“예? 아, 예···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역시 저를 구하러 오신 건···”
“딱히 그런 이유는 아니긴 했지만,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어깨를 으쓱인 이진서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여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거 같으니. 가서 얘기하죠.”
“예? 어디로 말입니까?”
그는 그저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곧, 그는 군말 없이 이진서를 따라나섰다. 방금 전처럼 변이체들의 습격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더 이상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이진서를 따라가면, 적어도 죽지는 않을 테니까.
***
송파구 가락시장은 유흥의 거리로 명성이 높았다. 대대적인 정부 단속 이후에도 불법으로 운영되던 윤락 업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 돼버렸다.
손님도, 아가씨도, 업주도, 모조리 변이체로 변해버렸으니까. 물론 그들 가운데서도, 플레이어로 각성한 이들은 존재했다. 함께 코인 투자를 하다가 코인에 물렸다든가 하는 사례로.
‘SAND’는 그런 업소 중 하나였다. 출근했던 아가씨들 대부분이 플레이어로 각성한 것이다. 물론 별로 좋은 일이라 할 수는 없었다. 살아남긴 했지만, 현실은 지옥이었으니까.
김하나는 입에 담배를 문 채 지상을 내려다본다. 분명 꽤 많은 변이체들을 처치한 거 같은데, 변이체들은 여전히 많았다. 어째,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오늘 아침에는 태양도 사라졌었다.
‘뭐, 이딴 세상이···’
앞으로도 나아지라는 보장은 없었다. 지금이라도 뛰어내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뛰어내리기에는 용기도 없었다. 담배 하나를 끝까지 피운 그녀는 내려온다.
1층에는 그녀의 동료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김하나는 그중 앳돼 보이는 여자를 불렀다.
“미애야, 배달부 아저씨 어떻게 됐어?”
배달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였다. 그가 보여줬던 무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으니까. 그녀는 그와 접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엄밀히 말하면 자신을 그의 대리인이라 주장하는 정민혁에게 노력했다. 그러나 노력은 별로 효과가 없었다.
“아, 언니. 쉽게 안 무네.”
옆에 있던 제시카(본명을 밝히지 않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애초에 그 새끼 전화번호 모른다니까. 아는 척하는 거라니까. 주위에 허세 부리는 남자들 많아서 아는데, 딱 그런 스타일이야.”
“역시 그렇겠지?”
“접선만 하면 영입은 어렵지 않을 텐데.”
바로 그때였다. 정민혁의 SNS가 올라온 것은.
- 형님에게 구원받았다. ㅅㅂ 변이체 새끼 먹잇감으로 전락할 뻔했네.
사진이 함께 포함돼있었다. 현관문이 넘어지고, 온통 난장판이 된 그의 방 안 풍경이.
- 오빠 괜찮아요?
-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긴 하네 ㅋㅋ 근데 그 형님은 니가 원할 때만 등장하냐?
댓글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SNS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 그런데, 바른 마음 교회. 느그들 지금 우리 형님 영역에서 뭐 하고 다니는 거냐?
- 사이비 새끼들, 우리 혜··· 아니 여동생도 납치하려고 했다면서? 이런 개X끼들.
- 조용히 살아라. 안 그러면 뿌리까지 뽑아버리기 전에.
“바른 마음 교회?”
그녀는 바른 마음 교회를 검색했다. 강동구 암사동에 위치해 있다. 정민혁은 암사동을 그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배달부가 머물고 있는 곳 역시 암사동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말이다. 송파구와 강동구. 단순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다.
‘문제는 변이체인데···’
그녀는 동료들을 바라봤다. 이들을 모두 데리고 암사동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은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루라도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암사동으로 넘어갈까 하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