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이내, 나는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제법 흥미로운 의견도 발견할 수 있었다. 단순한 의견으로 치부하기엔, 꽤나 그럴듯한 내용이었다.
[도지코인800층 : 존버충들아 한마디만 할게. 지구가 코인 채굴기로 변해버린 세상이라면, 우리는 코인 채굴하는 소프트웨어 아니냐?]
- 응 살인충. 애초에 글쓴이 지능은 글쓴이 닉네임이 설명해주네.
- 도지코인 800층 ㅋㅋㅋ 몇 년 전 불장 때 가격 아님? 그 도지가 지금 얼마였더라?
그는 다른 유저들에게 조롱을 들으면서도, 꿋꿋이 할 말을 했다.
[도지코인800층 : 너네 같으면 일 안 하는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하겠냐? 휴지통에 보내서 삭제해버리지 않겠냐?]
- 지워버린다는 게 무슨 말? 존버충들 다 죽는다는 이야기 ㄷㄷ?
- ㅈㄹ하네 ㅋㅋ 우리가 무슨 소프트웨어냐?
- 근데 얘 말도 그럴듯한데. 존버충들 너네가 너무 희망회로 굴리는 거 아니냐?
- 당장 내일 전기 끊기고 물 끊기면 어쩌려고 ㅋㅋ
- 근데 무섭다. 휴지통에 들어가서 삭제되는 기분은 어떨까?
- 네가 지웠던 무수한 동영상들의 기분을 한번 느껴봐.
그는 더 이상 글을 올리지는 않았다. 그의 글을 읽은 사람들끼리 그의 의견이 맞다, 아니다로 논쟁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하기야, 이 세계가 정상이 아니니,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한들 이상할 건 없다. 확실한 건, 변이체를 사냥하지 않는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가혹한 상황에 빠지고 말리라는 것.
물론 나는 아니겠지만.
계속 보고 있자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나는 S31의 스마트 워치 기능으로 주변의 변이체들을 확인한 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수마는 금세 몰려왔고, 그대로 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칠흑 같은 어둠에 덮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라도 오는 걸까? 아니, 그렇다고 보기에는 이건···
[채굴 난이도가 올라갔습니다.]
[무작위로 매일 한 시간씩 일식이 찾아옵니다.]
[일식동안 변이체들의 능력치가 상승하는 대신 드랍하는 기프트의 양이 두 배로 상승합니다.]
메시지를 본 나는 생각에 빠졌다.
‘버닝 이벤트?’
이거 게임사에서 진행하는 버닝 이벤트 아니냐고.
타다다닥.
무언가가 뛰어오는 소리.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퍽. 타격음과 함께 무언가가 맞았다. 기프트를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뜬다. 기프트 양을 보니 정확히 두 배로 늘었다.
‘최하급 변이체가 뛴다.’
느릿느릿하게 걷던 녀석들이, 제아무리 빨라 봐야 빠르게 걷던 녀석들이 뛰었다. 능력치가 상승했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물론··· 그런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그래도 어두운 건 영 찝찝하다. 하루에 한 시간뿐이지만, 앞으로는 매일마다 계속 일식이 한 차례 일어날 것 아닌가.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스킬을 구매해줘.’
[빈 스킬 슬롯이 없습니다.]
[스킬을 삭제하거나, 추가 스킬 슬롯을 해금해야 합니다.]
여섯 번째 스킬 슬롯을 해금하는 데는 100 기프트가 필요하다고 했다. 당연히 그 정도 기프트는 없다. 엄밀히 말하면 있었는데 없어졌다. 어디 가 있냐고? 나는 슬그머니 손바닥 위의 S31을 내려다본다.
자고 일어나니, 새삼스럽게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스마트폰에 몇 기프트를 쓴 거야?
···그러나 과연 요물이긴 요물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 자태가 번쩍거리는 것을 보니, 그런 마음이 들었다가도 금세 누그러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스킬 삭제해줘.’
뭘 삭제할까, 고민하던 나는 제구력 강화를 삭제하기로 했다. 제구력 강화. 투사체 스킬의 명중률을 높여주는 패시브 스킬. 파이어 볼트만 사용할 때는 분명 유용했지만.
근접전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지금은 그 효율성이 떨어진다 봐야 했다. 생각을 마친 나는 망설임 없이 제구력 강화 스킬을 삭제해버렸다. 어차피 0.5 기프트니 필요할 때, 또 사면 그만이다.
<나이트 비전>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고급(Superior)
설명 : 마력을 소모해 암흑 속에서 대낮처럼 환하게, 또렷하게 보게 해준다. 저주에 의한 암흑 상태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저렴한 게 바로 나이트 비전, 가격은 5 기프트. 암흑 속에서 환하게 보게 해준다는 것 외의 옵션은 없는 듯했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구매를 결정했다.
[4.5 기프트를 지불해 스킬 - 나이트 비전(S)을 구매했습니다.]
마력을 사용하고, 속으로 나이트 비전을 중얼거리자 암흑으로 가득한 세상이 선명한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색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단점도 존재하지만 이 정도면 분간하기에는 충분했다.
‘마력을 소모하긴 해도.’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이다.
타다다닥. 다음 순간, 나를 향해 달려오는 하급 변이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녀석은 검을 막으려고 했는지 손을 들었지만, 예리한 미스릴 장검으로 인해 손이 토막 나고, 몸도 뎅겅 토막 나고 말았다.
그 상태가 돼서도 살아 움직이는 녀석의 머리에 가볍게 검을 박아넣는다.
‘강해진 거 맞나?’
어제랑 별 차이 없는 거 같은데.
오늘도 변이체 사냥에는 별문제가 없을 거 같다고 생각하며, 나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스탑워치를 킨다. 아침부터 피곤하긴 하지만 두 배 이벤트, 버닝 타임을 놓칠 수는 없다.
앞으로 한 시간 동안 빡세게 사냥해보실까.
***
날이 밝았음에도 불구하고, 해는 뜨지 않았다.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에게는 또 한 번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메시지와 함께 변이체들이 갑작스럽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모이면 어지간한 금속 문을 넘어트릴 정도로 힘이 강해졌고, 플레이어들이 쉽게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민첩해졌다. 최하급 변이체들의 존재조차 이제 그들에게는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위협인 것은 하급 변이체였다.
온통 암흑에 잠긴 세상 속에서 전깃불은 변이체들의 눈에 띄었다.
미처 안방 불을 끄지 못했던 남자는 인근의 변이체를 그의 집으로 끌어모으고 말았다. 한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 물론 그는 현관문을 걸어 잠갔다.
앞에는 바리케이드까지 쌓았다. 그러나 무언가 크게 들이박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은 물론 바리케이드까지 들썩거린다. 남자는 불안한 눈길로 바리케이드를 쳐다본다.
하지만 다음 순간, 현관문이 그대로 쓰러지며 거대한 하급 변이체가 들어왔다. 바리케이드 따위는 단숨에 허물어졌고 순식간에 방안까지 들어온 변이체는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남자는 그대로 몸이 찢어져 죽고 말았다. 다른 플레이어의 상황 역시 그다지 다르지는 않았다. 물론 대비를 한 곳은, 그동안 변이체를 열심히 잡으며 이 세계에 적응한 플레이어들은 달랐다.
제이드.
흑인과 한국인의 혼혈인 그는 세상이 이 지경으로 변해버리자마자 변이체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피지컬로 사냥한 그는 근 하루 반나절 동안 무려 일백이 넘는 변이체를 사냥했다.
그리고 그는 모조리 기프트를 무기에 투자했다.
능력치보다는 무기에 투자하는 편이 나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를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하급 변이체. 아무리 그라 하더라도 정면으로 충돌하면, 무사하기를 기대하기란 힘들 것이었다.
그러나 침착하게 타이밍을 기다리던 제이드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짧은 격발음. 탄환은 그대로 하급 변이체의 머리를 꿰뚫었다. 그러나 하급 변이체는 멈추지 않았고 그를 향해 점프했다.
그러나 그는 웃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구한 플레이어들. 그것이 바로 그의 자신감의 근원이었다. 플레이어들은 어김없이 총을 한 자루씩 들고 있었다.
탕탕! 탕탕!
제 아무리 강화된 하급 변이체라 하더라도, 탄환 세례를 견뎌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저항한다고 몸을 들썩였지만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메시지.
[‘패스트 팔로워 1’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패스트 팔로워 1>
등급 : 일반(Normal)
조건 : 플레이어 중 일백 위 이내로 하급 변이체 처치.
보상 : 채굴량 +0.1%
“예스, 업적이다!”
“0.1퍼라니 씨발 존나 짜긴 한데. 이게 어디야?”
그들 중에 업적을 달성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의 채굴량은 잘해봐야 -98퍼 정도. 그러다 보니 0.1퍼도 감지덕지할만한 일이었다. 변이체의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이드는 일어났다.
“리더, 어쩔 거야? 일식이 끝날 때까지는 앞으로 30분은 남은 거 같은데.”
“기다린다. 지금 움직이는 건 너무 위험성이 커.”
제이드의 말에 그의 파티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배의 기프트를 준다 해도, 죽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확실하지 않은 일에 굳이 모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때 파티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 딸배 아재도 지금 사냥 중일까?”
“영상 보니까 겁나 잘 싸우던데.”
그들 역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영상을 시청했었다.
그리고 감탄했다. 그들 역시 꽤 많은 변이체들을 잡아 왔다고 자부했지만 영상 속에 출현하는 남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만하다간 결국 죽고 말 거다.”
제이드는 단언했다.
“이 일식 기간에는 하급 변이체를 상대하는 것조차 쉽지 않지. 게다가···”
하급 변이체가 전부가 아니다.
“리더는 중급 변이체가 나올 거라 생각해?”
“틀림없이 나올 거다.”
플레이어 다섯 명을 죽이는 것. 어렵지 않은 조건이다.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앞으로 얼마든 나올 수 있다. 중급 변이체는 얼마나 강할까.
심지어 이 일식 기간에 강화된 상태라면.
***
[중급 변이체]
- 플레이어를 살해하고 진화한 변이체.
- 하급 변이체일 때보다 모든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손톱의 마비독뿐만 아니라 진화 형태에 걸맞은 스킬을 가지고 있다.
- 진화 조건 : 플레이어(Player) 25명 살해 시, 상급 변이체로 진화.
- 보유 기프트 : 3
도심에서 몰려드는 변이체를 베어 넘기고 있던 나는 드디어 ‘중급 변이체’를 만날 수 있었다. 녀석은 겉보기에는 하급 변이체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한 가지가 달랐다.
바로 지성과 본능이 공존한다는 것. 녀석은 머리를 쓸 줄 알았다. 내가 강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기껏 녀석을 기대했던 나는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중급 주제에 최하급, 하급보다도 못하네.’
나는 정신없이 도망치는 녀석을 쫓아갔다. 쫓아간 이유는 간단했다. 보유한 기프트 3 기프트. 내 채굴량 보너스를 생각한다면 대략 60퍼센트(정확히 62%) 정도가 추가돼서 5 기프트 정도가 된다.
버닝 타임이라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한 마리당 무려 10 기프트. 걸어 다니는 황금 고블린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녀석도 생각이 다 있었던 모양이다. 녀석을 쫓아 도착한 성당에는.
녀석과 같은 중급 변이체가 하나도 아니고, 무려 다섯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이 웃었다. 마치, 이제 넌 x됐어. 하고 얼굴로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황금 고블린이 다섯 마리로 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