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변이체 무리를 상대하던 도중, 기존에 쓰던 소방용 도끼가 박살이 나버렸다. 하기야, 애초에 평범한 소방용 도끼였으니 지금까지 안 부서진 게 신기할 정도다.
어쨌거나, 그래서 상점에서 대체품을 구했다. 아니, 대체품이라 칭하기에는 지나치게 뛰어난 물건. 미스릴 장검. 정가 15 기프트짜리 레어 등급 아이템인 만큼 그 성능만큼은 확실했다.
변이체를 처치하는 속도가 이전보다 배는 빨라졌다. 그 덕에 업적도 달성할 수 있었다.
[‘변이체 슬레이어’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변이체 슬레이어>
등급 : 일반(Normal)
조건 : 최초로 변이체 1,000마리 처치
보상 : 랜덤 일반 스킬 카드 x1
불과 어젯밤까지만 하더라도 배달부를 하고 있던 내가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변이체 천 마리를 처치했단다. 새삼스럽게 괴리감이 느껴진다. 상폐당한 코인 채굴기로 테라포밍된 지구라니.
이게 정말 현실이 맞는 걸까.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본다. 그러나···
[이건 정말 현실이 맞습니다.]
내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시스템 메시지만 출력될 뿐이다. 이 의미 없는 생각을 관두기로 하고, 보상을 확인했다. 랜덤 일반 스킬 카드라고 했었지···
<랜덤 일반 스킬 카드>
설명 : 일반 등급 스킬 카드 한 장을 랜덤으로 뽑는다.
‘가챠네.’
가챠.
모바일 게임에서 흔히 등장하는 랜덤 뽑기 시스템. 좋은 동료를 뽑는다든가, 좋은 장비를 뽑는다든가, 아니면 좋은 의상을 뽑는다든가··· 구성품은 제각각이었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그것은 바로, 행운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엿 같은 시스템이라는 것. 살면서 운이 좋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단언컨대 행운이란, 나와 제일 거리가 먼 단어였다.
‘애초에 운이 있었다면 코인에 물릴 일도 없었겠지.’
[플레이어, 이진서보다 운이 좋은 사람은 이 우주를 찾아봐도 몇 되지 않을 겁니다.]
‘사람 놀리냐?’
이내, 허공에서 하얀색 카드가 내려온다.
나는 카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하얀색 카드가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된 건가 싶어서, 황급히 손을 떼어냈지만 카드는 녹색으로 완전히 변해버렸다.
[행운 10이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불러옵니다.]
[기존 보상이 상향 조정됩니다. 랜덤 일반 스킬 카드가, 랜덤 고급 스킬 카드로 변경됩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세계는 행운조차 기프트로 살 수 있는 세계라는 걸. 그리고 단언컨대,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운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랜덤 고급 스킬 카드에 손을 뻗었다.
<스킬 카드 - 위압(S)>
[스킬 카드 - 위압(S)을 소모해 스킬 - 위압(S)을 습득하겠습니까?]
위압이 무슨 스킬인지는 모르지만, 고급 등급 스킬. 습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위압>
종류 : 액티브(Active)
등급 : 고급(Superior)
설명 : 마력을 방출해 범위 내의 적을 억누른다. 억눌린 적은 마력 능력치에 따라 최대 27%의 능력치가 감소하고, 일정 확률로 공포에 빠지게 된다.
위압은 디버프 스킬이었다. 설명만 들어보면, 좋은 스킬인지 판단이 가지 않아 직접 시험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시험해볼 대상은 주변에 넘칠 정도로 많았다.
‘그 결과는···’
몸을 돌려 달아나는 변이체들. 위압에 의해 능력치가 감소한 탓인지, 그 몸놀림은 느릿느릿하다. 그들을 지켜보던 나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내 손바닥 위에 생겨나는 다섯 개의 파이어 볼트. 집중과 제구력 강화를 사용한 후, 가볍게 집어 던진다. 변이체들을 향해 날아간 파이어 볼트는 그대로 펑! 하고 폭발을 일으켰다.
[0.161 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0.805 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다섯 개의 메시지. 잿더미가 된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몸을 돌렸다. 다시 변이체를 찾아나가기 위해서였다. 그때, 내게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 저기요!
고층 아파트를 바라본다. 남자 한 명이 창문 밖으로 빼꼼 얼굴을 내민 채 간절한 얼굴로 수건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플레이어.’
그동안 돌아다니면서 플레이어를 본 건 진혜연을 제외하면 이번이 처음. 하기야, 고층 건물이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흥미가 생긴 나는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부서진 유리문을 넘어,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
“그러니까 형님···”
정민혁, 26세 남자. 공시생이었던 그는 테라포밍 당시 이 고층 아파트에 있었고, 덕분에 변이체들의 습격을 받지 않고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생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제가 형님 동영상을 너튜브에 올릴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그는 내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스마트폰에서는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방금 내가 벌인 전투 영상. 거리가 멀어 조금 흐릿하긴 하지만, 잘 뽑히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괜찮긴 한데 볼 사람이 있을까요?”
“예, 볼 사람이야 많습니다. 그건 제가 보장합니다.”
그는 포털 사이트의 최신 글들을 보여줬다. 하나? 아니, 새 글 수가 무려 수천 개에 육박한다. 모두 멸망 이후에 쓰인 글들. 즉 글을 적은 이들이 전부 플레이어들일 것이다.
한 사람이 여러 개를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기야 하급 변이체가 심심치 않게 출현할 때 짐작하긴 했지만.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어느 능력자가 대충 추산해본 바에 의하면 이 서울에만 일만 명은 넘을 거라 하더라고요.”
서울 시민들의 숫자가 천만 명 정도라고 생각해보면, 1000분의 1인 셈이다. 물론 표본이 적으니 신뢰할 수는 없다. 플레이어로 각성하는 정확한 기준을 아직 알지 못하니까.
“혹시 민혁 씨도 기프트 코인 물··· 아니, 구매했었습니까?”
차마 물렸냐고 물어보려다가 아픈 데를 찌르는 것일지도 몰라 관뒀다. 하지만 정민혁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그거에 대해 떠들던데, 시스템 메시지도 뜨던데··· 저, 기프트 코인이 뭔지도 모릅니다.”
추측이 틀렸다. 아마, 내가 모르는 다른 기준이 있는가 보다.
“진서 형님은 앞으로 어쩌실 겁니까?”
“저야 뭐, 하던 대로 계속 변이체 사냥하게요. 민혁 씨는?”
“저도 뭐, 있던 대로 계속 방안에 처박혀 있어야겠죠. 저는 형님 좀비를 때려잡을 만한 강심장은 되지 못해서요.”
하기야, 이곳에 있는 한 안전할 것이다. 내가 근처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처치하기도 했지만 설령 떼거리로 몰려온다 하더라도 이곳까지 올라올 확률은 드물다.
진혜연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형님, 무사하셔야 합니다. 제가 꼭 형님 스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민혁 씨도 무사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무슨 일 있으시면···”
전화번호를 줄까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굳이 그럴 필요 없이, 더 좋은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지갑에서 치킨집 명함을 찾아 건넨다.
“앱으로 거기 찾아서 주문하세요. 근처에 있다면 제가 도우러 가겠습니다.”
인터넷이 작동한다는 건, 앱 역시 아직 작동하고 있을 확률이 농후하다는 뜻이다. 앱으로 주문을 하면, 라이더인 내게 알림이 온다. 이 미친 세상에서 주문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송파구 바른 마음 교회. 겉보기엔 평범한 교회지만, 사실 그 실체는 종말론을 열렬히 주장해오던 사이비 교회다.
물론 그들을 사이비라 부르던 ‘주류’들이 변이체로 변해버린 지금, 과연 그들을 사이비라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다시 말하면, 그들은 변이체로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들은 종말을 맞이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종말론자들이 종말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신자들은 이 모든 것이 신이 자신들을 구원했기 때문이라고 뼛속까지 깊이 믿고 있었다. 이런 엄청난 기적을 겪은 그들의 신앙심은 한층 더 깊어졌다.
“우리는 노아가 된 거다.”
“아니, 목사님이 노아고, 우리는 노아의 자손들이 된 거지.”
신자들은 자신들이 노아의 후손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이 모든 상황은 하나님이 노하셔 일으키신 대홍수고, 바른 마음 교회는 노아의 방주처럼 그들을 재앙에서 지켜줬다는 것이다.
한편 교주인 이장우는 집무실에 틀어박힌 채 성경을 읽고 있었다.
‘어디 구절을 인용해야 철석같이 믿어줄까?’
신도들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 종말론을 주장했지만 그도 진심으로 종말론을 믿었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포함한 바른 마음 교회의 신자들은 살아남았다.
그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신자들에게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니 뭐니 하는 자질구레한 이유는 아니었다.
‘과거 헌금을 횡령해서 코인을 구매했었다.’
기프트라는 이름의 코인이었다. 물론 하루 만에 -10퍼센트 하락빔을 맞고, 손절했었다.
하지만 처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소량의 기프트 코인이 지갑에 남았고, 그 덕에 플레이어로 각성하게 된 것이다. 코인을 구매한 그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구매한 신자들마저도.
‘만약 그걸 손절 안 쳤으면 나는 신이 됐겠지.’
기프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지금, 아쉬움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는 지나간 것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에게는 신자들이 있다.
자신에게 헌금 대신 기프트를 갖다 바칠 신자들이. 그 숫자가 외부에 나간 인원까지 포함하면 대략 사백 명. 즉, 자신은 다른 플레이어들의 400배를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신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러기 위해서는 교리를 완성해야 한다.’
교리를 완성해서, 완전히 신자들을 현혹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토록 성경에 열중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한동안 욥기에 열중하던 그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봤다. 스마트폰에서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플레이어들끼리 화제가 된 영상이었다.
‘사탄.’
한 남자가 변이체 수십 마리를 가볍게 처치하는 내용의 영상이었다. 남자는 강했다. 어쩌면 대량의 기프트 보유자일지도 모른다. 이장우는 그를 사탄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내부의 결속을 위한 강력한 사탄의 존재는 필수였으니까.
‘녀석이 지금은 더 강할지 몰라도, 가까운 미래에는 아닐 것이다.’
어차피 자신의 신도들이 있는 이상, 자신이 그를 압도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다음 시나리오는···’
변이체와의 전쟁이었다. 이곳 송파구에 있는 변이체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다른 플레이어들을 추가로 신도로 모집할 생각이었다. 만약 신도가 되지 않겠다면?
“노아의 방주에 탑승한 건 노아와 노아의 자손들뿐만 아니라, 가축들 역시 탑승했다. 그들은 위대한 약진을 위한 가축이 될 것이다.”
노예로 삼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