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일본의 캡슐 호텔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이 들어가 겨우 몸을 누일 수 있을 정도의 자그마한 부스. 방금 내가 VVIP 상점에서 구매한, 9급 안전 가옥이다.
<9급 안전 가옥>
내구 : 500/500
넓이 : 4.3㎡
설명 : 안전을 목적으로 설계된 가옥.
기능 : 기척 제거 Lv.1, 오토 쉴드 Lv.1
[안전 가옥의 내구도가 40% 미만으로 떨어지면, 오토 쉴드를 사용합니다.]
겉보기엔 부실해 보이지만··· 중급 변이체의 침입을 무난하게 막아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화장실 등과 같은 시설이 일체 없기 때문에 이 안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안전 가옥을 매만지고 있는 진혜연에게 말했다.
“위험할 거 같으면, 이 안에 들어가서 문 꼭 닫고 있어.”
“네, 아저씨.”
복도에 침입한 하급 변이체로, 그 성능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이번 하급 변이체는 아까 죽인 녀석과 달리, 정상적인 사람에 가까운 형태다. 다만 다른 변이체와 달리 온몸이 검게 변색돼있다. 변이체마다 진화가 다른 건가.
짧게 생각을 이어나가면서, 진혜연과 나는 안전 가옥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문이 닫힌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빠르게 달려드는 녀석.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녀석은 우리를 향해 도약했지만, 문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쿵, 쿵. 녀석이 계속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흔들리지도 않고. 이 정도면 편안하네.’
나는 다시 문을 열었다.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 피투성이가 된 주먹으로 나를 향해 휘둘러왔다. 그러나 나 역시, 녀석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과 주먹이 맞닿는다. 으득.
[강타(N)를 사용했습니다.]
새로 얻은 스킬을 사용하자, 녀석의 손톱은 물론, 주먹, 팔 전체가 그대로 함몰돼버렸다. 진혜연이 쇠파이프로 그런 녀석의 머리를 내리쳤다. 퍽! 퍽! 그러나 녀석은 쉽게 죽지 않는다.
하기야, 그녀의 근력은 1. 최하급 변이체라면 모를까 하급 변이체인 녀석을 고작 도끼질 몇 번으로 죽이기엔 부족하다.
나는 그녀를 뒤로 물리고 소방용 도끼를 들었다. 녀석의 머리에 떨어지고, 그대로 머리를 두 쪽을 내는 걸 넘어서 아예 수박처럼 박살을 내버렸다.
어제까지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잔인한 광경임에도 별 감흥은 없었다. 음··· 게임의 몬스터가 잔인하게 죽는다고 해서 불쌍하다거나, 먹은 게 올라온다거나 그러진 않잖아.
굳이 빗대자면, 그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 진혜연에게 0.805 기프트를 양도했습니다.]
“에?”
혀 짧은 소리를 내며 당황하는 그녀.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방금 건 네 몫이니까.”
뭐 사실, 그녀는 막타 친 쪽에 가깝긴 하지만.
“기프트로 스킬을 사는 것도 좋지만, 식량이나 식수도 구할 수 있으니까. 혹시라도 버텨야 될 상황이 온다면 아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0.805 기프트로 식수와 식량을 구매한다면 설령 갇히게 된다 하더라도 안전 가옥 안에서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네, 오빠.”
은연중에 호칭이 바뀌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아무렴 아저씨보다야 오빠가 듣기 좋으니까.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충고를 한 나는 배낭을 멨다.
“문 잠그고 갈게.”
“꼭 무사하셔야 돼요.”
진혜연은 또다시 울먹이기 시작한다. 곧 그녀는 안전 가옥 안으로 들어갔고, 홀로 남은 나는 소방용 도끼를 단단히 쥐었다. 그리고··· 현관의 문을 힘껏 열었다.
현관 앞에 쥐새끼처럼 붙어있던 변이체들 여럿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이내, 녀석들은 나를 향해 달려든다. 내 소방용 도끼가 휘둘러질 때마다 어김없이 녀석들의 머리는 박살 났다.
숫자가 문제가 아니다. 나는 녀석들에게 상위 포식자. 순식간에 열 마리 남짓한 최하급 변이체들을 처치한 나는 다시 문을 닫은 후,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왔다.
1층은 변이체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어제, 내가 처리한 놈들이다. 소방용 도끼에 묻은 피를 탈탈 털어내며 나는 바깥으로 나왔다. 태양이 중천에 떠있다.
다만 하늘은 피처럼 붉다. 시체로 가득한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최하급 변이체들이 주택 곳곳에서 출몰하기 시작한다. 어제와 달리 공포는 느껴지지 않는다.
입꼬리를 올리며 그들을 맞이한다.
“집중.”
[집중(N)을 사용했습니다. 다음 공격 3회의 명중률이 30%만큼 상승합니다.]
“파이어 볼트.”
손에 둥둥 떠오르는 불화살. 하지만 그 개수는 하나가 아니라, 무려 셋이다. 마력을 올리니 파이어 볼트를 여러 개 시전해도 마력이 남을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변이체들을 향해 사정없이 집어던진다.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불화살들은 그들의 머리에 어김없이 명중했다. 집중 스킬에, 제구력 강화 스킬 콤비. 45%의 명중률 상승.
못 맞히는 게 이상하다.
“앞으로 기프트 얻을 때마다 모조리 마력에 투자해줘.”
[확인했습니다. 0.483개의 기프트를 0.483의 마력으로 전환합니다.]
마력을 소모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마력이 차오른다. 나는 이번에는 네 개의 파이어 볼트를 사용했다. 이런 식이면 굳이 세 개로 만족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도시를 떠돌아다니기를 한 시간여.
[마력 능력치가 10에 도달했습니다.]
[앞으로 마력 능력치를 올리려면 6배의 기프트를 필요로 합니다.]
[능력치 자동 전환을 취소하시겠습니까?]
분명 마력 능력치의 효율은 뛰어났지만, 굳이 6배의 기프트를 소모하면서 올릴 바엔, 다른 능력치를 올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근력. 모든 능력치 10을 목표로 노리자.’
그 또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
자동차, 오토바이를 비롯한 모든 운송 수단이 고철이 돼버렸지만, 이외의 것들은 아직도 멀쩡했다. 살아남은 이들-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변이체들의 공격에서 무사히 살아남는다는 가정하의 일이었지만. 어쨌거나 그 덕에 플레이어들은 서로 전자기기를 통해 소통을 나누는 것도 가능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커뮤니티 D. 본래에는 1초에 수십여 개, 많게는 수백여 개의 글이 리젠될 정도로 활달한 사이트지만, 그런 D 사이트 역시 글 리젠은 한동안 멈춰 있었다.
이용자 대부분이 변이체로 변해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한동안’이라는 건 그런 D 사이트에 글이 하나 올라왔기 때문이다.
- 다들 살아있음?
그러자 5초 뒤쯤, 화답하듯 답글이 하나 올라왔다.
- ㅇㅇ
- 와 나 말고 사람들 다 뒤진 줄.
- 나도 살아있다.
- 나도 ㅋㅋ 변이체들한테 오른팔을 맡기고 와서 왼손으로 타자 치는 중.
- 오른팔을 맡겼댘ㅋㅋ
- 일단 다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보 공유점.
이내, 그들은 각자 보고 겪은 경험들을 이야기 시작했다.
- 문 꼭 잠그고 침대 안에서 이불 덮고 숨어 있으셈 ㅋㅋ
- 언제 끝날 줄 알고? 변이체들 때려잡아야 됨. 변이체 잡아야 기프트 얻어서 능력치 올리지 ㅋㅋ
- 나도 변이체 잡아봐서 하는 말임. 변이체 한 마리 잡아봤자 0.001 올릴 수 있는데 그거 올려서 언제 모음?
- 0.001? 나는 업적 있어서 0.002씩 들어오는데? ㅋㅋ 업적 시스템은 앎?
- 0.002라도 1 올리려면 500마리 잡아야 되는 거잖아?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이 상황에서도 둘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변이체들을 죽여서 기프트를 얻어야 한다는 쪽과, 변이체들을 죽여 봤자 별 의미 없으니 존버해야 한다는 쪽으로 말이다.
- 존버충들은 집에 식량 다 떨어질 때까지 평생 존버해라 ㅋㅋ
- 응 살인충들아. 변이체들이 원래 사람이었던 건 앎? 느그들 결국 감방 갈 운명 ㅅㄱ
- 좀비 영화에서 좀비 죽여도 살인이디? ㅋㅋ 존버충들은 뇌가 없어요.
- 그 변이체들 중에 느그 부모님 계신 거 아니냐? 살인 패륜충들아.
- ···근데 니들 왜 싸우는 거임?
등등··· 의식의 흐름처럼 이어져가던 논쟁은 느닷없이 링크된 한 영상 때문에 중지되고 말았다.
- 맙소사,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카메라는 고층 아파트에서 촬영된 듯했다.
흔들려서 초점도 잘 안 맞아, 화질이 그리 좋지 못했지만 상황을 확인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영상 속의 남자는 검 한 자루만 들고 수십 마리의 변이체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어김없이 변이체들의 몸이 박살 났다.
- 베이는 것도 아니고 박살이 나네? 저게 물리학적으로 가능한 일이냐?
- 애초에 이 모든 일이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일이냐고 말하려 했는데 ㅋㅋ 씨발 저건 너무하네.
- 저게 가능한 거였음?
심지어 최하급 변이체들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플레이어 한 명을 집어삼키고 진화한 하급 변이체. 그러나 그런 하급 변이체 역시 남자의 검 앞에서는 동등했다.
하급 변이체들과 맞닥뜨린, 혹은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 플레이어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영상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변이체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 좀비들이 도망가네?
- 사람이 아닌 건 좀비들도 알아보나 봄 ㅋㅋ
남자는 도망치는 변이체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대로 놓아주는 건가, 싶은 순간 남자의 손에서 불빛이 번쩍이더니 붉은 화살이 변이체들을 향해 날아갔다.
- 저거 마법 아님? 저런 것도 가능함?
- 설명해주는 가이드가 기프트로 스킬도 살 수 있다고 말하긴 했었음. 스킬 가격이 창렬이라 그렇지.
스킬의 가격은 최소 0.5기프트. 좀비를 무려 500마리 잡아야 얻을 수 있는 수치. 이 또한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불가능한 수치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남자는 이내 사라져버렸고, 영상도 거기서 중지됐다.
- 존버충들아 잘 봤지? 저게 우리 미래임 ㅋㅋ
- 우리 미래임 ㅇㅈㄹ 하고 있네. 살인충들아 니들이 저렇게 성장하려면 10만 년은 걸리겠다. 쟤가 우리를 구하러 올 때까지 우리는 존버나 하련다.
- 그런데 쟤는 어떻게 저렇게 강한 거임?
물론 그 말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의 강함은 비정상적이었으니까.
- ···혹시 NPC 아닐까?
라고 막연한 추측만 했을 뿐.
한편 영상 속의 남자, 이진서는 검을 바닥에 탈탈 털었다. 그의 주위에는 변이체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처음 접하는 이라면 토악질을 흘릴지도 모르는 잔인한 장면이지만, 시체라면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사실은 허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장비 정보를 훑고 있는 것이었다.
<미스릴 장검>
종류 : 무기(Weapon)
등급 : 레어(Rare)
내구 : 49/50
옵션 : 근력 +1, 공격력 +30, 부정한 존재에게 추가 공격력 +30
그가 구매한 15 기프트짜리 장검. 10퍼센트의 할인을 받아 13.5 기프트에 구매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에게도 고가의 아이템임에는 분명했다.
중급 변이체의 공격조차 막아낼 수 있는 ‘9급 안전 가옥’만 하더라도 이 미스릴 장검 한 자루에 미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비싼 만큼, 성능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