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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코인 채굴-4화 (4/236)

4화

운이 좋았다. 저기 거리에 잔뜩 있는 좀비와 같은 것들- 변이체들이 출현하기 시작했을 때, 남자는 집 안에 있었으니까. 따라서 그가 변이체에게 쫓기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는 대문을 내려다본다.

든든한 강철로 이루어진 대문. 변이체들이 몰려있음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서 있다. 물론 자신이 있는 이곳까지 들어오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저 대문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대문이 뚫린다 해도 작은 대문이 하나 더 있고, 작은 대문이 뚫린다 하더라도 현관문이, 설령 현관문이 뚫린다 하더라도 2층 문이 하나 더 있다.

그리고 설령 2층 문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벽장으로 들어가 숨으면 찾지 못할 것이다.

‘그래, 나는 안전해.’

어떻게든 버틸 것이다. 군인들이 자신을 도우러 올 때까지, 이 도시를 정화할 때까지. 그러나 그의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거리를 질주하는 한 명의 사람 때문이다.

“도, 도와줘요!”

잔뜩 소리 지르면서 달리고 있는 여자. 아주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뒤에 변이체들을 줄줄 몰고 다니고 있다.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아, 그는 몸을 숙인 채 상황을 지켜봤다.

그런데 여자의 시력이 꽤나 뛰어난 모양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봤는지, 그가 있는 곳을 정확히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아저씨, 거기 있는 거 다 알아요! 도와줘요!”

이크, 움찔거렸던 남자는 몸을 숙였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여자는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러나 그가 떠올린 감정은 ‘냉소’였다.

“도와줘? 씨발, 지랄하고 있네. 에라이 물귀신 같은 년아, 그냥 죽어라.”

물론 여자는 그의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잠시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여자는 쫓아오는 변이체들을 피해 또다시 달아난다. 남자는 무사히 폭풍이 지나간 것에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여자는 다시 돌아왔다.

[하급 변이체]

최하급 변이체가 진화한 상위종이 된 상태로.

온몸이 회색으로 변한 여자가 대문을 향해 달려든다. 쿵!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남자는 그제야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저년이 한을 품었구먼.’

피해야 하나? 아니면 여기서 가만히 있어야 하나?

‘아니, 그래도 인간이었는데 설마 저 대문이 무너···’

다음 순간, 그는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대문이 우지끈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여자가 선두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수십 마리의 변이체들이 따랐다.

‘도망···’

치기엔 늦었다. 황급히 몸을 일으켜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벽장이었다. 벽장의 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야, 그는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을 느꼈다.

‘이 괴물 같은 것들아, 빨리 사라져라.’

살아남을 거다, 무조건 살아남을 거다. 그리고 마침내, 뚜벅뚜벅. 그의 귓가에 누군가가 방안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가라, 가라.’

발소리는 다시 문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한참을 숨죽이고 기다리던 남자는 점점 허리가 욱신거리는 걸 느꼈다. 이놈의 허리 디스크··· 이만하면 갔겠지?

스스로 질문한 그는 변이체들이 갔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애초에 변이체가, 그 미친년이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벽장으로 들어오려 했어야 옳으니까.

그는 조심스럽게 잠금을 풀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달빛 사이로 비치는 여자의 나신이었다. 그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진다.

“씨발.”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은 그에게, 여자가 달려들었다. 그는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손톱에 찔렸고, 이내 신경 독에 의해 거미줄에 걸린 포로처럼 잠잠해지고 말았다.

***

[집중(N)을 사용했습니다. 다음 공격 3회의 명중률이 30%만큼 상승합니다.]

약 20m 정도 떨어진 변이체를 향해 화살을 겨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피융. 허공을 가르고 날아간 화살은 정확히 변이체의 머리를 꿰뚫었다.

하지만 변이체의 몸이 잿더미로 변하기 전에, 이미 나는 화살을 하나 더 장전했다. 피융, 그리고 하나 더. 피융. 연이어 발사되는 두 발의 화살. 어김없이, 변이체의 머리를 꿰뚫는다.

스킬이 아닌 일반 공격이기에, 제구력 강화 스킬의 명중률 보정을 받진 못한다. 즉, 집중 스킬의 30% 명중률 보정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백발백중.

대충 조준하고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목표한 지점에 거의 다 맞을 정도다.

‘고작 일반 스킬 두 개를 조합해도 이 정도인데···’

윗 등급의 스킬들의 효과는 어떨까? 그때, 뒤에서 진혜연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활을 내려놓고 뒤를 돌았다. 창문을 깨고 변이체 한 마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평범한 변이체가 아니었다. 다른 변이체들의 생김새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눈앞의 녀석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웠다. 사족 보행에, 인간의 그것을 한참 벗어난 손톱.

[하급 변이체]

- 플레이어를 살해하고 진화한 변이체.

- 최하급 변이체일 때보다 모든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마비독의 효과 역시 그에 걸맞게 강화됐다.

- 진화 조건 : 플레이어(Player) 5명 살해 시, 중급 변이체로 진화.

- 보유 기프트 : 0.5

‘하급 변이체.’

그 설명만 보더라도 최하급 변이체보다 강력한 존재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긴장은 되지 않았다. 간땡이가 부은 걸까? 아니, 내 자신감의 근원은 기프트다.

반나절 동안 내가 처치한 좀비 숫자는 백 단위에 달한다. 그렇게 획득한 기프트들의 일부는 스킬과 마력 능력치에 투자했지만 나머지는 사용하지 않고 내버려 뒀다.

그 숫자는 무려 15 기프트.

‘각각 5 기프트씩, 근력, 체력, 민첩으로 전환시켜 줘.’

녀석의 전력을 알지 못하니, 이쪽도 전력으로 나간다. 15개의 기프트. 적은 양이 아닌 만큼, 그 효과는 분명 대단할 것이다.

[5개의 기프트를 5의 근력으로 전환합니다.]

[5개의 기프트를 5의 체력으로 전환합니다.]

[5개의 기프트를 5의 민첩으로 전환합니다.]

[‘초보 티는 벗었네’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초보 티는 벗었네>

등급 : 일반(Normal)

조건 : 세 개의 능력치 합이 15 이상

보상 : 기프트 채굴량 +0.5%

업적을 자세하게 살필 시간을 주지 않고, 하급 변이체가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 역시 소방용 도끼를 들고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가운데 낀 진혜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타다닥.

다행히 먼저 도착한 나는 진혜연의 앞에 서서 변이체를 맞이했다. 녀석은 나를 향해 손톱을 뻗어왔다. 그러나··· 느리다. 지금의 내게는 더없이 느리게 느껴졌다.

상승한 민첩 능력치 덕분일 것이다.

한 걸음 물러나는 것으로 짐승처럼 길쭉하고, 날카로운 손톱을 회피한 나는 소방용 도끼를 휘둘렀다. 사실 휘둘렀다기보다는 머리를 도끼 끝으로 가볍게 쳤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도끼 끝이 닿는 순간, 말 그대로 녀석의 머리가 뭉개지더니, 그대로··· 쑥 뽑혀버렸다. 너덜너덜한 살점 조직들과 핏물들이 흩날린다.

‘??’

[0.8025 기프트를 획득했습니다.]

[‘퍼스트 무버 1’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퍼스트 무버 1>

등급 : 일반(Normal)

조건 : 플레이어 중 가장 먼저 하급 변이체 처치.

보상 : 기프트 채굴량 +0.5%

머리를 잃었지만 여전히 가속이 멈추지 않은 몸은 내 가슴에 기대듯 쓰러진다. 나는 손을 휘둘러 떨쳐버린 후, 짤막한 감상에 잠겼다. 내가 저질러놓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괴력이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 이진서

출생 : 지구

종족 : 인간

성별 : 남자

나이 : 29

칭호 : 없음

기프트 : 0.6(643,567,585)

채굴량 : +61%

◈능력치

[근력 6.270] [민첩 6.000]

[체력 6.000] [지력 1.000]

[마력 5.000] [행운 1.000]

◈스킬

<파이어 볼트(N)>

<집중(N)>

<제구력 강화(N)>

◈업적

<최상급 기프트 보유자(G)>

<신의 사랑(U)>

<나도 VVIP 상점 이용자(U)>

<초보 티는 벗었네(N)>

<퍼스트 무버 1(N)>

하급 변이체를 근접한 거리에서 압도적으로 죽였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최하급 변이체 정도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제대로 된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스킬만 갖춰진다면 굳이 이 안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다.

‘바깥으로 나간다.’

생각하던 나는 진혜연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녀는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기야, 내가 1초만 늦었더라면, 혹은 녀석이 1초만 더 빨랐더라면 그녀는 변이체의 손톱에 그대로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내가 있는 이상, 그렇게 될 일은 없겠지만.’

“혜연아, 괜찮아?”

“···아저씨, 고마워요.”

거의 울먹거리는 얼굴로 그렇게 대답하는 그녀. 하기야 고작 중학생의 나이에 이런 일을 겪는다는 건 지나치게 잔인한 일이었다.

‘끝낸다.’

이 모든 소란을 내 손으로 직접 끝낸다. 변이체들을 모두 처치한다. 이제는 녀석들이 사냥꾼이 아니라, 내가 사냥꾼이 될 차례다. 다만··· 진혜연의 존재가 마음에 걸린다.

비록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이긴 했지만, 나는 분명히 그녀의 죽음을 원치 않았다.

그녀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다고 그녀를 혼자 놔둔다는 것도 탐탁잖은 일이었다. 하급 변이체, 혹은 그 이상의 등급의 변이체에게 습격당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허공에 대고 물었다.

“혹시 안전 가옥도 판매하고 있나?”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VVIP 상점에서는 모든 상품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안전 가옥 역시 판매하고 있습니다. 몇 급 안전 가옥을 원하십니까?]

“몇 급? 중급 변이체의 공격을 무리 없이 막아낼 수 있는 정도.”

[9급 안전 가옥이면 충분합니다. 9급 안전 가옥의 정가는 10 기프트로, 10퍼센트의 상점 할인을 받으면 9 기프트입니다.]

9 기프트?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아니, 다른 이들에게는 겁나 비싼 가격이겠지만 내게는 아니다. 방금 전과 같은 하급 변이체 열 마리만 처치하면 얻을 수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짤막하게 말한 나는 창가로 다가갔다. 해가 떨어진 지 오래. 적막한 도시에 힘껏 소리친다.

“변이체 새끼들아, 다 와봐.”

내 외침에 변이체들이 몰려오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녀석들은 내 기대에 보답했다. 어둠 너머로 녀석들이 몰려든다. 나는 녀석들을 향해 활을 겨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체력 능력치가 늘어난 탓에, 쉴 필요도 사라졌다. 날이 밝아올 때쯤, 나는 주택 주변에 몰려든 녀석들을 깔끔하게 섬멸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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