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2화
#272
메인 시나리오가 공개된 저녁.
평소라면 집에서 쉬고 있어야 할 나지만 오늘 밤에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그 준비는 다음 아닌 내일 내가 툴비아 후작령으로 갔을 때 해야 할 일이며, 그 일을 위해서는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반갑습니다.”
저번 지은이가 새로운 계약을 위해 빌렸던 그 장소인 룸 카페에 들어가며 인사하는 나였다.
나름 서둘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내가 가장 꼴찌였다.
룸 안에는 제시카와 권율, 그리고 이레귤러 길드의 마스터와 그 옆으로 중년의 남성이 한 명 더 있었다.
나는 그들의 맞은편이자 지은이의 옆자리에 앉았다.
미리 시켜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눈앞에 있는 이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리곤 이레귤러 길드 마스터인 김민성에게 의문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아, 이 사람으로 소개하자면 닉네임 ‘니콜라이’라 불리는 사람입니다.”
“반갑습니다. 한성준입니다.”
그제야 나는 누군지 알게 되었다.
지금 월오룰에서 지략가이자 전략가라 불리는 그 교수님이라는 것을 말이다.
니콜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생각보다 수다스러움과 함께 유난히 큰 액션을 가진 유저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건 게임 속에서 이미지였지 지금 눈앞의 있는 니콜라이, 즉 한성준이라는 사람은 차분한 인상에 나긋한 말투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니콜라이는 이제 이레귤러 길드에 속해 있는 길드원이다.
이레귤러 길드가 사냥을 할 때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명령에 움직이는 것과 길드의 간부이기에 이 자리에 있기엔 충분했다.
그러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갑작스러운 호출임에도 모여주신 여러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커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다음 나는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분을 모이라 한 것은 다름 아닌 비밀 임무를 진행하기 위함입니다.”
내 말에 화들짝 놀라는 중년의 두 남자와 왕방울만 하게 눈을 뜬 제시카와 의아하다는 얼굴의 권율이었다.
아마 여기서 제대로 된 반응을 치자면 권율일 것이다.
비밀 임무라고 하는데 자신들을 부른 의도가 궁금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웨이포인트를 이용해 특정 영지로 향하고, 그곳을 확실하게 점령, 그리고 남하하는 마신교의 뒤를 노려 공격하는 임무라고 말이다.
여기까지 말해주자 눈앞의 네 사람은 경악을 넘어서 충격을 받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지은이마저 입을 벌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을 정도였으니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같은 얼굴이라 보면 되었다.
“…….”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마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에 들어갈 것이다.
과연 나와 함께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것으로 말이다.
저들이 나와 함께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만 굳이 이렇게 자리를 만든 이유는 좀 더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이자 만에 하나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절대자…….’
만약 그가 등장한다면 나로서도 쉽게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지금 절대자에 대한 정보는 너무나도 한정적이다.
셀레스틴 공주를 비롯해 내가 지금까지 게임을 진행하면서 얻은 절대자의 정보는 이러했다.
1. 천 년 전. 초대 서머너 킹과 함께 세상을 구원하던 인물이다.
2. 허나 배신과 함께 각 차원을 떠돌아다니며 멸망을 길로 안내했다.
3. 지금 그가 멸망을 바라는 것은 이곳 브리타이나 대륙이다.
4. 이곳에 마왕을 부르는 방법을 알려준 것도 절대자다.
5. 마신교를 막고 절대자도 막아야 한다.
정확하게는 절대자라는 존재의 게임상 설정만 알고 있는 듯한 정보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단편적이지만 이 정도 정보가 있는 것이 어딘가 싶은 심정이다.
아무튼.
절대자라는 존재는 상당히 강력할 것이다.
이미 천 년 전 브리타니아 대륙을 구원했을 정도로 강력했으며 각 차원을 떠돌아다니며 강력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이들이 내 제안을 수락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절대자에 대한 정보도 풀어낼 것이다.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에 나오는 어느 세력의 존재이자 진정한 최종 보스의 존재를 말이다.
그래야만 저들이 나를 선택했을 때 후회가 없을 것이다.
한참을 침묵으로 있던 중에 가장 먼저 김민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런 제안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와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어떤 생각 말씀이십니까?”
내 물음에 김민성이 한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시저 님 혼자서도 힘들기에 저희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번 제안은 상당히 위험이 크다’라고 말이죠.”
그 말에 나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저 혼자는 버거운 수준입니다.”
굳이 숨길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생각도 없다.
그만큼 위험한 일이고, 뒤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할 사실이다.
‘별수 없나…….’
지금 김민성의 눈빛을 보면 거절이라 생각 들었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이 혼자서 해야 할 것 같았고,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고민하려는 찰나였다.
“하지만 그래서 또 하나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방금까지 걱정 가득한 얼굴과 망설임이 가득한 눈빛이 반짝였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한 번쯤은 충분히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하하…….”
나는 웃음이 나왔다.
저 말 또한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위험한 작전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말 할 수 있다.
성공했을 때 그 보상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걸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남은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들의 선택은 어떻게 될지라는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김민성에게 흘러나왔다.
“두 분 또한 저희 길드 소속입니다. 계약상에 내용만 잘 지켜준다면 저를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다름 아닌 시저 님의 부탁이니 굳이 부탁이 아니더라도 승낙할 두 사람이기도 하고요. 아, 이 영감의 의견은 무시해도 좋습니다.”
“같이 늙어가는 처치에 섭섭한 소릴 하네.”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옆에서 두 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저 님 덕분에 저희가 만날 수 있게 되었고, 그 뒤로도 계속 잘 풀리고 있습니다. 언젠간 이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믿고 시켜만 주십쇼!”
권율의 말에 제시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포근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하하…….”
놀랍다.
얼음공주라 불리는 제시카의 얼굴에서 저런 표정이 나오는 게 말이다.
회귀 전에는 방송으로만 보았기에 그 표정이 얼마나 냉랭한지는 여기 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다.
그러니 저 모습에 놀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옆에서 불어오는 냉기에 나는 흠칫 놀랐다.
“그만하지.”
지은이의 말에 제시카의 얼굴엔 살짝 미소가 걸렸다.
그리곤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권율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배시시 웃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진한 냉기가 느껴졌기에 나는 지은이의 손위로 내 손을 포개었다.
“그래도 내 눈엔 네가 제일 예뻐.”
내 말에 한기가 싹하고 사라졌다.
대신 남아 있는 건 나를 향해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지은이었고, 나는 그 모습에 슬쩍 웃어주곤 다시 고개를 돌려 네 사람을 향했다.
아직 업무 처리를 덜 했으니 이쪽이 우선이다.
“간단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번 작전에 가장 위험한 것은 다름 아닌 마신교를 지원하고 있는 어느 세력, 그리고 그 세력의 수장인 ‘절대자’라는 존재입니다.”
나는 내가 아는 정보를 모두 풀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네 사람은 다시 경악하는 얼굴로 변했다.
“다음 주 월요일.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인원, 그리고 확실한 장비를 갖추고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이 금요일인 것을 생각하면 주말 안에 준비는 착실하게 끝낼 것이다.
이미 1 황자에게 그때 움직일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비록 이틀 동안 수많은 NPC가 희생당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당장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확실한 준비가 필요하니 말이다.
“그럼 월요일 오전 9시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회의를 마쳤다.
네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바로 나갔고, 이제 남은 것은 우리 둘이었다.
“어디 갈까? 주말에 접속 안 하고 그냥 푹 쉴 거야.”
“그럼 바다 보러 갈까요?”
“그럴까?”
우리는 손을 마주 잡고 그렇게 천천히 카페에서 나왔다.
* * *
마신교가 본격으로 움직였다.
“절대자님을 위하여!”
“이 세상에 파멸을!”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툴비아 후작령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신교의 기사와 마법사, 그리고 신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하룻밤 사이에 달라졌다.
마왕이 아닌 절대자.
하룻밤 사이에 그들이 믿고 따르는 존재가 마왕이 아닌 절대자로 바뀌었다.
당연히 마신교 세력의 유저들은 갑작스런 변화에 놀라 했다.
“절대자?”
“마왕이 아니었어?”
“갑자기 절대자로 바뀌었네?”
“그렇다면 마신교를 지원하는 세력의 주인이 절대자라는데!”
“와…… 이름부터 절대자. 얼마나 강할까?”
“마신교의 기사나 장로들이 꼼짝 안 하고 저리 움직이는 걸 보면 어마어마한 듯.”
마신교 NPC의 움직임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보고 있는 마신교 세력의 유저들은 하나같이 놀라 했다.
그 이유도 있었다.
당장 가장 먼저 선창을 외친 것은 다름 아닌 마신교의 장로들이다.
허례 의식이 몸에 배어 있으며 꼬장꼬장한 것은 물론이오. 뭐 하나만 하려 해도 온갖 거만을 떨던 것이 다름 아닌 장로들이다.
그런 그들이 아침 해가 뜨자마자 흰 눈썹이 휘날리며 가장 먼저 말을 타고 달려가고 있었다.
마신교의 장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암흑 기사라 불리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NPC가 있다.
이들의 경우 정말로 꺼릴 것 없는 행동을 보이는데, 조금이라도 훈련을 못 따라오는 유저를 서슴없이 검으로 찔러버린다거나 교리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행동을 보이면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는 잔혹한 NPC가 저들이다.
그런 기사들이 광신도 마냥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으니 그 모습 또한 낯설기 그지없었다.
그런 NPC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난 자리엔 유저만이 남았다.
“어떻게 할까요?”
수많은 유저 중 따로 모여 있는 작은 무리.
하지만 그들의 얼굴이라던가 이름을 본다면 절대 무시 못 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그 무리의 중심엔 메시아 길드의 김세준이 있었다.
“…….”
입을 꾹 다물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김세준이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 거기에 의도적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것인지 몸에서 피어오르는 마기와 함께 살기가 진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런 그의 입이 열렸을 땐 평소와 전혀 다른 말투가 흘러나왔다.
“우리도…… 간다…….”
어딜 간다고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결국 한곳으로 모이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김세준의 말을 굳이 한 번 더 풀어서 이야기하는 쥴리안나였다.
“어제 짜드린 편성으로 움직이겠어요. 분명 말씀드리는 것이 하나 있어요. 최대한 많이 죽이고 최대한 많이 약탈하셔야 할 거예요. 그래야지만 새로운 세상에 저희 자리가 있을 것이니까요.”
쥴리안나의 말.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오늘 접속과 동시에 마신교 세력의 유저에게만 따로 생겨난 퀘스트에 있는 내용이었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공적 포인트를 획득하라!]
서브 시나리오.
난이도 : 어려움.
제한 : 마신교 세력 플레이어 한정.
내용 : 마신교 세력이 승리할 시 누적 공적 포인트의 양에 따라 새로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명성과 직위가 달라집니다. 최대한 많은 공적 포인트를 획득하세요.
보상 : 기여도에 따른 공적 포인트.
특이사항 : 강제 퀘스트입니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떨어진 서브 시나리오.
전쟁에서 승리만 한다면 그들이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는 약속을 해주는 퀘스트였다.
“그럼 출발하겠어요.”
쥴리안나의 말에 순식간에 수백만 명의 무리가 움직였다.
대형 길드 열 곳을 중심으로 수많은 인원이 편성된 무리였다.
숫자만 본다면 영지가 아니라 나라 하나를 지워낼 병력이었다.
그런 병력이 전부 움직이고 이제 남은 것은 오직 메시아 길드만 남았을 때였다.
“우리도 가지.”
김세준의 말에 모두가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