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화
#249
벼락같이 쏟아지는 키에브의 검.
그의 일격은 내가 막을 수 있는 수준의 검이 아니었다.
카앙!
하지만 무심이 그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
우우우웅!!
키에브가 뿜어내는 다크 블레이드에 못지않게 엄청난 양의 사(死)기를 뿜어내며 만들어진 죽음의 기운은 모든 것을 저승으로 인도할 것 같았다.
“데스 나이트? 아하! 그 존재구나.”
키에브는 자신을 막아선 존재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그도 그런 것이 눈앞의 데스 나이트이자 내 소환수인 무심은 원래 마신교에서 수하로 만들기 위해서 만든 존재였기 때문이다.
무심 바스티아.
브리타이나 대륙을 구원해 준 위대한 영웅.
그런 그를 바라보는 키에브의 얼굴에는 조롱이 가득했다.
“위대한 영웅이 죽어도 이리 편하게 지내지 못하다니. 큭큭큭. 혹시 영웅이 아니라 단순한 학살자, 혹은 그저 피에 굶주린 짐승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까?”
영웅 따위는 없었다.
그저 승자만이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기에 조작한 것은 아니냐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키에브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이야기도 서슴없이 꺼내기도 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귀가 더러워져 씻고 싶어질 정도.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무심은 오히려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다.
“어디 한 번 계속해 보시게나.”
과연 언제까지 계속 그렇게 더러운 입을 나불거리는지 궁금하다는 얼굴로 그의 검은 점점 매서워져만 갔다.
치열한 공방.
단순히 몇 마디를 주고받은 것뿐임에도 귓가에 들려오는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는 백 번을 넘은 듯했다. 두 검이 이빨을 드러내 서로 잡아먹으려고 하면서 오러의 파편을 흘려 바닥이 난장판이 되었다.
너무나도 팽팽하기만 둘의 싸움.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심이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서걱.
무언가 베이는 살벌한 소리.
무심이 입고 있는 갑옷이 베이는 소리였고, 가슴을 가려주는 철판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일반 유저였다면 엄청난 양의 HP가 줄어들었을 것이고, NPC였다면 그 자리에서 피를 뿜어내며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
하지만 이미 망자의 몸이자 언데드인 데스 나이트의 육체를 가진 무심이기에 고통 따위는 느끼지 못하는지 걸리적거리는 갑옷을 스스로 떼 버리고는 한 발 뒤로 물러나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나는 저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않다.
‘X발, 레벨 차이.’
아무리 검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한 무심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스텟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뭔지 잘 알고 있다.
‘미안하네…….’
바로 다름 아닌 나 때문이었다.
내 레벨이 낮기에 지금 무심의 전체적인 스텟이 낮기 때문이었다.
처음 무심을 만났을 때 그의 레벨은 999였다. 그러니깐 원래의 월오룰 세상에서 절대자의 위치에 올라가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나와 함께하면서 자연스렙게 레벨이 내려갔고, 지금은 나와 같은 550레벨, 즉 449레벨이 떨어진 상황이라는 소리다.
거의 절반이나 다름없는 수준.
그 차이는 엄청났다.
스릉!
그렇기에 내가 끼어들었다.
천마검에 오러 스킬을 둘러 키에브와 무심 사이로 말이다.
쾅! 콰가강!!
둘 사이에 끼어든 나.
사실 이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서로만 바라보고 있는 싸움.
게다가 서로를 죽일 듯이 휘두르고 있는 곳에 끼어든다는 것이 말이다.
자칫하면 나만 공격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군인 무심도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내가 당당하게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무심!”
“시저!”
그저 이름만 불렀음에도 우리는 순식간에 둘이 아닌 하나가 되어 움직였다.
공격은 오직 내가 했다.
내가 노리는 것은 키에르의 심장, 그와 동시에 하체를 노려 그의 기동력을 줄여 어떻게든 우리가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려고 했다.
그리고 방어는 무심이었다.
스컬 대검이라는 크고 무거운 검이라 방어에 적합하지 않은 검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무심의 검술은 공격이 아닌 방어에 치중된 검술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소수의 인원으로 수많은 몬스터를 상대했다.
처음에는 먼저 튀어 나가 셀 수 없이 검을 휘둘러 몬스터를 잡고 다녔다. 하지만 아군의 피해만 계속해서 늘어갔고, 결국 원점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몇 번이고 반복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검술을 뜯어고쳤다.
방어와 방어, 그리고 공격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어 낸 검술이었고, 자그마한 빈틈만 있다면 서슴없이 적의 목을 베어 버릴 수 있는 그런 검술이었다.
그런 무심의 검술이기에 나는 오직 공격만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다.
- 스킬 ‘천마군림보’가 발동되었습니다.
-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공격력이 10% 증가합니다.
- 공격력이 380% 증가했습니다.
천천히 쌓여가는 천마군림보의 스택.
사실 오히려 이게 기회다. 이대로 한 방만 맞춘다면 제대로 된 일격, 혹은 빈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의도를 알아차렸을까? 내 공격엔 맞서지 않고 그저 피하며 나보다는 무심에게 치중하는 모습이었다.
“큭큭큭. 허튼수작은 통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다는 듯한 키에르의 외침.
그러곤 우리를 압도하겠다는 듯 계속해서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눈앞을 가리는 시스템창과 함께 저 멀리 제단에서 빛이 일어났다.
- 마신교의 의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엔 여러 명의 마신교의 인원이 제단을 빙 둘러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 * *
잊혀진 사원의 제단.
그곳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들은 다름 아닌 마신교의 신관과 신도였다.
처음 이곳으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열 명의 인원이 있었지만, 정식 문이 아닌 뒷길을 이용해 빠르게 진입하느라 다섯이라는 신도가 죽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다섯이었고, 그중 포박된 자를 붙잡고 있는 자를 제외한 나머지 넷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하는 행동은 다름 아닌 제단을 중심으로 무언가를 그리며, 주머니의 물건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서둘러라.”
포박되어 있는 자를 붙잡고 있는 자의 외침.
그 외침에 남은 넷이 더욱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손에는 두 개의 물건이 들려 있었다.
하나는 작은 단검으로 놀랍게도 새파란 검신이 아닌 칙칙하다 못해 심연으로 인도할 것 같은 검은 단검이었다.
그런 단검을 들고 다른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을 그대로 푹 찔러 넣었다.
푸욱.
그 물건은 다름 아닌 심장.
누구의 심장인지 알 수 없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굳어 있던 심장이 단검이 박히자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두근두근.
심장에서 뿜어지는 피가 바닥을 적셔 나갔고, 그 피를 손가락으로 가져가더니 무언갈 그리기 시작했다.
“전능하신 마왕 세지아르시여…… 영원한 어둠으로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대를 따르는 미천한 종의 바람이오니…… 이 세상에 어둠의 길이 인도되기를…….”
“그리하여 힘을 나눠주시며 영원한 강자로 군림하게 해 주소서…….”
그들은 경건한 목소리로 기도를 올렸다.
오직 마왕 세지아르를 위한 기도였고, 그 기도의 끝에는 자신들의 믿음과 함께 영원할 것을 맹세기도 했다.
기도문이 끝날 때마다 심장에 박혀가는 단검의 숫자는 점차 늘어났고, 마침내 제단을 적시다 못해 발바닥을 적실 정도로 피가 가득해졌다.
하지만 그 피는 제단에만 머물지 않았다.
마신교의 신도들이 그린 마법진으로 흡수되었고, 그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작은 제단을 서서히 감싸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신관이 포박하고 있는 자를 밀치며 말했다.
“누워라.”
그 말에 그가 사시나무 떨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이곳에서도 도망치고 싶다는 듯 몸을 꿈틀거렸지만,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그자를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퍼억!
“꺄악!”
날카로운 비명.
지팡이에 맞은 탓에 몸을 숙이게 되었고, 얼굴을 가리고 있던 천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민얼굴이 보였다.
금발의 미인.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메말라 버린 눈물 자국 위로 새로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제…… 제발…….”
눈물 자국보다 더욱 메말라 버린 그녀의 목소리.
겨우겨우 내뱉은 목소리에 충분히 동정심이 생길 법도 하지만, 지팡이를 휘두른 신관은 그런 감정 따위는 없다는 듯 외쳤다.
“힘으로 눕혀 버리기 전에 누워라.”
“흑흑…….”
그녀는 결국 스스로 제단 위에 몸을 눕혔다. 눈앞의 자는 정말로 제가 한 말을 지키는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이곳으로 오는 동안 몇 번을 겪은 일이었다.
잦은 구타 탓에 온몸 구석구석 멍 자국은 물론이고, 본능적으로 온몸이 떨렸다.
“흑흑…… 아버지…….”
그녀는 이미 죽었을지 모를 자신의 아버지를 찾았다.
버텨봐야 매질이 돌아올 것이고, 여기서 도망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신관은 지팡이를 들었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영원한 암흑이여, 위대한 마기여. 여기 이곳에서 내가 바라오니.”
그의 주문이 시작됨도 동시에 제단에 빛이 일어났다.
그 빛과 함께 엄청난 양의 마기가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왔다.
마기는 그저 하늘 위로 뻗기만 하지 않았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야금야금 먹어 치워 가기 시작했다.
마치 맛을 음미하는 듯한 조심스러운 움직임, 하지만 이내 그저 먹어 치워야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듯 피를 뿜어내는 심장을 집어삼켰다.
“오오오!”
마기는 피를 먹으며 점차 덩치를 키워 갔다.
더 이상의 먹을 것이 없어지자 새로운 먹이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단에 있는 나가 족장의 시체를 툭 하고 건드리더니 이내 발끝부터 야금야금 집어삼켰다.
으득, 으득, 으드득.
뼈를 씹는 소리가 섬뜩했다.
살점이 뜯겨 나가면서 튀는 피는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마기에 집어삼켜졌다.
나가 족장을 삼키며, 마기는 점차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방금 집어삼킨 나가 족장의 모습과 흡사했고, 마치 유령이라도 되는 듯 투명했다.
그 모습에 기뻐하는 신관은 서둘러 지팡이를 들고는 외쳤다.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자.”
남은 이들 모두가 지팡이를 들었다.
그러곤 마무리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기여! 그대가 삼킨 재물의 힘을 가지고 이곳에 살아 있는 재물을 먹고 살아나소서! 그리하여 이곳에 잠들어 있는 존재를 일깨워주는 힘을 가르쳐주소서!”
신관의 입에서 흘러나온 기도를 똑같이 중얼거리는 네 명의 신도.
그들의 목적은 나가 족장을 삼킨 마기가 재물의 몸속에 깃들어 이곳에 잠들어 있다는 씨 서펀트를 깨워, 대륙의 혼란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목적이 이뤄지려는 찰나였다.
“……!!!”
어디선가 들려오는 외침.
하지만 주문을 외우고 있는 그들에게 들려오진 않았다.
하물며 마무리 작업에 들어간 상태이기에 이미 모든 기력을 전부 소모한 상황이었기에 반응조차 할 수 없을 때였다.
“호호호! 아가들아, 교육받을 시간이다!”
높은 웃음소리. 그리고 채찍이 휘둘러져 주문을 외우고 있던 신관의 손을 때렸다.
쫘악!
마나의 채찍이 신관의 손을 강하게 때렸고, 들고 있던 지팡이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캬락!”
“우끼! 우끼끼!”
연이어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에 신관은 고개를 돌려보았다.
제물로 바쳐진 여인이 두 짐승 중 날개가 달린 쪽에 안긴 것을 보았다.
“아…… 안…….”
신관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나가 족장을 먹어 치운 마기가 그 신관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제물로 바쳐진 여인으로 향해야 하지만, 제물이 사라졌기에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 향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마기는 신관 하나만이 아닌 남은 넷 앞으로도 움직였고, 순식간에 다섯 개로 나뉜 마기가 그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오! 나이스다! 애들아!”
시저가 기뻐하는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