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1화
#241
[Welcome to the World of Ruler]
회귀 전 10년을 지켜주었던 문구.
그리고 업데이트가 끝난 지금 시점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저 문구에 절로 미소가 흘렀다.
‘변치 않아.’
그래서 좋았다.
회귀했을 때 돌아온 내 방과 같은 아늑함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월오룰을 아직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검게 물들었던 세상이 다시 빛과 함께 찾아왔다.
나는 키트비느 자작의 성벽 위에 서 있었다.
아직은 캄캄한 새벽, 이제 곧 햇살이 세상을 밝게 비춰 줄 시간이기에 더욱더 어두운 하늘이 나를 반겼다.
횃불에 의지하며 성벽에서 근무 중인 NPC 병사들이 보였다.
주변을 경계하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들이 나를 발견하자 바로 경례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받아주며 그들이 다시 근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선을 주지 않았다.
물론 성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병사는 붙잡지 않았다. 저들 또한 각자의 임무가 있으니 말이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자 어두웠던 세상이 조금씩 밝아졌다.
동부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푸니타 산맥 때문에 바다에서 볼 수 있는 지평선에서의 일출과는 달랐다.
높고 험준한 산봉우리 사이로 천천히 붉은 태양이 떠 올랐고, 이내 곧 내가 서 있는 곳을 비롯해 브리타니아 대륙에 아침이 밝아왔음을 알려주었다.
새로운 시나리오에 맞춰 새롭게 시작함을 알리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예쁘네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았기에 천천히 몸을 돌려 인사를 올리려 했다.
“예는 거둬 주세요. 지금 이 순간은 같이 떠오르는 해를 보고 싶네요.”
“공주님의 뜻대로…….”
나는 등을 돌리려던 것을 멈추곤 다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저 해가 떠 오르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는데, 전율이 느껴졌다.
‘미쳤네. 벌써 이 정도 기술력까지 끌어올렸다고?’
나는 미리내 기업에서 만든 가장 최신형 캡슐에서 게임을 하는 중이다.
이전에 사용하던 캡슐이 적은 용량의 램 하나짜리 컴퓨터라면 지금 내가 사용하는 캡슐은 수십 개의 고용량 램이 박혀 있는 슈퍼컴퓨터와 마찬가지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금 내가 보고 느끼는 감각이 이전보다 월등해졌다는 것이다.
마치 개안이라도 한 듯 더욱 맑고 선명해졌다.
저 멀리 산속에서 어미가 가져다주는 먹이를 기다리며 빽빽거리는 새끼 새가 눈에 들어왔다.
웅웅!
귓가를 울리는 소리.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병사들이 교대하는 중인지 근무 중에 있었던 일들과 나와 공주님이 있다는 것을 보고 하고 있었다.
분명 한참 떨어진 곳에 있음에도 마치 옆에서 말하는 듯 생생하게 들렸다.
나는 손을 뻗어 천마검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천마검의 촉각과 내가 입고 있는 가죽 갑옷의 촉감이 이전과 다르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은은하게 코를 타고 들어오는 꽃의 향기.
공주의 몸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향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미각은 실험할 수 없어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오감이 더욱 발달했다는 것이기에 나는 기꺼운 웃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뭔가 반가웠다. 회귀 전에 느끼던 감각이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때와 나는 많이 다르다. 직업부터 시작해서 함께하는 이들까지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것 하나만큼은 뚜렷하게 달랐다.
‘나 자신.’
그래, 바로 나 자신이다.
상위권에서 밑바닥으로 추락한 나.
다시 위로 올라가기 위해 매일같이 발악하며 하루하루를 고통과 눈물로 얼룩지던 밤.
아무리 노력해도 재능과 직업 간의 격차를 뒤집지 못했던 날들.
조금만 생각을 바꿨더라면 저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금의 나처럼 순수하게 월오룰을 즐기며 플레이했다면 말이다.
아마 저 때의 망가진 내 모습은 볼 수 없었으리라…….
고개를 흔들어 그 상념을 지워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회귀 전의 내 모습이 아니라 지금의 나라는 존재다.
지금에 나에게는 특별한 직업과 파트너가 있고, 그 직업에 충분히 어울리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을 순수하게 즐기고 있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오늘부터 메인 시나리오 2부가 시작된다.
원활한 게임 진행을 위해서는 내 등 뒤에 있는 존재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몸을 돌려 인벤토리에 있던 로브를 꺼내 공주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법 쌀쌀한 것 같습니다. 감기라도 걸리시면 제국민이 슬퍼할 겁니다.”
공주에게 로브를 걸쳐주었다.
튜벨란 백작이 만든 로브로, 몸에 체온을 유지시켜 주는 녀석이다.
나야 계속된 전투로 로브 대신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인벤토리 안에서 보관만 되던 녀석이었다.
확실히 효과가 있는지 하얗던 공주의 얼굴에 생기가 조금 돌아왔다.
“고, 고맙습니다. 시저 백작님.”
싱긋 웃어주는 공주님에 나도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러곤 키트비느 자작의 성으로 들어갔다.
* * *
월오룰의 업데이트.
새벽 6시를 기점으로 월오룰이 오픈된다. 오픈을 기다리는 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오픈과 동시에 접속을 시도했다.
무려 5천만 명에 달하는 동시 접속자.
이미 서버 개편 및 확장을 거친 월오룰은 그 인원을 거뜬하게 받아들였고, 수많은 이들이 동시에 다시 월오룰의 세상에 접속했다.
“업데이트 내역부터 확인하자고!”
“이번에는 뭘 업데이트했으려나?”
“메인 시나리오 2부! 찾아야 한다.”
모두가 흥분으로 가득한 외침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제 새롭게 시작될 시나리오와 새롭게 업데이트된 것을 찾기 위함이었다.
무엇이든 좋았다. 작은 힌트든, 미세하게 달라졌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삼 일만에 접속해서 변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대략 한 시간이 지난 시점.
주변을 샅샅이 뒤지며 새로운 변화를 찾아 나서던 이들이 하나같이 움직임을 멈추곤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X발! 그래서 뭐가 업데이트된 거냐고?!”
절규나 다름없는 외침.
하나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분노를 삭였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삼 일간 기다림을 보상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 몇 시간도 아니고, 무려 삼 일이다.
그동안 월오룰을 플레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세상을 빼앗긴 것과 같다.
당연히 그 허탈감이나 상실감을 이로 말할 수 없는 수준.
그럼에도 그들이 조용히 기다린 것은 새롭게 변할 월오룰의 세상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나 그 기다림의 끝에 변한 것을 찾지 못한 그들로선 화가 날 법도 하다.
물론 이런 일이 생겨난 것은 저번 업데이트의 영향이 컸다.
“아니! 저번에는 뭐가 추가되었는지 대략 알려주더니만?”
“그럼 뭐 하냐? 그래서 신규 직업 가진 사람 나왔어?”
“새로운 장비라고 나온 것도 없어!.”
“이거 말만 업데이트라 하고 그대로인 거 아냐?”
“라온 소프트는 해명해라!”
“이건 분명 주가 상승을 위한 주작이다!”
실제로 라온소프트의 주가가 또 상승했다. 그리고 몇몇 기업은 주가가 하락했다.
마왕이라는 단어에 가장 먼저 뒤로 빠진 플레이어를 후원하는 기업이었다. 거기에 마왕을 쓰러뜨려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 가장 먼저 움직인 이들을 후원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공식적인 내용이나 발표는 없었지만, 월오룰을 시청하는 인구를 생각하면 그들의 움직임은 쉽게 볼 수 있었다.
당연히 기업의 신뢰도가 떨어짐은 물론이고 심하게는 불매 운동을 펼치자는 여론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그만큼 월오룰이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거다.
그 영향을 받은 플레이어는 물론이고 방송으로 시청하는 이들 또한 커뮤니티에 모여들어 저마다 생각을 달았다.
- 뭐라 할까. 지금 생각해 보면 마왕이 죽을 때 그 대사가 없었던 것 같은데?
- 후후후. 나는 사천왕 중에 최약체다. 곧 나보다 더 강한 자들이 너를 찾아올 것이다.
└ 이욜! 보통은 다른 사천왕이 찾아와서 하지 않나?
└ 그게 뭐 중요하나. 어찌 되었던 마왕의 뒤로 누군가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지.
- X신들. 이번에 나타난 마왕은 본체 아니라고 했었음.
└ 뭔 소리임?
└ 이번에 나타난 마왕은 수많은 오크를 재물로 만들어진 육신으로 강림 한 거임. 그래서 마왕이 죽은 게 아니라서 게임이 유지된 거고.
- 그렇다면 마왕은 또 나타날 수 있다는 거네? 그것도 매번 새로운 육체로?
└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음.
- 아니, 그래서 업데이트가 뭔데?
- 진짜 불친절한 건 여전하네, 월오룰!
-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그래서 끊지 못해!
- 하앜하앜. 얼른 뭔가 떴음 좋겠다.
불친절한 게임으로 유명한 월오룰. 그럼에도 사람을 빠지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시청자 또한 마찬가지로 푹 빠져 있었다.
그렇기에 월요일의 아침인 이 시간에도 휴대폰을 들고 월오룰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있을지 찾거나 기다리는 중이었다.
모두가 새로운 소식을 궁금해하는 중, 월오룰에 접속한 플레이어와 커뮤니티에 있는 시청자에게 동시에 떠 오른 생각이 있었다.
- 시저는?
모두가 궁금해하는 것은 다음 아닌 시저.
이번 마왕과의 전쟁에서 가장 큰 보상을 받은 유저이자 메인 시나리오 기여도 1등을 차지한 그의 행방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시저가 말하지 않았던가? 다시 접속했을 때 이번에 얻은 보상을 공개하겠다고 말이다.
모두가 시저를 찾는 순간 마치 그것을 예상했다는 듯 팀 나르샤 채널에 새롭게 공지가 올라왔다.
- 시저의 방송이 정오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시저의 방송이 점심시간에 진행된다는 글이 올라왔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 순간 모든 것을 놓았다.
월오룰을 플레이하는 유저는 다시 사냥을 시작할 준비를, 방송으로 시청하는 사람은 자신의 업무를 시작했다.
그들은 알았다. 자신들이 굳이 힘들게 찾을 필요가 없음을, 그리고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음을 말이다.
이번 마왕과의 전쟁에서 시저의 방송을 보지 않은 것이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았던 만큼 이번 시저의 방송이 기대되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약속한 12시가 되자 시저의 방송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시저입니다.”
정중한 인사와 함께 시작된 시저의 방송.
가벼운 안부 인사와 함께 저번에 약속한 랜덤 스킬 뽑기 권을 사용하겠다며 인벤토리를 열려고 하는 찰나였다.
- 잠깐. 시저.
누군가의 후원이 시저를 멈춰 세웠다.
레전더리 스킬을 뽑는 순간이기에 모두가 기대 가득한 얼굴로 흥분해 있는 상황에 초를 치자 원성이 가득한 채팅이 올라왔다.
하지만 또 한 번의 큰 후원금과 함께 자신의 정체를 밝힌 인물이 민감한 질문을 했기 때문이었다.
- 메시아 길드의 쥬조아다. 이번 업데이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를 풀어주면 아이템 하나를 제공하지.
갑작스러운 메시아 길드의 등장.
그리고 이어지는 거래에 모두가 흥분한 나머지 채팅창이 불타올랐다.